◇ 고행(苦行)과 수행(修行)의 길, 내 인생의 안나푸르나 (7)… ◇
* [HIMALAYA ANNAPURNA ROUND TREKKING] ♣…집필 오상수 *
▶ 2013년 3월 25일 (월요일) : 제6일
*[참메]-바라탕-두쿠르 포카리(점심식사)-[피상]
☆… 3월 26일(제6일) 아침 8시 30분, 차메의 마르샹디 롯지를 출발하여 트래킹에 돌입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날이다. 가벼운 바람이 살랑이는 화사한 날이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남중히말의 거대한 설산이 아침 햇살을 받아 순백의 강렬한 빛을 내쏘고 있었다. 동네 한 가운데 길에 있는 마니월(maniwall)을 지나며 보륜(寶輪)을 차례로 돌려나가며 “옴마니 반메훔” 진언(眞言)을 암송했다. 마을을 나서자마자 바로 현수교를 나타났다. 길은 마르샹디 강의 협곡 오른쪽으로 난 신작로였다. 타르쵸(Tarcho) 깃발이 펄럭이는 현수교 위로 등에 하얀 부대의 짐을 진, 한 떼의 덩키들이 열을 지어서 우리를 앞질러간다.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울리며 앞서 가고 있었다. 히말라야 협곡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 맑은 공기, 신선한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어 쾌적하기 이를 데 없다. 이상배 대장이 속도를 조절하여 아주 느리게 걷는다. 대원들 또한 미리 숙지한 보법(步法)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의 하얗게 눈이 덮인 거산연봉을 마음에 담아갔다. 우리가 걷는 길은 꼭 우리나라의 화창한 봄 날씨 같다. 그러나 이곳은 매우 건조한 기후이어서 그런지 몸에 와 닿은 감촉이 더없이 산뜻하다.
☆… 이(李) 대장이 중심을 잡아서 걷는 가운데, 나이가 어린 노재성 군이나 비교적 젊은(사실은 50의 나이이다) 김석순 대원의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전민수 대원의 보법은 느린 듯하면서도 한결같은 속도로 나아가고, 여삼동 대원은 스스로 몸을 다스리며 신중하게 걷는다. 뒤에 쳐져서 오는 거구의 기원섭 대원은 자신의 체구에 맞추어 묵묵히 걷고 있는데, 가이드 겔젠과 쿠커 마일러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겔젠은 기원섭의 배낭을 받아서 앞으로 안고, 마일러는 무거운 카메라를 안고 따른다. 거구 기원섭은 스틱으로 자신의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걷는다. 두 사람의 충직한 도우미가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신작로를 따라가는 길] …청명한 하늘, 설산거봉과 히말라야 소나무
☆… 협곡의 왼쪽 건너편은 남중히말(Lamjung Himal, 6,931m)의 연봉에 이어 빙하의 안부로 이어지다가 안나푸르나(Annapurna)Ⅱ봉으로 솟아올라 눈부신 광채를 발하고 있다. 발아래 계곡에는 뿌연 옥빛 강물이 흐르고 계곡 주변은 이제 한창 봄을 맞아 새로운 생명들이 솟아나기 시작하는데 건너편 산록에는 짙푸른 히말라야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 뒤로는 파란 하늘을 찌르는 설상고봉 장엄하다. 산이 높아지면서 온 산은 만년설로 덮여 있어 히말라야는 사계절이 공존한다는 말이 실감이 갔다. 그리고 간간이 서너 가옥 정도의 작은 마을도 나오고 길 가의 밭에는 새파랗게 밀이 자라고 있었다. 거대한 설산을 배경으로 초록의 밀밭이 조화를 이루어 아주 인상적이었다. 박목월의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 같은 평화스러운 서정이 감겨든다.
☆… 길은 산자락을 마구 파헤쳐 만든 신작로, 포장은커녕 길가 좌우의 마무리 작업을 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어, 한 차례 폭우가 내릴 경우 토사가 그대로 휩쓸려 갈 것 같았다. 히말라야는 이렇게 우마나 차가 다니는 길을 내기 위해 도처에 바위를 깨고 산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팍팍한 산길, 곳곳에 먼지가 풀석풀석 일어난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돌아보면 파란 하늘을 치받고 솟아있는 남중히말의 연봉과 안나푸르나Ⅱ의 고봉이 순백의 장엄경(莊嚴景)을 보여주고 있다. 깊고 깊은 마르샹디(Marshangdi) 계곡을 따라 난 신작로 주변에는 은은한 봄기운이 감돌고 주변의 산록에는 히말라야의 푸른 숲이 싱그럽다. 약간씩 고도를 높여가면서 신선한 바람결이 목에 감기고, 화사한 햇살을 받은 싱싱한 소나무 숲의 정취가 그윽하다.
*[햇살이 따사로운 바라탕(Barathang)] …편안한 휴식
☆… 오전 11시 20분, 타레구를 거쳐 해발 2,850고지의 바라탕(Barathang)에 도착했다. 마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여러 채의 퇴락한 집들이 방치되어 있고, 길가의 한 롯지 식당만이 지나는 길손이 쉬어 갈 수 있는 곳이다. 자연석 돌담 옆에 ‘Barathang Apple Farm’이라는 표지판이 있어 둘러보니, 길옆의 돌담 안쪽에 과수원이 있다. 이제 막 움을 틔우고 있는 볼품없는 히말라야 사과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사과나무들이었다.
이상배 대장 .... 그리고 김석순 대원(오른쪽)
기원섭 대원
☆… 우리도 앞뒤로 떨어진 대원을 모아 각자 준비해온 간식을 들면서 따뜻한 햇살을 즐겼다. 후미의 기원섭과 마일러가 도착하고 나서 간식을 나누며 한참을 쉬었다. 다시 행장을 수습하여 다시 길을 나섰다. 계곡은 깊어지고 산은 높아지고 있다. 팍팍한 길을 걷고 걷는다. 앞으로 걸어 나가면 산봉을 바라보는 위치가 달라지고 위치가 다르면 같은 산이라도 그 면모가 아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같은 산이라도 걸으면서 관망하는 묘미가 새롭다. 이것이 트래킹의 매력이다.
산과 사람
☆… 가슴 아픈 것은 바위 절벽에 길을 내기 위해 계속해서 돌을 깨고 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계곡에는 설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듯한 눈사태가 지저분한 흙먼지를 뒤집어쓴채 굳어 있고 어떤 곳에서는 산록의 흙이 자연 침식으로 인하여 거대한 절벽을 이루고 있는 곳도 눈에 띄었다. 산굽이를 돌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측의 거대한 백설의 슬라브[雪斜面]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도를 찾아봐도 이름도 나와 있지 않은 산이다. 일부는 눈이 녹아 바위를 드러내고 있지만 방대한 백설의 사면이 아주 거대한 슬로프를 형성하고 있어 아주 장대하고 특이했다.
절벽의 바위를 파내어 길을 만들다
☆… 여전히 깊은 협곡의 좌우에 솟아있는 거산의 위용이 장엄하다. 안나푸르나Ⅱ봉이 여전히 강력한 위세로 시야를 떠나지 않는다. 얼마를 가다보니 쇠줄다리가 나타나 협곡을 건넜다. 이제 길은 계곡의 왼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이어지는 것은 가파른 산길이었다. 수림이 우거진 산 속으로 난 길이다. 한참 고도를 높여 올라간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쾌적한 산길이 이어진다.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길목에 민속기념품을 파는 작은 노점상이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후속 대원을 기다려 몇 굽이 돌아가니 제법 깔끔하게 단장한 롯지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히말라야 덩키의 행렬
*[한낮, 두쿠르 포카리(Dhukur Pokhary)] …점심식사, 그리고 휴식
☆… 낮 12시 40분,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로 두쿠르 포카리(Dhukur Pokhary)였다. 이곳에서 우리들은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롯지의 마당에 설치된 비치파라솔 탁자에서 이 대장이 준비해온 ‘즉석 포포면’(대한민국 포천에서 생산한 쌀라면)으로 식사를 했다. 이집은 식당을 빌려줄 수 없다고 하여, 찐 감자와 만두를 시키는 대신 뜨거운 물을 제공 받아 ‘포포면’을 익혀 먹을 수가 있었다. 롯지의 정원에서 바라보면 한낮의 햇살을 받은 안나푸르나(Annapurna)Ⅱ봉의 눈부신 설경을 마주하는 묘미가 있다. 하얀 만년설이 보는 이의 마음을 환하게 한다. 그리고 그 준엄한 설봉에서 하얀 눈보라가 일고 그 뒤로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뽀얀 구름이 어울려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쿠레포카리 호수가 있는 평원길] …안나푸르나Ⅱ봉과 Ⅳ봉
☆… 오후 2시 30분, 점심식사와 긴 휴식의 시간을 가진 뒤, 다시 길을 떠났다. 롯지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시야가 확 열린다. 좌우로 높은 산이 포진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온 길과는 달리 길은 분지의 평원지대의 한 가운데로 나 있었다. 곳곳에 히말라야 침엽수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봄 가뭄에 물이 많지 않지만 작은 호수가 있어 아주 평화스럽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두쿠르포카리 호수(DhukurPokhary-Lake)이다. 호숫가에는 방목한 염소들이 마른 풀을 뜯고 있었다. 좌우의 산세는 여전히 위압적이다. 뒤를 돌아보니 두쿠레 포카리 마을 뒷쪽의 그 설사면 거산이 더욱 완강한 모습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은 푸르고 대기는 맑다. 그 파란 하늘에 눈부신 설산은 역시 신비경을 자아내고 있다. 길은 평탄하고 우리의 발걸음은 이상 없이 건재했다.
우리의 가이드 셀파 겔젠(왼쪽에서 두번 째)과 포터들
☆… 피상(Pisang)에 가까워지면서 좌측으로 눈부신 설산영봉이 장엄하게 우리를 따라온다. 그 장대한 높이와 이어진 두 산봉사이의 설사면이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다. 바로 안나푸르나Ⅱ봉(7,937m)과 안나푸르나Ⅳ(7,525m)봉이 어깨를 나란히 하여 솟구쳐 있는 것이다. 우리의 발길은 아늑하고 평화로운 평원을 걷고 있지만 이렇게 좌우원근의 고산거봉들이, 때로는 신비롭게 때로는 완강하게 그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때로는 맨살을 드러낸 벌판이지만 때로는 시퍼런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색다른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었다.
*[피상(Pisang)의 롯지] …앞에는 피상피크, 뒤에는 안나푸르나 연봉
☆… 오후 3시 30분, 해발 3,190m의 피상(Pisang)의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이제 해발 3,000m가 넘는 고도에 진입한 것이다. 여러 채의 롯지가 죽 늘어서 있는 마을로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가 머무는 이 마을은 로우어(Lawer) 피상이고, 오른쪽 마르샹디 강을 건너 상당히 높은 산록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 업퍼(Upper) 피상이다. 산록에는 우리나라 다랭이논 같은 층층의 밭들이 보이고 그 위쪽으로 상당히 많은 가옥들이 들어서 있다. 상당히 높은 고산의 주거지였다. 그 아래쪽 강안의 벌판에는 염소들이 무리지어 풀을 뜯고 있는데 상당히 목가적인 분위기였다. 그 뒤로 하얀 설봉이 보이는데 꼭 순한 애견 달마시앙을 닮은 형상이었다.
☆… 우리는 마을 안쪽에 있는 비교적 규모 있고 깨끗한 롯지(‘Tilicho Hotel’)에서 여장을 풀었다. 롯지의 앞쪽은 피상피크, 뒤쪽은 안나푸르나Ⅱ·Ⅳ의 연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곳이다. 그런데 저녁이 가까워오면서 돌연 바람이 불고 구름이 몰려오면서 날씨가 음산하게 추워지기 시작했다. 히말라야는 오후만 되면 이렇게 변덕을 부린다. 목재로 지은 롯지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비교적 깨끗했다. 별채처럼 달아낸 식당은 창문에 예쁜 커텐이 둘러처져 있고 아기자기한 장식으로 실내 분위기가 한결 아늑했다. 테이블에도 깨끗하고 식탁보(褓)가 씌어 있었다. 식당 한 가운데에는 나무로 불을 지핀 난로가 따뜻했다. 오늘의 저녁식사는 후라이아이스, 쌀알이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안남미 볶음밥이었다.
☆… 새벽 1시에 잠시 깨어 밖에 나와 보았더니, 하늘은 씻은 듯이 청정하고 예의 휘영청 달빛이 적막한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오늘도 하늘에 뜬 북두칠성을 보았다. 어머니의 가호와 누님의 정성이 히말라야 장정에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낀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