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왕(仇衡王) 릉
2000년 8월 MBC에서 절찬리에 방송되던 드라마 “허준”이 끝난 지도 2개월이 지났다.
허준 선생의 극중 유적지인 산청군 생초면에서 지리산 유의태 약수터를 찾아 올라가는 도중에 날씨가 너무 더웠는데 물을 준비하지 않아서 탈수증(脫水症)을 만나 약수터를 가지 못하고 하산하여 쉬는 도중에 구형(仇衡)왕릉을 답사하게 된 행운을 얻었다.
이를 두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 했던가.
덕양전(德讓殿)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있는 금관가야 제10대 구형(仇衡)왕과 왕비를 신위(神位)를 모셔 놓은 전각(殿閣)이다.
구형(仇衡)은 금관가야(金官伽倻) 김수로왕(金首露王)으로부터 10대 왕인데 양왕(讓王)이라 부르는 것은 532년(신라 법흥왕 19) 금관가야를 신라에 양위(讓位) 하였다 하여 붙인 왕명(王名)이다.
구형왕은 밀양의 이궁대에서 신라 법흥왕에게 선양의 절차를 마친 뒤 낙동강을 지나 이곳 왕산의 태왕궁으로 들어와 은거하다 5년 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삼국사기” “삼국유사”등을 인용한 “가락국 2000년 사”에 기록돼 있다.
이 사료에 의하면 구형왕이, 많은 백성이 화를 당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나라를 스스로 넘겨주었기 때문에 훗날 그의 후손인 김유신장군 등이 신라에서 삼국통일의 큰 유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1898년 순종황제가 김해에 있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능침을 숭선전(崇善殿)으로 사액(賜額) 하므로서 구형(仇衡)왕릉을 덕양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사액(賜額)이란 임금이 사당(祠堂) 서원(書院)등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현판을 말한다.
김씨(金氏)성을 두 가지로 구분할 때 신라(新羅)의 김알지(金閼智)후손을 경주(慶州) 김씨(金氏)라하고 금관가야(金官伽倻)의 김수로왕(金首露王) 후손을 김해김씨(金海金氏)라 한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