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C 성서연구 - 제21강 열왕기하 남북왕조의 형성과 멸망
(49)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열왕기하 25:18-30
여러분, 이 년 가까이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다윗왕조의 시작과 끝을 수요밤예배를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이 그 마지막 시간인데 어리석은 인간이 남긴 최악의 결과, 그 절망과 굴욕의 자리에 또다시 찾아오시는 하나님, 그렇게 다시금 인간과 시작하시는 하나님을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를 확인하시면 됩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확인하시면 됩니다. 언제나 그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것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늘 이 은혜가 우리에게 열려있음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다시 그분 앞으로 나오시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늘 인간편에서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그 사랑을 거절합니다. 우리 힘으로, 우리 능력으로, 우리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나님처럼 살아보겠다고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절망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고통이고 절망이고 죽음이고 애통입니다.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최초 인류의 역사는 홍수와 바벨탑으로 끝났던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이어가시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이어가시는 것입니다. 경수가 끊어진 사라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미래를 주시고 약속을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런 족장사가 어디에서 끝나요? 요셉에서 끝납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다른 왕이 이어지고 애굽에서 태어나는 사내아이는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인간의 절망, 강에 버려진 모세를 세우시고 당신의 역사를 이어가시는 것이지요? 그 출애굽의 역사는 어디에서 끝나요? 여호수아가 죽고 하나님의 역사를 알던 그 모든 장로들이 죽어 끝납니다. 자기들의 멋대로 살던 시대 하나님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부부에게서 사무엘을 주시면서 당신의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다윗이 세워지고 솔로몬이 세워집니다. 그리고 아슬아슬 이어오던 관계가 마침내 또다시 끊어지고 마는 단락이 바로 여기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길고긴 70년의 포로기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끝나고 말던가요? 아닙니다. 어떻게 이어져요? 예루살렘, 유다, 하나님 예비하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닙니다. 저 흩어진 이방 땅 곳곳에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곤 다시금 포로된 당신의 백성들을 불러들이시는 것입니다. 다시금 성전을 세우고, 다시금 성벽을 쌓고 하나님 앞에 돌아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다시 타락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정치세력과 결탁하고 백성들은 이방 족속들과 혼인하고 동맹을 맺고 우상을 섬기고 안식일에 성전에서 장사하고 모든 것이 또 엉망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신구약 중간시대 암흑기라고 하는 400년의 시간이 흐릅니다. 완전한 단절인 것 같았고 이제는 끝인 것 같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이런 백성들 줄테니 너 하나님 할래? 그러면 저 하나님 안한다고 할 것 같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이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훼손시키고 경멸하는 인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시지요?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를 불러서, 누군가를 세워서 이어가시지 않습니다. 당신이 직접 오십니다. 그 깨어진 관계, 단절을 다시금 당신 편에서 이어가십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십니다. 누가 이어가요? 하나님께서 이어가시는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사람들이 십자가에 죽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초청과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지요? 이쯤 하면 성경에는 뭐라고 기록이 되요? 아들을 죽이고 자기들이 주인이 되려한 저 포도원 소작농부들, 군대를 이끌고 와서 진멸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실패한 인간들에게 또다시 찾아오십니다. 이제는 제한된 육신이 아닌 모든 인류에게 영으로 임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의 역사를 진행해가고 계십니다. 오늘도 거절하고 거부하고 배반하고 거역하고 자기 멋대로 살고자하는 인생들에게 계속해서 당신의 사랑을 성경을 통해서 확인시켜주시면서 말입니다.
여러분, 이 끊임없이 인간편에서 단절하고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던히도 하나님께서 이어오셨습니다. 당신의 아들 보내셨고,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이제 이마저도 부인하고 나면 어찌될까요? 저희가 모르는 또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있으실 것이지만,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바는, 우리 주님이 마지막 심판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시작하신 역사를 하나님께서 끝내시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때, 알곡이 될 것이냐 쭉정이가 될 것이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것이냐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될 것이냐, 양이 될 것이냐 염소가 될 것이냐,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될 것이냐,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될 것이냐, 영생에 들어갈 것이냐 영벌에 들어갈 것이냐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우리를 개혁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마지막 때가 멀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를 사랑의 손길을 훼손하고 외면하는 어리석은 마지막 세대, 우리가 되지 말고 더욱 그분과 동행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자 오늘 본문을 살펴 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신하 느부사라단은 유다 백성들을 잡아갔고 그 가운데 바벨론에 위협이 될 만한 사람들은 죽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애굽을 의지한 유다는 결국 하나님이 경고하신 대로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소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장래에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렘 29: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9:10-14)
남유다에 아무런 소망이 없어 보였지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그들이 70년 후에 다시 돌아오리라는 새 소망의 예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그들이 귀환하여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도록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새 역사를 일으키시고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실 것을 소망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비와 긍휼이 크신 하나님께서 다시금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놀라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앞에 속히 돌아오시고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는 우리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던 중, 느부갓네살은 빈민과 천민만 남은 유다를 관할하도록 그달리야를 세웠습니다. 이를 보고 어떤 유다 사람들은 그달리야를 통해 다시 유대 공동체가 세워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바벨론의 앞잡이인 그가 사라져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달리야는 자신에 대한 암살 계획을 듣고도 믿지 않다가 마침내 이스마엘의 손에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새롭게 세워진 그달리야도 소망이 되지 못했고, 그를 죽인 이스마엘 일행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애굽으로 피신을 하지만 결국 그들도 다 죽고 마는 것이지요?
무엇을 말씀합니까? 사람의 판단은 이처럼 한 치 앞도 모르며 마침내 비극을 경험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지도자가 아닌 오직 유일한 소망이신 메시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여, 오늘 우리의 생명을 전리품처럼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와 여러분 모두 누리시길 바랍니다.
여호야긴은 18세에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의 감옥에 갇혔다가 바벨론 왕의 호의를 받아 55세에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누가 하셨을까요? 여호야긴이 뭘 잘한 게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또다시 손을 내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방 왕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다시금 이스라엘과 유다가 회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이 또 우리를 향해 사랑한다 고백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이 고생하고 유리하는 것을 도무지 보질 못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39편은 이런 고백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랑 안에 늘 거하시길 축복합니다. 읽어드리겠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1-10)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본문, 계속되는 저 왕들의 행보와 저 이스마엘의 길을 보십시오. 사람의 뜻대로 나아가는 길은 정확하게 죽을 길입니다. 피신한다고 살아보겠다고 가는 길이 죽는 자리인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가는 길은 정확하게 살 길입니다. 겉보기에는 설령 죽는 길, 절망의 길처럼 보일지라도 우리 하나님 말씀하신 그 길이 유일하게 사는 길인 것이지요? 여러분 성경이 오래전부터 기록하고 있고 예수님도 인용하셨던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명기 8:3)
광야에서도 감옥에서도 포로생활 중에서도 사는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험난한 시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통 깨어져버린 시대, 믿음이 없어서 무너진 시대, 믿음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 내가 주인되어 주저 앉아 있는 시대, 다시금 말씀으로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의 빛을 절망 한복판에 서 있는 죽어가는 영혼들 가운데 비추는 하나님의 복된 자녀들이 다들 되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