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디자인하다
손 예 화
개암나무 줄기에 매달린 채 짚어내려
비틀어진 묘술의 박음질에 얼킨 그늘
왕거미 올가미 속을 햇살꽃 사운댄다
웅크린 뼈대들의 날실 푸는 발목으로
바람 한 점 이운 자리 기암절벽 품어 안고
애채의 둘레가 되어 면벽하는 적막이여
큰 엉*의 산책로에 망사처럼 아른거려
밤이 오면 설핏 비친 별자리가 되는가
연연한 저 날갯짓에 파르르 스민 하늘 길
*큰 엉-기암 절벽이 성을 두르듯 서있고 중앙 부분에 있는 큰 바위 동굴
약력 2012년 《시조시학》 등단.
가람시조 백일장 장원, 약사 문예 대상, 전국 가사시조 공모전 우수상
시조집 『꽃차를 마시며』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대로 9다길 22번지
「거미줄 디자인하다」의 시조에는 거미가 개암나무 줄기에 매달린 채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화자가 등장한다. 화자의 눈에 비친 왕거미는 마치 박음질하듯 먹이를 잡기 위한 올가미를 촘촘히 치고 있고 그 사이에 햇살이 비쳐든다. '햇살꽃'이란 참신하고 밝은 어휘를 사용해 먹이를 잡기 위한 방법으로 거미줄을 치는 거미의 행동이 한 편으로 거기에 걸려들 곤충에 대한 안쓰러움이 느껴질만도 한데,
그러한 감정을 넘어 생존을 위한 거미의 행동이 조금은 긍정의 모습으로 비친다. '애채의 둘레가 되어 면벽하는 적막이여'란 표현 속에는 자기몸에서 뽑아내는 거미줄로 기암절벽을 품어 안고 새롭게 뻗어나간 가지 끝에 면벽하듯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거미줄을 다 쳐놓고 조용히 먹이감을 기다리는 거미와 거미줄의 모습이 드러난다. 정교하게 짠 거미줄은 바위동굴 주변에서 망사처럼 아른거리기도 하고 밤이면 별자리가 되기도 하고, 바람에 하늘거리기도 하는 모습이 날개짓을 하는 것 같기도 한 거미줄은 하늘도 스민 듯하다. 놓치기 쉬운 소재인데도 잘 포착하여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다.(김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