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박기옥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노회한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연륜은 석양에 걸쳤고, 기력마저 가파른 하향 곡선을 긋고 있다. 버거운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망설였지만, '백 세 젊은이'란 이사야 선지자의 성구에 자극받아 결심을 굳혔다.
어머니 흔적을 살릴 수 있는 적지適地를 골랐다. 밭 주위엔 일찍 할아버지가 심은 백 년 노송이 파수꾼처럼 둘러쳤고, 소나무 아래 설치한 정자는 비지땀을 식혀줄 쉼터로 안성맞춤이다. 어머니는 열여덟에 소위 왕손이라 뻐기는 밀양박씨 가문에 시집왔다. 살림날 때는 논 두 마지기 전부였다. 자녀를 줄줄이 생산하여 입에 풀칠하기 바빴다. 삯바느질, 품팔이로 푼푼이 모은 돈으로 장만한 땅이다. 허리끈 졸라맨 어머니의 애환이 공존한 삶의 터전이다.
이 땅을 바탕으로 엄마의 길쌈은 시동을 걸었다. 이른 봄이면 밭둑에 뽕잎으로 누에를 치고, 가을부터 겨울에는 목화 길쌈에 들어갔다. 당신의 삶 속에 가장 깊숙이 파고든 것이 무명베 짜기다. 암울했던 지난날, 목화는 어머니껜 희망이었지만, 줄기에 달린 다래는 철없는 소년에겐 훌륭한 간식이었다. 소녀의 젖꼭지처럼 봉곳이 돋아나는 달짝지근한 다래 맛이란! '다래 한 송이면 무명베 한 뼘 분량인데.' 어머니는 아쉬움을 삼키며 혀를 껄껄 찼으리라.
다래가 딱딱한 껍질을 뚫고 순백의 목화솜을 피우면 겨우내 길쌈이다. 무명베 길쌈은 소년에게도 친숙했다. 마당에 등겨 불을 피워 풀을 먹일 때면 불 당번은 늘 내 몫이었다. 어머니가 베틀에 앉는다. 부티끈으로 허리를 조이고 다리를 앞뒤로 밀고 당긴다. 날줄이 씨줄에 길을 열어주는 공정이다. 두 팔은 씨줄이 담긴 북과 바디를 좌우로 번갈아 넣고는 친다. 베 짜기는 다리와 두 팔의 놀림이 한 치의 오차를 허용치 않는다. 당신의 몸동작은 기계처럼 정확했다. 날줄과 씨줄의 조화를 가슴 속에 곰삭히며 가정의 평화를 엮었으리. 한 필 두 필 팔아 모은 돈으로 땅마지기를 넓혀나가지 않았던가.
베틀은 어머니의 가녀린 체구를 옥죄어 등을 굽게 했고, 마지막엔 지팡이에 의지하다 생을 마감했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 ‘인월댁’의 베 짜기는 청상靑孀의 한을 안으로 삭였다면, 어머니의 길쌈은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는 일념이었을 터. 자정 넘어서야 베틀에서 내려앉는 엄마 모습은 처연했다. 지난날, 이 밭에는 찬 서리 맞은 목화가 어머니 푸석한 머리칼처럼 허옇게 피어났지. 당신의 치열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어머니 유업을 잇고자 시류에 맞춰 목화 대신, 왕자두를 선택했다. 나무 심는 날이다. 전 가족에게 동원령을 내렸다. 각자의 체력에 맞게 분업에 들어갔다. 우거진 잡초 베기·터파기·나무 심기·물주기·보호막 설치 등. 뿌리가 활착할 수 있도록 주위를 넓게 판다. 물을 넉넉히 뿌린 뒤 흙을 넣고 지그시 밟는 일, 어느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다. 지난날,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나는 사방사업에 참여했다. 보리쌀 한되박, 밀가루 몇 킬로가 노임 전부였다. 오늘 식목은 그때의 경험이 주효했다.
작업을 끝내고, 삼 대가 정자에 둘러앉았다. 식솔食率의 얼굴을 살폈다. 아내의 곱던 얼굴은 실주름이 거미줄처럼 잡혔고, 불거진 손등의 정맥은 어지럽게 얽혔다. 중년에 들어선 아들, 며느리, 막내딸 모습에도 세월의 무게가 얹혔다.
“아부지, 그 연세에 왜 사서 고생하시려는지.” 자녀들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자두가 벙긋벙긋 꽃잎을 열면, 벌 나비 분답게 춤추겠지. 이내 옹골찬 열매를 달겠지. 목화처럼 담백하게 살다 가신 어머니 흔적을 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