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하느님의 기적을 쉽게 체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여러 기적들은 과거의 기록들 뿐이어서,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팩트(사실)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의미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의미에 중심을 둔다는 말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아닐까? 라는 현상에 집착하기 보다는 알 수 없는 사실에 관심을 줄이고 다른 측면 즉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의미 그리고 결과에 무게 중심을 두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접근은 이성이 중심이 되어 진 현대인들에게 썩 나쁜 방법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 중심적 성서읽기와 설교는 오늘날의 주된 신앙의 형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저 역시 성서를 아무런 비판없이 무조건 사실로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그런 것보다는 차라리 의미 중심적 성서읽기를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성서를 볼 때 '이건 사실이었다기보다는 끼워진 내용일꺼야' 라던지, '이건 편집자의 의도가 숨어 있는데' 라는 의심적인 시각은 신앙생활에 장애를 줄 수 있다는 입장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성서는 이성적이면서도 충분히 신앙적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말씀을 이성적이면서 신앙적으로 보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첫번째는 오늘의 말씀은 의심할 바 없는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기적이라 함은 일어나기 힘든 일이 일어나는 사건을 기적이라 합니다.
본문 초반부에 제자들은 오천명의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확신을 갖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있었던 장소 등이 썩 여유롭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서학자들은 이 당시 예수를 추종하고 따라다녔던 사람들은 오콜로스라고 하는 민중 그룹이었을 거라 말합니다. 다른 말로 서민층이었다는 거죠. 이런 사람들은 고작 자기 먹을 꺼나 아니면 그도 안 갖춘 사람들이었을 거란 얘기입니다.
그러한 여건에서 그들이 풍족히 먹고 남았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이것은 이성적 판단으로도 문제가 없는 기적입니다.
그러나 그 기적이 어떤 형태로(어떤 물리적 작용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논하는 것은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신앙적 자세는 예수님이 그 정도 일, 또는 그보다 더한 일도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두번째는 오병이어의 사건은 예수님의 두가지 모습 즉 신성과 인성이 잘 조화롭게 이루어진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성서에 권능을 통해 사람을 먹이신 장면은 출애굽기 16장 ‘만나’ 사건에도 나옵니다. 이는 하느님의 전적인 은총에 의해 이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저의 믿음으로는 예수님도 하늘에서 빵이 떨어지게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선택한 방법은 하늘의 빵이 아니라 나눔을 실천하는 한 아이의 손에 손을 얹었을 뿐이었습니다.
하늘의 계신 하느님은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게 하셨지만, 땅에 계신 예수님은 땅의 사람을 통해 기적을 만드신 것입니다.
요즈음 안철수씨의 행보가 참 뜨겁습니다. 힐링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지지도가 박근혜씨를 훨씬 웃돈다고 합니다. 정치인이지 않은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모두들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듯합니다.
그가 이 처럼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가 하는 일이 힘과 권력 또는 정당의 정치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친구의 친구가 안철수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 안철수씨는 대단한 존경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단지 대표 사장이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안철수씨가 다른 사람을 그 만큼 존중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진정한 기적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통해 기적을 이루셨 듯 안철수씨도 사람들 속에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결국 이 두 번째 논지의 결론도 예수님의 기적은 인간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사람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터무니없는 이적을 베풀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세번째는 예수님의 기적은 신앙을 전제로 행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내 병을 고쳐주시리라 온전히 믿는 사람과, 예수님께서 측은한 마음이 생겨 고쳐주신 사람들입니다.
두 부류의 기적은 결과는 병고침과 같은 기적으로 나타났지만 전자는 병고침 받는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고 후자는 예수님의 마음에 의해서입니다.
시로페니키아 여자의 믿음은 전자에 대한 우수한 사례임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도 그녀와 비슷한 고백을 성찬례 중에 드리는데, "주여, 주님을 내 안에 모시기를 감당치 못하오니,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라고 아룁니다.
결국 기적은 이성적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반드시 신앙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놀랍고 의미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놀라운 사건을 우리는 분석해야 할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기적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적은 성서시대 이후에 사라진 일이 아닌 오늘날에도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간구합니다.
기적을 봐서 신앙이 커지는 게 아니라 신앙이 있으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