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읽기 13:
삶에 봉사하는 알피니스트 김홍빈
서평: 『김홍빈, 희망을 오르다』 (2023, 사단법인, 김홍빈과 희망 만들기)
1. ‘한 사람의 생태적 자기는 그 사람이 동일시하는 대상이다.’
한 여름이다. 세상은 날로 더 뜨거워지고 있다. 인간이 이 더위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에 가는 일도 힘들어졌고, 마냥 집에서 쉬고 싶을 따름인데, 그래도 살아온 버릇이 있는 터라, 옷을 헐렁하게 입고 책을 읽고 있다. 오욕의 과거를 미화하고, 고귀한 가치를 역사정신의 퇴폐로 덮어씌우는 몰염치의 시대, 그리하여 역사가 편협한 가치로 물들어 가는 비참한 시대, 이런 시대에 대하여 지니게 되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비하면, 폭염은 아무 것도 아니다. 산에 갈 수 없어 책 속으로 들어간다. 노르웨이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참 드문 일이다. 학생 때부터 읽은 헨릭 입센과 크누트 함순을 빼놓고는, 현대 소설가 욘 포세가 있을 뿐이다. 나중에 하루키의 소설 제목에 노르웨이가 나와 노르웨이 기억을 새롭게 했고, 최근에 심층 생태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아르네 네스의 글을 읽었다. 첫 번째 단락의 제목은 그의 글에서 따왔다.(아르네 네스 외 지음, 이한중 옮김,『산처럼 생각하라』, 소동, 2012, 22쪽)
이 참에, 광주에 사는 산악인 문종국 선생이 보내준, 그가 쓰고 엮은, 알피니스트 고 김홍빈에 관한 책 두 권을 읽었다. 한 권은 『동행:우리 빛나는 청춘, 아름다운 삶』(2000. 한국 K2 원정대 & 한국 낭가파르바트 루팔벽 원정대, 2021)이고, 다른 한 권은 『김홍빈, 희망을 오르다』 (2023, 사단법인, 김홍빈과 희망 만들기)이다. 나는 후자의 책을 먼저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알피니스트 김홍빈, 책을 읽으면서 그를 겨우 더듬는다. 이 글은 이 책을 읽으면서 노트한 것들을 모은 것으로, 본격적인 서평을 쓰기 위한 출발이다.
2021년 7월, 브로드피크 등반을 끝내고, 김홍빈은 그가 살던 고향의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구조의 끝에 7월 19일 중국 쪽 절벽으로 추락(407) 사라졌다(408, 이하 괄호 속 숫자는 이 책의 쪽수임). 이 등반과정과 추락사에 관한 과정은 이 책 끄트머리에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390-411) 나는 죽음에 이르는 이 부분을 제대로 읽어나갈 수 없었다. 등반을 준비한 2021년 6월 10일부터 대원들이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이륙한 8월 2일까지의 세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산악도서들 가운데, 한 알피니스트의 추락사고 과정을 이렇게 정리한 바는 없다.
알피니스트 김홍빈은 세상과 격리된 공간인 산으로 가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산을 좋아했던 김홍빈은 소리없는 산이 되었다. 그곳은 지상낙원일까? 광주의 산 친구들과 그를 아는 이웃들은 ‘김홍빈 대장’, 그를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으면서 그의 삶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를 노래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부재하는 김홍빈의 침묵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홍빈의 삶, 그 기슭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렇게 생이 멈춘 김홍빈의 숭고함에 빠져들고 있다. 그의 부재 속, 세상은 그의 등반 전체를 평가하며 장애인 최초라고 했고, 8.000미터 14좌 완등이라는 말로 축하하고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모험과 도전이라는 그를 수식하는 일상적 수사보다는, 나는 그가 왜 그토록 오르고 싶었던 바를 알고 싶었다. 이 책 속에서 있는 문구대로 하면, “숨겨진 성품과 욕구가..(산과) 맞아 떨어진 운명적 인연”(26)이 사뭇 알고 싶다. 산에 젖은 사나이, 김홍빈...산에 어둠과 빛이 있다면, 그는 빛의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갔다. 산은 그에게 빛의 벽이었으리라.
알피니스트 김홍빈, 초등학교 때부터 신장결석을 앓던 그는 1983년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그의 말을 옮기면, “언론을 통해 캠핑하는 모습을 보며 야영문화를 접해보고 싶”(26)었던 그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찾아간 곳은 대학 산악부였다. “해변에서 텐트 치고 낭만을 즐기는 그런 것”(26)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 산과의 인연으로 보인다. 그렇게 “처음에는 산이 좋았죠...어느 순간에 산에 다니는 사람이 좋아졌어요. 산에 있으면 편안해요...언제나 편하고...”(26) 그가 대학 산악부에서 배우고 경험하는 것은 “배낭의 무게만큼 즐기는 정신력의 힘”(26)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1989-90 동계 에베레스트 등반에 참여했을 때, 그는 “전세방을 빼서 경비를 만들었”(32)다. 젊은 그를 흥분하게 했던 이 등반은 성공하지 못했다. 산의 통로로 들어가기에는 그의 삶의 통로는 아직 좁았다. 1991년 5월, 데날리 원정에서는 등반 중 의식을 잃었다가 구조되었다. “너무 추웠다. 추운 게 아니라 얼은 느낌이었다...무의식 중에서도 살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또 의식을 잃었다.”(40) 병원에서 그는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고 형체와 목소리만 듣고 일어서지도 못하고 침대로 쓰러지곤 했다...(그곳에서) 3주 동안 배 피부 속에다 양손을 넣고 손목 관절에 살이 잘 차오르기를 기다렸다. 절단해 손가락은 없지만...”(41), 결국, 그는 “손가락은 하나도 없고, 손등과 손목을 연결해 주는 관절빼도 없고, 하얀 근육만이 가느다랗게 보이고 금속으로 연결을 시켜 놓은”(42) 채, 세상으로 들어왔다.
김홍빈은 그렇게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고, 산이 되기 위한 한 인간은 이렇게 자신의 몸부터 내맡겨야 했다. 산의 세례, 그 때부터 그의 시선은 산이었다. 산처럼 바위의 틈새를 보았다. 말보다 침묵으로 산을 보았다. 그곳에 매혹적인 것이 있었다. 나는, 그 때부터 그가 다시 태어나 새로운 세계를 살기 시작했다고 여겨졌다. 그는 광주에 살고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산을 떠돌고 있었다. 그의 몸은 광주를 날고 있었다. 그리고 히말라야로, 브로드피크로 훠이훠이 올라갔고, 지금은 이용악의 시처럼,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시「그리움」에서) 그곳 어느 절벽 아래에, “복된 눈”을 맞으며 누워 있을 것이다. 그곳은 김홍빈과 함께 등반했고,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이 되었고, 살아있는 동안 이렇게 물을 것이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는가”라고...
등반을 생의 위대한 과업처럼 여긴 그는 언제나 산으로 갔다. 산의 지면에 손가락을 잘라가며 제 온 몸을 새겼다. 산을 오르는 행위는 그럴수록 그에게는 산의 깊이와 같은 심연이 되었다. 그는 지상의 높은 산들을 오를수록 한 순간에 산의 심연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자신을 규정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전언은, 2021년 7월 18일, 브로드피크 정상 등반을 끝내고 하산하면서 홀로 절벽으로 추락, 조난을 당하고, 7월 19일 “위성 전화를 통해 한국의 조벽래씨에게 말이다. “꼴 주위에서 밤을 새웠고, 구조요청, 올라가려면 주마가 2개 필요하다. 위성 전화기의 밧데리는 충분하다. 의사소통 문제로 대원이 오길 원한다.”(419) 이후 세상은 그와의 연락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브로드피크 사고 경위에 대해서는 이 책 414-427쪽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 사고의 원인이 된,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러시아 여성 산악인 루노바가 7900미터 지점에서 추락으로, 김홍빈 대장이 하산을 할 수 없었던 바에 대해서, 이 사고 주변에 있던 15명의 산악인을 비난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들이 앞으로도 안전하고 행복한 등반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담은 2022년 3월, 이 사고에 대한 입장문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생의 절대적 위기에서 필요했던 것은 자신을 줄에 걸어 끌어올리게 하는 ‘주마Jumar 2개’였다. 그것뿐이었다.
어둔 절벽에서 14시간 동안 줄에 묶여 있던 그에게는 주마도 없었고, 주마를 잡아당길 열 손가락은 아예 없었다.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 것인가? 남은 것은 살아야 한다는, 살 수 있다는 얼어붙은 희망으로 그는 혼자 조금씩 죽어갔다. 영혼을 지피는 불은 산의 어둠 속에서 조금씩 사위어갔다. 그곳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은 길지 않았다. 김민기의 노래, 「내 나라 내 겨레」처럼, 척박한 이 땅에서 태어나 “시린 바람에 굳어버린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가 되어,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신 바위”가 되었다.
알피니스트는 산을 오르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는 한, 처음부터 생의 끄트머리까지 평생 혼자인 존재이다. 고 김홍빈, 그는 이 세상을 떠나 산이라는 집으로 들어갔다. 산의 저 깊고 깊은 우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가 산을 바라보던 빛, 그를 비추었던 산의 빛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산이 그의 무덤이 되었다. 그 때부터 김홍빈의 이웃들은 그를 명상하기 시작했다. 그가 거주했던 삶의 모든 것들을 보살펴 읽으려 했다. 내가 읽은 두 권의 책은 사실은 그가 몸으로 쓴 언어였다. 두 권의 책에서 그의 삶이 다시 펼쳐지기 시작했다. 기억의 불빛 속에 그의 얼굴이 환하게 떠올랐다. 그가 겪은 삶의 모든 고통이 조금씩 비어갔다. 그 후, 8월에는 대한민국 청룡장, 대한민국 산악대상, 을주세계산악영화제 특별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부재 속에서,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하려 했다. 김홍빈, 그는 산과 자신을 동일시한, 그리하여 산이라고 불리는 생태적 알피니스트였다.
2. 고독한 바위, 알피니스트의 운명
김홍빈의 삶을 이어간 날들, 기록된 중요한 연대기를 확인하자. 196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고, 1977년 벌교에서 중학교를, 1979년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1983년 광주에 있는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등반을 시작했다. 그 즈음 무등산,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 등에서 많은 등반을 해했고, 1989년 10월에, “전세방을 빼서 원정경비를 만들”(32)어, 처음으로 동계 에베레스트 등반(29)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연이어 1990년에는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에 발탁, 파키스탄으로 갈 수 있었다. 1991년에는 시샤팡마-초오유 원정대, 1992년에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이 두 등반은 모두 무산되었다.
1991년 데날리 등반 후, “탈진과 피로가 겹쳐 고소증세로 잠이 든 순간”(40)에 의식을 잃었고, 구조되어, 앵커리지에서 “2개월 동안 여섯 번의 수술”(41) 끝에 양손을 절단해야 했다. “손가락은 하나도 없고, 손등과 손목을 연결해주는 관절뼈도 없고, 하얀 근육만이 가느다랗게 보이고 금속으로 연결을 시켜 놓은”(42) 채 그는 귀국했다. 이 때부터 그는 중증 2급 장애인이 되었다. 사고 이후, 그는 “소수 인원과 속공 속전의 등반”(42)을 하기로 하고, 2006년부터 8.000 미터 봉을 등반하기 시작했고, 2021년에 브로드피크를 등정하면서 장애인 최초 히말라야 8.000미터 14좌 완등자가 되었다.
1991년, 그가 28세 때, 사고를 당한 이후, 그의 삶은 “다시 일어서기”(44)였다. 운전, 부품납품, 돼지거름 영업, 식당, 골프장 일 등을 했다. 재활을 이어가면서 1997년 일본 다데야마 산을 오른 후, 스키로 하산, 1997년 엘부르즈, 킬리만자로, 아콩카구아, 1998년에는 데날리, 1999년에는 레닌봉, 2000년에는 마나슬루와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기도 했다. 이쯤에서 김홍빈의 등정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잠시 건너뛰자. 2002년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가셔브롬1, 2와 시샤팡마, 마칼루, 다울라기리, 초오유, K2, 카첸중가, 로체, 낭가파르바트 등 해외 고산과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등반했다. 1992년 즈음, 스키를 배우기 시작, 동계 전국체전에서 입상도 하고, 장애인 국가대표가 되어 동계 패럴림픽에 출전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장애인 도로 사이클 대회에 참가했고, 그 끝은 자신이 말한대로, “시신은 그 자리에 가만히 나둬라...수습해서 뭐 할거예요? 차라리 거기 있으면 낫다는 거예요. 결국은 흙이 되잖아요. 더 상하지도 않고...”(74)처럼, 그의 얼굴과 같은 히말라야에 그대로 있다. 『김홍빈, 희망을 오르다』의 표지처럼. 나는 회색빛 가득한 이 사진에서 그의 하얀 숨결이 흐르는 것을 본다. 소리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고독한 바위같은...그의 운명을...
3. 등반의 도덕률과 미적 행위
이 책은 460쪽이 넘지만, 고 김홍빈의 삶의 얼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처음부터 에필로그(91)까지이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산이라고 알려진 세상 온갖 곳으로 갔다. 제 1장의 제목은 ‘김홍빈의 등산 인생’이고, 내용은 그가 태어나서부터 등반사고가 났을 때까지를 열정, 시련, 희망으로 구분해서 기록한 것이다. 92쪽부터 끝까지는 7대륙 최고봉과 8000미터 14좌에 관한 그의 거대한 등반기록의 장이다. 저자는 이 책을 “산에 인생을 걸었던 김홍빈 대장의 뜨거웠던 삶의 기록”(일러두기에서 인용)이라고 썼다. 2장과 3장은 등반에 관한, 그가 남긴 일기를 비롯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위에서처럼 책을 읽으면, 이 책은 알피니스트 김홍빈의 등반기록으로만 머물게 된다. 그것을 줄여 말하면, “불굴의 의지, 인간 승리, 업적, 정신, 열정, 용기, 결단력...”등으로 한정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 책에서 숨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책 속, 광주광역시 장애인 체육회장 강기정이 쓴 글귀처럼, “광주를 뜨겁게 사랑했고, 나보다 더 어려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살고자 했던 김홍빈 대장의 정신을 기억하면서 다음 세대에 자랑스러운 역사로 물려주”(10)는 작업이다. 한마디로, 김홍빈의 등반 역사는 “양손 절단 장애 산악인으로서 불확실한 미래의 삶”(47) 속에서 추구한 의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가슴에 일렁인 문구, “많은 비가 내린다. 위에는 눈이 내렸을 것이다.”(206)는 지워지지 않는다. 비와 눈으로 자신을 읽어가는 모습이다. 모두 ‘내리다’라는 동사를 쓰고 있다. 등반하는 이가 오르다라는 동사대신 내리다라는 동사를 쓰는 일은 흔하지 않다. 이런 문구는 자기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내면을 읽어가는 이의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비가 내리는, 눈이 내리는 세상은 알피니스트에게 어둠의 세상이다. 등반은 처음에는 오르지만 결국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일까? 산에서 내려오다의 최후는 추락, 죽음...그는 이렇게 삶을 관조했다. 알피니스트로서. 2006년, 두 번째 시샤팡마를 등반하면서, 9월 24일-25일에 남긴 글에 있는 문구이다. 2011년 8월 초오유 등반할 때, 그는 추석을 맞는다. “오늘은 한국의 대명절 추석이다. 오늘도 걸어야 하나?”(260)라고 묻는다. 아니 외치고 있다. 멈춤에서 걸음으로, 비활동성에서 활동성으로, 알피니스트가 ‘걸어야 하나’라고 자문하는 것은 꿈꾸는 자로서의 태도이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처럼, 잠들지 않고 꿈꾸는 자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존재이다. 그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문구이기도 할 터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이렇게 말할 때이다. “나의 정상이 아닌 우리 모두의 정상이다.”(151, 1998년 데날리 등반기에서.) “나는 산이 허락하는 만큼 하늘에 가까워질 수 있고, 그 과정을 사랑한다...나는 산을 좀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노력했다.”(173, 남극 빈슨 산 등산기에서.) 김홍빈이 평생을 바치는 말이다. 이 구절은 김홍빈 등반역정의 ‘도덕률’이고, ‘미적행위’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룩한 등반, 그 “숱한 기쁨의 원천”(아르네 네스 외 지음, 이한중 옮김, 『산처럼 생각하라』, 소동, 2012,37쪽)인 정상이란 어디이고, 무엇일까? 하늘 끝, 뾰족한, 꽃멍울과 같은 봉오리? 아닐 것이다. 그곳은 아주 낮고 낮은 원천 같은 곳, 너른 바닥과 같은, 알피니스트가 도달할 심성의 본류 같은 곳이었다. 산을 오르던 그의 삶은 언제나 정상이 아니라 바닥을 향하고 있었으리라. 그는 그곳을 삶의 낙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삶의 지평을 넓힌 알피니스트가 될 수 있었다. 그 과정을 사랑한 알피니스트였으니까 말이다.
책을 얼추 정리하면, 김홍빈 그는 결코 말을 많이 한 알피니스트는 아니었다. 글을 많이 쓴 알피니스트도 아니었다. 알피니스트로서의 연대기를 보면, 그는 말하지 않고, 필요한 글만 짧게 남겨놓는 대신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자신을 이렇게 지상에서 추방하고 분리할 때, 그는 성숙했고, 행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세계, 이웃들과의 우정의 세계 속으로 들어오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그를 둘러싼, 전라남도 광주라는 지역의 역사, 그를 사랑하는 이웃들의 역사 속으로 옮겨 놓고 싶었다. 이처럼, 고 김홍빈, 그는 높디높은 산에 올라 맨 아래 낮은 삶에 봉사하고 싶었던 선한 알피니스트였다. (2023. 08, ㅇㅊㅇ)
첫댓글 멋진 서평 감사합니다. 저도 책을 만들면서, 기존 미디어에서 다루지 못한 김홍빈의 다른 면을 엿볼수 있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