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고려인 한식寒食 명절 한마당 후원 요청드립니다.
한국어를 잃었으나 정체성을 지키는
고려인...
한국어를 공부하여 어렵게
일하면서 사는 국내 고려인 3만명 그 중에서
7천명 정도가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고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꼭 챙기려는 명절이 있습니다.
한식寒食 : 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이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다
(한국세시풍속사전)
고려인 분들에게 한식寒食 명절의 제사를
함께 만들어드리며 즐거운 명절 한마당 잔치를 마련코저 하오니 한열사 회원 여러분의 재정적 후원이 필요합니다. 조그마한 정성이라도 보내주신다면
작년에 못했던 그들의 명절(우리의 옛 명절)을 조금이나마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실 수 있을겁니다.
4월 5일 한식 명절 고려인 한마당을 위한 한열사
여러분의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
안산 고려인 한식寒食 한마당
일시 : 2016년 4월 5일 화요일 저녁 7시
장소 : 안산 뗏골 고려인
마을
주최 : 안산 고려인 야학단체
'너머'
후원 :
한류열풍사랑
한식寒食
행사를 위한 재정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후원금 계좌
: 농협 453068-56-131742
예금주
: 박찬화
문의 : 010-6831-4348 , multikorean@hanmail.net
보내주실때는 이름 넣어주시고 게시판에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내역은 게시판에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300만원 정도의 행사 재정이 필요합니다. 행사에 남은 후원금이 있다면 고려인 후원금으로 사용됩니다. )
4월 5일 한식 명절을 지내는 고려인
고려인들은 추석과 설 등 전통 명절도 지켜오고 있다. 특히 우리에겐 이미 사라져가는 명절인
한식을 크게 쇤다. 한식(양력 4월 5일) 때면 온 가족이 고기와 생선.인절미(현지 말로 짤떡이).과일.사탕과
초콜릿 등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해 성묘를 간다. 고려인이 '북망산'이라 부르는 공동묘지가 가장 붐비는 날이다.
음력으로 3월 9일은 한식날에 해당되는데
고려인의 각 가정에서는 조상을 모시기위해 성묘를
나간다. 농장의 고려인 중에는 이 날을 ‘한식’이라는 이름 대신에 그냥‘산에 가는 날’이라 부르는 사람도
많다. 이 날에는 도시에 나간 가족, 친척을
포함하여 많은 친척들이 농장 안의 본가 혹은 가장 집에 모여 아침 일찍부터 공동묘지로
나간다. “음력이나 우리 전통을 전혀 모르는 젊은 사람들도, 보통 때 돌아오지도 않는 사람들도 이 날에는 꼭
돌아온다”는 농장 노인의 말처럼 농장에 있어서, 또 고려인에있어 이날은 성묘라는 의미 외에도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이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고려인은 설, 단오, 한식,
추석 등 명절 때마다 협회 회관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전통을
지금도 지켜오고 있다. 그는 "명절 잔치 때면 여러 소수민족 단체장 등을 초청한다. 맛난 한식을 함께 먹고 흥겨운
춤과 노래마당도 열고 있어 인기"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민족의 문화를 접하기 어렵다는 염일야씨.
카자흐스탄에서는 설과 추석을 지내느냐고 물었다. 그는 “4월 5일
음력에 한식을 지내요. 찬 음식 먹는 날이죠. 또 추석이나 명절에 우리 가족은 명절에 빈대떡이나 팥 시루 떡 같은 걸
먹어요.”라고 말했다. 한식은 옛 고려 시대 대표적인 명절이었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식목일로 더 많이 기억하는
날이다.( 고려인 4세 염일야)
러시아의 고려인들이 우리말을 잃어버린 까닭은?
2016.02.11 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newsview?newsid=20160211111302220 KBS 1TV 설특집 다큐멘터리 ‘고려인, 우리말로 희망을
찾다’는 국내거주 2만 명 시대를 맞아 고려인에게 한국어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한국어를 되찾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통해
모국어가 한 민족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 1937년, 스탈린은 반제국주의 숙청작업과
더불어 이민족에 대한 강제이주 정책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초원과 언덕, 그리고 바람밖에는 없는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에 버려진 고려인, 고려인은
그곳에 집보다 학교를 먼저 세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글은 고려인의 언어였다. 그러나 그해 가을 소련 정부로부터 한글교육을 금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돌아갈 조국마저도 일본에게 빼앗긴 민족, 고려인은 돌아갈 조국조차 없었다.
러시아어를 배우는 것만이 고려인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격동의 세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국어를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려인 사회에서 서서히 우리의 말과 글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경기도 안산 단원구 뗏골마을에 사는 고려인
우즈베키스탄 출신 박알렉산드라(60·여)씨는 “3·1절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며 수줍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한번도 고려인이란 사실을 잊은 적이 없다”면서 “이번 ‘3·1
만세 기념식’에 참여해 역사적 의미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2006년 일자리를 찾아 홀로 한국에 온 박씨는
“한글은 책과 TV를 보면서 배웠지만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는
없었다”면서 “고려인들에게 한국의 기념일을 소개하고 역사를 알려주는 행사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2014-03-01 서울신문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301001008
▶고려인 지원센터 너머
홈페이지 http://www.jamir.or.kr/main/main.php
▶다큐
'너머' https://www.youtube.com/watch?v=Zjny1499CnI
동아방송예술대학 다큐영상제 졸업작품전 "대상수상" 다큐멘터리 "너머" 까레이스키(고려인)
①모국 속의 이방인, 안산 고려인 2016/02/06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2/02/0200000000AKR20160202206000371.HTML
안산은 고려인 7천여 명이 사는 국내 최대 거주지다. 이 중에서도
땟골로 불리는 선부동은 3천여 명이 터를 잡은 '고려인 동네'로 통한다.이들 고려인은 실제로 시베리아를 떠돌다가 '할아버지의 땅'인 한국을
찾아온 이주민이다. .....
"국내 고려인 동포는 외국인 이주민 중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였거든요. 다문화가정 같은 혜택을
받지도 못하고, 조선족처럼 언어 소통이 자유롭지도 못하죠. 하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고려인만큼 한민족의 뿌리를 지켜온 이주민이 없을
겁니다. 이들은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잊고 살았던 공동체 정서를 강하게 지키고 있어요." (김영숙(50) 너머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