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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강부약(抑强扶弱)의 하느님 나라
누가복음 4:16-21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17.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 있는 대목을 펴서 읽으셨다.
18.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19.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주고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에게 쏠렸다.
21.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광복절을 앞둔 지난 13일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도서관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 공개포럼>을 열었습니다. 뉴라이트의 대부 이영훈씨가 주도하고 있는 새역사국민운동이 공동 주최한 포럼입니다. 새역사국민운동은 강령에서 1980년 광주의 인명 피해를 국가폭력이 기획한 학살로 규정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는 취지의 주장과 전두환의 공적도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행사 개최 전부터 논란이 컸고 국민의힘도 공식적으로는 선을 그었던 행사였죠,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이영훈 대표의 발언이었습니다. 그는 5·18을 ‘소요 사태’로 규정했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체제가 부당하게 ‘불의한 체제’로 매도됐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이진숙은 행사 취지에 대해 “5·18이 특정 진영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학술적으로 불편한 질문도 가능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행사 말미에는 5·18이 ‘성역’이 되었으며 자기검열이나 침묵을 강요받은 측면이 있었다고 주장했죠.
이 행사에 대해 여권과 진보진영은 강하게 질책하였습니다. 국회라는 공적 공간을 제공하여 기존의 5·18 역사 인식을 부정하려는 주장을 공론화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죠. 5·18은 계승해야 하는 가치이지 토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5·18 단체들도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5·18기념재단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죠.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명문화하는 헌법 개정 요구도 다시 거세졌습니다.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는 민주당 주도로 이진숙 의원 제명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하였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독일처럼 홀로코스트를 공개적으로 부정·승인·중대하게 축소하거나, 나치의 폭정과 피해자를 모독하는 일정한 행위는 형사처벌[독일 형법(StGB) 제130조 국민선동죄(Volksverhetzung)]하는 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8월 17일 민주당 전당대회가 막을 내렸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갈등과 분열 양상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당 대표가 된 김민석은 말로는 통합을 이야기하며 행보는 분열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당 개편 인선 과정에서 반대 세력을 철저히 배제하였고, 통합을 위한 조치보다는 반대파를 억누르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죠. 지명직 최고위원 선출에 최고위원회 의결을 배제했고, 사무총장·정책위의장 등 핵심 당직을 자기 사람으로 신속하게 임명했습니다. 또 통합과 외연 확장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핵심 지지층 요구를 묵살하고 있으며, 민주TV 신설로 뉴스공장, 매불쇼 등 진보 유튜브와의 대결 구도를 만드는 등이 그것입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오래되 경구”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이번 전당대회 과정은 그동안 진보진영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해괴한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표현으로는 권력의 개입으로 9대 1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벌어진 싸움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을 등에 업고 전당대회 준비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의 도에 넘치는 충성 경쟁이 표출되었습니다. 그 결과 선호투표제, 최고위원 자격이 없는 자의 구제 등 당헌 당규를 위반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친석이 아닌 친명 대 친청이라는 노골적인 편 가르기에 대한 제제도 없었죠,
호남 선거를 앞두고는 이재명 대통령이 호남 AI팹(제조를 뜻하는 ‘Fabrication’의 줄임말로, 반도체 업계에서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제조 시설) 점검 회의를 열어 이 또한 선거 개입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지지율도 급락하여 내란정당 국민의힘에게도 추월당했다는 조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극도로 분열 양상을 보인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면 다시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합니다. 도구적 지지와 정서적 지지입니다.
‘도구적 지지’는. 정치인이 좇는 가치와 이상에 공감하며, 그를 통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운동으로서의 지지’를 말합니다. 때문에 그를 통해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지면, 도구적 지지자들은 냉정하게 등을 돌립니다. 지지의 이유가 상실되었으니 새로운 도구를 찾아 떠나는 것이지요.
‘정서적 지지’는 ‘관계로서의 지지’입니다. 정치인을 통해 본인의 정체성을 투영하거나 깊은 심리적인 일체감을 느끼는 팬덤적 성격의 지지입니다. 때문에 정서적 지지자들은 정책적 성과나 구체적인 활동 내용과 상관없이, ‘그 정치인 자체’를 향한 무조건적 지지를 보냅니다. 이들이 어지간해서는 무너지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입니다.
굳이 또 하나를 구분하자면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지지하는 부류입니다. 이는 일반 지지자보다는 정치 일선이나, 정치 세력과 관련 있는 기업, 기관 종사자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데 정서적 지지가 대세가 되면, 정치 발전은 요원해집니다. 정책과 노선, 이념이라는 ‘내용’이 소멸하고, 오직 ‘누구의 편인가’를 따지는 ‘형식’만 남기 때문이죠. 극우의 윤어게인 세력이나 민주당 전당대회를 휩쓴 ‘친명’, ‘반명’ 타령이 꼭 그러한 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3자 중반을 찍었습니다. 지난 24일부터 닷새 동안 공표된 여론조사 11건 가운데 5건에서 긍정 평가가 36~38%, 부정 평가는 50~60%로 나타났고, 긍정 평가 40% 대인 곳도 4곳이었습니다. 긍정 평가 50%를 넘긴 여론조사 결과는 2곳 뿐이었죠(미디어 오늘 9. 28자). 임기 1년 3개월 만에 70%에 육박하던 지지율이 반 토막이 난 것입니다.
도구적 지지자들은 그간의 개혁과제와 지방선거, 전당대회를 통해 드러난 이재명 대통령의 명픽(조정식 국회의장, 김민석 당대표,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 한준호 경기도지사 후보) 개입을 보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의 권력구조 개편과 연임 개헌 논란, 검찰개혁 방해, 구조적 다수를 지향하는 정계 개편 시도, 뉴이재명의 문조털래유 조롱 정치 등을 보며 그것이 이재명 대통령이 묵인하에 이뤄진 것은 아닌가 우려하고 있는 것이죠.
이들은 지금 이재명 대통령에게 “당신은 여전히 우리가 기대했던 그 유용한 도구가 맞습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박구용 교수는 지금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일 잘하는 먹사니즘, 잘사니즘을 향한 유능한 행정가의 모습은 잘 보여주고 있지만 억강부약(抑强扶弱) 대동세상(大同世上)이라는 또 하나의 과제는 사라졌다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먹사니즘, 잘사니즘은 이번 21대 대통령 선거의 가장 핵심적 구호였습니다. 억강부약 대동세상은 그간 정치인 이재명의 지론이었죠. 억강부약은 강자를 처벌하는 정치가 아니라 권력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민주주의 원리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개념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죠 먹사니즘과 잘사니즘을 실현하는 것은 유능(有能)입니다. 그런데 '유능은 방법이고, 억강부약은 목적'이라는 관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유능함 자체가 정치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행정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정부가 될 수 없으며, ‘그 유능함이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 어떤 사회를 만드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취임 이후 트럼프의 관세 압박과 AI 대전환의 무게 속에서 대통령은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선언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고 이제는 세계가 필요로 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목표로 초격차 산업강국, 글로벌 외교·안보 강국, 비정상의 정상화, 목숨을 살리는 정부를 제시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분야에 대해 총 4,755조 원을 투입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와 수도권 일극체제를 완화하고 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제주·전북·강원)를 축으로 국가균형성장을 추진하는 5극 3특 정책 등을 내세웠죠.
하지만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국민주권을 잠시 제한한다거나 민중들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구조적 다수를 만들어 정권을 30년 50년 쥐려고 핑크빛 미래를 미끼로 삼으면 안 되는 것이죠. 그것은 박정희 독재 시절, 노동자 농민, 빈민의 희생을 강요하며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 마이카 시대를 약속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금 반도체 호황으로 대기업과 그 기업의 노동자, 그 기업들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큰손들은 돈방석에 올라탔지만 삼전닉스가 이끄는 주식에 뒤늦게 올라탄 개미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빚을 내 주식에 들어간 청년들은 이미 기득권이 되어버린 정부와 민주당에 원한과 적개심까지 품게 된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 하위 20%는 매월 51만 9천 원의 적자 인생이 되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2026년 1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이들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93만8천 원인데 소비지출은 145만7천 원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상위 20%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월 964만5천 원, 소비하고도 남은 흑자액은 408만 원이었죠. K자형 양극화가 해방 이후 정점을 찍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께서 사탄의 3가지 시험을 물리치신 40일간의 광야 금식을 끝낸 후 갈릴리로 돌아와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시며 가르치신 첫 주제입니다.
예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자렛으로 가셔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죠. 그리고 이사야 예언서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한 대목을 펴서 읽으셨습니다. 이사야 61장 1-2절에 있는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의 공생애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선언하는 ‘나사렛 선언’ 또는 ‘예수의 사명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의 입에서 토해지는 가난, 빚, 억압, 자유라는 말은 추상적인 종교용어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신들의 삶이었기 때문이죠. 로마의 식민지배, 헤롯 왕조의 가혹한 통치, 조세와 지대, 부채가 농민들의 삶을 압박했습니다.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소작농이나 날품팔이 노동자로 내려앉았죠. 빛에 몰려 가족을 종으로 팔아넘기거나 고향을 등지고 광야에서 강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이 이사야 61장의 두루마리를 펼친 것입니다. 예수의 첫 일성은 자신의 사명이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희년 선포’입니다.
레위기 25장에 등장하는 희년(Jubilee, 50번째 해)은 모든 매인 것에서 해방되고, 가난 때문에 팔았던 기업(토지)을 돌려받으며, 종 되었던 자들이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기쁨의 해입니다. 매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7번째 맞이한 이듬해에 이루어지는 ‘주님의 은총의 해’인 것이죠.
희년 법은 ‘토지 반환’, ‘노예 해방’, ‘부채 탕감’ 이 3가지를 주요 요소로 하고 있습니다.
‘토지 반환’의 의미는 모든 것의 소유권은 하느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희년이 되면 팔렸던 땅이 원래 주인에게 값없이 돌아갑니다. 인간이 땅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이유는, 진짜 주인이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곳에 잠시 거하는 식객, 거류민일 뿐이라는 것이죠. “땅은 아주 팔아 넘기는 것이 아니다.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 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레 25:23)”는 겁니다.
‘노예 해방’은 조건 없는 단번의 속량입니다.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렸던 사람이 희년이 되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유인이 되어 가족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은 내가 에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나의 종들이니, 종이 팔리듯이 팔려서는 안 된다(레 25:42)”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희년이 되기 전까지 노예는 남은 기간에 따라 가족이나 친척들이 값을 치르고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희년이 되면 값없이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죠.
‘부채 탕감’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는 그에게 이잣 돈도 놓지 못하고, 그에게 양식을 장리로 꾸어 주지도 못한다(레 25:37)“는 것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그냥 더불어 사는 식객으로 대우하라는 것이죠.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 가난한 동족을 함께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채 탕감’은 매 안식년마다 행해집니다. 하지만 인간 사는 세상이라 이런 희년법이 무시되기 일쑤죠. 가난한 사람들은 고리대금을 얻어쓰게 됩니다. 하지만 이 거래도 안식년이나 희년이 가까워 지면 빌려주는 사람이 없어 끊어져 또 다른 고통이 배태되는 것이죠. 그래서 도입된 것이 ‘프로즈불(Prozbul)’ 제도입니다. 안식년이 가까워져 경제가 마비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죠. 법원을 통해 채권을 양도하여 탕감을 피하는 예외조항을 만든 것입니다.
어쨌든 희년은 토지와 부채, 노예 상태가 세대를 넘어 영구적인 불평등으로 굳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제도입니다. 토지가 영원히 소수에게 집중되고, 빚 때문에 사람이 종속되고, 부모의 가난이 자녀에게 영원히 이어지는 사회를 하느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은총의 해”를 선포했다는 것은 개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관계와 경제·사회적 질서를 다시 바로잡으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21절)"는 것입니다. ‘언젠가 이루어질’ 약속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실현되었다는 것이죠, 하느님 나라를 미래의 꿈으로만 미뤄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의 빵이 아니라 오늘의 빵이며, 억압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언젠가 올 자유가 아니라 오늘 시작되는 자유라는 것입니다.
도덕경 77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천지도(天之道)는 손유여이보부족(損有餘而補不足)이나 인지도(人之道)는 즉불연(則不然)하여, 손부족이봉유여(損不足以奉有餘)라.”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나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 부족한 것을 덜어 넉넉한 것에 보태준다“는 말입니다.
이 말 뒤에 노자는 “숙능유여이봉천하(孰能有餘以奉天下)리오?” 라고 묻고 “유유도자(唯有道者)”라고 대답합니다. “어떤 누가 남는 것으로 능히 하늘을 받들 수 있겠는가?”란 물음은 활에 시위를 매는 것처럼 세상을 균형 잡히게 하여 세상이 하늘의 도를 쫓도록 만들 수 있겠느냐는 물음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오직 도를 지닌 자” 뿐이라는 것이죠. 도를 지닌 자가 지도자가 되어 세상을 다스려야만 시방 어지럽혀지고 뒤집혀 진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 계씨(季氏)편에 보면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이요, 불환빈이환불안(不患貧而患不安)”이란 말이 있습니다.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불공평)을 근심하며,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안정되지 않은 것을 걱정한다는 말이죠. 요즘 MZ세대들이 가장 중시하는 공정이 세상을 다스릴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죠.
한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정치를 한다면 그 백성은 태평성세를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사사로움만 쫓는다면 백성들은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겠죠. 모자란다거나 가난하다고 하는 것은 누군가가 더 많이 가져 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은 사람들의 사사로움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민주당 전당대회 결과를 보며 내란을 겪은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대통령과 민주당이 정신 차리고 ‘구조적 다수’의 환상에서 깨어나 국민주권 개혁과 민생 회복을 최우선으로 억강부약 대동 세상을 향해 유턴하길 바랍니다. 거대 권력을 거머쥔 민주당이 서민의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잃는다면 기득권 정당으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습니다.
"특권과 반칙에 기반한 강자의 욕망을 절제시키고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 정치로 모두 함께 잘 사는 대동세상을 향해 가야 합니다."
이 말은 대통령이 되기 전과 후, 정치인 이재명이 입버릇처럼 해오던 말입니다. 집단지성을 믿는다는 말도 마찬가지죠. 이런 말들은 그가 유권자와 맺은 계약과 같습니다. 지지자들은 그 말을 믿고 그에게 표를 준 것입니다. 지배자가 아닌 대리인이 되겠다는 약속, 약자의 삶을 보듬겠다는 약속, 대동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 이 계약은 아직도 유효하다면 빨리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억강부약은 대동세상으로 가는 필요조건입니다. 대동세상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루는 하느님 나라죠. 국민주권이 회복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우리 모두의 열망이 이뤄지도록 ‘해방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