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17-24>
17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1. 시작하는 말
목회자들과 교인들로 구성된 한국 교회의 안팎에서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님이 아닌 일부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문제들 때문에 나오는 소리입니다.
마태복음 16:24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을 보면, 바울 사도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교회 개혁의 소리가 높아지는 이때에,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 앞에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밖인 세상에 속한 모든 인간성과 생활이 다 하나님 앞에 죄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은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2. 옛사람과 새사람
성경의 옛사람과 새사람이란 옛날에 살던 사람과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옛사람이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새사람이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이란 그리스도를 떠나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새사람이란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하여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와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 때에도 겉모습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나, 실제의 생활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교인 아닌 교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라고 강력하게 명한 것입니다.
“마음”의 헬라어 누스(νοὸς)는 의도와 행위의 주체인 자아를 의미하고, 또 알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기능이 있는 이성을 의미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의 이성이란 허망한 것을 따르게 마련입니다. 나라마다 지력과 권력과 부를 고루 갖춘 자들의 뇌물수수와 부정 축재란 얼마나 허망한 범죄입니까? 그와 같이 이성이 주체가 되는 불신자들의 모든 언행은 다 공허할 뿐이므로 믿는 우리는 그와 같이 살지 말아야 합니다.
1886년 8월 20일, 독일에서 태어난 후, 미국 하버드대학교 초빙교수, 시카고대학교 교수, 유니언신학대학교 교수, 독일 라이프치히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던 조직신학자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는 “소위 실존주의 예술, 문학 및 철학이란 인간의 공허성, 무의미성, 초조성 등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갈파했습니다. 불확실성과 필멸성을 추가해도 될 것입니다.
이방인 곧 불신자들의 이성의 허망한 것이란 구체적으로 도덕적 무지와 영적 무지와 마음의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총명이 어두워지고, 주님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불신자들은 영적 무지와 마음의 무감각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영적 죽음의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신 사실을 가리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었던 인간에게 영적 생명을 얻은 새사람이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영적 지각과 도덕의식이 마비되거나 죽어서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 불신자들의 생활과 특징은,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방탕”의 헬라어 아셀게이아(ἀσελγείᾳ)는 ‘음탕’, ‘음란’, ‘굴레 벗은 육욕’, ‘부도덕’을 의미합니다. 특히, 죄악을 감출 정도의 체면조차도 없다는 뜻을 내포하는 말입니다. 실상, 자신을 방탕에 방임한 불신자들은 온갖 더러운 죄악을 부끄러워하며 감추기는커녕, 자랑스러워하며 즐기기도 합니다. 남을 속이고는 머리를 자랑하는 자들, 제 남편이나 아내는 사랑하지 않고, 남의 남편이나 아내를 열렬히 사랑하면서 자랑스러워하는 자들, 성폭행을 즐기는 자들,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수십 년간 모아도 살 수 없는 집에 살면서 자랑하는 공직자들이 다 아셀게이아에 방임한 사람들입니다.
유머입니다. 세상이 다 아는 일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일본 총리가 “일본 정부와 군대는 강제로 한국의 딸들을 성노예로 동원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철부지 벼슬아치는 강제로 동원한 증거를 대라고 말했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일본의 지성인 벼슬아치들이 이구동성으로 “옳소!” 하며 손뼉을 쳤습니다. 그러자 나조선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의 딸이라면 남의 나라를 송두리째 훔치는 종합 범죄 군대의 전쟁터에 몸을 팔러 가겠습니까? 당신들이라면 허락하겠습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이 버럭 화를 내면서 한 말이 걸작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그걸 말이라고 한 게 누구들인데. 정말 웃기네!’ 주님을 믿어 구원받은 새사람들은 그러한 불신자들과 다릅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서 주님 밖에 거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이 유념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372(?)년에, 체코의 보헤미아 남부 후시네츠에서 태어난 후, 프라하 대학교의 교수로 신학을 강의하고, 철학부장과 학장과 총장을 지냈고, 학장 시절에는 베들레헴 성당의 주임신부이기도 했던 종교 개혁자 후스(Jan Hus)는 천주교의 교리를 반대하다가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화형을 당하면서 찬송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새사람들은 주 예수님의 인격과 복음의 교훈과 행적과 업적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에 대해서 배워 왔습니다. 우리 역시 주 예수님 안에 내포된 진리를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주 예수님은 교육 내용이요, 교사요, 교육의 장인 것입니다.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교사란 큰 스승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구일 따름입니다.
그와 같은 특별한 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려야만 합니다. 이미 멸망하고 있는, 죄의 관행을 따르는 옛사람이란 죄와 율법, 육과 세상, 죽음과 영원한 멸망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자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옛사람을 낡고 더러워진 옷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청산해 버려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인간의 옛사람의 나약함과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제물이 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14을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내주하신 성령에 의해서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만 합니다. 열 달 동안 고생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으면서 아기를 낳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힘든 일은 신생아를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극도의 고통인 십자가로 믿는 우리를 구원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신 주 예수님도 우리를 새사람다운 새사람,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시는 것이 더 고통스럽고 힘드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좇아 살아 가시기시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을 좇아 주님 안에서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며 살아갈 때에, 날마다 새로워지는 자신을 보는 희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 창조의 즐거움!
이제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은혜 아래 살면서 옛사람을 새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러분, 죄와 죽음과 멸망의 길을 가는 옛사람들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옛사람들 곧 불신자들은 세상 것들을 추구하고, 소유하게 되면 자랑스러워하고, 소유에 의지해서 자만합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더 불쌍하지 않습니까? 늙고 병들고 심약해지고 죽는 것 중 어느 것 하나도 막아 주지 못하는 소유를 믿고 의지하느라 정작 믿어야 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날마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신령한 은혜를 모르고,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들에게 전도해야 합니다.
3. 맺음말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던 옛사람이었던 우리 모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16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해 나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으로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혹시나 우리 속에 아직도 옛사람의 요소가 남아 있거나, 새로 자리잡고 있다면, 낡고 더러운 옷을 벗듯이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따라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2012. 9. 2.>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0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T 02-426-30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