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Cleopatra)
최용현(수필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cm만 낮았으면 세계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이 한 말이다. 인류역사상 최초, 최고의 팜 파탈(femme fatale)로 꼽히는 클레오파트라는 지성과 교양을 갖춘 절세미인이자, 무너져 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마지막 파라오였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라는 제목의 영화는 1917년의 흑백영화를 시작으로, ‘원더우먼’의 갤 가돗을 주인공으로 해서 2023년 현재 촬영 중인 영화까지 총 8번 만들어졌고, 제목에 클레오파트라가 들어가는 영화는 이보다 훨씬 많다. 이들 중에서 역사적 사실에도 충실하고 1964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시각효과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클레오파트라’(1963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영화는 처음에는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와 속편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로 기획되었으나, 하나로 합쳐서 중간에 휴식시간(intermission)을 넣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다 보니 러닝 타임이 무려 6시간이나 되는 바람에 4시간으로 줄인 버전과 3시간으로 줄인 버전의 두 가지로 출시되었다. 케이블 TV에서 가끔씩 방영하는 ‘클레오파트라’는 전자인 4시간 11분 버전이다.
BC 50년경, 로마는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 카이사르(렉스 해리슨 扮)가 3두 정치를 하면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크라수스가 파르티아(현재의 이란)와의 전쟁에서 전사하자 균형이 무너진다. 폼페이우스의 막강한 군사력을 등에 업은 원로원에서는 갈리아를 정복하고 돌아오는 로마시민의 영웅 카이사르를 눈엣가시처럼 여겨 그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혼자 로마에 들어오라는 명을 내린다.
혼자 가면 잡혀죽을 것이 뻔했던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하고 군사들과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너 압도적 군사력을 지닌 폼페이우스와 전투를 벌여 지략으로 승리한다. 카이사르가 도망치는 폼페이우스를 따라 이집트에 입성하자, 그곳에는 클레오파트라(엘리자베스 테일러 扮)와 그의 남동생이 왕좌를 놓고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남동생이 폼페이우스를 암살하여 그 수급(首級)을 카이사르에게 바치지만, 카이사르는 남동생을 추방하고 양탄자에 싸여(?) 찾아온 클레오파트라를 여왕으로 세운다.
도도하면서도 섹시한 매력으로 카이사르를 휘어잡은 21세의 클레오파트라는 본처와의 사이에 아이가 없던 52세의 카이사르의 아들을 낳아 작은 카이사르라는 뜻의 카이사리온이라고 이름 짓는다. 로마로 귀국한 카이사르는 원로원이 내민 1인 종신독재관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제위(帝位)에 욕심을 낸다. 3년 후, 클레오파트라가 아들 카이사리온과 함께 로마로 입성하면서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아 카이사르가 제위에 한발 더 다가서자, 브루투스 등 공화파들은 카이사르를 암살한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상속인으로 지명된 카이사르의 누나의 손자뻘인 옥타비아누스(로디 맥도웰 扮)가 로마의 서쪽 절반을 맡고, 브루투스 일당을 일망타진한 카이사르의 오른팔 안토니우스(리차드 버튼 扮)가 로마의 동쪽 절반을 맡기로 협약한다. 카이사리온이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지명되기를 바랐던 클레오파트라는 빈손으로 아들과 함께 귀국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선상(船上)으로 초대하여 파티를 여는데, 두 사람은 바로 사랑에 빠진다. 안토니우스는 키프로스와 시나이반도 등 로마가 점령했던 이집트 땅을 클레오파트라에게 돌려주어 로마시민들의 분노를 산다. 또 옥타비아누스가 원로원에서 공개한 안토니우스의 유언장에는 ‘내가 죽으면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알렉산드리아에 묻히겠다.’고 씌어있어 로마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다다른다.
원로원에서 안토니우스를 배신자로 간주하여 로마의 적으로 선포하자, 옥타비아누스는 군사를 이끌고 안토니우스를 공략하기 위해 출정한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에게 휘둘린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연합군은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앞바다 악티움에서 해전을 벌이다가 옥타비아누스 군에게 참패한다. 안토니우스가 죽은 줄 알고 뱃머리를 돌리는 클레오파트라의 함선을 본 안토니우스는 혼자 전장을 빠져나와 여왕의 함선에 올라타서 이집트로 귀환한다.
옥타비아누스의 대군이 알렉산드리아를 포위하자, 안토니우스의 군사들이 대거 옥타비아누스 진영에 투항하면서 안토니우스는 육지에서도 참패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죽었다는 오보(誤報)를 접하고 낙담한 안토니우스는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는데, 결국 클레오파트라의 품에서 53세의 생을 마감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옥타비아누스의 전리품이 되어 로마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무화과 바구니 속에 미리 숨겨놓은 코브라에 물려 파란만장한 39살의 생을 스스로 마감한다. 이로써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종언을 고하고, 이집트는 로마의 완전한 속국이 된다. 최후승자인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된다(BC 27년).
영화 ‘클레오파트라’는 워낙 스케일이 커서 20세기폭스사가 제작비 과다로 파산직전까지 몰렸으나 이 영화가 개봉된 후에 흥행에 성공하고 장기상영으로 이어져 어느 정도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아들과 함께 거대한 스핑크스 형상의 마차를 타고 로마에 입성하는 장면은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로 단연 압권이다. 또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인 승부처인 악티움해전의 재현 장면도 시선을 압도한다.
촬영 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차드 버튼은 둘 다 배우자가 있었음에도 세기의 로맨스를 벌이다가 1962년 결혼식을 올렸고, 리차드 버튼의 알코올중독으로 불화를 겪다가 1974년 이혼했다. 1975년 재결합했다가 1976년 다시 이혼했다. 불멸의 클레오파트라로 남게 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생전에 7명의 남자와 8번 결혼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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