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일에 평생 노력한 손재형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거목이로
일제강점기 선전(鮮展)에서 대한민국 국전(國展)에 까장 40년얼 양정고보 때 입선부텀 해가꼬
아홉 차례 국전 심사위원, 두 차례 국전 고문에 심사위원장, 운영위원장 2회 지냈고,
한국 예총회장(4대~5대),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 및 부회장(10대~14대, 1971~1978년) 등을 지냄시로
누구도 범접 못할 크나큰 발태죽얼 냄기신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 1903~1981) 선상님!
그란데 요참에 아시아문화진흥원이란 재단에서 진도 출신인 저보고
고향 출신 우리 소전 손재형 선상님에 대해가꼬 세간에 흔히 알려진 내용보담은
진도 고향인이로써 알만한 잔 덜 알려진 야기덜로 고증된 글얼 잔 써 돌라넌
원고 청탁을 받고 써줬던 원고가 인자 거그 실렸능갑서람쨔.
세간에 흔히 떠도는 야기로
후지쓰카가 ‘그 값을 매길 수 없는 세한도이니 무가(無價)’라 함시로
세한도 값을 한푼도 안 받고 소전 선생에게 주었다는 야기도 돌제만
유족덜 증언은 ‘그 당시 엄청난 돈을 가지고 가서 그 돈을 다 주고 가져왔다’하고
‘당시에 후지쓰카가 병석에 누워있었다는 얘기도 사실이 아니다’ 라고 말합디다.
이들 모도가 극적(Dramatic) 효과를 노리고 꾸며낸 이야기란 것이여람쨔.
우리 진도 출신이로 우리나라 예술계 거목이신 소전 선생께서
문화 예술에다 후세 교육에 까장 지대하게 쏟으셨던 그 성심과 업적덜이
정치자금 땜시 에럽게 된 말년에 일 땜시로 저평가 되고 있지는 않는가...
하넌 맘에다 지끔은 절깐이로 빈한 생가터랑 시멘트 벽에 묻힌 무정은천이 무쟈게 쨘하구만이람쨔.
-진도사투리사전 저자 조병현-
※ 지가 온아칙에 급히 올리다가 젤로 아래 3장이 빠졌어가꼬 다시 추가로 더 올렜어람쨔.
<제59회 송현 출신 조병현 올림>
첫댓글 1958~59년에 진도중학교 졸업하신 분이면. 오승우 미술 선생님을 기억하실겁니다. 우리나라 유명하신 화백이죠 지금도 93세로 살아계십니다.
이 분이 소전 선생님이 미대 막 졸업하신 오승우씨를 진도중학교 미술선생으로 발령내었습니다.
당시 진도 읍내 사람이면 여기서 빨래하였고 꼬마들은 목욕했던 바구냇골.. 배경으로 그림을 그린 작품입니다.
빨래 하는 아줌마들 중 혹 저희 어머니도 계시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기억하시는 분은 잠시 추억에 잠겨보세요.
뒷 부분 석장이 덜 올라가 있었어서 다시 더 추가로 올렜어람쨔.
바구냇꼬랑 혹은 바우냇꼬랑이 찰로 물도 잘 안 몰루든
존 서답터였고 메깜든 데였었지라?
지끔은 복개댜가꼬 그 흔적도 안 뵈제만... ㅠㅠ
@59회 조병현 우덜 땐 미술선상님이 엘로우선상님!
이 사진도 아마 1958년경 거의 비슷한 시기 사진입니다. 윗 그림은 아래쪽에서 그렸다하면. 이 사진은 위쪽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웃음이 나올겁니다. 나무 위 올라가 앉아 계시는 분이 저의 아버님이시고 그 밑에 앉아 있는 분이 소전 큰아들이며. 서 있는 분은 친척분.
바구냇꼬랑 욱에 순천냇꼬랑은
본시 이무기가 승천했다고해서 승천냇꼬랑이고
거그서 솔개방죽짝이로 넘어가넌 고개넌 사줏고갠데
원래 그짝에 사직단이 있었어가꼬 사직고개가 사줏고개로 빈했지람쨔.
1971년 소전 손재형씨 국회의원 당선증입니다. 한번 구경하세요
으따~! 찰로 요케 귀하고 정진 물견덜얼 어찌케 다 갖고 기싱고?
기림하고 사진언 우덜이나 기억할 소중한 자료덜인데 생가터 복원하고
저 평가된 우리 소전 선상님에 기록하고 숨운 야기덜이
지끔이라도 진도 안에서 잘 고증되고 정리되기럴 기원디립니다.
나라의 국민훈장은 모란장 무궁화장 을 두번 받은 분은 역사적으로 몇분 계시는지?
1968년 11월 21일 받은 국민 모란장 상장입니다
진도군민으로 역사적으로 처음 국민훈장을 받으니 재경진도군향우회에서 당시 향우회원이신 이병혁씨께서 짓고,소전 수제자이신 평보 서희환씨께서 써서 기념해주셨습니다.
1970년8월 15일 모란장보다 한층 더 높은 무궁화장을 받았습니다 그때 상장입니다
어짠 덴 국민훈장모란장 받었다고 기록되고
어짠 덴 국민훈장무궁화장 받었다고 써졌걸래
첨에 저넌 어뜬 한나가 잘못 기록된 중 알었제
한 분이 그 높우고 귀한 국민훈장얼 두번썩이나 받었을 줄은 몰랐등만
낭중에 자사히 알고봉께넌 두번얼 받으셨드랑께라. 찰로~!
그나저나 소전 선상님네 가보인 저케 귀한 자료덜얼
어찌케 우리 김 원장님께서 다 갖고 기싱고?
존일에 더 사라지기 전에 진도 안에서 고증된 자료덜로
소전 선상님에 대한 세세하고 올발른 정리덜이 잘 댰으믄 하넌 바램이구만이람쨔.
존 자료 잘 봤구만이라.
@59회 조병현 지한테 성님이 놀랠만한 것들 만하요.
이 작품은 1944년 소전선생님께서 일본에 가서 100일 통사정하고 가져온 세한도를 대한민국에 가져와서 일져시대라 그 누구에게도 안 보여주고
당시 가장 존경받고 계시는 위창 오세창선생께 제일 먼저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써 주었습니다
으따~! 그라고 봉께 김 원장이 素筌家珍藏庫요.
그란데 실물 보관도 중하제만 디지털 자료파일덜 보관이 찰로 중합디다.
내 경우
이전에 사진덜언 필름이로 있잉께 벨 일 아닌데
최근 4~5년간 놀로 댕김시로 찍엤든 사진덜얼 컴퓨터다 여놨었는데
해필 그 하드가 뻑이 나고 봉께 돈 백만원 딜에도 일부만 살린다걸래
기냥 냅둬뿔었어라.
중요 디지털 자료넌 여그저그 복사해서 꼭 잘 쟁에두시쇼.
2테라 짜린데 한 2십만원 같음 살려보까 했넌데
그랄 정도 중요 자료넌 아닝께 걍 자료사라 베리고
저사라 돈이나 굳었다 생각하고라.
素荃 冒兵火 涉海而贖歸 誠快擧也 銘曰 玆宋槧兮邦惟一 趙璧還兮楚弓失 甲申春 世昌書 時年 八十有一 [인장] 孫在馨家珍藏書畵 소전 손재형이 전쟁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서 이 물건을 되찾아서 돌아오니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이렇게 명銘한다. 이 희귀한 송나라 판본은 우리나라 유일한 것인데 잃어버렸던 이것을 완벽하게 다시 찾아서 돌아왔네. 갑신년 봄에 오세창이 쓰다. 팔십 한 살 때이다. 인장 설명; 손재형집안 보배스럽게 간직한 그림과 글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