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천사

어느 천사                                                                      지 석 동      갈치잡이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텔레비전방송을 보았다. 뱃일로 늙은 선원 중에는 손가락 한두 개 아니면 마디 한둘이 없었다. 그만큼 뱃일이 위험하다는 증표일 것이다.      나도 배를 20여 년 타면서 안전사고로 다친 사람을 여럿 보았다. 그중에 특히 생각나는 사람이 월드스타호를 함께 탔던 1기사 김관수 씨이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세일수산 부산지사에서 상기 배의 선원모집을 할 때였다. 그는 힘깨나 쓰게 생긴 근육질의 삼십 대 초반으로 개구리 눈같이 툭 튀어나온 큰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다.   출항할 날이 가까우면 선원가족들이 왔다. 모두 초면이지만 스스럼없이 어울려 같이 뱃밥을 먹고, 해지면 같은 여관에 들어 늦도록 마시며 떠들다가 잤다. 하루는 삼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미모의 여인이 나타났다. 데리고 온 다섯 살쯤 된 여아가 참 예뻤다. 알고 보니 1기사의 가족이었다.   그 부부는 거제도의 한 섬에서 태어나 오누이처럼 자라서 결혼을 했다. 그리곤 석 달도 안 되어서 신랑이 입대하러 섬을 나갔다. 태어나서 처음 이별의 아픔을 맛본 것이다. 새색시는 남편을 기다리는 삼 년 동안 갯일을 해서 벌고, 송아지도 키워 팔아서, 섬에서는 귀한 밭을 꽤 많이 장만해, 대대로 물려온 가난의 멍에를 벗었다. 1기사는 그즈음에 제대했다.   그는 아내의 장한 노고에 보답하려는 뜻에서 서둘러 통영으로 가 멸치잡이 배를 탔다. 힘든 일을 하며 틈틈이 선박기관공부를 해서, 2년 만에 기관사자격증을 땄다. 곧바로 자격증을 들고 돈벌이가 좋은 울릉도로 오징어 배를 타러 갔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반년쯤 지나자 입안에 혀같이 노는 술집아가씨와 눈이 맞아 꼬박꼬박 보내던 돈과 편지가 끊겼다. 그래도 그녀는 남편이 심어 놓고 간 아이를 낳아 기르며 5년을 기다렸다. 분노를 누르고 억척스레 일한 것이 복이 되었는지, 그사이 작은 배를 부리는 선주가 되었다.   그런 어느 날 남편이 원양어선을 타려고 부산에 왔다는 소릴 들었다. 그녀는 아이한테 제 아빠의 얼굴이라도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아 물어 물어서 우리가 탈 배로 찾아왔다. 그러나 1기사는 자기 아내와 딸을 보자, 후닥닥 기관실로 피했다가 해진 다음 충무동 술집으로 내뺐다. 모녀는 매정한 그를 먼발치서 바라만 보았다. 사흘쯤 그러다 남편과 밥한 번 같이 못 먹고 출항하는 배를 눈물로 배웅하고 돌아갔다.    그 후 다섯 달 만에 배가 부산에 입항했을 때도 그는 가족을 본체도 않고 술집에서 살았다. 그의 아내는 남편을 찾아가 눈물을 뿌리며 애원했다.   "보소, 순이 아배요! 적지만 동력선을 사놔스이 이제 그만 떠돌고 그거시나 살살 부리며 가치 사입시더." 허나 그는 집으로 돌아오라고 매달리는 아내를 확, 밀치고 술만 더 시켰다.    그녀는 섬사람 같지 않게 피부가 뽀얗고, 자태도 고았다. 거기다 재력까지 있으니 동료선원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그는 무슨 사연인지 아내를 소 닭 보듯 해, 그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어려서부터 살다시피 한 것과 때 없이 쏟아내는 잔소리가 싫어서라고 했다. 복을 터는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겉보기와는 달리, 속내가 빛 좋은 개살구일지도 모르겠다.   1975년 7월 하순경이었다. 인도양 조업 다섯 달 만에 하역 겸 보급품을 받으러 이란의 반다라바스에 입항했다. 하역을 끝낸 다음 날 오후, 그곳에 파견 나와 있는 직원이 통신사인 나에게 긴 전문을 주며 본사로 보내달라고 했다. 가뜩이나 더워서 죽을 맛인데 전보를 가져와 짜증이 났지만, 땀을 흘리며 타전을 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여럿이 비명을 지르며 우당퉁탕 뛰는 소리가 났다. 불이 났나 싶어 뛰어나갔다. 순간 숨이 탁 막혔다. 암모니아 냄새 때문이었다. 선원들이 바람 불어오는 선수로 뛰어가 '풍덩풍덩' 바다에 몸을 던졌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뛰어내렸다. 다행히 모두 살아서 돌아왔다. 항해 중이거나 조업하다가 그랬다면 많은 희생자가 났을 것이다.   암모니아 냄새가 가신 뒤에 기관실로 들어갔다. 기계와 얽히고설킨 배관들로 복잡한 한쪽에 1기사가 쓰러져 있었다. 냉동촉매제로 사용하는 암모니아 압력을 조절하다가 밸브가 터져 정면으로 맞고 혼절한 거였다. 다 죽은 그를 힘이 장사인 1항사가 들쳐업고 간신히 기관실을 빠져나와 선미에 뉘었다. 잠시 숨을 돌린 그가 다시 업고 부두로 나가 택시에 싣고 병원으로 달렸다. 그날 점심과 저녁을 거른 체 다친 사람을 반다라바스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밤늦게 온 1항사와 기관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자, 1기사는 사라도 사램 구실 하기는 틀렸지 싶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도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 신음하듯 한숨을 토했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에나 문병을 할 수 있다고 해, 기다렸다가 김치와 깻잎 장아찌를 들고 갔다. 3층 중환자실 한쪽에서 그의 이름이 달린 침대를 찾았다. 푸른 망을 씌워놓은 큼직한 고깃덩이를 봤다. 그 모습이 어찌나 끔찍한지 등골이 오싹했다. 그렇게 건장하던 사람이 익다만 고깃덩이라니! 기가 막혔다. 우리는 눈물만 흘리다가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반다라바스의 칠팔월 낮 기온은 보통 50도가 넘었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 기관실인데 어땠을까. 더워서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민소매 러닝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당직을 섰다. 그렇게 노출된 상태에서 암모니아를 정면으로 맞았기 때문에 피부가 동사해 벗겨진 거였다.   이란에서는 그를 치료할 수 없어, 부산 모 병원으로 옮겨서 여러 번 수술을 받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왼쪽 눈을 잃고, 오른쪽 눈도 실명 직전이었다. 거기다 얼굴은 일그러지고 손발이 구운 오징어같이 오그라져 혼자서는 걷지도 먹지도 못했다.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아내가 나타났다.    6년이 넘도록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남편. 딸과 함께 매달려 애원을 해도 매몰차게 뿌리치고 도망치던 사람이 고작 그 몰골로 돌아왔으니 더 미웠으리라. 그러나 그때는 그의 부모도 세상을 떠난 뒤라 밥을 떠 넣어줄 손이 없었다. 그녀는 그런 그를 보자 서서히 미움의 둑을 헐었다. 짊어져야 할 업보라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으리라. 그녀는 그 날로 미워 때려주고 싶은 남편을 안고 그들이 낫고 자란 둥지로 돌아갔다.   내가 어기漁期를 마치고 그들이 사는 작은 섬으로 갔을 때,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첫눈에 행복해 보였다. 동백나무 그늘에 앉아 이미자의 '황포돗대'를 듣고 있던 1기사는 목소리도 잊었는지 나를 못 알아봤다. 아이는 학교 때문에 거제에 사는 친척집에 가 있다며 사진을 보여주는 데 영락없이 제 아빠의 판박이였다. 그녀는 대구찜과 흑돔구이가 놓인 밥상을 들고 와 앉더니, 힘들었던 날의 심정을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츰에 빙원에서 그 흠한 꼴을 봤을 땐, 내사마 고소한 맘이 들대예. 그래 고마 도라서지 않아습니꺼. 이제 나가믄 그와는 마지막이라카는 생각을 하믄서 막 빙원 문을 나가다 생각해보이, 마 발이 스데예. 아한테는 폐인 아배라도 있어야 하지 싶어서예. 그래 고마 돌아서 남핀의 오그라진 손을 잡고 실컨 울었심더. 참말로 서럽데예. 하지만 우쨔겠십니꺼. 실컷 울고나이, 그동안 쌓였던 미움도 스러움도 다 녹아내렸는지 고마 속이 후련하데예."   그녀의 자초지종을 다 듣고 일어서자, 그녀는 배 타는 곳까지 뚱싯뚱싯 걸어와 배웅을 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통신장님요, 이자는 날 두고 떠날 사램도, 맘 아프게 할 이도 읍써 행복합니더."   나는 섬에서 나오는 배에 발을 올리며, 그 천사 같은 여인이 늘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