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면 생각나는 뜨끈한 국물. 한 그릇으로 온몸이 따뜻해지는 음식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뱃속을 든든히 채우면서 추위까지 날려버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백숙을 선택했다. 백숙은 남녀노소가 다 즐길 수 있는 대표급 보양식. 너무 뻔한 음식 아니냐고 할까봐 좀 특별한 백숙을 찾아봤다. 겨울철새의 보금자리 창원 주남저수지로 달린다.
겨울철새 군무 보며 뜨듯한 밥상
주남저수지는 수면에 그림처럼 떠있는 고니 떼와 재두루미, 빈 들판을 무리지어 선회하는 가창오리가 장관을 이루는 겨울여행지다. 올해는 특히 1만여 마리의 가창오리가 10년 만에 찾아왔다고 해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경남공감이 찾아간 식당은 수십 년 역사를 지닌 주남저수지 인근 맛집. 1985년 개업했으니 올해로 35년째다. 희뿌옇게 빛바랜 ‘해훈가든’이란 간판에도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개업할 때 언젠가는 아들에게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제 이름에서 한 글자, 아들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식당이름을 지었어요. 좋은 음식으로 소문이 많이 나서 손님들도 대를 이어 오시기를 바랐지요.”
이제 아들에게 식당을 물려주고 잠깐씩 거들기나 한다는 1대 사장 박해식(74) 씨와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2대 사장 박정훈(48) 씨가 주인장이다. 박 씨는 2009년 아들 정훈 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식당운영을 맡으면서 대물림하려던 소원을 이뤘다.
식당에 자리 잡고 앉자 창밖으로 철새 떼의 군무가 펼쳐진다. ‘날아다니는 오리를 감상하며 오리백숙?’ 실없는 농담이 나올 만한 상황인데, 오늘 밥상차림은 다행히 닭이 주재료다.
잉어와 토종닭의 조합 ‘귀한 백숙’
백숙은 통마리 닭에다, 함께 넣어 삶는 부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붙는다. 한약재를 많이 쓰면 한방백숙, 인삼이 들어가면 인삼백숙, 옻나무 껍질이 들어가면 옻닭백숙이 된다. 이 집 백숙 이름은 ‘용봉백숙’이다. 그렇다면 용봉(龍鳳)이 들었나?
“용은 주남저수지의 잉어를, 봉은 토종닭을 뜻하는 거예요. 이름이 좀 거하지요? 잉어 곰탕에 닭백숙을 하는 건데, 그만큼 영양가 높고 귀하다는 뜻을 담아 붙였어요.”
박정훈 사장은 삼형제의 맏이로, 동생 둘이 동읍내수면어촌계 계원이란다. 덕분에 잉어, 가물치, 붕어, 메기 등 웬만한 민물고기는 자급자족한다. 그런 장점을 살려보자 해서 만든 메뉴가 용봉백숙이라는 것. 동생들이 주남저수지와 산남저수지에서 자망질로 잡은 잉어를 8시간 푹 고아 백숙에 쓴다. 백숙에 잉어 국물? 유독 생선 비린내에 예민한 사람은 비린내 걱정을 한다는데, 그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곧 1시간여 끓였다는 펄펄 끓는 백숙 솥이 상 위에 놓였다.
국물 맛 ‘끝내주는’ 고단백 영양식
뿌연 김이 올라 훈기 가득한 밥상에서 구수한 냄새가 퍼진다. 버너 불 조절을 하던 아들 박 사장이 잉어육수 비린내가 걱정인 비위 약한 손님들의 염려를 한 방에 날려버린다.
“중탕으로 잉어를 고는데, 냄새와 맛을 잡기 위해 우리 집만의 노하우가 들어갑니다. 노란콩, 도라지, 생강 등 여러 가지 부재료를 씁니다. 맛도 맛이지만, 영양가를 무시 못하지요. 고기는 다 못 드시더라도 국물은 꼭 다 드시고 가십시오.”
2kg짜리 잉어 한 마리 곤 물에 1.8kg 이상 나가는 토종닭을 넣어 압력솥으로 1시간가량 푹 삶아냈다. 닭 덩치가 커서 4인용으로도 모자람이 없다. 토종닭 특유의 질긴 식감은 오래 삶은 덕에 적당히 야들야들 씹힌다. 비린내 없이 고소하게 넘어가는 국물 맛은 사장님이 자랑할 만하다. 중독성 있게 자꾸 들이키게 된다. “등줄기 땀이 흐르더라”는 추천인의 말이 틀리지 않다. 황기, 인삼, 엄나무, 은행, 목이버섯, 마늘, 대추 등 백숙의 단골 재료도 들어가 맛내기에 한몫했다.
한겨울 밥상 앞에서 땀을 빼고 일어서는데, 식당 벽에 걸린 홍보문이 눈길을 끈다. 3000년 전부터 중국의 스태미나 보양식으로 인기였다는 내용이다. 기력보충 대표 식재료인 잉어와 담백하고 소화흡수가 잘되는 닭고기의 조합은 필수아미노산 생성에 상호보완 효과가 있고, 콜레스테롤 감소 효과도 있다는 부연 설명도 달렸다. 먹고 일어서는 사람의 뱃속이 더욱 뿌듯해진다.
얼큰한 맛은 메기매운탕·붕어찜으로
혹시 백숙의 뭉근하고 진한 열기에 매운맛이 생각나는 식객이 있다면 메기와 붕어로 얼큰한 국물 맛에 빠져볼 수도 있다. 주남저수지 인근에는 빨간 맛을 즐길 수 있는 민물고기 전문점이 서너 집 있는데, 해훈가든에서도 메기매운탕과 붕어찜을 맛볼 수 있다.
메기와 붕어는 민물고기 중에서도 단백질과 철분이 많고, 지방은 적어서 보양식의 으뜸으로 친다. 미나리, 부추, 깻잎 등 향 진한 채소로 풍미를 더한 메기매운탕과 붕어찜의 맵싸한 국물은 찬바람 부는 겨울에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게 한다. 양념 밴 시래기와 무의 부드러운 식감도 입맛을 돋운다. 민물고기 특유의 진흙 내는 전문가인 박 사장의 손질을 거치면서 사라진다.
철새도래지 주남저수지를 검색하면 뜨는 맛집답게 오리백숙과 오리주물럭도 메뉴에 있다. 육류 중 단점이 가장 적다고 알려진 오리고기는 웰빙 육류의 대명사. 하지만 철새가 저수지 하늘을 꽉 메우는 겨울이면 손님들이 실없는 농담을 해서 주인장을 놀라게 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이거, 주남저수지 오리 아니에요?” 하도 오리가 많이 보이니 손님은 재미 삼아 그냥 한마디. 박 사장이 펄쩍 뛰는 시늉을 한다. “우리 사냥꾼 아니에요. 철새 건드리면 큰일 나죠. 드시고 주남저수지 한 바퀴 둘러보세요. 우리 애들 아니에요.”
뜨끈한 백숙에 박 사장 말대로 주남저수지 탐조산책도 한 바퀴, 하루가 꽉 차는 겨울 식도락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