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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노트르담 대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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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9개국 COACH 배낭 여행기: 전편
글:權:빛반려자
☞ 여행지: 영국, 프랑스,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리히텐쉬타인,
스위스, 이탈리아, 바티칸시티 : 9개국
☞ 일시: 2002년 7월 5일~7월 23일(18박19일)
☞ 누구: 셋(筆者와 妻, 妻兄)
☞ 경유도시: 인천공항-타쉬켄트-런던-파리-하이델베르크-프라하-비엔나
-짤츠부르크-인스부르크-루쩨른-인터라켄-코모-밀라노-베네치아-피렌체
-로마-타쉬켄트-인천공항
☞ 서울교육문화회관 여행사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
제1일(7/5) : 유럽여행의 장도에 오르다
설레이는 가슴을 슬어 안고 처, 처형과 함께 여의도 63빌딩앞
공항버스를 타고 비나리는 인천공항을 향하여 18박 19일의 유럽여행의 장도에 오르다.
지난 83년 사우디에서 귀국한후 1994년도 일본 동경의 박람회(자재)에 참석한후
실로 10년만의 해외여행이었다
COACH 배낭여행이란 장거리 전세버스를 이용하여 도시와 숙소인 호텔까지
연결 시켜주고 관광은 스스로 찾아 가는 것으로 중년인 우리들이 한번쯤은
경험해 볼 만한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3시간40분을 달려 타쉬켄트에 도착하니
조그만 공항이 옛날 스리랑카의 콜롬보 공항 비슷했다
밖을 내다보니 대우의 티코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이곳이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대우그룹이 세계 29번째 자동차 생산국으로
만들어 놓은 -UZDAEWOO자동차 조립공장-이 생각나면서
전에 YTN 대몽골시간여행에서 읽어본 내용들이 하나 둘씩 뇌리에 떠 올랐다.
목화의 집산지, 갑을방직이 건설한 합작방직공장, 유럽으로가는 가장 빠른길이며
종전 뉴델리를 경유 할때보다 2시간30분과 년간 기름비가 8백만불을 절약 할수 있는곳,
즉 하늘의 SILK ROAD의 OASIS도시- TASHKENT, SAMARKANT, BUKHARA- 고려인이
23만명이나 살고 있고 시르다리아강과 아무다리아강이 아랄해로 흘러 들어 가는 곳,
옛날 당나라 고선지(고구려인)장군이 점령했던곳이며 그 이웃 지금은 카자흐스탄에
있는 탈라스전투등 -이 전투에서 비록 패하여 더 이상 서역 진출은 없었지만
서양에 종이만드는 기술을 전파 하였다
또 3시간40분 달리니 런던 히드르 공항이였다
곧 바로 버스에 타고 숙소인 센트랄 파크 호텔에 투숙했다
공항 입국심사에서 간단한 영어 문답을 했으며 내국인은 쉽게 빠져나가는데
우리와 아시아, 아프리카등 심사가 꽤 까다로웠다
런던 켄싱턴가든의 연못
제2일(7/6) : 영국 켄싱턴 가든 산책
우리 일행 18명-안내인 C메니저와 처, 그리고 딸, H교수 부부및 딸, P예비역대령,
우리부부및 처형 대구 남학생(의대생), 부산의 여학생 C양, 분당의 두남학생,
K 의대선생님 두분 두분모녀-18명중 H교수부부는 65,66학번의 캠퍼스 커플
부부이며 지금은 겸임교수로서 경기 이천에 전원주택을 짓고 재미있게 살며
P대령은 부산 기장읍에서 농사지으면서 전원 생활을 즐기며 지내는 중이었음
시차를 극복하면서 아침일찍 켄싱턴가든으로 산책나갔다
-빅토리아여왕이 살던곳이며 그 남편 알버트공작을 기념하기위한
-ROYAL ALBERT HALL- 그리고 POND(큰연못) 오리및 거위들...
아침부터 숙소를 찾느라고 헤매이기도 하면서 CENTRAL PARK HOTEL에서
빵과 우유로 아침을 대신하고
지하철(UNDERGROUND WAY) QUEENSWAY역으로 걸어갔다
1일권 티켓을사서(2유로)영국의 지하철을 타고-Line별Color가 칠해져
있어서 찾아내기가 수월했다- Trafalgar(Oxford Circus)역에 내렸다
Trafalgar광장에 모처럼 태양이 비쳐서
젊은 남녀들이 웃통을 벗고 일광욕에 정신이없었다
안내인의 설명으로는 뼈를 말린다고한다. Trafalgar란 나폴레온 전쟁시
영국의 NELSON제독이 전사하면서 승리를 이끈 해전이 아닌가
우리의 이순신장군에 버금간다는 해장 그곳 광장이 모이는 장소요
집회가 이루어지기도한다. 오늘도 열심히 데모하는 것을 비디오에 담았다

대영박물관 입구와 웨스트민스터 사원
이어서 세계제일의 약탈문화재 집합소인 大英博物館을 관람하고 나오니
이집트 그리스등 세계최고의 유물을 전부 진열해 놓은것 같다.
오후에 Citytour-City Circulation Bus로 Westminster사원, BigBen,
영국국회의사당, Thames강등 둘려보고 특히 런던브리지가 아주 폭이 넓어
시티투어 버스가 왕복으로 지나갈 정도로 튼튼했다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 my fair lady
-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London Eye를 거쳐서 숙소인 퀸스웨이역으로
센트랄 파크호텔에 도착하여 저녁을 역앞 중국집에서 먹었다
대영박물관 전시실 앞에서
제3일(7/7) : 버킹검 궁전 기마대 교대식
오늘도 아침일찍 Keshington Garden으로 산책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Hyde Park호수에서 새벽부터 수영하는 사람을보고 놀랐다
Queensway역에서 Circle Line를 타고 웨스터민스타역에 내려 마침
일요일이라 성당에 예배보는 사람이 많아 켐코더로 촬영하고
그 입구에 늘어선 옛 군인들의 인상이 무척 놀라웠다.
Victoria역에서 내려 Buckingham궁전앞에 이르러 궁전 기마대 교대식
준비를 위한 기병대의 우렁찬 점호 소리를 들으며 궁전앞에 다가가니
관광객이 인산인해요 빅토리아여왕의 욕심많은 얼굴의 동상이 앞을 가리고
기대에 미흡한 근무교대식이 짧게 끝났다. 12시 30분 교대식을 보려고
1시간이나 기다림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 같아 이것도 관광장사꾼인지 씁쓸했다

버킹겁 궁전 기마근무 교대식..이미지출처:인터넷
테임즈강가에 연해여 있는 국회의사당은
400년 역사를 간직한채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빅벤을 옆에 끼고 우뚝 서 있었다
그 앞에 유유히 흐르는 템즈강은 그 옛날 재판소였던 국회의사당 뒤쪽으로
죄수들을 인도했던 나루터도 같이 사용하였다 한다.
Waterloo를 향하여 지하철을 타고 유럽대륙으로 떠나는 Euro-Star 기차를
타기 위하여 역에 도착했다. 워터루하면 Napoleon이 영국의 웰링톤장군에게
최후의 일격을 받아 패한 곳을 기념하여 만든 지명이 아닌가.
그 곳이 영국의 대륙진출의 염원 혹은 섬나라를 탈출하려는 숙원을 이룬
지하터널의 출발역이었다.
간단히 출국수속을 마치고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피곤한 몸을 기대고
Dover로 향했다. 한적한 농촌 풍경을 바라보다 SGB Scarffolding회사공장이
지나가고 Wicks목재회사 간판도 보여 한참 사우디 생활에 젖어 들었다
-5년간 고생하여 나의집 생활기반을 이루어 준 곳-SAUDIARABIA..
건강하게 마치고 온것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한편으론 Oxford대학을
가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영국을 떠났다
약 1시간 가량 도우버 해저터널을 지나 4시간만에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여
어스름한 저녁9시...
기다리고 있던 COACH에 올라타고 숙소인 ibis Hotel에 도착했다
북유럽이라서 새벽 05시면 훤하고 저녁10시가 되어야 어두워졌다
파리 노트르담 대사원 앞 세느강 지류 다리위에서
제4일(7/8) : 중세 고딕건축의 결정판인 프랑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새벽5시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여니 고속도로가 보이고 그 건너 공동묘지가
보였다. 그옆은 축구경기장, 이것이 서양에서 말하는 혐오시설에 대한
친근감은 우리도 배워야겠다-청계산입구의 서울시 추모시설에 대한
저항의 프랭카드와 줄기찬 주민들의 반대데모등-
지하철Gentilly(쟝띠)역에서 출발하여 Saint-Michel Notre Dame역에 내렸다.
숙소인 이비스호텔에서 쟝띠역까지 가는 도중에 공사현장을 자세히 살펴 봤다.
우리들처럼 요란하지않고 조용히 공사하고 있었으며 관리자는 3명(파란 안전모)
보이고 근로자는 15명(노란 안전모)이 작업하는 모습이었다
직업은 못 속인다고 P대령은 핀잔준다
노트르담대성당-소설로는 꽈지모도라는 노트르담의 꼽추도 있지만 나폴레옹이
황제즉위 대관식을 올린 곳
주교좌라는 이름의 대성당 처음 대하는 거대한 건축물 중세 고딕건축의 결정판...
모든것이 감탄사다 내부의 장엄함에 저절로 옷깃을 여미고 고개숙여진다.
쟌다크의 조각품등 성당 정문앞에 있는 샤르르막뉴대제의 동상과 그옆에 흐르는
쎄느강-강폭이 무척 좁다 강변에 즐비한 야외 까페등-
프랑스에는 노트르담사원이 2개가 있다 하나는 파리의 노트르담과 Reims(랭스)의
그 것이다. Reims의 노트르담은 백년전쟁시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려고 일어난
열열한 애국소녀 쟌다크 이야기가 숨어있는 곳이다.
쟌다크는 국론통일을 위하여 임금(샤르르6세)을 랭스 노트르담사원에서 즉위
시키고 침략자 영국군을 무찌르는 구심점을 이루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역사적인 국왕 즉위식을 거행한 곳이 바로 랭스 노트르담사원인 것이다
몽마르뜨 언덕 테르트르광장 화가들의 거리..이미지:인터넷 옮김
시내버스를 타고 몽마르트언덕을 오르니 큰 사원이 앞을 가린다
모처럼 파리의 후니쿠라라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화가들의 천국인 몽마르트에
도착하여 배고픈 고난의 화가 시절이 어린 곳으로 프랑스로 유학온 모든화가들의
애환이 넘친 곳이리라. 그곳이 정말 몽(MONT) 즉 산(山)이란 말인가-아니다
동산을 말하는 것이겠지 거기서 내려다 본 파리시내는 발아래에 있는 것처럼
파리는 평지였다. 런던도 파리도 동경도 산이 없는 평지도시가 아닌가.
거기에 비해 우리서울은 얼마나 행복한 도시인가! 북한산,도봉산,수락산,
청계산,관악산 그리고 서울중앙의 남산 진짜 복받은 수도이다
파리 개선문.. 자매모습이...좌측:妻兄,우측:妻(찬란한 빛)
지하철을 타고 오페라역에 내리니
세계최고의 음악가가 연주하는 OPERA좌가 눈앞에 섰다
그러나 보수공사때문에 입장도 못하고 지나 상젤리제거리를 걸으며 나폴레옹의
개선문에 도착했다. 파리에는 루부르궁에서 일직선으로 3개의 개선문이 있다
그중 가장 하려하고 장엄한 것이 바로 나폴레옹에 의해 시작한 공사가 황제당시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으후 이 개선문을 통과 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코르시카
(나폴레옹이 태어난 그해에 이탈리아영토에서 프랑스로 넘김)출신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었다-이 얄궂은 운명이런가-만약 영토가 이탈리아 였으면
그 당시 분열국가였던 곳에서 출세를 하였을까(밀라노왕국,베네치아,피렌체,
나폴리,사르디니아왕국등) 그리고 프랑스대혁명에 의한 대불동맹(對佛)에
의해 위기의 조국을 구한 풍운아 나폴레옹 오스트리아의 마리아테레시아여왕이
처형당한 마리앙뜨아넷트와 그 사위 루이16세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벌린 연합군을
이 나폴레옹은 철저히 부수어 조국을 지켰으니 국민이 열광하지 않았다면
뭔가 잘못 된 일 일 것이다-
그를 영웅으로 제1통령으로 황제로 만든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았다
루브르박물관 앞
콩코드광장,루부르박물관도 모두모두 금(金)을 좋아 했는지
온통 금덩어린지 금메끼인지 분간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신라인처럼 아니 그 당시 전 인류가 그랬는지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파리 에펠탑
에펠탑을 쳐다보니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세울 때 전 파리시민은 흉물이라고
반대했다지만 지금은 어떤가 관광수입과 파리의 상징이 되지 않았는가
제5일(7/9) : 프랑스 대혁명의 싹을 키운 베르사유궁전
오늘은 벨르샤유궁전을 가는날 지하철을타고 노트르담에서 갈아타고 잘
갔으나 다시 갈아 타는 역을 놓쳐 반대 방향으로 계속 달리니 한적한
시골역이 나와 이게 아니구나 다시 역에서 표를 사서 꺼꾸러 달리니 안심이다
도중에 차장의 검표를 받았으니 만약 표를 사지 않았으면
30배 벌금을 물었을 것이다
Champ de Mars(샴드마)역에서 갈아타고 드디어 벡샤유-프랑스인은 이렇게
발음한다-에 도착하니 입장객들이 표를 사기 위하여 줄을 섰다.
1시간을 소비한후 겨우 입장하니 장대비가 한차례 쏟아졌다
루이14세(태양왕)가 국민의 피땀으로 지은 이 궁전은
프랑스대혁명의 싹을 키웠으며 궁전의 화려함은 이루 비할때가 없었다.
침실,집무실,연회장 그리고 궁전앞 정원 세계제일의 궁전 전제(專制)주의
상징 이러하니 부르봉왕조가 무너지지 않는다는것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그 손자 루이16세 그아내 마리아테레사여제의 딸 마리 앙뜨아넷트의
단두 대처형은 역사의 필연성이라 생각한다
우리를 안전하게 모시는 기사는 이탈리아인 도미니크였다.
한국의 축구를 높이 칭찬해 주었으며 이타리아의 패배를 시인하였으며
이탈리아는 각 지방별 프로 축구팀이 있어 그 팀과 이름있는 선수를 지극히
생각하며 국가적으로는 무관심하단다
Coach Bus는 원래 Long distance coach라고 하며 약자로 LDC로쓰고
하루 10시간이상, 100KM이상은 달릴 수 없다고 한다.
차에는 의무적으로 타고메타가 기록되어 있어서 속일 수 도 없단다
이것이 적발되면 면허취소의 중벌이 떨어져 치명적인 것이였다
-이것이 정답이 아닌가요 휴식은 반드시 2시간 주행후 실시했다
봉 쥬르-즐거운 하루가 끝났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영화 "황태자 첫사랑"에 나오는 맥주집
제6일(7/10) : 하이델베르그의 아름다운 전원주택과 황태자의 첫사랑
파리를 떠나면서 아쉽지만
복잡한 지하철을 그래도 잘 이용한 것 만도 다행이었다
각 노선마다 색깔을 구분했고 각 역마다 같은 라인일 경우는 역 플랫폼의
의자도 같은 색이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프랑스의 전원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야트마한 언덕의 연속이며 산은 구경 할 수 없는
대평원을 달리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고속도로상에서 오토바이도 같이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좀 위험해 보였다
일로 동쪽으로 동쪽으로 달리면서 랭스 노트르담을 옆에서 쳐다보면
샴페인으로 유명한 샹판유지방 특유의 포도산지를 지나며 Verdun(베르당)
-2차대전때 프랑스의 대독일 방어진지가 있던 곳-을 지나 Metz에 도착하니
국경이다. 아무런 통제도 없이 독일로 들어선다 간판글자가 독일어일 뿐이다
Euro화 통일이후 유럽이 하나로 통일된 기분이다.
영국에서는 파운드로만 통용되지만
우리가 갈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도 유로화로 사용 할수 있으니까 편리하다
스위스 첵코는 아니지만...
유럽은 알프스산에서 발원하여 히딩크나라인 네델란드의 로테르담까지
흐르는 Rhein강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Alps산 이북은 버터문화,
철학적이고 사고적이며, 흐리고 태양빛이 그리운 곳이라면
이남은 올리브문화, 개방적이고 쾌활하여 북구 게르만,켈트족들은 한여름
뼈를 말리기 위하여 지중해연안으로 휴양차 오게 됨을 이해하겠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실감나게한다 이렇게 크고 긴 라인강을 건너
8시간을 달려 대학의 도시 Heidelberg에 도착했다
첫 인상은 대학교 캠퍼스같은 도시 역전앞에 약30만대를 수용 할 수 있는
자전거 주차장이 가장 인상깊고 모든 대학이 University가 아닌 College라는
것이다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라인강의 지류가 깨끗하고 수량조절용
수중보댐과 다리들 언덕위의 아름다운 전원주택등 꿈의 고향이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성 아래쪽 라인강 지류가 흐르고
하이델베르크 고성에 들려 고색창연한 성벽과 기념품 상점가와 Downtown을
돌아보았다. Heidelberg하면 우리나이 또래들이 신입생때 영화로 본 황태자의
첫사랑을 잊을 수 없겠다. 파리에서 독일로 오는 동안 버스내에서 보여준
뮤직영화를 상기시키면서-Student Prince-
영화 촬영시 있었던 그 술집에서 영화장면처럼 맥주잔을 탁상에 두드리며
Drinking Song을 음미하면서 오늘을 보냈다 숙소는 Astron Hotel에 투숙했으며
Mannheim부근의 교외였다
호텔 앞뜰에서 맛있게 여러팀과 함께 포도주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었다
제7일(7/11) : 교통 질서가 잘 잡힌 사회주의 국가 첵코(프라하)
오늘은 옛 사회주의국가인 첵코로 가는 날 히틀러에 의해 첵코슬로바키아를
첵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뉘어 독일에 점령당하였고 종전후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곳
그러나 신성로마제국의 한 때 수도였고 칼대제시에는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중부유럽을 통치했던 나라, 지금은 슬로바키아와 분리 독립되어 서구화에
노력하고 있는 그 수도인 프라하를 향하는 길이였다
국경에서 검문하고 통과하는데 1시간이상 걸렸다-아직도 사회주의인가?
어째튼 하이델베르크에서 프라하(Praha)까지 약 10시간 걸렸다.
전차와 버스 승용차 한도로에 같이 달린다
그래도 질서가 잘 잡힌 교통문화이다 우리처럼 클락션을 울리는 법이 없다.
전차도 버스나 승용차가 가로지르면 정지한다 교통신호도 꼭 지킨다.
오늘은 큰 정원이 내려다 보이고 시냇물이 빠른 속도로 흐르는 곳
Hotel Bohemika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첵코의 프라하 구시가지 화약탑과 천문시계가 있는 얀 후스의 동상있는 광장
제8일(7/12) : 현대 첵코역사의 기념비적인 바츨라프광장과 국립박물관
아침에 Visocansk역에서 지하철로 시내로 들어가야 하는데
지하철표를 사기위하여 동전이 필요하여 역구내의 피자가게에서
피자 한장을 사고 잔돈과 동전으로 바꾸어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아침 8시라서 많은 출근객인지 그 가게에서 피자를 사 먹고 있었다
Mustek역에 내려 무즈텍광장으로 나오니 중심지라서 넓은 길이 앞을
탁 티운다 그옆으로 이어진 바츨라프광장은 이름이 광장이지 큰 대로다
성 바츨라프동상까지가 그 전부다
동상뒤에는 바로 국립박물관 나는 먼저 이곳부터 관람하기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역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을 겸한 곳으로 오히려 관람객에겐
경제적이고 시간절약도 될 수 있었다 1890년에 만들어진 이 박물관은
신 르네상스식으로 겉과속이 모두 화려하고 첵코재건의 상징물이 되었다
바츨라프광장은 길이가 750m 폭이 60m에 달하는 대로이지만
현대 첵코역사에 기념비적인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라하의 봄"이 일어나고 소련의 탱크에 의해
무참히 무너진 1968년과 "벨벳 혁명"으로 하벨이라는 시민포럼의 지도자가
나타나 자유를 만끽한 1989년의 시민혁명도
이 곳에서 100만명이 넘는 군중이 집결한 곳이기도하다-
구시가지광장입구에 우뚝 솟은 화약탑과 틴 성당 골즈 킨스키 궁전
그리고 1415년 교황의 타락과 세속화를 비판하다 화형당한 얀 후스의
동상과 기념비는 첵코 모든이의 date장소다
프라하의 3대상징의 하나인 천문시계-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그 해골옆의
투르크인은 욕망을 반대쪽의 유태인고리대금업자는 탐욕을 나타낸다,
12사도등-두번째는 카를교-1357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4세가 세운다리
세번째는 프라하의 성으로 이 성과 카를교의 야경은 황홀함의 극치라고 한다
프라하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황금소로는 옛날 금붙이를 다루는
공방들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기념품을 파는 상점으로 되어 있었다
그 길로 프라하를 뒤로하고 비엔나로 향하였다 국경선에 가까워가니 점점
차량이 많아져 우리나라 여름휴가철 서울톨게이트 이상이다
4시간이나 기다려 겨우 오스트리아국경을 넘었다
이유는 여름휴가철을 빙자하여 위장이민및 취업을 막기위한
동구라파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생각했다
밤 늦게 비엔나호텔에 투숙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호프브르구 왕궁
제9일(7/13) : 비엔나 최대번화가이자 보행자 천국인 케른트너 거리
호텔에서 걸어나와 물어물어 전철표 파는곳을 찾아 하루치 5유로로
3장 구입하여 전철을 타고 Volkstheater에 내려 자연사박물관과
미술사박물관을 보고 Hofburg왕궁을 관람하고 곧 바로 지하철을 타고
Schloss Schonbrunn(쉔브룬 궁전)역에 내려 10분간 걸어 궁전에 들어갔다
1569년 막스밀리안2세때 건축하였으나
그후 1744~1749 약6년간 걸쳐 마리아 테레지아여왕시
완공시킨것이 현존하는 것이다 벨르사이유궁전과 호형호제라고 할까?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쉰부른궁전
넓은 정원과 1441개의 방과 동 식물원 18세기 프로이센과의 전승을
기념하여 세운 Gloriete는 언덕위에서 궁전과 정원을 내려다 보는 광경은
잊을수가 없겠다 그 뒷뜰에 설치된 지하수 펌푸물의 시원하고 맛있는
물도 마찬가지라 시간에 쫓겨 지하철을 타고 슈테판광장역에 도착하여
Stephansdom을 쳐다보니 그 규모에 놀랄수 밖에 없었다
전.측.후면을 돌아보니 모두가 걸작품 그것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쉰부른 궁전의 분수대
유럽은 성당문화가 아니라 할까...정말 Dom dom dom일색이었다
비엔나 최대의 번화가이며 보행자 천국인 케른트너거리와 국립
오페라 극장도 걸어서 보기도 하고 하루가 짧더라도 도나우강을
보아야하겠기에 지도상으로는 지척에 있어 마침 다른 한국 가이더에게
물으니 가깝다는 말에 걸어 가다가 찾지 못하고 다시 지하철타고
도나우강을 찾으니 물도 많고 깨끗하며 유람선이 뜨고 진짜 운치가 있었다.
다리밑 까페에서는 노래와 맥주가 있고 강에는 유람선이 유유히 흐르니
모처럼 꽉 짜인 스케쥴에 약간의 낭만에 젖어 보기도 하였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쉰부른 궁전
볼것은 한량없이 많지만 이제 숙소로 가자 내일을 위해....
숙소에 돌아오니 머리속엔 합스부르크 왕조의 변천사가 떠오른다
1273년 루돌프왕이 처음 세워서 막스밀리안왕과 비엔나에 동상을 세운
욕심많고 심술궂은 좀 살찐 모습인 마리아 테레지아여제
그 후 1914년 사라예보에서 암살된 황태자부부 사건등
640년 동안 이어진 유럽 최대의 왕가를 잉태한 비엔나
그러나 1차세계대전으로 몰락하고 말았으니(1918년) ...합스부르크왕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구나! WIEN회의- 서양사의 한핵,나폴레옹전쟁후
유럽의 새로운 체재로 만든 회의 재상 메테르니히의 전행과 농단에 의해
전제주의국가 시대로 역행한 귀족회의도 잊을 수 없다
몽세성당(사운드 오브 뮤직)
제10일(7/14) : 구시가지 전체가 관광지인 짤츠부르그와 몽세성당(사운드 오브 뮤직)
Vienna(Wien)를 떠나 오스트리아의 농촌을 지나
짤츠부르크(Salzburg: salz-소금,burg-성곽 즉 소금의성)에 도착하니 구시가지전체가
관광지다 Mirabell Garten에 들어가니 여름 꽃들이 만발했다
벨르사이유,쉔브룬궁전의 정원의 작은 축소판이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예쁘다
걸어서 짤자흐강을 건너 모짜르트 생가를 거쳐 카피텔광장에 도착하니 대성당(Dom)과
모짜르트가 처음으로"다단조 미사곡"을 연주하고 카타콤베(지하묘지)가 있는
성 페터교회를 지나니 바로 호엔짤츠부르크 성으로 올라가는 후니쿨라가 있었다
6 유로(7,200원)를내고 후니쿨라를 타고 성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입장료까지
포함된 것이었다 1077년에 세워진 이 성은 해발 542m 산위에 있어 전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이고 성채박물관(입장료를 또 3 유로를 냈다)이 있어 좋았다 박물관에는 중세 기사들이
사용한 각종 무기류 식기류 와 죄수들을 고문 할때 쓰였던 고문기구,교수형 밧줄도 있었다
짤츠부르크성 아래의 미라벨 가든
성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전경은 아주 멋지다 바로 밑에서 흐르는 짤자흐강은
물살이 빠르고 회색빛이도는 흙탕물로 보여 좋지않았는데 원인은 알프스빙하에서
녹아내린 물 때문이란다. 성에서 내려올 때는 걸어서 구시내로 내려와 저녁먹을
피자를 사고 다시 마라벨정원에 도착하니 짤츠부르크 여고생들의 합주곡 연주가
있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 6시에 한단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등
한시간 동안 생음악을 들으니 더위와 갈증 피로가 가신다 진짜 살기 좋은 곳이구나
수수하게 차려 입은 여고생들 열심히 지휘하는 여고 지휘자가 인상에 남는다
옛날 영화에서 본 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떠 오른다
'샤흐흐아인 크나프아인 레스라인 쉔 레스라인 아아프테르 하이텐
바르죠 융크운트 모르겐 쉔 리브에르 세낼에스 나하추 쉔
쟈흐스 미츠 빌렌 후로이덴 레스라인 레스라인 레에스라인 롯
레스라인 아아프테르 하아이덴'
-들장미-
이 짤츠부르크에 도착하기전에 영화 Sound of Music에나오는 장면중
폰 트랍대령과 마리아와의 결혼식장 이었던 Mondsee(몽세)성당을 구경하기 전
Coach Bus내에서 영화를 관람했으니 감명깊게 둘러보았다
-영화한편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다니 놀라웠다. Crystal의 고장
쓰발로푸스키본사가 있는곳, 발음이 고약하다. 설립자이름인데 본고향은 첵코란다
루체른 루이스강가의 카펠교 앞에서
제11일(7/15) : 황금의 작은 지붕이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와 스위스의 루째른
짤츠부르크를 뒤로하고
멀리 알프스산맥을 바라보며 동계올림픽으로 유명한 인스부르크로 향하다
Innsbruck(Inns-강,bruck-다리 즉 인스강의 다리) 들어가기전의 알베르터널은 1793m
유럽에서 두번째로 긴 터널이다 참고로 제일긴 터널은 Norway에 있는데 24km이다
이 Arlberg터널을지나 인스부르크에 도착하여 마리아테레지아 여제가 결혼하기 위하여
이 성에 들어온 길 즉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황금의 작은지붕(여제를 맞이하기 위하여
지붕에 황금 기와를 입힘) 300여년 된 과일가게와 여제가 결혼식을 올린 대성당등
그렇지만 우리는 겨울 스포츠의 Mecca로만 떠오르게 된다 한편 13만 인구중 학생이
4만명인 교육의 도시이며 64,76년 올림픽이 열렸고 옛날 로마나 예루살렘의
성지순례길의 길목이었다 우리나라 장면박사가 유학한 곳이기도 하다
스위스로 들어 가기전
유럽소국(Liechtenstein,Andorra,Monaco,San Marino,Vatican등 5개국)중 하나인
리히텐슈타인공국에 들렸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많이 애용됐던 HILTI-Gun 공구의
공장이 있는곳 버스간에서 열심히 공장 주변을 쳐다보며 감회가 젖었다
또 떠나자 SWISS로 버스는 쉬지 않고 달린다
루체른 가는길의 호수 앞에서
스위스-옛날에는 먹고 살기 위하여 외국에 용병으로 팔려나갔고 하느님에게도
숙박비를 청구 할 정도로 철저하며 자주국방 수력발전소 산속 외딴 집까지도
전기시설 도로를 정부가 가설해 주는곳 지금도 바티칸의 근위병은 스위스용병이다-
루쩨른 그 곳 Pention에서 스위스 알프스 눈 덮인 산아래 산중턱에 케이블카의 전주를
바라보며 고대 선후배,동기부부와 최메니져와 같이 포도주(도수가 세다)2병을 비웠다
드디어 천국(여기서는 높은곳으로 생각하자)에 오르기 시작했다
펜숀은 통나무로 호텔처럼 지었다
리히텐슈타인공작님이 외교 수완이 좋아서 공국으로 독립되어 있으나 외교권은
스위스가 행사하고 있다. 고성이 언덕위에 위태롭게 전 도시를 아래로 내려보고 있으면서
공작님은 지금도 나라사랑하고 있겠지......
루체른 빈사(죽어가는)의 사자상 앞에서
아름다운 호수의 도시 Luzern은
스위스중앙에 위치한 곳으로 피어발트슈퇴터 호수한 쪽에 위치하고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버스로 빈사의 사자상이 있는곳에 도착했다.
직각으로 깍인 절벽에 회색빛 바위, 그 앞에 조그만 연못 조용한 곳이었다
이 사자상은 등에는 부러진 창이 꽂혀있고 이제는 죽어 편히 잠든 사자상
그앞애는 두개의 방패가 놓여 있는데 하나는 조국 스위스방패요
다른하나는 루이16세 부르봉왕가 마크가 그려진 방패였다.
1792년 프랑스 대혁명시 루이16세와 마리아 앙또와넷트를 끝까지 지키고 죽은
786명의 스위스 용병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9세기 덴마크 조각가
토르발센의 작품이었다
구시가로 들어오니 Vierwaltstattersee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호수에서 루째른시내로 흐르는 Reuss강사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카펠교(Kapell-brucke)를 건넜다 다리 중간내부에는 많는 명화가 널판지 위에
루째른의 역사를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다리중간의 저수탑은 요새의 일부인 동시에 문서보관소와 감옥으로도
사용했단다 우리는 다리건너 한참 내려가 역사박물관앞 다리에서 물살센
로이스강을 바라보면서 그옛날 물을 조절하기 위한 터빈(발전소)을
물끄러미 보면서 흐린 날씨 약간의 빗방울을 맞으며 구시가로 들어갔다
모이는 장소에 도착하니 비가 무척 많이 내린다
루체른 부근 우리가 묵은 펜션
제12일(7/16) : 코발트빛 하늘과 흰눈 덮힌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산,융프라우
인터라켄으로 이동하여 그역앞에 있는 커다란 슈퍼마켓에서 쇼세지등
등산속에서 먹을 것을 사고 융프라우요흐(Junfraujoch)역으로 올라가기위하여
산악 열차를 탔다 Interlaken이라하면 호수사이의 중간도시란 뜻으로
brienzer호수와 thuner호수사이의 도시를 말하며 이 두 호수는 인터라켄시를
관통하여 서로 연결 되어 있었다. 인터라켄 동쪽역에서 오르며 중간역인
Lauterbrunnen곳에서 갈아타고 Kleine Scheidegg역에 도착하여 마지막
융프라우요흐에 오르기 위한 산악 열차로 갈아탔다
융프라우요흐 즉
-Top of Europe가는 길은 호기심의 연속이다. 계속 산속 굴속으로 들어간다.
융프라우로 오르는 얼음골
드디어 인간이 차량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꼭대기에 도착하여 얼음
-빙하속으로 들어가니 서늘하고 불안했다. 혹시나 미끄러져 넘어지지않을까
얼음터널 곳곳에 얼음 조각품이 녹지도 않고 그대로있다.
하기야 영하 7도을 유지 하고 있는 곳이니
조그만 출입구를 지나니 바로 눈밭 그리고 눈앞에 다가선 융프라우의 자태가
앞을 막는다 영하10도가량 된다해서 두터운 옷을 두겹으로 끼워 입었는데
그렇게 춥지 않았다
융프라우산을 바라보며
우리는 어제 많은 비를 맞아 혹시나 정상에 올라 구름속에 갇히는 것이
아닌가 했으나 너무너무 운이 좋았는지 구름 한점 없는 융프라우산-그 자체였다
짙푸른 코발트빛 하늘색과 흰눈이 덮인 융프라우-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산
-이름 그대로 우리를 맞이 해주니 천국이 따로없다
이곳이 천국이지 그앞에 펼쳐진 알레치빙하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융프라우산에서 내려 중간역인 클라이네사이덱역앞
4,158m높이 융프라우산 3,454m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열차역과
우체국등이 있는 융프라우요흐역, 그리고 클라이네사이덱역에서
융프라우요흐역까지의 7.2km의 석회암 암반을 뚫은 터널은 인간이 자연을
얼마나 극복 할 수 있는지 웅변해 주고 있다
내려 오면서 클라이네사이덱역에서 바라본 Eiger북벽은 직각으로 깍아내린
절벽은 상상을 초월한다 산악인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던 아이거산의
북쪽벽의 전설을 마음속에 담고 내려왔다
그전에 스핑크스 전망대(3,573m)는 빙하와 Monch산과 융프라우산을
동시에 볼 수 있어서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이 좋은 경치를 좀더
음미하지 못하고 켐코더에 담기위하여 뛰어 다니는
나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
제13일(7/17) : 피렌체,밀라노에서 꽃핀 르네상스와 로마제국
스위스를 마치고
이제 이탈리아다 이탈리아하면 우선 로마제국을 떠오르게 된다
차창밖의 멎진 알프스산맥의 경치를 보면서 그래도 로마를 인식하기 위하여
영화 한편을 감상했다 글래디에이터-검투사 로마 5현제중 마지막황제인
마루크스 아우레리우스시대의 이야기
꾸며낸 영화이지만 코모두스는 실제인물이었다 주인공 검투사는 끝까지
가족에 대한 원수도 갚고 폭군도 제거하고 로마를 공화정으로 회기시킬려 했으나
그러나 로마는 거대한 왕국으로 변했다.
우리는 이탈리아의 첫 도시 코모에 도착하여 코모호수를 바라보고
산꼭대기의 산성을 바라보며 시간이 있었으면 후니쿨라를 타고 올라가
산성꼭대기에서 코모호수를 바라 볼 수 있었을 것인데...
이 마루크스 아우레리우스황제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임금이다
- 마루크스아우레리우스의 명상록-
로마가 기독교를 승인한 후 소위 중세 DARK-AGE 즉 암흑시대 다시말해서
교황시대에 많은 로마시대 유물이 파괴 되었지만 이 황제의 동상은
그대로 남아 있어 더욱 유명해졌다
로마- 기원전753년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팔라티노 언덕에서
로마를 세웠다는 전설과 기원전 509년부터 공화정이 성립 되었고
기원전146년에는 포에니전쟁으로 카르타고를 병합하고
60년 카이사르 27년 옥타비아누스의 아우구스투스를 수여받고
로마제국이 성립되었다 그후 200년간 5현제시대까지를 PAX ROMANA라고 하는
로마의 의한 세계평화를 이룩했다
참고로 PAX MONGOLICA, PAX BRITANICA, PAX AMERICANA를 말하고 싶다.
313년 밀라노칙령의 의해 기독교가 국교가되고 교황청의 기초가 이루어졌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이후 로마가 동서로 분열되고 서로마는476년 게르만 용병대장
오토아케르에게 멸망하고 동로마는 계속 유지되어 1453년 터키에 멸망하는 역사를
읽을수 있었다
395년 동서로 분열된 로마가 476년 서로마가 멸망한 후 분열된 이타리아를
사르디니아왕 비또리오 에마누엘레2세때 열렬한 애국자 가리발디장군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으니 1870년이었다 실로 1,400년만이며 그동안 밀라노왕국,
베네치아공국, 피렌체공국, 나폴리왕국, 로마 교황청등 크게 5개국으로
도시국가 형태의 국가였다 그래서 지금도 남 북의 갈등이 아주 심하다
북쪽은 공업도시와 상업으로 부를 축적했지만
남쪽은 농업이 주로 되어있어 가난했다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경제수도라고 할 수 있는 밀라노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세계 패션의 중심지 피렌체에서 일어난 르네상스가
이 밀라노에서 꽃피었다고 할 수 있는 곳
두오모(DOME)대성당과 그광장 광장옆에 있는 리나쎈떼 백화점
-여기서 상의 코트를 샀다,
스칼라좌 오페라극장앞 스포르째스꼬 성을 관람하고
뒷성벽의 담장이덩굴이 인상 깊고
우리 일행 세식구는 더워서 아이스 크림을 사먹었다
La Scala를 지나 몬테 나폴레오네거리와
보행자 천국인 에마누엘레2세 거리에는 세계적인 브랜드-구찌, 프라다,
페라가모, 베네통, 스테파넬등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는 다 있었다
제14일(7/18) : 금으로 만든 싼마르코 성당과 세사람의 베네치아 전설
베네치아로 가는길 롬바르디아 평야를 지나 유명한 포강을 나란히 하면서
포도밭이 수없이 늘어진 이탈리아에서 가장 기름진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나폴레옹은
알프스를 넘기 위하여 대포와 물자를 끌고 올라 가는 병사들을 향하여
"고개를 넘으면 저 기름진 롬바르디아의 평야가 너희들을 기다린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베로나와 파도나라는 도시를 옆으로 비켜가면서 바다의 도시이야기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시오노나나미가 쓴책중 로마인 이야기와 같이 베스트셀라가 된 책-
버스는 시내를 지나 한참 달리니 길고도 긴 다리를 바다위로 지나간다
이다리는 이타리아의 독재자 무쏘리니가 세운 다리란다.
어제 머물던 밀라노역앞 호텔에서 바라본 거대한 밀라노역도
이 독재자가 세운 것이란다.
-로마의 찬란한 역사를 재건하기 위한 독재자의 몸부림인가
검은셔츠단을 이끌고 로마로 로마로 진군하여 집권한 파시스트의 창시자
그러나 히틀러와 손잡고 고대의 로마영웅이 되려 했으나 처참한 최후를
맞았으니 욕심은 금물이라 사람은 사는대로 사는 것이다.
베네치아로 가는 배 위에서
베네치아-Venezia는 관광버스라도 도심지 입장료를 내야한다 그렇니까
도시로 들어 오려면 통과세를 내야했다 약100유로(120,000원)를 지불하고
선착장에 도착했다 멀리 산타 루치아 기차역을 쳐다보면서 1인당 60유로 씩
거두어 배삯과 곤도라타는 값을 합쳐서 지불하고 배에 오르다
120여개의 섬과 400여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베네치아를 생각하며 배위에서
가곡 오 솔레 미오를 불렀다 마침 켐코더촬영시 같이 녹음하니까
노래를 갑자기 불러서 음정은 잘 맞지 않았지만 기분이 상쾌하다

산마르코 광장과 두깔레 궁전앞 수로의 다리위에서
싼 마르꼬성당(Basilica San Marco) 겉에는 전부 금으로 만든곳
하여튼 금을 좋아한다
828년 알렉산드리아에서 모셔온 성 마르꼬의 유해를 안치하고
15세기까지 세운 성당이다 성당안에는 특이하게 십자군 전쟁시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청동기마상이 4개가 있다
성당안에 있는 것이 진짜이고 성당정면 테라스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다
Piazza San Marco 광장은 비둘기 천국이다 높다란 망루는
Campanile라하여 일설에 의하면 갈리레오가 천문 관측했다고 하며
적의 침입을 사전에 막기위한 망루라고도 한다
두깔레궁전은 총독이 있던 곳으로 재판소와 탄식의 다리건너
감옥소도 있는것이다
탄식의 다리
탄식의다리 창가로 가족과 영원히 이별하고 다음 창문에서는
푸른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했다는 곳
감옥소는 아주 깨끗하고 돌로 잘 지어져 있었다
이다리를 건너서 아무도 나올수 없는데 오로지 한 사람만이
많은 여성의 도움으로 탈출하였으니 바로 유명한 지오반니 카사노바였다
리알토다리
리알토다리(Ponte di Rialto)는 가장 좁은 해협에 돌로 놓은 아름다운다리다
이 석조다리 설계공모에 미켈란젤로도 응모했으나 떨어지고 Antonio de Ponte가
설계 한것이 선택되어 1592년에 완공했으며 이 다리를 세우기 위하여
1만개 이상의 말뚝을 박았단다
처음 이 베네치아는 슬픈 역사를 지녔다 터키 소아시아지역의 훈족추장인
Atilla라는 왕이 이탈리아 북부를 휩쓸고 지나가매 베네치아인들은 지금의 섬에
도착하여 바닷가에 나무 말뚝을 박고 도시를 만들어 아틸라왕의 군대침략을
피했다 한다
곤도라를 타고 수로를 저어가니 옛 베네치아인들의 고생 한 것들이 보이는 것 같다
곤도라위에서 불러주는 칸초네는 아주 듣기 좋았다
"칸타레 오 오 오호오호~"전부 가수같다
목소리가 정말 좋다 전에 음악 선생님이 이타리아에 갔다 온 얘기가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 성악공부 하는 사람이 보통 이타리아인들이 부르는 것과 같다는 것
이 베네치아에는 3명의 명물이 있었으니-동방견문록의 Marco Polo, 탄식의다리를
건너 영원히 격리될 감옥에서 탈출하여 뭇 여성을 울리게 한 Casanova,
우리나라에서 가장 애송하는 Four Season을 작곡한 Vivaldi 이분들이다
멎진 베네치아를 뒤로 하고 호텔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진다
글:權 편집:찬란한 빛姬金
印英
이어서 후편이 다음게시물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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