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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jro h@naver.com
World Korea(Pvt.) Ltd.(스리랑카 법인) 대표이사 역임
오랜 해외 생활 후 귀국하여 글쓰기 시작
현재 (주)투딘 이사 재직
한국 근대사와 기독교 신앙의 자취를 기록 중
[수상 소감]
노승준
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 외국에서 사업하며 글과는 다소 거리를 둔 삶을 살아왔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싶다는 열망이 늘 있었지만, 막상 펜을 잡을 만큼의 용기나 계기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귀국 후 우연히 교회의 소식지에 성지순례 탐방기를 쓰게 되었고, 그 글을 수년간 이어 오면서 제 마음도 서서히 깨어났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신앙의 흔적들, 복음이 머물던 자리에 깃든 생의 이야기들이 제 안에서 조용한 울림이 되어 단어와 문장으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동창에게서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매우 기뻤지만, 그가 제 글을 읽고 건넨 한마디는 제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너도 쓸 수 있어. 기록해야 할 이야기가 있잖아.”
그 말에 등을 떠밀리듯 그가 가르치는 수필 교실에 등록하여 학생으로 글쓰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배우며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문장은 솜씨보다 먼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제가 쓰고 싶은 글은 기독교 신앙이 이 땅에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글이었습니다. 복음이 한국 근대사의 시간 속에서 어떤 빛으로 남았는지, 이름 없이 섬겼던 선교사들과 신앙인들의 땀과 눈물 속에서 어떤 변화의 장면들이 만들어졌는지를 기록하고 싶다는 작은 갈망이 제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격월간지 에세이스트’의 신인상 당선은 제게 큰 용기이자 앞으로의 길을 향한 부드러운 초대라고 믿습니다. 작가의 길을 열어 준 친구에게, 늘 격려해 주신 고등학교 은사님께, 부족한 글을 기꺼이 품어 준 아내와 가족에게, 그리고 제 글이 시작되게 한 신앙의 여정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작은 온기를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잊혀 가는 이야기를 오래 붙잡는 글을 꾸준히 써 나가고 싶습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이제 ‘선물’이자 ‘사명’입니다. 기록함으로 누군가의 믿음과 기억을 조용히 지켜 내는 글을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상작품]
미국여행에서 얻은 교훈
이번 여행은 바쁜 일상에 건네진 조용한 위로였다. 아내의 오랜 친구가 보내온 한 장의 초청장이 예기치 않은 시점에 우리를 낯선 도시로 이끌었다. 친구는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지금은 남편과 함께 병원과 교회를 오가며 묵묵히 목회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그녀는 여전히 따뜻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우리 부부를 정성껏 맞이하고, 여행 일정을 세심하게 준비해 주었다. 멕시코 코즈멜로 향하는 유람선 여행까지, 그녀의 섬세한 배려 속에서 우리는 오랜 우정의 깊이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휴스턴에서 며칠을 보내고, 우리는 마침내 크루즈을 타고 코즈멜섬으로 향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에서 나는 오랜만에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사업과 생존의 무대에서 숨 가쁘게 달려온 날들. 그 치열했던 시간을 잠시 내려놓고, 비로소 나를 뒤돌아볼 여유를 가졌다. 코즈멜은 작고 평화로운 섬이었다. 짙푸른 바다, 눈부신 햇살, 알록달록한 골목길이 낯선 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처음 발을 디딘 순간, 이곳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안식이 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찬란한 풍경의 이면에는 감춰진 역사가 있었다.
섬 중심부, 골목을 돌다 마주한 산 미겔(San Miguel) 성당은 소박하고 조용했다. 하얗게 빛바랜 외벽과 낡은 종탑, 꾸밈없는 제단. 그 안에는 화려함 대신 묵음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장식보다 침묵이, 격식보다 기도가 공간을 채우는 곳. 나는 그 고요한 숨결 속에서 오래된 시간을 마주했다. 그곳에서 들은 '카스타(Casta)' 제도 이야기는 내게 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이 땅에는 혈통과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계층화하고 권리를 나누는 제도가 있었다. 백인과 원주민, 아프리카계 혼혈 정도에 따라 수십 가지 이름이 붙었고, 그 이름은 곧 사회적 지위를 의미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라도 피부색의 밝고 어두움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은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 차별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사회의 격차, 밝은 피부에 기대어 꿈을 꾸는 무의식은 그 제도가 남긴 그림자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성당의 의자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기도가 스며든 공간에서, 사람을 가르고 구별하던 세월의 무게를 떠올리며 우리의 시대가 더 이상 그 그림자를 닮지 않기를, 그 오래된 상처 위에 다른 이름의 사랑이 피어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문득, 스리랑카에서 사업할 때 보았던 차별 사회가 떠올랐다. 코즈멜은 겉보기에 평등해 보였지만, 그곳 역시 출신과 피부색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었다. 코즈멜에서 들은 이야기는 스리랑카에서 보았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 후, 나는 다시 성당 안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 땅의 오래된 상처들이 위로받기를, 그리고 내 안에 남아 있을지 모를 차별의 벽도 조용히 허물어지기를. 그 기도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고백이자,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다짐하는 고요한 약속이 되었다. 그 깨달음은, 19세기 중반 미국이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내전을 겪으며 치러야 했던 피의 대가와도 연결되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향한 역사적 결단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스며든 그 시대는 미국 사회를 뿌리부터 흔들었지만,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되었다. 차별은 국가를 분열시키고 혼란을 야기했지만, 미국은 그 상처를 직시하고 갈등을 통합으로 승화시키며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얻어진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오늘날 미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초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근원이 되었다. 과거의 고통을 딛고 모두가 하나 되는 길을 선택한 미국의 여정은 진정한 위대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오늘날의 미국 사회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딛고, 인종과 계층, 성별을 넘어선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지향하며 발전해왔다. 물론 완전한 평등에는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지만, 차별을 법과 사회 전반에서 철저히 금지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다문화 사회를 이루고 있다. 반면, 내가 경험한 멕시코의 일부 지역 사회에서는 피부색이나 사회적 계층에 따라 여전히 차별의 그림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공동체 내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미국의 현재가 과거의 고통을 반성하며 이루어낸 결과라면, 멕시코 사회는 아직 그 변화를 시작하는 길목에 서 있는 듯했다. 자유와 평등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가치인지를 다시금 절실히 느낄 수 있었고, 그 가치를 지키고 확산시키는 것이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깨달았다.
그 위대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친구 부부와 함께한 교회 예배에서 부른 찬송은 멀리 코주멜에서의 깨달음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는 울림이 되었다. 언어도, 국적도 달랐지만, 함께 부른 찬양 속에서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기적 같은 순간을 느꼈다. 짧은 찬송가 한 곡이 사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영혼과 영혼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여행은 결국 낯선 세상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나 자신을 새롭게 알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사람을 피부색도, 출신도 아닌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 그것이 이번 여행과 그 모든 경험이 내게 남긴 가장 깊은 가르침이었다. 이 깨달음은 앞으로 내 삶을 더욱 따뜻하게, 그리고 더욱 깊이 있게 물들일 것이다.
[심사평]
노승준의 「미국 여행에서 얻은 교훈」
이춘희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
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적 핵심은 “사람을 피부색도, 출신도 아닌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작품은 여행기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윤리적 성찰의 기록이자 신앙과 역사, 개인의 체험을 엮은 사유형 에세이로 감상의 층위가 명확하고 서술자의 태도가 단정하여 독자에게 깊은 신뢰를 준다.
글은 “바쁜 일상에 건네진 조용한 위로”라는 낮은 음계의 사적인 감정에서 출발한다. 초청장, 오랜 친구, 정성 어린 환대라는 도입부는 독자를 안정된 정서로 끌어들인다. 소란스럽지 않고, 의도적으로 감정을 자제하여 이후 사유의 여백을 만든다. 이어서 “짙푸른 바다, 눈부신 햇살, 알록달록한 골목길이 낯선 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코즈멜이라는 관광지의 풍경이 펼쳐지고 아름다운 풍경은 곧 역사의 어두운 무대 뒤편에 숨는다. 찬란한 자연과 ‘카스타 제도’의 잔혹한 계급화가 대비되면서, 여행은 감상이 아닌 윤리적 질문의 장으로 변모한다. 위로에서 성찰로의 서사 이동이 매우 자연스럽다.
산 미겔 성당은 이 글의 핵심 공간이다. 화려한 장식 대신 기도가 흐르는 묵음의 공간. 이 공간은 사유를 촉발하는 내면의 오브제다. 특히 “장식보다 침묵이, 격식보다 기도가 공간을 채우는 곳”이라는 문장은 이 작품의 소박한 문체적 특징과도 잘 어울린다. 이 성당에서 과거의 차별 제도가 소환되고, 화자의 개인적 기억과 세계사의 장면들이 연쇄적으로 연결된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시선이 멈춘다. 글은 단순한 여행 감상문이 아닌 사유의 기록이 된다. 코즈멜의 차별 구조가 스리랑카에서의 경험과 겹치고, 미국 남북전쟁과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까지 확장되는 서술은 개인적 체험을 역사적 맥락으로 끌어올린다. 한편, 미국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승리의 서사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완전한 평등에는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다”, “내 안에 남아 있을지 모를 차별의 벽”을 언급함으로써 차별을 비판하지만 단죄하지 않고 윤리 중심을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돌려놓는다. 자기성찰과 낮은 목소리, 성급하지 않은 태도, 배움을 앞세우는 일관된 겸양의 자세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특징은 신앙이 교리나 설교가 아닌 감응의 언어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성당에서의 기도, 교회 예배에서의 찬송은 특정 종교를 주장하기보다, 인간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을 상징한다. 특히 “짧은 찬송가 한 곡이 사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영혼과 영혼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어주었다”라는 문장은, 이 글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차별을 무너뜨리는 것은 제도 이전에 우리 각자의 시선, 태도, 연대라는 인식이다.
마지막 문단에서 제시되는 “여행은 결국 낯선 세상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나 자신을 새롭게 알아가는 여정”이라는 문장은 자칫 상투로 흐를 수 있었지만 앞선 서사가 충분히 축적되어 있기에, 공허하지 않고 사유의 귀결점으로 기능한다.
이 글은 차분한 문체, 윤리적 문제의식, 개인적 체험의 진정성이 균형을 이루는 성찰 에세이다. 관광지의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와 신앙, 자기 성찰을 엮어내며 여행을 계기로 사유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지나치게 단정한 태도는 감정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삭제하면서 다소 밋밋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약간의 흔들림과 불편함을 허용했더라면 문학적 울림이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누구를 구분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러한 질문들이 뇌리에 맴돈다는 점에서, 이 글은 충분히 제 몫을 다한 작품이다. 귀한 작품에 덧칠한 것 같아 죄스럽다. 노승준 선생님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