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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 동락재 앞뜰의 꽃사과나무 아래 휴식공간
우거 동락재의 자작나무 울타리에 핀 찔레꽃과 넝쿨장미 위로 설치작품 "하늘로 나는 왕솟대"가 늠름하다
남도기행-3: 진도-순천-여수-전주 (2003. 8. 6)
남도기행을 계속하기전 잠깐 새치기를 하여야겠습니다.
어제는 저와 같이 목공예디자인을 공부하는 젊거나 불혹에 갓 입문한 학우들이 저의 동락재를 찾아 왔습니다.
아침 9시경 서울을 출발하여 11시경이면 도착을 할 줄 알았는데, 일행이 다섯명이고 여기저기서 픽업을 하며 오다보니 12시나 되어 도착을 하였습니다.
학생들 4명과 젊고 어여쁘신 금속공예전공인 우리의 여선생님도 동행을 하셨습니다. 손수 미리 준비해 놓은 냉커피를 대접하고,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온 사람이 있어 동락재와 작업실을 대충 돌아보고, 식사를 하기 위해 제 차로 갈아타고(제 차는 7인승 승합 짚차이므로) 내린천 원대리라는 곳으로 운전대를 향했습니다.
실은 가까운 5분 거리인 동면소재 수타사 입구 삼거리에도 두부전골을 아주 맛있게 잘 하는 데가 있고, 홍천읍 입구 하오안리에는 유명한 홍천 양짓말 숯불화로구이 집들이 있지만, 내린천까지의 비교적 감탄할만한 풍경을 보여주기 위하여 1시간정도의 긴 거리이지만 일부러 그 쪽으로 향했습니다.
내린천은 그 전에는 이맘때 쯤이면 차량들이 아주 많이 붐빌 때인데, 날씨 탓인지, 불경기 탓인지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고, 래프팅하는 젊은이들도 별로 눈에 띄질 않았습니다.
제가 안내한 곳은 원대리막국수라는 상호의 집이었는데, 제가 한 10여년전에 내린천을 경유하여 필례약수를 거쳐 점봉산 줄기를 따라 가다보면 한계령에서 내려오는 길과 마주치는 조용하고 경치가 아주 빼어난 코스로 여행을 하며, 우연히 발견한 아주 토속적인 순메밀로 만든 막국수와 돼지고기 수육이 청자, 백자처럼 매끈하고 세련된 맛은 아니지만 우직한 우리 질그릇의 느낌처럼 투박하면서 깊은 강원도 산골의 내음을 느낄수 있는 그런 맛을 주는 곳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매스컴을 타기 시작하여 제법 사람들로 붐비고, 맛도 약간은 변질되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새로운 집을 발굴해야 되지않나? 생각이 되기도 하는 그런 산골의 음식점입니다.
어쨋던 일행을 그곳으로 안내하여 그 집의 메뉴를 골고루 먹어보자고, 막국수, 감자전, 돼지고기수육, 도토리묵을 시켰더니, 시골두부의 전은 서비스로 의례히 나오더군요.
일행들은 저에게 인사치례로 하는 말인 줄은 모르겠으나, 맛이 있어서 잘 먹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를 하니, 그런대로 점심대접은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이집은 비교적 값도 싸고, 양도 많고, 맛도 있는 3박자를 갖춘 집이라 할 수 있는 곳이지요.
동동주라 하는 농주도 맛이 달짝지근하면서 먹을만 하였습니다. 일행의 표현인 즉슨 목에서 걸림이 없이 아주 매끄럽고 부드럽게 넘어가며 맛이 약간은 달은 듯해 많이 마시면 곧장 갈 것 같다고 하더군요.
아마 강원도에서 많이 나는 곡류나 감자로 만든 술 같았고, 운전만 아니라면 저 역시 아주 멍석을 깔고 판을 벌리고 싶었지만, 딱 한 모금만 입안에 넘기고, 아주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바로 앞의 지금은 폐교된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서 잠시 커피를 한 잔씩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목공예를 배우고, 또 미술 및 공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기에 이런 폐교를 뜻이 맞는 몇 몇 사람들이 공동작업장으로 활용하는 사례 및 방법에 대해 자연스런 의견교환이 있었고, 한 바퀴 주변을 돌아보고, 다시 동락재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습니다.
기왕이면 오던 길보다는 다른 길로 안내를 하기위해 원대리에서 남전약수가 있는 44번 국도 쪽으로 가로지르기 위해 아직도 포장이 덜 된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길 또한 아직은 차들이 많이 다닌 흔적이 없는, 알고 있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통행하는 곳으로 계곡과 沼가 설악산에 버금갈 정도의 경치와 좋은 물을 지니고 있는 비경의 쉼터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좋아하거나, 산간오지를 즐겨 여행하는 사람들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내가 갔던 아름다운 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경치를 감상하면서 그 길을 벗어나 44번 국도와 만나는 다리를 보니,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멈춰 서있었습니다.
이 화요일의 이 시간에도 피서차량들로 많이 밀린다면 홍천 화촌면의 외곽4차선 도로까지는 밀려서 한 두 시간은 조이 걸릴 것이 뻔하여, 다시 차를 돌려 오던 길로 되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가는 길에 몇 년 전 제가 강원도에 안주할 땅을 보러 다니면서 흥정을 했던(결국은 땅값을 너무 비싸게 달라고 해서 포기를 했던) 넓은 국유림을 바로 뒤에 두고 배산임수의 아늑한, 그 땅의 앞쪽의 깨끗한 계곡수가 흐르는 곳에 차를 멈추고, 발이나 담그고 가자고 제안을 하여 주차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계곡의 시원한 물의 감촉을 잠시나마 즐길 수 있었습니다.
내린천의 물이 근래 들어와서 많이 오염되고 맑지가 않았었는데, 피서객도 많지 않고 그동안 비가 자주와서 그런지 물은 비교적 옛날 그 맑은 물로, 차를 달리면서도 바닥이 훤히보일 정도로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오는 길에, 약간의 비가 뿌리기 시작하더군요.
동락재에 돌아와서 앞마당의 파라솔을 펼친 의자에 모여 앉아, 길지 않은 남은 시간을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저의 원래 계획은 저의 동락재를 방문한 모든 손님들의 흔적을 육필로 남기기 위해 방명록을 만들어 방문기록을 만들어 보관하는 일이었는데, 한다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게으름 때문에 못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동락재만의 독특한 방명록을 만든다 하면서 계획만 그럴듯하게 잡고, 손조차 대지 않고 있습니다. 훗날 좋은 추억거리가 될 터인데.......
여름날 저녁의 동락재 왼켠으로 보이는 저수지의 둑 저 넘어로 불그스레 지는 석양의 노을이 山谷의 슬퍼지는 외로움으로 향해 갈 때의 그 풍경도 보기 좋은데, 그 모습을 날씨 때문에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을 느끼며, 하지만 높지는 않지만 첩첩 산에 걸쳐진 운무의 운치는 느낄 수가 있었지만.....,
더 많이 차가 밀리기 전에 서울로 올라가는 길을 재촉케 했습니다.
이 산촌에서의 외로움 때문에,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단 하루라도 묵으면서, 밤의 이야기와 별 빛을 바라보며 지난날의 우리네 살아가는 사람 사는 이야기, 자연 사랑하는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는데, 일정이 바쁜 손님들의 마음을 잡을 수는 있어도, 시간은 잡지 못하는 무기력만을 탓했습니다.
이렇게 손님들이 왔다가 훌쩍 떠나고 나면 휑하니 빈 마당의 공간이 너무나 크게, 허전하게 느껴집니다.
누구든 여기를 왔다가 가고 나면 항상 이런 시린 마음이 머리와 가슴속에서 한참을 회오리져 돌게 합니다. 이것이 산촌의 고적한 외로움과 사람 내음에 대한 그리움이겠지요.
실은 맨손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단 말이다
이곳에선 외롭긴
누구나 매한가지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외로움이란
- 이루 말할 수 없다
헤세의 말을 빌면
인간은
깊은 안개 속에서
서로의 Sein
-서로를 모르는 채
그저 서로 Sein하고 있는 것이라 하지만
생존은 너무나 허허한 자리
실로 이상한 건
살고 있다- 하는 마음이다
무욕해질수록 가득 차 가는 마음
바람에 집을 둔 마음
입김처럼 순한 이 외로움
생명이여
따나는 것이여
이곳에선 가진 자나 없는 자나 매한가지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 마음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조병화님의 <밤의 이야기 -제8장->의 이야기 입니다.
오늘 이곳을 방문한 급우 중에 40대 초반의 예사롭지 않은 생활의 족적을 남기며, 또 앞으로도 그 길을 버리지는 못할 듯한, 제가 그의 사람 내음을 좋아하는 젊은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이러한 혼자서만 시리도록 겪는 산촌의 외로움과 고적함을 멀리하고 싶어서, 그리고 서로의 추구하는 예술과 공예분야가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일치도 하는, 그런 젊은 벗과 이 동락재에서 공동의 작업공간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서로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며 공존할 수 있는, 또한 몇 몇 사람이 목공예촌을 형성하여 자연과 더불어, 그 자연의 큰 품 안에서 고적함과 외로움과 예사스러움을 극복하고 예술혼과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키워나가는 그러한 계획에 대하여 제안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대 전제가 서로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아름답고 추진력 있게 실천을 한다면, 전원생활과 나만의 예술세계의 구축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비록 한촌이기는 하지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인 수익활동도 할 수 있는, 좋아하는 작업을 하면서 생활도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산촌의 전원생활이 되리라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 그러한 계획에 대해 그 친구에게 구체적인 제의를 하며 그의 참여시기를 타진하고 싶었는데..... 그런 동료들이 같이 할 수 있다면 아주 바람직하고 힘이 솟는 일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이 사람 혼자서 이루어나갈 것을 다시 또 한 번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는 마음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다른 곳에서 헤매인 것 같습니다.
진도의 사천저수지에서의 조황은 영 신통치가 않았습니다. 겨우 7치정도 되는 토종붕어 1수에 그쳤습니다.
모기가 어찌나 극성을 부리는지 바르는 모기약, 뿌리는 모기약 2가지를 다 썼습니다만 옷을 뚫고 쏘는 모기의 침에 손, 발, 다리 등 모든 몸이 퉁퉁 부르텄습니다.
이미 이곳에서 하루 전부터 밤낚시를 한 남도의 현지 釣士는 낚싯대를 부챗살처럼 6대나 펴고 통새우를 미끼로 써서 20여수를 했다는데, 금년 봄부터 자갈채취업자가 준설작업 및 자갈 채취작업을 하여 붕어의 서식처가 망가트려져 조황이 시원치 않다고 합니다.
진도까지 와서 낚싯대를 담근 것은 꼭 고기를 많이 잡자는 것 보다, 수 십 년 별러왔던, 진도에서의 민물낚시를 기어코 해보았다는데 만족을 해야 했습니다.
밤 11시경 어신도 없고 해서, 다시 삼겹살로 소주파티를 하면서, 그 현지인도 함께 술 한 잔 하자고 불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남도의 가볼만한 문화유적과 인물에 대한 현지민들의 자부심을 그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터였습니다만 남도의 자랑이 대단했습니다.
그간 남도의 민초들은 군사정권시절부터 핍박을 받아 왔다며, 지독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조사의 나이는 40대 중반처럼 보였습니다만, 지금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불만 역시 대단했습니다.
"김대중 정권에 이어 이제는 경상도에서 정권을 잡아보라는 양보의 의미에서 남도 사람들이 전폭 지지해 주었는데,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남도나 경상도 사람이 아닌 우리로서는 그러한 심정적 피해의식에는 이해가 안가는 바 아니지만, 거의 백 프로 가까이, 전라도 사람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아니면 노무현 후보에게 몰표가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아무리 이해를 하려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될 것이고, 대통령이란 무소불위의 권력자를 전라도, 경상도가 나누어 하자는 의도 역시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뽑아 주었으니, 그 댓가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선량한 국민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려놓는 한심한 작태가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살신성인 까지는 못 하더라도, 옳게 국정수행을 하는 사람을 뽑아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 국민 스스로를 위해서 말입니다.
내편, 네편,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발상자체가 한심한, 일개 조그만 회사의 중간관리자 만큼의 자질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판단은 누가 무어라 해도 부인 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범국민적 통합을 이루고, 그 일치된 힘으로 국가의 안위와 경제는 물론이고 각 분야에서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전력매진해도 어려운 지금의 현실인데, 너무도 황당하고, 도대체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할지 국민들이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지금의 정권실세? 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암담할 뿐입니다.
한 철도청 직원이 살신성인하여 어린아이의 목숨을 구했는데, 그 아이는 어려서 그렇다치고 그 부모되는 아비, 어미는 감사의 말은커녕 잠적하듯 숨어버렸다니, 이런 세상을 어찌해야 할지 너무도 슬프고 분노가 들끓어 오르는, 정말로 막가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속상한 이야기는 그만 두렵니다.
아무튼, 모기와의 싸움에서 두 손을 들고, 아침 7시경 진도를 빠져나와 순천을 거쳐 여수의 오동도와 돌산도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 장흥에서인가? 읍으로 들어가기 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음식 맛이 좋은 식당을 소개해 달라하니 해태식당이라는 곳이 값도 싸고 맛이 있다하여 시내를 두 바퀴 헤매다가 그 집을 찾았습니다.
백반정식이 1인분에 7천 원씩이었는데, 제법 먹을 만 하였습니다.
남도의 음식이 싸고도 맛있는 곳도 많지만, 특히 자동차 연료인 경유 값이 쌌습니다. 6백4십 원 대에서 6백7십 원 대로 서울보다는 100원 이상이 훨씬 싸더군요.
점심을 먹고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순천에서 여수로 가는 길은 막히지 않았는데 반대편의 여수에서 순천으로 가는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여수에서 우선 관광을 먼저 끝내고 일박을 하던지, 하동을 거쳐 경상도 쪽으로 해서 동해안 해안을 따라 가기로 했습니다.
여수에서 우선 돌산도로 먼저 가서 구경을 하고 나오는 길에 오동도 관광을 하기로 했습니다.
돌산도는 많이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역시 갓김치 외에는 볼거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돌산대교라 하지만 남해안 쪽의 대교는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인 그게 그것이어서 오동도 주차장에 차를 넣고 걸어서 방파제를 따라 들어갔다가 나오는 단순한 구경 이었습니다.
여수에서는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고 의견의 일치가 되어 구례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구례 역시 잠을 자기는 이른 시간이어서 하동으로 향했습니다.
하동 쪽으로 가니 벌써 밤이 되었고, 어디에서 저녁을 먹을까 하다가, 재첩국 생각이 나서, 화개장터 쪽으로 가려다가 방향을 하동으로 계속 진행을 했습니다.
늦은 시간이어서 저녁 먹을 곳이 있을까 생각을 하고 또 시내를 한 바퀴 돌아 겨우 찾아 재첩국 정식으로 요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낚시친구 왈 너무 맛이 없다는 얘기를 하며 경상도 쪽으로 가지말자 해서 “그러면 남원이나 전주 쪽으로 가는 게 어떠냐?” 했더니 “전주로 가자”고 해서 도로 거슬러 돌아와 남원을 거쳐 전주에서 잠자리를 찾았습니다.
내일은 전주의 콩나물 해장국이나 비빔밥을 먹기로 했는데, 아침시간이라 무엇을 먹게 될지는 가늠할 바가 없었지요.
12시가 다 된 시간, 어디가 어딘지를 분간할 수가 없어, 덕진동 근처의 여관인지 모텔인지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부근의 수퍼에서 시원한 맥주와 안주를 사들고 숙소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로 피로를 풀고 아침 8시까지 단잠에 빠졌습니다.
이제는 아침을 무얼 어디서 먹느냐? 는 선택을 해야 했는데, 주차할 곳도, 어디로 갈 곳인가도 마땅치 않아, 조금 그럴 듯한 콩나물해장국집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갔지요.
옛날의 비빔밥집이나 해장국집은 거리가 너무 달라져서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결국, 그 맛이 그 맛이려니 하고, 특별히 아는 집을 모르는 상황에서 끼니를 때우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경상도 해안일주를 포기하고 진안의 마이산 탑사를 향하여 길을 재촉 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고 지루해져 다음으로 미루어야겠군요.
진안 마이산 탑사, 금산, 대전을 경유하여 서울로 돌아와 여행을 마친 이야기로 계속하겠습니다.
지금 동락재의 밖에는 별안간 비, 바람이 세차게 불다가 잠시 소강상태가 된 것 같습니다.
이런 비가 내리면, 또 수해가 날까봐 걱정입니다. 강원도의 길은 특히 폭우로 인해 도로가 주저앉아 유실 또는 절개되거나 낙석의 위험이 아주 큰 곳이므로 혹여 강원도나 산간 쪽으로 여행을 하시는 우리 카페의 가족들께서는 특별히 주의 하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좋은 여름, 좋은 휴가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