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파리
보비(bovie@naver.com)
“한 달밖에 못산다는데, 과장님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마른 체격에 배만 불룩 튀어나와 많이 힘들어 보이는 이 노인의 하소연은 애절했다. 칠십이 넘은 나이였지만, 지금도 그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초리는 잊을 수 없다.
얘길 들어보니 이 환자분은 나를 찾아오기 한 달 전에 개인 의원에서 중한 병이 있으니 큰 병원을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부랴부랴 국내의 한 대형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조직 검사상 복막전이암은 진단되었으나, 원발 병소는 찾지 못해서 ‘원인 불명의 복막전이암’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았고 치료를 해도 한두 달밖에 살지 못할 정도로 위중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유일한 치료는 항암치료밖에 없다며 그 치료를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이 환자의 두 아들이 인터넷을 뒤져서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고민한 끝에,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복막전이를 전문으로 치료한다는 나를 찾아서 오셨던 것이었다.
며칠 후 라이펙이라는 시술을 하기 위해 복강경 수술을 했다. 뱃속을 들여다보니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날 빼낸 복수가 6500mL나 되었고 여기저기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암 덩어리가 포도알처럼 매달려 있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환자의 모습이 내 뇌리를 스쳐 갔지만, 나조차도 수백 개의 혹을 보면서 한숨만 내쉬어야 했다. 조직검사를 위해 몇 개의 혹만 떼어내고 복강내 항암치료를 시행하고 수술을 잘 마쳤다.
“선생님, 어떻게 되었나요?”
막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의 첫마디 질문에 소상히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치료해서 좋아진 분들이 많이 있으니 염려하지 마시고,
지금은 수술 후 회복에 신경 써주세요.”
이렇게 간단히 설명해 드리고 아들들을 따로 불러 수술 중에 찍어놓은 사진을 보여주며 상황이 절망적임을 설명했다.
다른 때와는 다르게 며칠 늦게 최종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그 환자의 진단은 복막 악성 중피종이라고 했다. 다시 한 번 여쭤보니 실내장식 기술자로 수십 년을 일해왔고 물론 석면에도 노출이 많이 되었다고 했다. 악성 중피종은 평균 생존 기간이 1년 내외인 예후가 극히 안 좋은 병중의 하나이다. 진단명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환자는 그 큰 병원에서 오진해놓고 마치 자신을 물건 다루듯이 다룬 것에 대해 분노했다.
“중피종은 워낙 희귀한 병이라 진단이 쉽지 않아요.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시고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치료해봅시다.”
중피종을 치료해서 좋은 치료 효과를 보았던 몇몇 사례들을 설명하며 환자분을 격려해드렸다. 환자분은 항암치료는 절대로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분명한 의사표현을 했기 때문에 복강내 치료만 하기로 하고, 퇴원하시고 한 달 후에 다시 뵙기로 했다.
한 달 후에 외래에 다시 나타나신 환자분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아지셨다.
“선생님, 그동안 배가 불러와 잘 먹지도 못하고 통증 때문에 힘들었는데 선생님이 해주신 시술을 받고 복수도 덜 차고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요!”
참 반가운 소식이었다. 두 번째 수술로 뱃속을 들여다보니 과연 복수도 현격하게 줄어들고 혹들도 크기가 많이 줄어 있었다. 두 번째 수술은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더 투자해서 절제가 가능한 혹들을 많이 떼어 냈다. 밥공기로 세 그릇이나 될 만큼 많은 혹을 떼어내고 나서 복강내 치료를 시행했다. 한 달 간격으로 이런 시술을 8번까지 하고 나서는 뱃속의 종양이 거의 다 없어지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었다. 나에 대한 환자분의 신뢰는 점점 커져만 갔다.
수술을 받기 위해 내원할 때마다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나를 대해주는 그분은 나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한 달 밖에 못살 것이라는 절망적인 선고를 받았는데 이렇게까지 좋아졌으니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몇 차례 더 치료하자고 제의를 했지만, 그 환자는 좋은 것도 잘 챙겨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할 테니 그만 쉬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그러기로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검사는 꼭 받으시라고 말씀드렸다.
나를 만난 지 만 1년이 되는 날 내 방 창가에서 자라고 있던 화초 중에 ‘카랑코에 피나타’라는 식물의 이파리 두 장을 따서 환자분께 드렸다. “이 이파리는 ‘기적의 이파리’라고 부르는 거예요. 접시에 물을 담아 띄워놓으면 이파리 가장자리에서 싹이 나기 시작할 거예요. 그냥 떨어져서 시들어져 버릴 운명의 잎사귀지만, 여기서 싹이 돋고 커다란 식물로 자라게 돼요. 이것을 보면서 환자분도 희망을 품으시길 바래요.”
나도 3년 전에 우연히 구하게 된 이 이파리 하나를 번식시켜, 수십 촉으로 불어난 카랑코에 피나타를 큰 화분에 키우고 있었는데 그것들을 보여드리면서 설명해 드렸다.
환자분은 오실 때마다 그 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꺼져 가는 촛불 같던 제 인생이 이제는 다시 회생해서 싹을 틔우는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그 기적의 이파리에서 싹이 난 것처럼요.”
오실 때마다 감사의 인사를 하시면서 자신이 어떻게 재밌게 지내고 계신지를 나에게 털어놓듯 자랑하곤 하셨다. 그런데, 정기 검사를 위해 찍은 CT 검사에서 치료를 시작한 지 1년 4개월 만에 폐의 흉막에 병이 새로이 발견되었다. 이 사실은 환자분께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흉강으로도 뱃속에 했던 치료를 할 수 있는데 해보자고 권했지만, 가족회의를 거쳐 더 치료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숨이 답답해지고 잘 못 드시는 등의 증상이 심해져서 여러 번이나 입원을 하셔서 증상 치료를 받으셨다. 병을 진단받고 2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 환자분은 호스피스 시설로 가시기를 원하셨다. 시설을 예약하고 전원하시는 날 마지막 회진을 하러 병실을 방문했다.
“그동안 치료받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거기 가셔서도 마지막 날까지 마음이 평안하시고 증상이 잘 조절되기를 빌게요.”
이렇게 말하고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서 병실 문을 나서려는데, 환자분이 나를 불러 세우셨다.
“과장님!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요.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셔야죠.”
앙상해진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눈을 감고 계신 그분의 쪼글쪼글해진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침상에 걸터앉아 잠시 환자분의 가시는 길을 축복해드렸다.
“과장님이 주셨던 기적의 이파리 지금도 잘 크고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떠나가신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수술을 마치고 진료실에 내려와 보니 그분의 둘째 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님은 호스피스 시설로 옮기시고 열하루 만에 평안히 천국에 가셨어요. 아버님께서 선생님께 꼭 감사의 인사를 하라고 하셔서, 별것 아니지만 드리려고 작은 선물을 가져왔어요.”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선물 꾸러미와 창가에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카랑코에 피나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늘 환하게 웃으시던 그분의 얼굴이 내 눈 앞을 스쳐가고, 씩씩했던 음성이 들려오는 듯 했다. 가시는 길까지 감사를 표현해주신 그분의 사랑스런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다.
NOTE:
상기 글은 어느 의사선생님의 블로거에 올려진 글을 옮겨 왔다, 한 편의 휴먼드라마를 보는 듯 글 속에서 그 당시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의술보다 인술을 베풀는 의사 선생님의 고운 마음을 엿볼 수 있기에 가슴이 따듯해지는 사연이다. 그렇다. 환자와 보호자는 최첨단 의술보다 의사의 따듯한 손길이 더 간절하게 기다려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암의 경우에는 현대의학적 표준치료가 한계점이 있기에 온 마음으로 정성과 사랑을 베푸는 의사의 손길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환자이고 설령 더 이상 치료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쉬워하지 않으리라 생각 한다.그러나 일부 의사의 경우에는 환자를 상품대하듯이 취급하거나 성의없이 내 뱉는 어투 속에서 사람들이 왜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되는지를 이해하기도 한다.
그래도 환자가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약자의 입장에서 항의하거나 분노할 수도 없는 입장은 환자와 보호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과연 이 사람이 의사가 맞는가 할 정도로 무심하고 야속한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다, 하고싶은 말이 목까지 올라오지만 참아야만 하는 환자와 보호자의 심정이다, 그러나,못 되고 나쁜 의사도 있지만 이처럼 마음이 따듯한 의사 선생님들이 더 많이 있기에 그나마 작은 위안을 삼아보기도 한다,
나 또한 수 많은 암 환우님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따듯한 위로와 격려의 말 뿐이기에 언제나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환우 여러분, 지금 힘든 투병의 시간이지만 잘 치료받고 관리하여 빨리 병상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의 빠른 쾌유를 늘 기원 하겠습니다/ 의공학 전문가 김동우
피나타의 꽃말은
잊을 수 없는 당신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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