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님 "길위의 신앙 : 하느님의 길-사람의 길" 제30호입니다.
| | | | | | | 2015년 3월 19일(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No.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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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태오 1,16.18-21.24ㄱ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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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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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교회가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3월 한 달을 요셉 성인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한 ‘성 요셉 성월’로 정할 만큼, 성 요셉은 교회의 주춧돌과 같은 분입니다. 우리는 오늘 구세주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의 따뜻한 보금자리였던 성 요셉, 성가정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성 요셉을 기억합니다. 단지 오래 전 위대한 인물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삶을 우리의 삶 안에서 다시 이루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성 요셉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미미할 따름입니다. 요셉 성인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탄생기와 성장기에만 나타날 뿐, 예수님의 공생활 이후에는 일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의 위대한 협조자이며 성모님의 든든한 배필이신 요셉 성인은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신 후에 조용히 사라지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요셉 성인을 애써 기억하고 성인의 삶을 돌아봄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을 쇄신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오늘, 절대적인 남성 우위 시대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남편’이라는 수치스러운 호칭으로 복음서에 기록되었던 보잘것없는 사람 요셉을 기억합니다. 이 기억 속에서 우리는 모두가 큰 사람이라고 외쳐대며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려는 혼돈 가득한 시끄러운 세상 안에서 요셉과 같은 작은이를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들을 짓밟고서라도 높이 오르려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바로 우리 자신이 요셉처럼 자신을 낮추고 모든 이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기를 다짐합니다.
우리는 오늘,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던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마리아를 진정으로 사랑하였기에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쳐서 죽이는 관습을 거슬러 약혼녀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남모르게 파혼함으로써, 마리아를 살리고자 했던 참사랑을 지녔던 요셉을 기억합니다. 이 기억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살길을 찾아 고통에 신음하는 형제와 벗들을 외면하고, 심지어 이들의 고통을 발판삼아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것이 일상사가 되어버린 냉혹한 세상 안에서 요셉과 같은 사랑을 간직한 이를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소유욕과 사랑을 혼동하여, 인간관계 안에서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바로 우리 자신이 요셉처럼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서 스스로 죽음 같은 고통을 감내하는 참사랑을 실천하기를 다짐합니다.
우리는 오늘, 약혼녀 태중의 아기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굳게 믿으며 구원을 향한 희망으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용기 있는 신앙인 요셉을 기억합니다. 이 기억 속에서 우리는 세상 물결에 휩쓸려 자신의 안락을 도모하기보다 세상을 거슬러 주님의 뜻을 일구려는 요셉과 같은 용기 있는 이를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여기거나 거룩하고 고상한 사람으로 보이게끔 하는 화려한 장식물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바로 우리 자신이 요셉처럼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고 추구하는 굳건한 믿음으로 삶을 채우기를 다짐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오늘 교회와 세상은 제 2, 제 3의 요셉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이 오늘의 요셉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의정부교구 송산본당 상지종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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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일 오늘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날입니다. 어린 아이, 아픈 사람, 노인, 연약한 사람 등,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움이란 여러 가지 모양을 띨 수 있습니다.
당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 보세요.
‘오늘 낯선 사람의 얼굴을 보며 웃음지어 보이리라. 만약 누군가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롭게 행동한다면 나는 사랑의 친절함으로 반응하리라. 오늘 나는 작은 선물이라도 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보내 주리라. 다른 사람이 감사하거나 알아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고 도와주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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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에서 매일 보내드리는 이 소식지의 이름이 결정되었습니다. 10여분이 새로운 이름을 보내주셨고 187분께서 투표에 참가해 주셨습니다. 최종 투표 결과는 "사람의 길"이라는 이름에 46표, "길위의 신앙"이라는 이름에 40표가 투표되었습니다.
"사람의 길"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신학적으로 매우 훌륭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영위원회의 토론 결과 몇년 전부터 세인들의 논란의 중심에 서 있게 된 이문열 작가의 '사람의 아들'을 떠올리게 되고 내포되어 있는 좋은 의미가 왜곡되어 전달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투표하신 분들의 표차이도 아주 크지 않은 상황이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의견을 주신 분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고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 최종적인 이름을 "길위의 신앙 : 하느님의 길-사람의 길"로 조금 길게 풀어 쓰기로 했습니다. < 가톨릭행동>이 '거리로 나가라'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처럼 아픔의 현장에서 함께 기도하고 우리의 믿음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으로 삼고 있고, 우리 모두가 '관상적 활동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에 "길위에서 발견하는 신앙"이라는 의미는 매우 적절한 우리의 모토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길이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기에 기꺼이 함께 가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이름을 보내주시고 투표에 참여해 주신 분들을 일일이 거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고마운 마음 간직하고 앞으로도 항상 "길위의 신앙"인으로서 함께 손잡고 걸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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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세월호 광장 미사 | | - 매주 일요일 오후 6시 천막 주일미사 - 매주 월요일 오후 8시 천막 미사 -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남자 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광장미사 -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세월호 십자가의 길, 오후 8시 천막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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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4월 22일(부활 제3주간 수요일) No.6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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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월 진행하는 <가톨릭행동> 월례회원기도모임이 오는 4월 28일(화) 오후 7시30분에 열립니다. 이번 달에는 자본의 탐욕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합니다. 순화동은 용산의 아픔을 그대로 이어간 투쟁의 연장전입니다. 순화동 농성장 앞에서 기도와 이야기 나눔 시간 가지겠습니다.
※ 월례 기도회 관계로 28일 화요일 광화문 천막 미사는 하루 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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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한 6,35-40 (생명의 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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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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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자유는
성당이라는 거룩한 공간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당히 신앙을 고백하고 마음껏 기도할 수 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자유는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당당히 실천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하느님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불의를 저지르는 이에게 당당하게 맞서는 그리스도인을 성당 안에만 가두려한다면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핍박 받고 고통 받는 이의 벗이 되어주려는 그리스도인을 종교를 빙자한 불손한 자라 모독한다면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자유는 억압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억누르려는 탐욕에 물든 불의한 이에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고귀한 신앙의 자유를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 의정부교구 송산본당 상지종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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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세월호 광장 미사 | | - 수요일 오후 7시에 남자 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주관 광장미사 - 월,화,금 오후 8시 평일미사 - 일요일 오후 6시 주일미사 ※ 목요일은 인근 순화동 농성장에서 오후 7시에 미사가 있습니다. ※ 토요일은 매주 촛불문화제가 열립니다. 함께해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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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행동> 활동에 힘이 되어 주십시오. | |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관상적 활동가'로 이 땅에서 복음을 실천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얻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수난과 죽음이 선행되었듯, 시대의 아픔을 나누고 스승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기를 소망하며 일상의 작은 실천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관상적 활동가'란 실천없는 신앙을 버리고 우리의 작은 행동으로 복음을 증거하면서도 스승 예수께서 하셨듯 기도의 삶을 간과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일상의 삶은 늘 버겁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면 조금 은 더 가볍게 힘들고 아픈 세상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 가톨릭행동>은 기존의 조직들, 기존의 모임들과는 달리 사무실도 상근자도 없이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조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함께하는 일을 만들기 위해 힘이 필요합니다. < 가톨릭행동>의 힘이 되어 주십시오. 그 길은 첫째, 함께 모이는 자리, 아픔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 참여해 주시는 것이고, 둘째, 자발적 후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자발적 후원금은 하나은행 771-910007-06605(예금주 : 이은석<가톨릭행동>)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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