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대소! 파안대소!
문학의봄작가회 창립 20년 차인데 내게서 이런 모습을 본 우리 회원은 없을 것이다.
반면 '얼굴이 차갑다', '말 걸기 두렵다' 등의 말들은 한 다리 건너서 많이 들었다.
이는 '역겹다'까지는 아니겠지만 다가가기가 어려운 사람이다로 정리할 수 있다.
인정한다. 가장 차가울 때는 3년을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운동할 때인데 당시 후배들이
'선배님 그때는 너무 무서웠어요'라는 말을 20년이 지나 털어놓은 경우가 꽤 있었다.
핑계는 얼마든지 있다. 수시로 투신하고 분신하며 신군부 타도를 외칠 때 웃을 일이
어디 있었겠는가. 긴장을 풀면 당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삶을 살아오다 보니 일상생활에서도 변하지 않고 이어졌다.
결혼 후 자영업을 할 때 일인데 나만 있을 때는 단골들이 집사람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린다는
말도 있었다. '어서오십시오'라는 인사도 없는 내게서 친절함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문학의봄작가회'를 창립하면서 성격을 누그려 트렸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속이 탔었다.
자주 돌아보지만 환경에 따른 영향이 큰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초에 부모 형제와 이별했고 그때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 있다.
70여 년을 살아오면서 60여 년을 원망으로 살아왔다. 즉, 애정결핍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잘 웃지 않는다고 감정도 없을까? 3년 전 장모님 임종 때는 처남, 처형, 처제보다 더 많이 울었다.
자기 엄마 돌아가신지도 모르고 의식없이 누워 있는 집사람 생각에서였다.
나는 차갑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마음은 너무 여리다.
유튜브를 자주 보는데 감동적인 사연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최근 트로트를 많이 보는데
그 중에서도 풍금이 부르는 이미자의 '모정'을 들으면서도 눈물샘이 터진다. 결론으로 오늘 하고자 했던 말은
1940년 이화자가 불렀던 화류춘몽 花柳春夢 중 2절의 후렴구다. 의미는 다르지만 겉모습이 차갑게 보인다고
마음까지 차가운 것은 아니라는 변명이다. (아래는 '화류춘몽'의 옛 가사와 현대어로 수정한 내용이다.)
화류춘몽 花柳春夢 1940년 이화자
[1절]
꽃다운 이팔소년 울녀도 보앗스며 (꽃다운 이팔소년 울려도 보았으며)
철업는 첫사랑에 울기도 햇드란다 (철 없는 첫사랑에 울기도 했더란다)
연지와 분을 발라 다듬는 얼골 우에 (연지와 분을 발라 다듬는 얼굴 위에)
청춘이 바스러진 낙화 신세 (청춘이 바스러진 낙화 신세)
마음마저 기생이란 일홈이 원수다 (마음마저 기생이란 이름이 원수다)
[2절]
점잔은 사람한테 귀염도 바덧스며 (점잖은 사람한테 귀염도 받았으며)
나 절믄 사람한테 사랑도 햇드란다 (나이 젊은 사람한테 사랑도 했더란다)
밤 느즌 인력거에 취하는 몸을 실어 (밤 늦은 인력거에 취한 몸을 실어)
손수건 적신 적이 멧 번인고 (손수건 적신 적이 몇 번인가)
일홈조차 기생이면 마음도 그러냐 (이름조차 기생이면 마음도 그러하냐)
[3절]
빗나는 금강석을 탐내도 보앗스며 (빛나는 금강석을 탐내도 보았으며)
겁나는 세력압헤 아양도 떨엇단다 (겁나는 세력 앞에 아양도 떨었단다)
호강도 시들하고 사랑도 시들해진 (호강도 시들하고 사랑도 시들해진)
한 떨기 짓발피운 낙화신세 (한 떨기 짓밟힌 낙화 신세)
마음마저 썩는 것이 기생의 도리냐 (마음마저 썩는 것이 기생의 도리냐)
첫댓글 테토남에서 에겐남으로 등극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테토남, 에겐남을 찾아 봤는데 신조어가 너무 자주 생겨 걱정도 돼요
마음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으니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
사실 감추는 게 별로 없어요.
일부 회원들 중에는 나의 95% 이상을 알아요.
마음 뜨겁고 따스하십니다. 그 따스함으로 지금까지 오셨겠지요.
따스함?
사실 첨 듣는 말 같아요.
아직 뵙기 전이지만..마음 따스한 분이시라는 것 느껴져요~~
곧 뵙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따스하게 변하려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네요.
그날 봬요.
그런 마음을 가지시는 것만 봐도 이미 따뜻하십니다.🙈🙏👍👍👍
어쩌면 내가 밀어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거대 괴물이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일이 주기적 나타나니 아파요. 직접 항거하신 분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5.18 한참 지난 후 광주 출신 고모부를 전주서 교편 잡고 있던 저희 집까지 밤에 강력계 형사들이 잡으러 왔으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수고에 오늘 저희들이 숨쉬고 있나 봐요~^^
어쨌든 겉으로는 희비를 잘 드러내지 않아요.
일부러 감추는 건 아닌데 살아온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