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회사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에 내려왔다.
일탈 혹은 도피 아니면 새로운 시작
그것도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인생의 한 일부분이겠지.
3개월의 제주 여정
혹은 더 오래 머물 수도 있을 제주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으려 하고,
많은 것을 얻고 있다.
열 번째 이야기 : 끝이 없는 제주, 내가 만난 초록 제주의 최정상 영주산
제주의 끝은 어디일까?
삼 개월이 넘는 시간 제주에 머물며 느꼈다.
'제주는 끝이 없구나'
어제의 내가 가장 행복한 나인 줄 알았는데, 더 행복한 오늘을 만나는 느낌을
제주에서 계속 경험한다.
영주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표선면 성읍리에 위치한 영주산은 해발 326m, 높이 176m의 높지 않은 기생화산으로 분화구는 남동쪽으로 벌어진 말굽의 모양을 하고 있다. 영주산은 신선이 살았던 산이라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유래는 없다. 영주산의 생김새론 동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다른 방향들은 가파른 경사로 절벽에 가깝다. 따라서 오르는 방향은 동쪽 사면만이 가능하며 정상으로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넓게 펼쳐진 목장을, 왼쪽으로는 성읍마을을, 뒤쪽으론 일출봉을 조망할 수 있다.
서쪽 방향 기슭에는 바닥이 가마솥처럼 패어 있다 하여 '가메소'라고 불리는 연못이 있고, 오름의 남쪽으로는 천마천이 흐르고 주위에는 넓은 목장이 조성돼 있다.
넓은 목초지와 넓게 펼쳐진 목장을 볼 수 있다.
정상에서 보는 영주산의 풍경은 매력을 넘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유일한 등산로인 영주산의 동쪽
제주도민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넌 왜 제주 바다보다 산을 찾는 거야?"
나는 딱히 그에 대한 답을 정해 놓지 않았고 그냥 발이 움직이는 곳은 늘 산이었기에
"난 그냥 산이 좋나 봐! 어렸을 때부터 산이 좋았어"라는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가 자기가 제주에서 정말 좋아하는 산이 있는데 가보라고 권했고, 그 산이 바로 이 영주산이었다.
친구가 권할 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후회 없을 거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산이거든"
정상에서 친구에게 전해지지 않을 혼잣말을 했다.
"맞네.. 네가 왜 이 산을 사랑하는지.. 나도 알겠어"
친구가 영주산을 설명할 때 확신의 찬 표정으로 말했던 이유를
정상에 서니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확신이 들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영주산을 오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완만한 경사 170m 가량만 오르면 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었다.
오히려 산이라는 명칭보단 오름에 가까웠고,
올라가는 길 자체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천천히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올라가기 좋았다.
오르는 내내 텔레토비 동산이 연상되었다.
멋진 풍경과 맑은 하늘이 만나 최고의 동산이 되었다.
완만한 경사의 동산을 지나면 사람들이 말하는 천국의 계단이 나온다.
천국의 계단이 왜 천국의 계단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계단의 수가 많고, 힘들어 천국의 계단이라 불릴 수도
혹은 오르는 내내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름답기에 천국의 계단이라 불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계단만 오른다면 정상이 나온다는 것
정상의 뷰는 천국과 다름없을 것 같다는 것
천국의 계단
정상에서 바라보는 영주산은 또다시 마음을 벅차게 했다.
그곳에서 만난 일몰은 다시 한번 오늘 하루의 끝을 알렸고
오늘 하루가 또 어제의 하루보다 행복했음을 말해주었다.
일몰과 영주산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어떠한 그림과 사진보다 아름다웠다.
열한 번째 이야기 : 푸른 눈의 돼지 신부의 삶, 성 이시돌 목장
제주 여행을 하면 떠오르는 성 이시돌 목장은 필수 여행지로 자리매김했고, 그곳의 테쉬폰은 랜드마크가 되었다.
하지만, 그전에 성 이시돌 목장의 탄생 배경과 테쉬폰의 의미를 알고 가는 것은 어떨까?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
성 이시돌 목장하면 가장 먼저 떠올라야 하는 인물
패트릭 J 맥그린치
한국 이름으로 '임피제'
제주도민은 그를 푸른 눈의 돼지 신부라 불렀다.
맥그린치 신부는 1928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4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로 제주 한림 본당에 부임했고,
그와 제주의 인연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6.25전쟁과 4.3 사건을 거치며 폐허와 가난에 허덕이고 있던 제주도민들의 삶을 본 맥그린치 신부는
제주에 정착해 한평생 도민들을 위해 살겠노라 다짐했다.
이후 1959년 목장에서 생산된 양털을 이용해 옷을 짜는 한림수직을 설립
1961년엔 축산업 교육을 목적으로 성 이시돌 목장을 세웠다.
1962년엔 제주도 최초이자 국내 농촌 지역 1호인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목장 사업으로 생긴 수익금으로 병원, 양로원, 요양원, 유치원, 노인대학 등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했다.
그는 제주도 근대화의 선구자였고, 1975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그는 한 평생 제주도를 위해 헌신한 성직자였다.
패트릭 제임스 맥그리치 신부의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주는 없었을 것이고, 그의 대가 없는 헌신으로 제주도는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 숭고한 믿음 안에서 행한 그의 행동이 제주를 발전시켰다.
성 이시돌 목장
'이시돌'은 중세 에스파냐의 농부로 하느님의 영토인 땅을 가꾸고 농사를 짓는 일을 다하여 후에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정한 농민의 주보성인이 된 인물이다.
성 이시돌 목장은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가 설립한 목장으로 이시돌의 이름을 따서 만든 목장이다.
1969년부터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소, 면양, 종돈 등을 들여와 한때 100만 마리 가까운 면양과 동양 최대의 양돈 목장과 치즈, 우유공장, 수천 마리의 소를 키웠지만 현재는 젖소 한우, 경주마를 사육하고 있다.
성 이시돌 목장에서 만날 수 있는 우유 브랜드 우유부단
경주마를 사육하고 있는 성 이시돌 목장, 국내에서 손꼽히는 씨수말 중 하나인 '엑톤파크'가 있다.
경마를 조금 안다면 '메니피'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년 6월 안타까운 죽음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로 인해 말도 많았다. 죽은 이유가 교배 뒤 심장마비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메니피가 심장질환이 있음에도 타이트한 교배 스케줄로 세상을 떠났다. 결국 한국마사회의 과욕이 부른 죽음이었던 것이다.
이 메니피의 대항마가 바로 '엑톤파크'.
엑톤파크는 늘 메니피의 뒤를 바짝 쫓아왔고, 늘 1위의 자리를 위협한 씨수말이다. 이 씨수말이 성 이시돌 목장의 말이다.
테쉬폰
작고 독특한 모양의 테쉬폰은 영화 '반지의 제왕' 호빗족이 살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국적인 테쉬폰은 타국에 온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건축물로 많은 사람들이 출사를 하러 나가기도 한다.
테쉬폰은 2,000년 전 지어진 건축 양식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근대에 들어와 아일랜드 건촉기술자 제임스 윌러가 이 형식을 이용해 만든 구조형식을 '테쉬폰 시스템'이라 했다.
기동 없는 내부 공간 형식으로 내부가 넓고, 곡선형의 건물 외형으로 태풍과 자연재해를 견디기 쉽게 설계했다.
테쉬폰은 신부 맥그린치가 고향 아일랜드 건축 양식을 가져와 만든 건축물로 현재는 국내에 제주에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테쉬폰은 국내 유일하게 제주에만 10여 동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테쉬폰에서 스냅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행지에도
여러 역사들이 존재하는 제주
제주는 알면 알수록 사랑스럽고
더 알아가고 싶은 섬이다.
성 이시돌 목장 근처엔 나홀로 나무, 새별오름 등 여행할 곳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