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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47년(1962) 대산 김대거가 종법사에 취임하다
종법사 취임식 후 수위단원들과 함께
대산종사는 정산종사 열반 후 발인식을 마치고 “도안을 개척하라”는 유촉을 받들어 계룡산 신도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원기47년(1962) 1월 31일, 〈원불교교헌〉에 따른 종법사 선거에서 대산종사가 신임종법사로 당선됐다. 이에 정광훈이 신도안에 찾아가 당선된 대산종사를 익산총부로 모셔왔다.
총부에는 대산종사보다 나이가 많은 원로들이 많았고, 40대의 젊은 종법사를 어떻게 예우해야 할지 어색해했다.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에게 오랫동안 절대적인 신성을 바쳐온 대중들에게 젊은 종법사 등장은 생소한 일이었다.
이때 종법사보다 18세 연장자인 이완철이 먼저 나서서 대중들 앞에서 “대산종사님 같은 어른이 없었다면 법통을 누가 이어갈 것인가? 이는 우리 교단의 큰 복이다. 새 종법사님을 잘 받들어 소태산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의 뜻을 더욱 잘 실천하자”고 말했다. 이어 오체투지로 절을 올리자, 대중들도 함께 절을 올리며 새 종법사를 받들기로 다짐했다.
그해 2월 23일, 대산 김대거 종법사 취임식이 익산총부 대각전에서 거행됐다. 대산종사는 취임법문을 통해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의 유업을 계승하자”고 선언하며 새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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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jhoon@w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