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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님께 감사하는 이유
시 136: 1-9절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은 인생을 잃어버린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한말이냐구요? 제가 한 말입니다. 지난2주동안 감사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얻은 결론입니다.
인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감사를 회복하고 풍성히 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감사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열명의 나병환자가 다 고침을 받았지만 오직 한 사람만 감사한 것은 그 치유를 은혜로 안 사람이 한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삶의 목적을 빨리 바꿔야 감사의 열매가 맺습니다. 언제까지 ‘더 잘먹고, 잘살기 위해, 더 누리고 쓰기 위해 살아가시렵니까?’ 그런 삶에는 절대로 감사의 열매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렇게 살면 다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래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당부드립니다. 은혜를 받으려 애쓰십시오,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는 삶으로 전환하십시오. 그래야 감사의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시편136편은 감사의 시입니다. 26절까지 있는데 모든 절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모든 절에 감사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역경을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서울 서대문교회 장봉생 목사님이 감기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이분이 심한 독감을 앓았는데 콧물에 발열 그리고 기침이 그치지 않아 가슴에 통증까지 느끼고 CT까지 찍으셨답니다. 이렇게 앓고 나서 받은 은혜가 몇가지 있었답니다. 첫째는 목사도 감기에 걸릴 수 있음을 알았고, 둘째는 감기에 걸린 교우들의 불편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셋째는 감기 때문에 예배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으며, 넷째는 더 주님만 의지하며 기도하게 되었고, 다섯째는 병원과 약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기를 통해서 은혜를 깨달았으니 역시 목사님이다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감사를 깨닫는 통로 가운데 하나가 고통인 것은 놀라운 역설입니다. 대부분 평안하고 행복하면 감사할 것 같은데 의외로 고통속에서 감사를 깨닫게 되거든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부담스럽기도하지만 그러나 역경을 제대로 이해하면 범사에 감사할수 있습니다.
여기 인생의 큰 위기를 만난 다니엘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이었지만 당시 세계의 지배자였던 페르샤 왕국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왕이 나라를 120구역으로 나눈후 다시 40지역씩 묶어 총리 세사람을 세웠는데 그 세 사람중에 다니엘을 최고로 세우려고 할만큼 황제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으로서 황제의 신임을 받는 성공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은 다니엘의 뒤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고소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실한 유대인인 것을 알고, 그 신앙을 빌미로 고소할 이유를 찾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황제에게 ‘한달동안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을 사자굴에 넣어 죽이자“고 문서를 만들고 황제의 도장을 찍게 했습니다. 총리로서 다니엘은 이 문서를 보았습니다. 그의 고민은 시작됐습니다. 한달동안 숨어서 기도하는 방법은 아주 그럴 듯했습니다. 창문을 굳게 닫고 사람을 세워 지키게 한 후 비밀리에 기도한다면 누가 볼 수 있었겠습니까? 아니면 아예 하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한달동안 기도를 쉴까? 그러나 다니엘은 의외의 선택을 했습니다.
단6:10절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는 그의 행동을 바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예다‘GAVE THANKS 감사를 고백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건 감사할 일은 아니죠. 위기 아닙니까? 이 함정에 빠지면 총리의 직을 잃을 뿐만 아니라 사자굴에 던져저 죽음을 당하는 위기인데 감사드리다니요, 그러나 성경은 다니엘에게 이 위기가 감사의 이유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의 위대함은 그가 하나님께 ‘주님 저를 이 위기에서 건져주십시오.’ “어렵게 얻은 총리 자리를 지켜주세요, 나를 사자굴속에 던져지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대신에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 인생의 최대 위기를 감사드렸습니다.
무엇을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다니엘은 총리자리를 지키기 위해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음을 감사하고, 사자굴에 던져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이고, 감사가 갖는 위대함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우리도 이 정도는 되야죠.
역경은 하나님과 직면하는 복된 기회가 됩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져서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의 입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심을 보았습니다. 단6:26-27절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 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역설적으로 말해서 다니엘이 이런 위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사자의 입을 봉하신 하나님, 이방의 왕을 통해 고백된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감사는 믿음안에서 늘 역설적인 고백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인생의 위기 가운데 나를 만나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기도에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성도의 삶에서 가장 힘이 나는 순간은 하나님을 만날때입니다. 그때가 은혜받고 성령이 충만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은혜를 받고 교회 봉사를 하면서 피곤하다거나, 지겹다거나 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학생이 새벽기도, 금요기도를 드리면서 토요일, 주일은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하면 다 짜증낼 겁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거나, 지금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냐고 말이죠. 저도 압니다. 대학생들 불쌍합니다. 대출받아 공부하고 졸업하면 갚아야 하니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교회 봉사할 시간이 어디에 있느냐는거죠?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렇게 바쁘고 분주한 세상에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 증거를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던 구약시대를 지나,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승천이후 우리는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성령하나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가장 중요한 통로가 기도와 응답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통해서 즉 응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어려운 시대에 신앙생활을 하게 된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죠지 뮬러(1805_1898년)는 아버지의 주머니를 상습적으로 뒤져 돈을 훔칠 정도로 문제아였습니다. 그가 20살이 되던해 1825년 11월, 어느 토요일 저녁기도모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회심하여 진실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1835년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사로 영국으로 가서 브리스톨 애슐리 다운에 고아원을 세워 고아들을 돌보았습니다. 1898년 3월10일 93세로 소천하기까지 그는 15만명의 고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는 이 많은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경제적, 물질적 필요와 개인적 삶의 필요를 단지 하나님 한분께 아뢰고 응답 받음으로써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분”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였습니다. 뮬러는 믿음과기도로 63년 동안 750만달러(약 30억원)이상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는 많은 고아들을 돌보는데 정부의 힘을 빌리지도 않았고, 특정한 부자에게 손을 내밀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온전하게 하나님 한 분만을 신뢰하고 기도해 기도의 응답으로 매일 양식을 공급받았습니다.그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바르게 기도하는 것도, 잠깐동안 기도를 계속한다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끝까지 기도를 계속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세속화의 시대에 가끔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감사가 없을 때 반드시 여러분의 기도생활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늘 기도와 친숙해야 합니다. 예배에 참여한 분들 가운데 이 예배를 통해 은혜주심을 기대하며 기도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담임목사가 2주일이나 감기로 헤매지만 회복을 위해 기도한 분들은 얼마나 될까요? 아니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살아계심을 증거하시기 원하십니다. 주보안에는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 제목이 있어요. 그런데 주보를 갖고가서 한주간을 함께 기도하는 사람이 있나요?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조지뮬러의 이야기를 100년이 넘도록 들어야 할까요?
오늘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로 기도응답의 이야기를 바꾸어 나가는 예신교회 가족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직분을 맡겨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내가 할 일이 있다는 사실만큼 감격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신 분인데 우리같이 부족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다니 감격할 따름입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직분을 맡기십니다. 충(忠)이라는 말은 가운데 중(中)에 마음 심(心)자입니다. 즉 중심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헤아려 제 자리에서 주인이 없을 때도 마음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충성스럽지 못한 사람은 주인이 없을 때 성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사람은 주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처음이나 나중이나, 잘 될 때나 잘못될 때나 한결같은 것입니다. 주인은 아니지만 주인의 마음으로 맡겨진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부탁드리는 일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를 다녀도 손님처럼 행동하면 안됩니다. 주인이 되시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교회안에서 여러분 자신의 손과 발로 섬기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사역신청서를 제시했습니다. 우리 교회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들의 목록입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교회가 간강하게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사람은 재능이 많고,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성실한 사람, 충성스러운 사람, 즉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제가 오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 이상으로 예신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손님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손님이란 자리는 참 편한 자립니다.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냥 대접받고 먹고 돌아가면 그만이니까요. 손님이 남아서 언제 주방정리하고, 안방정리하고, 보일러가 꺼졌나 켜있나 신경 쓰고, 전등이 켜졌나 꺼졌나 신경쓰는 것 보셨습니까? 그냥 왔다가 가버리면 그만이죠. 그러나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자기는 편할지 모르지만 교회를 통해서, 공동체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라는 이 신비한 공동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함께 지어져 가면서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안에서 축복의 경험을 함께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손님은 편하긴 한데 손님을 대접하느라고 수고하고 애쓴 주인의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저는 늘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셔서 성도들을 섬기는 귀한 사역을 맡겨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딤전1:12-1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세상에서 할 일이 있다는 게 감사한 것처럼, 주님을 위해 내가 교회를 통해 할 일이 있음을 인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평북 정주에 있던 명문 오산학교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당시 그 동네에 아주 똑똑한 청년이 살았는데 가난해서 남의 집 머슴을 살았습니다. 비록 머슴을 살았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매일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이에 감동을 받은 집주인이 그를 아껴 학비를 주고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 청년은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는데 이 청년이 바로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조만식 선생입니다. 그는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요강을 닦아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성실함을 인정받아 훌륭한 인물이 되었으니 내게 맡겨진 일 때문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역경속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서 감사하고,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니 감사하고, 부족한 사람을 충성되이 여겨 주님을 위해 사역하게 하심을 감사하는 삶을 통해서 감사의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