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미곶 일출
호미곶은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 한반도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이곳을 일곱 번이나 답사 측정한 뒤 이곳이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호미곶 주변에는 1908년 건립된 국내 최대 규모의 '호미곶 등대'와 국내 유일의 '등대박물관'과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에 온몸을 던진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시비(詩碑) 가 있다
상생의 손(육지, 왼 손)
상생의 손(바다, 오른 손)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축하하며 희망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1999년 6월 제작에 착수한 지 6개월 만인 그해 12월에 완공됐다. 상생의 손은 국가행사인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인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를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든 조형물인 상생의 손은 두 손이 상생(상극의 반대)을 의미한다
'상생의 손'이 떠오르는 태양을 잡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올 한해도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 하기를 빌어 본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탐방
▼ 4코스 호미길
(호미곶 해맞이광장 ~ 구만2리 서상만 시비, 5.6km)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4코스는 모아이 석상을 닮은 '모아이 바위'와 청어떼가 뭍으로 올라와 까꾸리로 쓸어담았다는 '까꾸리개(일명 독수리바위)', 그리고 해가 가장 먼저 뜨는 '호미곶 해맞이광장'을 연결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해맞이 광장을 벗어나면 데크길이 해안도로(호미곶길)를 따라 '대보항'까지 이어진다
해안도로변에 세워진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詩碑'가 뜬금 없다
일제강점기 영일만 일대에는 60만평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포도농장이 있었다고 한다. 1936년 이육사 시인은 포항에 들렀다가 포도농장에서 영일만을 바라보면서 詩 '청포도' 를 구상했다고 한다
호미곶 해안가에 서서 육지 쪽을 바라보면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계단 모양의 해안단구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수심이 얕아 수면 위로 돌출된 해안단구의 평탄한 암반들이 시원스럽지만 밋밋할 수 있는 바다 풍경에 소소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 구룡포수협 호미곶위판장
위판장 안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어선들이 들어오는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위판장 안은 한산하고 조용하다
△ 대보항
대보항은 제법 규모가 큰 항구인 듯하다
대보항을 지나면 해안둘레길 4코스의 종점(시점)인 구만2리 마을앞 포구까지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걷게 된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해파랑길 포항 구간중 호미반도에 해당하는 호미곶~도구해수욕장까지 25km 구간을 네 개의 코스로 나누어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일행은 오늘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네 개 25km 구간 중 2,3,4 코스 약 18km 구간을 4코스부터 역방향으로 걸을 예정이다
호미반도 지역은 수심이 얕아 그런지 바람이 어느정도 부는데도 바다가 의외로 파도가 적고 잔잔하다
너른 바다 위에 점점이 박혀있는 바위들의 모습이 밀려드는 잔잔한 파도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여기가 호미반도의 꼭지점?
영일만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지점의 평탄한 암반 위로 간지러울만큼 잔잔하게 부딪히는 파도가 부드럽다
저 집에서 3일 동안만 머물면서 푸른 바다를 보며 멍때리고 싶다.^^
쾌응환 조난기념비(快鷹丸 遭難記念碑)
구만리 해안도로변 독수리바위 쉼터에 낯선 비석이 하나 서 있다
1907년 일본의 수산실습강습소 실습선인 137톤급 '쾌응환' 호가 수산시험(해류, 어족분포, 연해수심 등)을 위해 동해안에 내항하였다가 구만2리 앞 해중에서 좌초되어 4명의 인명사고를 당한 후 20여 년 후인 1926년 일본인들이 세운 碑이다.
해방 이후 현지 주민들이 이 비를 훼손하여 방치되었던 비석을 1971년 재일교포 한영출의 주선으로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일제치하에서 지들이 기념비 세운 거는 그렇다고 치고...일본인들이 남의 나라에 와서 좋은 일 하다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훗날 재일교포가 훼손하여 방치된 비석을 이 자리에 다시 세운 이유는 뭔가???
해안둘레길 4코스의 중간 독수리 바위가 있는 지점이다. 독수리 바위를 보려면 길가 정자가 있는 쉼터에 들렀어야 되는데 들르지 않고 통과하는 바람에 '독수리 바위'는 보지 못했다
독수리 바위 일대는 '까꾸리개'라는 지명으로 불리는데 '까꾸리'는 갈퀴, 즉 갈쿠리를 뜻하는 말로 이 일대는 파도가 심할 때 청어때가 밀려들어와 갈퀴(갈쿠리)로 청어를 쓸어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이 지역은 수심이 얕아 파도에 떠밀려 온 청어때를 갈쿠리로 쓸어담았다는 말에 충분히 수긍이 간다.
오늘도 그 청어때가 밀려 왔으면...ㅎ
해안도로는 통행하는 차량이 거의 없어 해안가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해안둘레길 4코스의 종점(시점)인 구만2리 마을로 들어선다.
'구만리'는 조선 초기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때(1453년) 영의정 황보인이 숙청 당하자 집안의 노비가 황보인의 어린 손자를 물동이에 숨겨 한양에서 구만리나 떨어진 이곳 호미곶으로 피신하였다고 해서 '구만리'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한양에 호미곶까지의 거리가 구만리나 되었었나???^^
△ 구만(까꾸리)방파제
고속도로의 졸졸쉼터 같은 곳? ^^ 작은 배 몇 척이 정박할 수 있을 정도의 아담한 포구이다
△ 서상만 詩碑
구만2리 4코스 종점(시점)에 도착할 무렵 도로 옆에 이곳 호미곶 출신 시인 서상만(徐相萬)의 '나 죽어서' 라는 詩碑가 세워져 있다
▼ 3코스 구룡소길
(구만2리, 서상만 시비 ~ 흥환간이해수욕장 6.5km)
해안둘레길 3코스는 호미곶면 대동배리 해변을 따라 걸으며 '모아이상 바위'와 용 아홉마리가 등천했다는 '구룡소'를 볼 수 있고, 동해면 발산리 해변에서는 천연기념물 제371호인 '모감주나무 군락지'와 '장군바위'를 보면서 걸을 수 있다
포구의 빨간 폐선은 한적한 어촌 풍경을 보여주려는 계산된 컨셉인가?^^
구만2리 마을앞 작은 포구의 풍경은 더 없이 편안하고 여유롭다
구만2리 마을앞 포구를 지나 3코스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조그만 돌탑 사이로 하트 모양의 빨간 조형물이 서 있다
구만2리 마을앞 포구를 지나면서 탐방로는 자갈길로 변한다
자갈이 굵어 걷기에 힘들다 싶은 구간에는 콘크리트 포장을 해놓았다
모아이상 바위가 있는 지점에는 바다위로 데크길을 설치해 놓았다
모아이상 바위
옆에서 보니 신기하게도 눈,코 입이 분명한 영락없는 사람의 형상이다. 어찌보면 모아이 석상 보다는 화려한 깃털로 장식한 인디언 추장의 얼굴 같기도 하다. ^^
대동배2리 마을앞 방파제와 등대가 보인다
대동배2리 방파제
대동배2리 마을앞 포구
호미곶면 대동배2리 마을앞 길을 지나고...
원래 해안둘레길 3코스의 대동배2리~대동배1리 구간은 산길로 들어서 '소나무 숲길'을 걷도록 되어 있으나 우리는 그냥 곧바로 해안길을 따라 걷는다
포항 지역의 소나무 재선충 피해는 정말 심각한 것 같다.
산에 있는 소나무들이 온통 빨갛게 메말라 산불이 난 지역으로 착각할 정도다. 푸른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볼 수 없어 둘레길을 걷는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대동배1리 방파제와 포구
대동배2리와 1리는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10여 분 거리에 있다
호미곶면 대동배1리 '대동배교회' 앞에서 잠시 휴식...
대동배2리에서 소나무 숲길로 들어섰으면 이 지점이 출구인 모양이다.
구룡소 전망대가 있는 산. 오늘 탐방길에서 처음으로 산길을 걸어야 하는 구간이다
호미곶면 대동배1리 마을앞 해안
구룡소 전망대
구룡소(九龍沼)
호미곶면 대동배는 한반도의 최동단지역인 호랑이 꼬리인 호비반도권에서 매우 경치가 좋은 곳이다. 옛날에는 '학달비(鶴達飛)마을'이라 불리었는데, 바다에서 보면 대동배 마을의 형상이 마치 학(鶴)이 날아가고 있는 듯 한 모습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와우 멋진 사진들 감상 잘했습니다~^^.
항상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봐도 멋지고
세부내용. 넘넘 감사합니다
멋지고 즐거웠던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감사합니다 ~^^
추운 날씨에 모델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