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합시다.
말 씀: 빌립보서 4:4
설교일: 2025. 2. 2 (주일 낮 예배)
한 목사님이 어느 지방 교회에서 특강을 했는데,
재미 있는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해도 잘 웃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강이 끝나고 한 집사님에게 직접 물어 보았답니다.
“집사님 ! 제가 강의를 재미있게 하려고, 웃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우습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그 집사님 하는 말이 “아닙니다. 목사님 정말 우수웠어요 !
“아니, 그러면 왜 강의 시간에 웃지 않았습니까?”
그 때 그 집사님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목사님! 우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 모아 두었다가
항상 집에 가서 웃어요 !
웃음이 나오면 그 때 그 때 웃지, 왜 참았다가 집에 가서 웃을까요?
그런데, 사실 집에 가서라도 웃으면 다행입니다.
어떤 사람은 웃을 줄을 모릅니다.
교회에서도 웃을 줄 모르고, 집에 가서도 웃을 줄 모릅니다.
직장에서도 웃지 않습니다.
웃지 않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도무지 웃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 웃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주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소나 돼지는 아무리 웃겨도 웃지 않습니다.
웃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최고의 선물이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웃지 않는 사람들은 그 선물과 축복을 거부하는 사람이요,
웃지 못하는 사람은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은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양하지 말고, 받고 누려야 합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 민족은 잘 웃지 않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성난 표정이라서 말 붙이기가 겁이 난다고 말하는 외국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는 우리 민족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우리민족 만큼 웃음 소리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민족도 없습니다.
“하하, 허허, 해해, 호호, 흐흐, 히히, 깔깔, 낄낄, 까르륵,
방긋방긋, 벙긋벙긋, 빙그레, 배시시”
정말 셀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이처럼 웃음소리와 웃는 모습을 표현한 단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민족이 잘 웃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웃음들을 다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만큼 사회가 각박해졌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얼마나 이기적인지, 허구헌날 진흙탕 싸움입니다.
거기다가 경제는 또 얼마나 어렵습니까?
먹고 살기 힘든데 기뻐하면서 웃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거리에 온통 화난 사람들만 지나 다니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웃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온갖 피조물들을 창조하시면서
“보기에 심히 좋구나! 참으로 좋구나!”하시면서 웃으셨습니다.
그렇게 심히 좋고, 참으로 좋은 피조물을 보면서
우리도 웃으며 살라고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성도는 이 땅에서 얼마간 웃고 살다가, 천국에서는 영원토록 웃으며 살 것입니다.
천국에는 더 이상 슬픔도 없고, 눈물도 없습니다.
오직 사랑과 화평과 희락, 곧 기쁨과 웃음만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가 이 땅에서도 기뻐하며 웃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웃으면서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첫째, 주안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기 “주 안에서”라는 말씀은 “주님과 함께”, “주님의 은혜로 ”라는 뜻입니다.
바로 여기에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오늘 바울이 빌립보서를 쓰는 장소는 편안한 사무실도 따뜻한 방도 아닙니다.
춥고 어둡고 음산한 지하 감옥입니다.
그런 감옥에서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당신들도 기뻐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바울이 주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늘 주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담학 교수로 더 유명한 정태기 목사님의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책에 그분의 귀한 간증이 있습니다. 한번은 이 목사님이 신앙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없이 모든 일이 짜증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원 저 기도원 다니다가 누군가의 소개로 소록도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도착한 날이 수요일이라 수요예배에 참여했는데, 예배 후 자유기도 시간에 뒤에 앉은 분의 기도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습니다.
“하나님 !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은혜가
이렇게 크고 놀라우니 제가 어떻게 해야 이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이 목사님이 “도대체 무슨 은혜를 많이 받았기에 저런 기도를 하는가?”하고
뒤를 돌아보니 60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 문둥병을 얼마나 심히 앓았는지,
코도 귀도 뭉글어져 있었는데, 천사처럼 웃는 얼굴로, 어린아이처럼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 목사님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잊어 버렸던 감사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기도 시간이 끝나고 그 노인에게 물었답니다.
“할아버지 ! 뭐가 그렇게 고마우세요! 무슨 은혜가 그렇게 크신 거예요!”
노인은 한참 먼산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문둥병에 걸리자 세상도, 친구도, 피붙이까지도 더 나를 버렸어!
그런데 이 소록도까지 나와 함께 하면서 내게 소망과 기쁨을 주신 분이 있어!”
“아 할머니가 오셨군요!”하고 묻자 그 노인이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야! 예수님이야 ! 예수님이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시며 주시는 은혜가
너무도 크고 놀라워서 이렇게 기쁘고 감사한거야 !”
그 노인은 그렇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했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 노인과 일주일을 보내면서 주 안에서 웃음과 기쁨을 찾고
그 기쁨을 지금까지 누리고 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주 안에서”입니다.
우리 모두 “주 안에서- 주님과 함께 – 주님의 은혜로”
항상 기뻐할 수 있기를 를 축원합니다.
둘째 노력해야 합니다.
태어날 때 기뻐하면서 웃는 아이는 없습니다.
아이는 다 울고 태어나지, “어머님 !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하며 방긋 웃으며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이에게 웃음을 가르키는 기막힌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까꿍”입니다.
“까꿍”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웃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 “까꿍” 소리를 들으며 웃음을 배워갑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부터 이 웃음을 잃어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 하나의 웃게 하는 비장의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간지럼입니다.
입으로 “까꿍”해서 웃지 않으면, 손으로 간지럼을 태워서라도 웃게 해서
잃어버린 웃음을 찾고 기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는 “항상”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 1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로마서14:17)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평강과 희락 즉 기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원히 희락 곧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부터 항상 기뻐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
우리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는 기쁨을 통해서 복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귀한 선물을 받았다고 해도
그 안에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첫 번째 하신 일이
기쁨을 잃어버린 가정에 먼저 기쁨을 찾아주신 일입니다.
요한복음 2장 가나 혼인잔치 집 이야기이지요 !
혼인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기쁨과 웃음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신랑신부와 그 부모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셔서 제한 없이 공급하심으로 그 집에 웃음과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신랑신부도 기뻐하고, 그 부모도 기뻐하고, 거기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이 흥에 겨워 즐겁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회복되는 과정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이해할 수 없는 말씀에 이유 달지 않고 순종한 하인들입니다.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항아리는 손님이 오면 손과 발을 씻는 물을 담아두는 큰 그릇입니다.
거기에 물을 채우고, 그 물을 주전자에 담아 포도주처럼 따라 주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또 그렇게 하면 그 물을 마신 손님들의 반응이 불 보듯이 뻔한데, 그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 말씀대로 행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 계산으로는 도저히 안되는 일도 예수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됩니다. 눈물이 웃음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됩니다.
아마 그 하인들의 기쁨은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기쁨이 아닐 것입니다.
“물 떠온 하인들만 알더라”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로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들은 평생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기뻐하고 즐거워 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기적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도 사는 것이 기적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기쁨과 웃음이 없이 사는 기적이다.
그런데 두 번째 기적이 더 큰 기적이다”
우리에게는 두번째 기적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콘라드 하이어라는 사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천국을 만드신 것은 웃는 사람을 위한 것이요,
지옥을 만드신 것은 웃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천국에 가면 웃는 사람만 있고, 지옥에 가면 심각한 사람만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각하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에는 웃는 사람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웃는 연습을 많이 하고 가야지, 천국에서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삭막해질 것입니다.
더 경쟁해야 하고 더 긴장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웃을 일은 점점 더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웃으며 살 수 있습니다.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 안에서 사는 천국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항상 웃으며 기뻐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은혜를 항상 생각하고,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기뻐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고
금년에는 특별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