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문화와 불교
고대 인도 사회에 붓다는 불교수행자들에게 걸식(구걸)을 규범으로 정했다. 이 규범은 ‘차제걸이(次第乞已)’라 하여 불교수행자가 걸식을 시작한 집으로부터 연속적으로 일곱 집에서만 음식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들이 고의적으로 신분의 고하(高下)를 피하지 못하도록 한 제도이다.
전통적으로 인도사회에서 상층 신분이 제공하는 음식은 하층민이 먹을 수 있지만 하층민이 제공한 음식은 상층민이 먹지 않는다. 곧 ‘차제걸이’는 불교수행자들이 신분의 고하를 떠나 음식 문화를 통한 신분 타파를 행동으로 실천한 모습이다.
그리고 불교와 자이나교에서 시작한 불살생(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 규범은 소를 재물로 바치고 식육으로 사용했던 고대 전통에 변화를 주었다. 불살생 규범은 사회적으로 더욱 확대되어 지금 힌두교의 채식주의를 낳게 되었다.
음식문화와 신분제도
고대 인도사회에서는 불교에서 시도했던 음식문화를 통한 신분제도 타파는 제한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브라만교를 토대로 발생한 힌두교 중심의 현대 인도사회에서 신분제도는 여전히 음식문화에 살아있다. 대부분의 대형 음식점을 살펴보면 주방보조는 신분이 낮은 계층이지만 요리사는 상층 신분이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좋은 음식점의 식사비는 인도의 일반적 물가보다 높은 인상을 준다. 필자는 한국 음식을 만드는 네팔인 요리사를 많이 만났다. 그들 대부분도 브라만이었고 형제들에게 이 직업을 세습하고 있다.
물론 대도시에서는 음식점 주방장의 신분보다는 위생에 더 관심을 가진다. 신분제도가 살아있는 음식문화는 종교적 위생과 음식물의 위생을 관리하기 위함이다. 곧 동일 계층의 신분들이 다른 계층과 혼합되지 않는 순수성을 지키며 동일 신분이 만든 음식의 위생을 철저히 믿었다.
음식에 대한 종교적 위생은 곧 채식주의를 확고히 했다. 육식은 피를 부르는 살생을 하지만 채식은 신선함을 제공한다. 상층 계급의 여성은 철저한 채식을 통하여 정신적 육체적 순수성을 유지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남성보다는 여성이 채식을 즐기며 특히 브라만 여성의 대부분이 채식주의를 신봉한다. 이들은 채식주의이기 때문에 고기 음식을 만들지도 만지지도 않는다.
차제걸이(次第乞已)
초기경전을 보면 탁발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이 살았던 집으로 탁발가는 장면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싸밧티 시에서 어느 바라문 여인의 아들 브라흐마데바가 부처님 앞으로 출가했다. 브라흐마데바는 열심히 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브라흐마데바는 어느 날 탁발을 하기 위하여 싸밧티 시에 들어 갔다. 이와 관련하여 경에서는“싸밧티 시에서 집집마다 탁발을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사는 집에 이르렀다.”(S6.3)라고 묘사 되어 있다.
브라흐마데바는 왜 어머니가 사는 집에 갔을까? 이는 차제걸이하는 것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집도 거르지 않고 차례로 도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문밖에 서 있다가 반응이 없으면 옆집으로 옮긴다. 일곱번까지 가능하다. 일곱집을 갔음에도 음식을 얻지 못했다면 그날은 굶어야 한다.
출가자가 종종 자신이 살던 집에 가는 경우는 차례차례 집을 돌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가는 집만 가게 될 것이다. 부자집이나 인심이 좋은 집이 대상이 될 것이다.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차제걸이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더욱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
차제걸이하는 하는 것을 빠알리어로 사빠다나짜리(sāpadānacārī)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Prj.II.118에 따르면, sāpadānacārī( 사빠다나짜리) 는 집집마다 차례로 어느 한 집을 빼지 않고 밥을 비는 것으로 탁발(piṇḍapāta)을 말하는데, 무소유의 이상과 겸허한 자아완성을 위한 수도행각의 일단이다. 오후에는 먹지 않는 오후불식의 원칙도 있었다. 탁발은 단순히 밥을 비는 구걸행위가 되면 안되며, 그것을 통해서 시주에게 복을 짓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므로 탁발할 때에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일곱집까지만 탁발하기로 되어 있다. 만약 일곱 집에 밥을 빌어서 얻지 못하면 그 날의 탁발행각은 그만 두어야 한다.”(KPTS본 수타니파타, 1450번 각주)
탁발행각은 수행자의 생계의 수단도 되지만 동시에 시주에게 공덕 쌓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교도들, 특히 바라문교도들은 머리를 깍은 수행승들에게 밥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정도일까? 수타니파타 ‘천한 사람들의 경’(Sn.1.7)을 보면 “까까중아, 거기 섰거라. 가까 수행자여, 천한 놈아, 거기 섰거라.”라며 욕설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라문은 부처님 당시 사성계급 중에서 최상위에 있었다. 바라문들이 부처님의 제자들을 천하게 본 것은 왜 그런 것일까? 이는 부처님의 교단에 천민도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상가에서는 네 계급이 모두 평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바라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자만으로 인하여 부처님의 상가를 천한 집단으로 매도 했다.
브라흐마데바의 어머니는 바라문녀였다. 탁발자가 왔어도 밥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사함빠띠 브라흐마가 바라문녀에게 복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게송으로 교화하는 장면이 상윳따니까야 ‘브라흐마데바의 경’(S6.3)에 실려 있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아라한은 복전이다. 복밭에 공양하면 큰 과보가 따른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아라한들은 복 짓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 가기도 했다. 아마 가장 극적인 장면은 테라가타에 있는 깟싸빠 존자의 탁발행각일 것이다.
깟싸빠 존자는 나병환자 앞으로 갔다. 나병환자는 음식을 얻은 것을 먹고 있었다. 존자가 그의 앞에 서자 음식을 건네 주었다. 그런데 건네는 손에서 썩은 손가락이 하나 떨어졌다는 것이다. 과연 깟싸빠존자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까?
나병환자가 건넨 음식은 일반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더러운 것이다. 건네 주어도 먹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썩은 손가락이 떨어졌을 때 어땠을까? 토할지 모른다. 이에 대하여 깟싸빠 존자는 “담장의 아래에서 나는, 그 음식을 한주먹 먹었는데, 먹으면서나 먹고 나서도 나에게 혐오가 일어나지 않았다.”(Thag.1062)라고 게송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