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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근 목사(여의도순복음은혜교회, 기하성 총회장)
나이키를 창업한 필 나이트는 미국 오레곤의 작고 조용한 도시 포틀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레곤은 오래된 오솔길로 유명한데, 옛날부터 오레곤으로 오려면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적 그가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이 이 오솔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오솔길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권리, 기질, 운명, DNA라고 할 수 있지. 겁쟁이들은 올 생각조차 못했어. 약한 사람들은 도중에 죽었지. 이렇게 해서 살아남은 자들이 바로 우리 오레곤 사람들이야.” 그렇게 필 나이트도 자연스레 마음에 개척정신을 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는 대학시절 일류 선수들의 등을 보며 달려야 했던 육상 선수였다고 합니다.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운동선수의 길을 포기했는데 대신 신발에 인생을 걸기로 한 것입니다. 1962년 그는 자신의 집 지하에 사무실을 차려 ‘블루리본’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50달러로 일본 러닝화를 수입해 팔기 시작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낮에는 회계사무소를 다니고 밤에는 사업에 몰두했습니다. 신제품 디자인에도 관여하여 매출 증가도 일으키는 등 열정적으로 사업을 이끌었지만, 일본 회사로부터 거래단절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덕분에 자체 브랜드 나이키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이키를 창업하고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가 여러 슈독(shoedog)을 만난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슈독’이란 온통 신발만 생각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신발의 제조, 판매, 구매, 디자인 등에 전념하며 신발에 일생을 건 사람들을 부르는 애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필 나이트가 만난 슈독 중에서 대학교 때 자신의 육상 코치였던 바우어만이 있습니다. 신발 밑창 개량을 고민하던 그는 아침을 먹다가 와플틀을 보고, 곧바로 차고에 있던 우레탄과 석고를 틀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나이키 첫 모델이자 유명 모델인 ‘와플 트레이너’입니다.
‘나이키’ 이름을 제안한 대학원 동기이자 나이키가 최초로 고용했던 존슨, 러닝화 쿠션에 공기를 주입하는 방법을 고안했다는 괴짜 항공우주 공학가 출신 프랭크 루디 등. 나이키는 말 그대로 신발에 미쳐있는 슈독들이 만든 회사였습니다. 창업시절 필 나이트는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자”라고 결심했다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당시 로마 총독이였던 베스도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난뒤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그러자 사도 바울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당했지만, 영안이 닫힌 총독으로부터 미쳤다고 비난을 당했지만, 사도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자랑했습니다. 복음에 온전히 미쳤기 때문입니다. 필 나이트와 함께했던 수많은 슈독들처럼 우리도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 미쳐야 합니다. 미치지 말고 적당히 믿으라는 세상의 비난과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는 ‘가스펠독’들이 일으켜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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