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빼곡이 수천의 마음이 걸려 있다. ‘공무원 시험 합격하기.’ ‘우리나라를 벗어나 전 세계 정복하기.’ ‘로또 당첨….’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간절하게, 용감하게, 더러는 가볍게 드러냈다. 부산 비엔날레를 맞은 문화회관 대 전시실에 사람들이 적은 소망이 계획표와 함께 전시되었다. 이백여 명의 생생한 증언을 기록한 영상도 벽면이 넘치게 펼쳐졌다. 화면을 마주하여 듣고, 벽면 가득 기록된 마음을 조심스럽게 읽어 갔다. 여러 사람의 간절한 리스트를 대하다 숨이 딱 멈추는 글을 만났다.
‘별 보기’ 멋지다. 이 사람은 얼굴과 마음도 별처럼 예쁠 것 같다. 감동해서 서 있자니 그 너머의 리스트가 또 나를 부른다. ‘공부와 노래를 하고 싶다’ 마음이 킁 내려앉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분은 팔십이 다 된 노인이다. 그의 애절함이 가슴에 닿아 뭉클하다. 학문에 대한 갈구와 이루지 못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까. 목이 먹먹하며 눈물이 그렁해진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못한 일이다. 십여 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가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모든 것이 궁핍하던 시절의 가난한 종갓집 맏며느리였다. 어머니의 인생에 자신이란 자리가 있었을까. 옹고집 범띠 남편에 큰아들까지 범띠 해에 낳았다. 고부고분하지 않은 아들 때문에 아버지는 자주 언성을 높였고 엄마는 중간에서 속을 까맣게 태웠다. 골목대장으로 애들 싸움에 늘 끼는 장남이라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만 나도 가슴을 싸잡았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세 자매의 식구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여름휴가를 떠났다. 그 여행 동안 장맛비도 우리와 같이 다녔는데 춘천댐 밑에서 쏘가리회를 먹으며 맛있다고 얼마나 감탄했던지. 밖에서 들여다보던 빗물까지도 봉창을 두드리며 합세했었다. 수안보에서 힘들게 구한 숙소에 든 엄마는 대여섯 살 아이같이 들썽거렸다. 방 가운데 둥근 물침대에 누우며 디즈니랜드에 들른 유치원생처럼 재밌어했다. 물에 잠긴 아스팔트를 장대비와 함께 내려오면서도 차 안에서 두 팔을 벌리고 “히야 ~ 정말 좋네.”를 연발하시던 어머니다. 건강하지 않은 몸에 여행의 피로까지 쌓여 몸은 잘 가누지 못하면서도 입은 함박꽃만큼 커졌다. 우중 공원에서 화장실을 찾지 못해 참다 더러워진 속옷을 갈아입히며 우리는 같이 웃었다.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 엄마를 보며 뭐 어때 그래도 좋다는 행복한 웃음이었다. 그 여행에서 어머니가 소망하시던 일 중 한두 개는 해결됐을까.
생각해 보니 나의 버킷 리스트도 그 여행에서 몇 개는 들어낸 것 같다. 누구나 화려하고 거창한 꿈을 꾸지만, 그 출발점에는 가족 간의 주고받는 사랑이 기본으로 자리한다. 끝인 줄 모르면서 간 어머니와의 마지막 여행에서 우리는 서로 많은 마음을 주고받았다.
몇 년 전 막내가 어학시험 준비를 하러 외국으로 가면서 심각하게 말을 걸어온 적이 있었다. 엄마는 일생 중 무엇이 제일 하고 싶었느냐고, 그 애의 마음에 공부 외의 다른 욕구가 일어나고 있었던가 보다. 결국, 그 시험만 해결하고 다시 국내로 돌아와 휴학을 한 채 제가 원하는 노래에 빠졌다. 곡을 만들고 기타치고, 노래하며 삼 년쯤 제 끼를 발산해 보더니 해결되었는지 다시 학문의 길로 들어갔다. 한 번뿐인 생을 멋지게 꾸려 간다 싶어 대견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각각의 리스트에 담긴 꿈과 가슴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에 일어나는 떨림을 들여다본다.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제대로 쉬고 싶다. 일을, 할 때는 열심히 하고 그 후에는 잠깐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휴식하자. 하던 일을 마치면 몸과 마음이 해방되어 편안해져야 할 텐데 그게 되지 않는다. 넉넉지 않은 집안에 태어나 스스로 한 뼘씩은 더 큰 걸음으로 바삐 걸었다. 힘이 들었지만 늘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계속해 자신을 다그쳤다. 오랜 세월 그렇게 살다보니 습관이 굳어져 나이가 들어서도
몸과 마음이 쉬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머릿속에는 늘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늘어지게 잠을 자고 싶다. 해가 안방 깊숙이 들어오고 옆 사람이 일어나 들썽거려도 상관없이 잠 속에 빠져 봤으면…. 성격이 예민한지 어릴 때부터 뾰족해져서 더 숙면에 들지 못한다. 저녁이면 TV 앞에 앉아 눈꺼풀 무거워지기만 기다린다. 독서를 하거나 하루를 돌아보는 글을 써보라고들 하지만 그러면 무거워지던 눈꺼풀이 반짝 살아나며 잠이 십 리나 도망가 버린다. 몸을 많이 쓰면 피곤해서 일찍 쓰러질까 싶어 오후에 걸레로 이 방 저 방 닦은 후 손빨래도 한 통 해본다. 팔이 늘어지게 아파서 푹 자기를 기대했지만, 여기저기가 쑤셔서 더 잠들 수가 없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데 미인이 아니어서 못 자는지 그러지 못해서 미인이 안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를 치료했던 의사는 신경 쓰는 게 제일 나쁘니 두리뭉실 살라 했다. 하지만 나는 훨씬 더 예민해졌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욕심을 내어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괴롭힌다. 건강이 말이 아니다. 가끔은 나를 놔줘야겠다. 푹 쉬어서 몸과 마음이 모두 가뿐해지고 싶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깊은 잠 속에 푹 빠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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