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여고 교문을 막 들어서면 백송이 한 그루 있다.
개교기념수로 심은 나무라고 했다.
남편이 전남여고에 근무를 할 당시 퇴근시간에 가서 나무 아래 차를 대기하고 있으면 향이 참 좋았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소나무를 참 좋아한다.
바닷가에 해송 애국가에 나오는 곰솔, 홍송, 육송, 백송, 삼엽송, 소나무 중 가장 상급으로 치는 나무가 홍송이다.
피부가 붉은 빛을 띠기도 하지만 곧게 자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을 지을 때 기둥으로 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백송은 좀 낯선 품종이기는 했다.
하루는 남편이 퇴근하며 씨앗을 한줌 내밀었다.
잣과 같았는데 잣보다는 작고 얼룩이 져 있다.
백송 아래서 주웠다고 했다.
그럼 심어 보아야지 하고 발아를 시켰다.
비교적 잘 났다.
그렇게 백송을 키우기 시작했다.
모든 씨앗이 싹이 터서 올라올 때는 참 예쁘다.
백송은 유난히 그 싹이 예쁘다.
난 그 싹들을 보는 재미가 좋다.
그렇게 씨앗을 틔우고 자라고 옮기며 키우기 시작을 했다.
그렇게 키우던 참에 2005년 자금성을 가게 되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많다고 우린 후문으로 들어가서 반대로 정문으로 나온다고 하였다. 그렇게 자금성에 들어갔을 때 백송을 보게 되었다. 어찌나 큰지 그 높은 지붕위로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를 바라보다가 일행을 놓칠 뻔 했다.
이화원에도 백송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아, 백송은 그냥 심는 나무가 아니구나, 아무곳에나 심는 것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죽곡정사에 백송 군락지를 만들어서 특별한 곳으로 해야겠구나.
목표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어 가꾸기 시작했다.
모종이 자라면 가져다 심어서 자라게 해야지 하고 심기 시작을 했다.
그런데 손을 타지 않던 나무가 어느 때부터 가면 파가기 시작을 했다.
기와 번와작업을 할 당시 일하던 사람 중 백송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그 이후부터였다.
이제 몇 년 안되어 작은 것까지 나무를 파가기 시작을 했다.
갈 때마다 나무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나무를 큰 분에 심어 광주 옥상으로 옮겨 왔다.
그 중에서 좀 잘 생긴 나무는 회봉선생의 스승님이신 연재선생 사당에 두 그루 가져다 드리기도 하였다.
잘 심어서 가꾸시겠지?
보낸 뒤로는 심어 가꾼 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지만 그곳에 보내드린 것만도 보람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해마다 씨앗을 옥상에 심어 가꾸고 싹 틔우며 300여그루를 만들었다.
자라다가 더러는 죽기도 하고 좋은 곳에 한 그루씩 가져다 심기도 하고 지금은 200여그루가 있다. 생각보다 잘 자랐다.
이제는 정리를 해야 하는데 싶어 어찌 할까 매년 봄이면 망설이기만 했다.
다행이 옮길 장소가 다듬어 지고 옮겨줄 일이 생겼다.
내일은 백송이 제 자리 찾아 이사를 가는 날이다.
나무도 이사를 시키고 이제는 옥상도 서서히 정리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안고 살 수는 없기에 제자리 찾아 심어 주어야 한다.
또 손을 타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는 하지만 잘 자라리라 생각하며 CCTV라도 달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워낙에 외진 곳이다 보니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