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기본적으로 뒤틀리게 하고, 생략하고, 틈을 벌리고, 어긋나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상에 옷을 입히는 것이다. 어떻게 옷을 입힐 것인가? 이것이 시인이 할 일이고, 이것이 시 창작의 핵심이다. 그런데 여기에 논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 서정시의 큰 맥을 이어온 이성복 시인의 ‘노조면벽(魯祖面壁) 시론(詩論)’을 필자 나름으로 해석하고 적용해본다. ‘노조면벽 시론’은 필자가 명명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시만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시인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시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점에 우리를 세운다. 시의 역할은 바닷가에 떠 있는 부표의 역할과 같다. 그 부표 밑에는 그물이나 양식장이라고 말해주는 것과 같다. 어미 원숭이의 목을 물고 있는 표범이 있는데, 그 원숭이 어깨에 새끼 원숭이가 잠자고 있는 것과 같은 말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시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시의 세 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가 말하지 않으면 허위인데 시가 말하면 스캔들, 그 지점에 시가 있다. 둘째,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덧없는 것이고 부질없는 것이고, 그것을 말하면 거룩한 것, 그 지점에 시가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둘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인다. 셋째, 가운데 축에 해당하는 것엔 사람이 자기 등을 긁을 수 없는 지점이 있듯이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도 불가능한 긧이다. 왜냐하면 다른 두 축 또한 불가능에 닿아 있고 그것 없이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말할 수 없는 것을 오직 시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속 터지게 하고, 어렵게 하고, 괴롭게 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는 시는 자기의 것을 고백해야 한다. 어느 신부의 고백에서 ‘할메 넘의 죄를 고백하지 말고 할메 죄를 고백하소. 며느리 죄 고백 말고요’라고 하였다고 한다. 시의 자리는 넘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나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또한 시인이 막막하고 먹먹한 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시로 이야기해야 한다. 이 이론에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시들을 살펴본다.
「공무도하가」
- 고대시조 「공무도하가」를 살펴본다. 公無渡河(공무도하) 公竟渡河(공경도하) 墮河而死(타하이사) 當奈公何(당내공하) | 그대여, 물을 건너지 마오. 그대 결국 물을 건너셨도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이할꼬. | 이와 같이 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조면벽」
– 노조선사의 시를 살펴본다. ‘노조면벽(魯祖面壁) 불통소식(不通消息), 이보진전(移步進前) 일림형극(一林荊棘)’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옛날에 ‘노조’라는 선사가 있었는데 면벽 수도로 유명하신 분이지. 멀리서 누가 ‘도(道)’를 물으러 찾아오면 벽을 향해 돌아섰어. ‘도’는 말로 전하는 게 아니기에 ‘불통소식’이라고. 불통소식이란 세상적인 게 다 통하는 것 같지만 세상적인 게 쓸모없는 지점이 불통소식이다. 한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가면 가시 형극처럼 나갈 수 없는, 빼도 박도 못 하는 지점, 그 지점이 바로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불통소식’의 지점이다.”
「남해금산」 - 이성복
- 이성복 시인의 시 「남해금산」을 보면, 그가 이 시를 쓴 과정은 첫 구절을 쓰고 이어서 저절로 쓰인 시라고 한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사랑하는 어머님을 보내시고 시인의 무력함을 말하는 마지막 행을 대하게 된다. 바닷물 속에 잠기듯 한없는 슬픔에 잠기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무력함이라 할까 빼도 박도 못하는 지점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시인만이 말할 수 있는 아픔이 있다. 이처럼 아픔을 드러내는 이가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남해금산」 전문
「정선」 - 이성복
- 이성복 시인의 시 「정선」은 고유명사가 여섯 개 나오는데 이 고유명사가 덧없는 것을 말한다. ‘사북, 황지, 동면, 서면, 아우라지, 정선’이 그것이다. 정선은 정선아리랑의 슬픔을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시적 언어이다. 이것은 김소월의 ‘초혼’에 비교할 수 있는 시인데 소월의 ‘초혼’은 죽은 자의 혼을 부른다면, 「정선」은 이성복 시인 자신의 영혼을 부르고 있다. 물고기를 유혹하기 위해 고소한 깻묵을 뿌린다. 깻묵은 참깨를 짜고 난 찌꺼기다. 무력하게도 ‘깻묵같이 흩어진’ 혼을 부르고 있다. 다음 시는 「정선」 전문.
내 혼은 사북에서 졸고
몸은 황지에서 놀고 있으니
동면 서면 흩어진 들까마귀들아
숨겨둔 외발 가마에 내 혼 태워 오너라
내 혼은 사북에서 잠자고
몸은 황지에서 물장구 치고 있으니
아우라지 강물의 피리 새끼들아
깻묵같이 흩어진 내 몸 건져 오너라
「극지(極地)에서」 - 이성복
- 이성복 시인의 시 「극지(極地)에서」를 살펴본다.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은 백곰이다. 얼어붙은 호수, 거뭇거뭇한 돌덩이 하나 없고 가도 가도 끝없는 빙판 위로 걷는 흰, 흰 북극곰, 극지에서 생긴 정황이다. 우리의 삶도 참 안 될 때가 바로 극지가 아닐까? 이 시에서 ‘흰, 흰’, ‘무언가, 무언가’의 반복적인 리듬도 특별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북극곰처럼 우리네 삶도 해도 해도 안 되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견뎌야 한다, 그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지라도. 이 시는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을 보여준다. 마치 흰 북극곰처럼 무력한. 다음 시는 「극지(極地)에서」 전문.
무언가 안 될 때가 있다.
끝없는, 끝도 없는 얼어붙은 호수를
절룩거리며 가는 흰, 흰 북극곰 새끼
그저, 녀석이 뜯어먹는 한두 잎
푸른 잎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소리라도 질러서, 목쉰 소리라도 질러
나를, 나만이라도 깨우고 싶을 때가 있다
얼어붙은 호수의 빙판을 내리찍을
거뭇거뭇한 돌덩어리 하나 없고,
그저, 저 웅크린 흰 북극곰 새끼라도 쫓을
마른 나무 작대기 하나 없고,
얼어붙은 발가락 마디마디가 툭, 툭 부러지는
가도 가도 끝없는 빙판 위로
아까 지나쳤던 흰, 흰 북극곰 새끼가
또다시 저만치 응크리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내 몸은, 발걸음은 점점 더 눈에 묻혀 가고
무언가 안 되고 있다
무언가, 무언가 안 되고 있다
다른 시인들의 시(詩)에서
- 이성복 시인의 詩論을 적용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는 시’를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이 시들을 쉽게 말하면 삶의 아픔을 시로 표현한 것들이다. 아픔을 드러낼 때 독자에게 공감과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다 고백하기에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내의 맨발3 – 갑골문」 - 송수권
- 송수권 시인의 시 「아내의 맨발3 – 갑골문」을 살펴본다. 「산문에 기대어」를 통해 송수권 시인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그 시에서 동생을 잃은 슬픔을 시에 고스란히 표현하였다. 한편 「아내의 맨발3 - 갑골문」에는 시인의 아내가 백혈병으로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럽게 묘사되고 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무력한 아내와 남편으로써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상황이다. 아픈 아내의 발뒤꿈치는 거북의 등처럼 턱턱 갈라져 있다. 다음 시는 「아내의 맨발3 – 갑골문」 전문.
뜨거운 모래밭 구덩을 뒷발로 파며
몇 개의 알을 낳아 다시 모래를 덮은 후
바다로 내려가다 죽은 거북을 본 일이 있다
몸체는 뒤집히고 짧은 앞 발바닥은 꺽여
뒷다리의 두 발바닥이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유난히 긴 두 발바닥이 슬퍼보인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마취실을 향해
한밤중 병실마다 불거진 사막을 지나
침대차는 굴러간다
얼굴엔 하얀 마스크를 쓰고 두 눈은 감긴 채
시트 밖으로 흘러나온 맨발
아내의 발바닥에도 그때 본 갑골문자들이
수두룩하였다
「분화구」 - 김선우
- 김선우 시인의 시 「분화구」를 살펴본다. ‘한 남자와 한 남자가 엉겨 붙었다. 한 남자가 한 남자의 머리칼을 끌어 쥐고, 질질 끌려가던 한 남자가 한 남자의 가슴팍을 발로 걷어찼다.’ 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싸움이다. 칼릴 지브란은 그의 시 「아이들에 대해서」에서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닙니다 … 당신들의 아이들은 당신을 통해 태어났지만 당신들로부터 태어난 게 아니에요. / 그리고 그들이 비록 당신들과 함께이긴 하지만 그들이 당신들의 소유인 것도 아닙니다 /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순 있겠으나, 당신들의 생각까지 강요하진 마세요.”라는 시행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가족이라고 영원히 뜨거운 사랑의 용광로에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도 사랑이 식으면 남남이다. 벽돌이 허공에 멎어 있다. 다행일까? 다음 시는 「분화구」 전문.
‘금강미인클럽’ 앞에서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몸싸움을 하고 있다 자정 무렵이었다 한 남자가 한 남자의 머리칼을 끌어 쥐고, 질질 끌려가던 한 남자가 한 남자의 가슴팍을 발로 걷어찼다 니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냐고, 한 남자가 한 남자를 향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한 남자가 포장마차 바퀴를 괴고 있던 벽돌을 뽑아 들었다. 안∙돼 ∙여∙보∙영∙호∙야∙도∙망∙가∙제∙발∙여∙보, 한 남자가 벽돌을 머리 위까지 올린 채 멎어 있고 한 여자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 막으며 멎어 있고 한 남자가 벽돌을 쳐다보며 멎어 있다
멎어 있다. 지구를 떠메고 있는 달
분화구가 깊이 패어 있다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방법」 - 복효근
- 복효근 시인의 시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방법」을 살펴본다. 강을 건너는 누우 떼들을 동물의 왕국에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건기가 찾아오면 풀을 찾아 무리가 이동하지만 때로는 강을 건너야 한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마리 누우떼가 악어에게 먹히는 동안 나머지 수많은 누우들은 무사히 강을 건넌다는 것이다. 사노라면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지점이 있다. 다음 시는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방법」 전문.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 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 지도 모른다
「8월」 - 조은길
- 조은길 시인의 시 「8월」을 살펴본다. 이 시의 배경은 8월이다. 화자가 경험한 이날은 무척 더웠으리라. 너무 더워 지쳐갈 때 아버지가 지겟작대기에 뱀을 친친 감고 들에서 집으로 오셨다. 그 일을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는 얼른 무쇠 솥단지에 장작불을 지핀다. 그런데 화자는 그 일을 징그럽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장작불 같은 징그러운 사랑이 필요한지는 살아보면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이 시의 매력은 섬세하게 8월 어느 날 펄펄 끓는 가마솥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어린 딸이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뱀과 한여름 마당에 쑥대 연기를 피우는 모깃불이 있는 시골집의 풍경이 있는 시. 다음 시는 「8월」 전문.
풀 지게를 한 족 어깨에 걸치고 들로 나가신 아버지는 아가리가 석류 속 같은 뱀 한 마리를 지겟작대기에 친친 감고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황급히 마당가 무쇠 솥단지에 장작불을 지피고 아버지는 그것을 무쇠솥 바닥에다 패대기치고는 잽싸게 솥뚜껑을 눌렀다
나는 뱀이 솥뚜껑을 컹컹 치는 소리에 놀라 집 밖으로 튕겨 달아나고
처음으로 어머니 아버지가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아버지는 모깃불 한복판에 시퍼런 쑥대 다발을 꽂아놓고 어머니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온 집에 뱀 비린내와 쑥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뱀이 붉은 아가리를 치켜들고 방으로 기어 들어오는 꿈을 꾸고 놀라 깨어보니 아버지 코 고는 소리에 방구들이 크렁크렁 울렸다
처음으로 내가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머리맡에는 창을 넘어온 달이 죽은 모시나비처럼 주저앉아 있었다
이상으로 몇 편의 시들을 감상해보았지만, 여기에 모든 시인들의 시들을 다 열거하지는 못한 면이 있다. 우리가 다 드러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그런 삶의 순간이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정황을 끄집어내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감동의 눈물이 나게 하는 시를 쓰고 싶다면, 그런 순간을 발견하도록 세밀한 눈을 떠야 한다. 지난 두어 달 동안 이성복 시인에게 푹 빠져 있었다. 또다시 읽고 싶고 필사하고 싶고 암송하고 싶은 시를 쓸 때까지 진득하게 시를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이글에 도움을 준 이성복 시인과 장옥관 시인에게 감사한다. - 이기호 시인
[출처] 이기호의 시론(詩論) 8 - 노조면벽, 이성복 시인을 중심으로|작성자 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