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 대회 그리고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는 누구나 금메달을 목에 거는 꿈을 한 번쯤은 꿀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꼭 등수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승리도 있지만 멋진 패배도 있는 법이다. 누구나 일등을 할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하며 우승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매너는 스포츠맨십의 기본적인 윤리 가운데 하나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이 한창이다. 초반부터 여러 개의 메달 주인공들이 확정되어서 시상대에 올랐다. 어떤 선수들은 웃고 어떤 선수들은 울었다. 하지만 웃는 사람도, 우는 사람도 모두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고 관중들은 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다시 4년을 준비해서 재도전을 할 수 있기에 아쉬워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관중들과 시청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몇 가지 장면이 있었다. 경기에도 졌지만, 경기 후 매너에서도 진 한국 테니스 대표 권순우 선수의 돌발적인 행동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이름표를 달고 아시안 게임에 나갔다가 개인전에서 자신보다 500위나 아래인 태국 선수에게 패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테니스 라켓을 경기장 바닥에 패대기쳤다. 심지어 상대 선수가 악수를 청하자 악수마저 외면해서 관중들의 야유를 받아야 했고 그의 이런 몰상식한 행동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져서 6백만 조회 수를 올리고 말았다. 그의 이런 행동으로 나라의 국격은 떨어졌고 세계 스포츠인들의 자존심은 훼손됐다. 그 영상을 보는 순간 어이가 없고 황당하기까지 했다. 최선을 다하고 경기에 지는 것을 나무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저건 아니다 싶었다.
또 다른 안타까운 장면은 사격에서 러닝-타깃 남자 단체전 시상대에서 벌어졌다. 금메달은 총점에서 북한과 동점인 1,668점을 쏜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돌아갔는데 은메달 시상대에 올라선 북한 선수들의 표정과 심지어 눈물마저 흘린 저들의 태도는 그것을 지켜보는 세계 스포츠인들을 당황케 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아쉬움이 없겠는가마는 마지막까지 사진찍기를 부담스러워하며 어색해하는 그들을 보면서 저들이 사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메달의 색깔이 무엇이든지 시상대에 올라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이들은 은메달을 따고도 즐거워하기는커녕 무엇에 쫓기는 듯 불안해하고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45억 명이 사는 아시아에서 은메달을 땄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지만 저들의 모습에서 폐막 후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서 그들이 직면할 불호령과 비난을 어떻게 감수해야 할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어쩌면 선수들의 실력은 아시아 최고인데 스포츠를 이해하는 그 나라의 수준이 바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성경에는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적고 있다. 여기 면류관은 스테파노스로 경기를 뛴 선수들에게 주는 월계관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이 세상의 경기에서는 월계관이 우승자들에게만 돌아가지만, 성경은 “모든 자”가 받을 것이라고 기록한다. 경기에 참여한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모든 사람이 받는 경주에 지금 우리는 동참하고 있다. 꼭 일등이 아니어도 괜찮다. 하지만 법대로 경주해야 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 지금 우리는 거의 경기의 마지막에 와 있다. 눈앞에 월계관이 들어온다. 피곤하고 지쳐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러 우리는 지금 달려가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주저앉지 않게 하소서. 하늘의 전사들이 되어서 주님과 함께 이 싸움 반드시 승리하게 하소서. 언젠가 주님이 씌워주시는 그 영광의 면류관을 다시 주님 발 앞에 돌려드리는 날까지 진군에 진군을 거듭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