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普照國師)의 수심결(修心訣)
11. 일어난 자리가 고요한데 다시 무엇을 끊으리요,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로지 깨달음이 늦어질까를 두려워해야 하는 도다.
但諦觀殺盜淫妄 從性而起 起卽無起 단체관살도음망 종성이기 기즉무기
다만 살생하고 도적질하고 음행하고 망령되는 행동이 성품을 따라 일어난 것을 자세히 관찰한다면, 일어남이 곧 일어남이 없는 것이로다.
當處便寂 何須更斷 所以云 不怕念起 唯恐覺遲 又云念起卽覺 覺之卽無 당처변적 하수갱단 소이운 불파염기 유공각지 우운염기즉각 각지즉무
일어난 자리가 고요한데 다시 무엇을 끊으리요,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어질까를 두려워 하라고 하는 것이로다. 또 생각이 일어 나거든 바로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면 바로 없어진다 하는 것이로다.
故悟人分上 雖有客塵煩惱 俱成醍醐 고오인분상 수유객진번뇌 구성제호
그러한 까닭으로 깨친 분상에서는 비록 객진 번뇌가 있다고 하더라도,그것은 다 제호(醍醐: 우유를 정제하여 만든 맛있는 음식. 부처의 성품에 비유함)를 이루는 도다.
但照惑無本 空華三界 如風卷煙 幻化六塵 如湯消氷 단조혹무본 공화삼계 여풍권연 환화육진 여탕소빙
다만 미혹이란 근본이 없는 것임을 관조할지로다. 허공의 꽃과 같은 삼계(三界)란 바람에 사라지는 연기와 같고, 육진의 환상과 같고, 끓는 물의 얼음과 같도다.
若能如是念念修習 不忘照顧 定慧等持 則愛惡自然淡薄 약능여시염념수습 불망조고 정혜등지 즉애오자연담박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생각 생각에 닦고 익히고, 잊지 않고 돌아 보아 비추고,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진다면,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연히 맑아지고,
悲智自然增明 辜業 自然斷除 功行自然增進 煩惱盡時 生死卽絶 비지자연증명 고업 자연단죄 공행자연증진 번뇌진시 생사즉절
자비와 지혜를 자연히 분명하게 증득하리라. 허물과 업이 자연히 끊어져 없어지고, 공덕이 자연히 증진하고, 번뇌가 다할 때 생사도 바로 끊어지리라.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약미세유주영단 원각대지낭연독존 즉현천백억화신 어시방국중 부감응기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고, 곧 천 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 국토 가운데 감응하여 나아가리니,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사월현구소 영분만수 응용무궁 도유연중생 쾌락무우 명지위대각세존
마치 하늘에 높이 떠오른 달이 물 위에 만 개의 달이 나타나는 것과 같도다. 응하는 작용이 무궁하여 인연 중생들을 제도하고, 근심이 없고 쾌락하나니, 이를 이름하여 대각 세존이라 하는 도다.
問後修門中 定慧等持之義 實未明了 更爲宣說 委示開迷 引入解脫之門 문후수문중 정혜등지지의 실미명료 갱위선설 위시개미 인입해탈지문
묻다. 깨친 뒤에 닦아 나가는 문 가운데, 선정과 지혜를 동등하게 지닌다는 뜻이 아직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시 자세히 펼쳐 설하시어 미혹을 열어 깨우치시어 해탈문으로 들어가게 하여 주십시오.
答若說法義 入理千門 莫非定慧 取其綱要則但自性上 體用二義 답약설법의 입리천문 막비정혜 취기강요즉단자성상 체용이의
답하다. 만약 설법의 뜻으로 이치에 들어 간다면 천 가지 문이 있나니 선정 지혜가 아님이 없도다. 그 중요한 부분을 취한다면, 단지 성상체용의 두 가지 뜻이 있도다.
해설: 성상체용(性相體用)
범부(凡夫)의 안목(眼目)으로 보는 현상계(現象界)는 상(相)에 해당(該當)합니다.
성자(聖者)가 볼 수 있는 본체계(本體界)는 성(性)입니다.
범부(凡夫)는 현상계(現象界)에 매달려 본체(本體)인 성(性)을 보지 못합니다.
성자(聖者)는 본체계(本體界)인 성(性)과 현상계(現象界)인 용(用)을 아울러 봅니다.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체용(體用)이라는 말도 성상(性相)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체(體)는 본성계(本性界)요, 용(用)은 현상계(現象界)에 해당(該當)합니다.
학문(學文)이 아무리 깊더라도, 현상계(現象界)만 본다면 무명중생(無明衆生)이요, 불학무식(不學無識)이라도 본성계(本性界)를 깨달으면 성자(聖者)입니다. 우리가 공부(工夫)하는 목적(目的)도 미혹(迷惑)의 현상계(現象界)를 벗어나 본성계(本性界)를 깨닫는데 그 목적(目的)이 있습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라, 언어도단(言語道斷)하고 심행처멸(心行處滅)하는 경계(境界)를 지나, 명심견성(明心見性)하여 확철(確哲) 대오(大悟)한 경지(境地)에 도달(到達)하면, 인연가합(因緣假合)으로 된 만유(萬有)의 실상(實相)을 직관(直觀)하게 되며, 생사해탈(生死解脫)의 진리(眞理)를 각파(覺破)하게 되매 자연(自然)히 모든 집착(執着)이 끊어지고, 공포(恐怖)와 가애(罣碍, 걸림)가 없어지며, 번뇌(煩惱)가 곧 보리(菩提)요, 생사(生死)가 곧 열반(涅槃)이라는 정각(正覺)의 대도(大道)를 성취(成就)한 후에 자각각타(自覺覺他)와 자도도타(自度度他)라는 대비원력(大悲願力)으로 고해(苦海)에 빠진 모든 중생(衆生)들을 제도(濟度)하겠다는 것이 불타(佛陀)의 최고(最高) 이상(理想)이요, 염원(念願)이라 할 수 있습니다.
前所謂空寂靈知是也 定是體慧是用也 전소위공적영지시야 정시체혜시용야
앞에서 말한 이른바 고요함과 신령스럽게 아는 것이 그것이로다. 선정은 곧 본체요, 지혜는 작용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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