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XJ, 시간을 이겨낸 디자인이란 이런 것
[김종훈의 자동차 페티시] 운전석에 앉는다. 스티어링 휠을 잡는다. 긴 숨을 들이마신다. 실내 공기를 만끽한다. 자동차는 굳이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즐길 부분이 많다. 가령 실내에 풍기는 고풍스러움. 스티어링 휠을 잡고 앉아 있는 그 모습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다. 재규어 XJ라면 그 느낌을 만끽하기에 적절하다. 클래식 XJ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지금,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그 XJ 말이다.
따지고 보면 실내는 현대적이다. 센터페시아에는 8인치 터치 디스플레이가 중심을 잡는다. 계기반은 고급 세단의 증표인 12.3인치 디스플레이로 표시한다. 네 가지 테마로 각기 다른 느낌을 표현하는 계기반이다. 현대적이다. 그런데 고풍스럽다. 신기한 일이다. 현대식 장비마저 그 안에 스며들 뭔가 있다는 뜻이다. 더 미래가 온다 해서 변하지 않을 성정이다.
이런 차, 드물다. 재규어 XJ에 앉을 때마다 느낀다. 물론 XJ가 유일한 건 아니다. 롤스로이스와 벤틀리가 있다. 하지만 둘은, 희소성과 가격이 저 하늘에 있다. 슈퍼카와 다른 방식으로 최고를 추구한다. 그래야 하는 차다. 하지만 재규어는, XJ는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 해서 더 인상적이다. 그 아래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자기 식대로 드러낸다.
고풍스러움은 단지 그런 디자인만을 말하진 않는다. 고풍스런 장식 같은 사소한 얘기가 아니다. 우선 그 모델이 쌓아온 역사가 필요하다. XJ는 1968년에 탄생했다. 커다란 그릴과 동그란 헤드램프 네 개가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 세단으로, 긴 세월을 군림해왔다. 그 사이 외형이 크게 변하지도 않았다. 시간을 이겨낸 디자인이었다. 그렇게 ‘헤리티지’를 구축했다.
물론 2000년대엔 XJ 디자인이 완전히 바뀌었다. 총괄 디자이너 이언 컬럼의 솜씨였다. 매끈한 선이 일품이었다. 싹 바뀌었지만 여전히 XJ의 기품은 놓치지 않았다. 여전히 커다란 그릴은 XJ의 중심을 잡는다. 동그란 헤드램프는 사라졌지만 네 개로 구획 나눈 헤드램프가 전통을 잇는다. 부분 변경 하면서 1968년 XJ와 디자인 요소를 밀접하게 접목했다. 그리고 비율 또한 그때 그 뉘앙스를 유지했다. 덕분에 (다른 방식으로) 이질적이지 않게 XJ를 계승했다.
외관의 힘은 위대하다. 긴 세월을 하나로 꿸 수 있는 힘이 있다. 재규어 XJ는 1968년 XJ를 2016년으로 소환했다. 차를 타기 전부터 이미 고풍스러움을 머릿속에 심은 거다. 그 상태로 운전석으로 이끈다. 현대적이지만 고풍스러운 실내는 그 감흥을 증폭한다. XJ가 고풍스러운 실내를 연출한 가장 큰 요소는 ‘어라운드 디자인’이다. 요트의 실내를 차용한 디자인의 힘.
사실 요새는 많은 차가 어라운드 디자인으로 실내를 구성한다. 재규어만의 특별한 디자인이라고 하긴 희소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같은 디자인이라도 솜씨의 차이는 있다. XJ는 확연히 드러난다. 왼쪽 도어에서 대시보드, 다시 오른쪽 도어까지 하나의 곡선이 감싼다. 둥그런 요트의 앞머리처럼 우아하다. 다른 차와는 그 완성도가 다르다.
그 곡선을 바라보며 스티어링 휠을 잡는다. 스티어링 휠은 우드 트림으로 장식돼 있다. 반은 우드 트림, 반은 가죽(모델 트림마다 다르긴 하지만). 같은 우드 트림이지만 XJ는 다른 자동차의 우드 트림 스티어링 휠과는 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요트의 조종석이야말로 나무가 원형 아니던가. 어라운드 디자인이 확장되는 지점이다.
장소는 다르지만 감각은 하나로 모인다. 바다를 가르며 유유하게 흘러가는 요트처럼 XJ도 큰 차체를 부드럽게 움직인다. 덕분에 정차할 때도, 달릴 때도 한결 여유롭다. 몇 가지 요소가 결합하며 요트의 조종석을 연상시키는 거다. 요트라는 단어가 지닌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끌어안으면서. XJ가 노린 디자인 콘셉트가 적중한다.
다른 요소도 있다. 자동차에는 다 있는 오디오 시스템마저 고풍스러움을 연출한다. XJ에는 메르디안 오디오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다른 고급 세단의 오디오 시스템 역시 유명 오디오 브랜드의 시스템을 장착한다. 그럼에도 XJ의 메르디안 오디오는 공간감이 뛰어나다. 섬세한 음을 널찍한 실내에 알맞게 배치한다. 특히 교향곡이 어울린다. 여러 음악을 바꿔 들으며 느낀 바다. 고풍스러워서 교향곡이 어울리는지, 교향곡이 어울려서 더 고풍스러운 건지 확실하진 않다. 하지만 일련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건 XJ만의 특징이다.
XJ의 고풍스러움은 다분히 심정적이다. 하지만 심정적인 면을 건드리지 못하는 고급 대형 세단은 매력이 떨어진다. 재규어 XJ의 고풍스러움에 탈 때마다 감탄하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