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 나누기 편집자 주 : 성기호 목사님과 서좌원 목사님의 선교사를 향한 사랑과 위로의 이야기를 격월로 연재합니다. 난을 키우다 보면 작은 어린 난이 원래의 큰 난초 옆 에서 자랍니다. 그런데 그냥 놓아두면 원래의 난도 모 양이 기형으로 변하고 새로 나오는 새끼 난도 비스듬 하게 자라게 됩니다. 이때 어린 난을 나누어 새로운 난으로 키우는 것을 ‘촉 나누기’라고 합니다. 촉은 난초의 개수를 세는 단위로 ‘포기’와 같은 뜻이며 순 우리말입니다. 새로운 난을 어미 난에서 분리할 때 주의가 필요합니 다. 그냥 손으로 어린 난을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감 염을 막기 위해 불을 통과한 소독된 칼로 조심스럽게 난의 뿌리 부분 또는 구근(球根, 알뿌리)의 일부를 단번에 잘라야 합니다. 그리고 어미 난이나 어린 난의 절단된 부분에 살균제 (또는 숯가루)를 발라 말립니다. 새 화분에 촉을 나눈 새 난을 심고 물을 충분히 준 후 약 2주 동안은 직사 광선을 피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를 다루듯 조심스레 난을 불려 가면 수고에 보답하듯 언젠가는 예쁜 꽃을 선보일 것입니다. 내가 생뚱맞게 난의 촉 나누기를 말하는 것은 나눔 을 통해 어미 난도 건강하게 키우고 새끼 난도 개체 수를 늘리는 식물학적 지식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닙 니다. 목회와 선교에서도 ‘촉 나누기’가 필요함을 말 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울의 어떤 교회는 신자의 숫자가 일정한 수준까지 증가하면 한 부분을 떼어 지교회를 설립합니다. 부목 사를 보내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되 재정적으로나 행 정적으로 완전히 독립하게 합니다. 그러나 지교회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선교비 지원과 함께 주일학교 교 사나 찬양팀을 파견하여 독립을 돕습니다. 모교회도 지교회(장차 독립 교회)도 함께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마치 난의 촉을 나 눔으로 어미 난과 새끼 난 모두 건강하게 자라는 것 과 같은 이치입니다. 서울에서만 아니라 지방에서 또 해외에서 이렇게 성장하는 교회들이 적지 않습니다. 선교지에서도 이와 같은 ‘촉 나누기’가 적용될 수 있 을 것입니다.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와 후원자들이 기 도와 함께 선교비를 지원하는데 선교사는 그들에게 보여줄 구체적 성과가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후원자들도 그런 성과를 기대할 것입니다. 그래서 계 속하여 사역의 범위를 넓혀갑니다. 그러나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선교사가 감당할 수 있 는 능력의 한계를 벗어납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무 리한 사역을 강행하다 보면 건강이 상하고 사역에도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촉 나누기’일 수 있습니다. 확장되어 가는 선교사역의 한 부분을 다른 선교사에 게 맡김으로 선교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 해결의 방 법이고 선교의 정석일 수 있습니다. 물론 적임자를 찾 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이룬 사역의 열매를 다른 이 와 나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가 모여들고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옹위하고자 할 때 조용히 그 자리를 피하셨습 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을 찾아 복음을 전하시며 하 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도 선교여행을 통해 설립한 교회를 얼마 동 안 돌보다가 믿음의 아들이라 불렀던 디모데나 디도 를 파송하여 양무리를 치게 했습니다. 선교 지평 넓히 기와 동역자의 필요성을 발견할 수 있는 모범입니다. 난의 촉을 나눔으로 개체 수가 늘어나고 모두 건강하 게 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역 현장이 국내든 해 외든 간에 사역의 범위를 넓혀가되 ‘촉 나눔’을 통해 건강과 아름다운 성장이 지속하기 기대합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린도전 서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