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정법원 내달 시범 실시]
이혼 원인 유형별 간략 표시, 상대방에 대한 비난 차단
증인진술서 제출도 최소화… 자녀 양육 논의에 집중시켜
'주관식 서술형'으로 쓰여 상대방에 대한 비난으로 채워졌던 이혼 소장(訴狀)이 새로운 갈등을 유발한다는 지적에 따라 법원이 혼인 파탄의 원인을 미리 제시하고 선택하게 하는 '객관식' 이혼 소장을 마련했다. 이혼 소장을 꾸미는 과정에서 상대방 약점 찾기와 헐뜯기에 치중한 나머지 배우자 사이가 더 악화돼 이후 자녀 양육 등에 나쁜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이다.
서울가정법원(법원장 최재형)은 이혼 소장과 답변서, 조정신청서 양식을 개선하는 등 새로운 가사소송 모델을 개발해 다음 달 1일부터 시범 실시에 들어간다고 24일 밝혔다. 가정법원은 이혼 소장의 청구 원인 기재 방식을 '배우자가 아닌 자와 동거·출산' '배우자 아닌 자와 성관계 등 기타 부정행위' '장기간 별거' '가출' '잦은 외박' 등 미리 제시된 항목 중 3∼4개를 고르도록 하는 '객관식'으로 바꿨다.
소장은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이 법원에 가장 먼저 제출하는 서류로 원·피고의 인적 사항과 어떠한 판결을 내려달라는 청구 취지, 소를 제기하는 이유인 청구 원인이 담겨야 한다. 이 중 핵심은 청구 원인이다. 당사자가 이혼을 원하는 이유가 담겨 있다.
우리 법원은 이혼소송에서 이른바 '유책주의(파탄에 책임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상대방이 원하는 이혼을 허락해주고 위자료를 인정하는 주의)'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상대에게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이혼 소장을 꾸며왔다. 혼수나 예단 등 결혼 과정에서부터 배우자와 그의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 가족에 대한 섭섭함까지 이혼 소장에 담았다. A4용지 10매 이상이 배우자 측을 헐뜯는 내용으로 채워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를 접한 상대 쪽에선 허위 과장이라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상대를 비판하는 내용의 답변 자료를 더 많이 준비하는 등 부부는 소송 과정에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소장과 답변서, 준비서면이 오가는 과정에서 배우자에 대한 비방의 정도는 더욱 심해지고 그 양도 늘어나 소장이 20페이지면, 답변서는 30페이지, 그에 대한 준비서면은 그 이상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은 소장에 청구 원인 작성 방식을 바꾸는 이외에도 기존 당사자 일방을 비난하는 데 악용됐던 가족들의 증인진술서는 최대한 제출을 삼가도록 했고, 오히려 자녀의 양육 사항에 대해서 자세히 밝히도록 의무화했다. 소송 전 교육·의료 등 자녀 양육을 담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등 기본 사항을 비롯해 양육비 지급, 면접 교섭권 등에 대한 배우자 간 협의 내용을 자세히 기재하도록 한 것이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이번 가사소송 모델은 가족 구성원의 갈등과 고통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출발을 지원하는 후견·복지적 기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해 12월 '가사사건 관리 모델 개발위원회'를 설치, 8개월여간 기존 사례를 검토하고 세계 각국의 가사재판제도를 연구했다. 지난달 18일에는 한국여성변호사회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공단 등 관련 기관과 협의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새로 도입되는 가사소송 모델은 일단 서울가정법원에서만 시범적으로 시행되지만, 시범 실시를 거쳐 개선점을 찾아 통일된 양식이 정착되면 전국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기사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25/20140825002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