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피로 물든 칠곡 산하
박기옥
내가 태어난 지 돌이 겨우 지나 6·25가 터졌다. 전쟁 전·후로 우리 가족은 큰 희생을 당했다. 아버지 사 형제 중,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사망하고 아버지는 두 차례나 보국대에 징발됐다. 충격을 받은 막내 삼촌은 정신을 놓은 채 고생하다 생을 마감했다. 가족과 국민의 슬픔이 스려있고 피로 물든 전장戰場을 찾아 그날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껴보리라. 인터넷을 뒤져 짜깁기 하는 것은 글쟁이의 덕목이 아니다. 참전 용사를 찾아 생생한 증언을 듣는 것이 울림이 클 터이다. 수소문한 끝에 전쟁에 참여한 두 분, 역전의 용사를 뵐 수 있었다.
치열하게 벌어진 다부전투에 참여한 '홍종철' 옹의 집에 들어섰다.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은 노부부가 반갑게 맞아준다. 커피를 내오는 할머니 손등의 정맥은 탄력 잃은 살가죽을 밀어내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등에서 돌아가신 어머님의 손을 만났다. 콧등이 시큰하다.
“어르신,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십시오. 어르신의 증언은 생생한 역사의 기록물이 될 것입니다.” 흐릿했던 옹의 눈동자에 생기가 돋아난다.
# 이야기 1. 홍종철 옹(지천면 금호리. 1929년생. 군번: 0102515. 다부전투 참전)
"이바구) 할라카마 밤새도록 해도 다할 수 없지러. 인민군이 해평·장천까지 밀고 왔다는 소문을 듣고 피난길에 올랐지. 그때 나이 스물한 살이었어. 피난처는 대구 북구 노곡동이야. 군인이 확성기를 통해
“우리 국군은 북한군을 물리치고 북진 중이다. 애국 청년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나설 때다.”‘확성기를 통해 전투 참여를 독려하는 가두방송이 분답게 울렸어.
"군에 가면 굶어 죽지는 않겠지. 생각하고 군에 지원했어."
“어르신, 그 뒤 어떻게 됐습니까?”
“대구 남산 초등학교에서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고 대구 농림고등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총 쏘는 걸 배웠지. 손재주가 뛰어나 기관총 분까이소제 는 내가 월등했니라. 기관총 사수가 됐어. 기관총 메고 댕기면 적의 표적이 된다는 소리 듣고 소총수로 기리까이 해돌라 켓지만 안 들어 주더라고. 다부고개 전투에 참여할 즈음, 전세가 유리했어. 막상 전투에 참여하니 엄청 떨렸어. 악에 받치니 자연적으로 겁은 사라지데. 도망가는 놈들을 향해 기관총을 신 나게 갈겨댔지.”
“다부 전투에서 가장 끔찍한 일을 꼽을 수 있다면요?”
“유학산 만대기4) 에서 석전까지 놈들을 추격했지. 능선과 골짜기에 시체가 즐비하게 깔린 기라. 먼저 죽은 시체는 이미 썩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체의 눈과 입에는 구더기가 득실거렸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더군. 냄새도 진동했고.”
“전황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요?”
“그 길로 사정없이 밀고 올라가 평북 ‘양미역’까지 치고 올라갔지. 날씨는 얼매나 춥던지. 오줌 누면 그대로 얼어붙었어. 눈이 펄펄 날리는 밤이면 고향 생각 많이 나데. 기적 소리가 우째 그렇게 가슴을 훑어내든지.”
“어르신, 위험한 전쟁터였지만, 아쉬운 점이나 재미난 일은 없었습니까?”
“김일성 대학과 수풍수력발전소 뿌수는 것이 목표였는데 모두 실패했어.” 미련이 남는지 입맛을 쩍쩍 다신다.
“우스개 이야기도 더러 했지. 당시 백선엽 1사단장 계급이 대령이고, 나는 까꾸레이 하나였어. 백 사단장이 한 해에 별 하나씩 더 달듯, 나 역시 갈매기 하나씩 더 달았어. 1956년, 까꾸레이 다섯 개 달고 제대할 때, 백 장군도 대장 됐어. 계급장 모양은 달랐지만, 꼭 같이 '다섯 계단' 올랐지. 백선엽이와 동급이라며 너스레를 떨곤했지.” 말씀을 하시는 중, 기분이 좋은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 이야기 2. 박삼돌(지천면 1930년생. 군번: 0109852. 가산지구 전투에 참전)
옹은 나이에 비해 건장했다. 손수 운전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셨다.
“어르신은 어느 전투에 참여하셨는지요?”
“나도 히야(홍종철 옹)와 같이 노곡동에 피난했어. 히야는 배고파 지원했지만, 나는 차출됐어. 도락구에 실려 동인동 어느 섬유공장에 집결했지. 1사단 본부가 동촌지서였어. 총 쏘는 것 겨우 배워 가산의 남창·북창 전투에 배치됐지. 내가 다부동에 들어갈 때는 인민군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어. 가산 전투에서 분대 요원 9명 중, 4명만 살아남았어. 그중 세 사람이 부상을 당했어. 한사람씩 업고 막사로 옮겼지. 그 공을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어.”은근히 자랑 친다.
“다부 고개에 '참전 용사비'에 내 이름은 없지만, '홍종철' 히야 이름은 얹혀 있어. 돌비에 자기 이름 새겨져 있다고 뻐기니 배 아푸다 아이가? 그러나 나는 ‘화랑무공훈장’ 출신이고 히야는 그저 ‘참전유공자’야. 내가 한 끗수 높은 편이지.” 두 역전 용사가 마주 보며 히죽이 웃는다. 은연 중, 기 싸움을 벌이는 두 분의 모습이 어린이처럼 천진스럽다.
“박朴주사, 6·25를 북침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카는데 사상이 꼬리한 사람 아이가? 우야든지 자라나는 학생들, 반공 교육 제대도 시키도록 해주소.”라는 말씀에 숙연해질 따름이다.
# 구국의 다리
‘구국의 다리’ 위에 섰다. 철교는 한 세기 동안 가살궂은 풍상에도 의연하다. ‘6·25 당시 폭파된 왜관철교 현 위치’란 현수막이 발목을 잡는다. 눈을 감고 그날을 회억한다. 적의 탱크가 강을 넘으면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고 임시정부가 있는 대구마저 위험하다. 적군은 탱크 앞·뒤로 피난민을 내세워 볼모로 잡았다. 교활한 심리전술이다. 왜관을 향해 검은 입을 벌린 괴물들이 꾸역꾸역 넘어온다. 일촉즉발, 위기 상황이다. “폭파해버려!” 굉음과 함께 낙동강에는 섬광이 번쩍인다. 수많은 사람의 팔다리가 날아가고, 침목이 날고, 철 구조물은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구국의 다리를 걷는다. 발아래 낙동강은 역사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흐른다. 역사의 현장을 보존코자 정부는 파괴된 다리를 새로이 보수하고 ‘호국의 다리’라 명명, 문화제 406호로 지정했다. 말끔하게 정비하는 것도 좋겠지만, 본 모습을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하는 것도 괜찮을 성 싶은데. 중국 ‘쓰촨성’ 지진은 수십만 명의 목숨을 하루아침에 앗아갔다. 전자는 인위적이었다면 후자는 자연 재해다. 몇 년 전 지진의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목격한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참혹했던 그곳을 오롯이 보전하여 ‘지진의 현장’으로 지정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정책임은 틀림없겠다. 우리도 배워야 할 일이다.
# 경천동지驚天動地할 관호리 융단폭격
구국의 다리를 건너 융단폭격을 감행한 관호리를 찾았다. 마을은 언제 그러한 일이 있었냐는 듯 마냥 평화롭다. 적의 전차 앞에 속수무책束手無策인 아군은 하늘 전쟁으로 맞섰을 것이다. 관련 자료에 의하면 B-29 전투기에 960톤의 포탄 세례를 퍼부었다. 1950년 8월 16일, 융단폭격한 이 날은 하늘은 크게 울고, 땅은 심하게 요동쳤다. 융단 펼치듯 포탄을 깔았으니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도망칠 수 없다는 작전이다. 전쟁사戰爭史는 공습할 시점에 적군은 벌써 낙동강을 넘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화력을 퍼부었다니 불가사의 한 일이다. 융단폭격의 전과戰果는 차치하고, 폭격 위용 자체가 적들을 주눅이 들게 했으리라. 이러한 사료를 접하면서 김진명 소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일리 있다.’ 라고 긍정의 마음을 갖는 것은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소설 속의 시나리오를 요약해본다. ‘독도를 구실삼아 일본은 우리의 기간산업을 초토화했다. 이를 응징코자 우리의 지도자는 강력한 미사일을 일본으로 날렸다. 미사일은 일본열도를 유유히 넘어 목표물인 무인도를 명중시켜 섬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는 내용처럼. 적이 이미 철수한 자리에 융단폭격, 무인도에 미사일 투하, 새겨봄직 하다.
# 최대의 격전지 유학산에 오르다
유학산 정상이다. 이곳이 다부전투의 최대 격전지다. 지금은 남북으로 도로가 시원하게 뚫렸지만, 당시는 트럭이 겨우 다녔다. 그 길을 따라 적의 전차는 다부고개를 향하여 육중한 쇳소리를 냈을 터다. 낙동강이 밀리면 왜관이 떨어지듯, 다부고개가 무너지면 대구가 무너진다. 국가의 존립이 이 전투에 달렸으니 얼마나 치열했겠는가. 낮에는 아군이 고지를 점령하고 밤에는 적군에게 뺏기는 밀고 밀리는 쟁탈전을 수십 차례 반복했다 하였느니.
“손들엇!” 나이 지긋한 일등 상사가 총을 겨누었다.
“살려 주시라요.” 앳된 얼굴에 목소리조차 여리다.
“몇 살이냐?”
“열다섯 살이라요.”인민군을 겨눈 일등 상사의 M-1의 총대가 가늘게 떨린다. 방아쇠를 건 검지에 지긋이 힘을 가한다. 일등상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땅!” 총알은 '피용' 허공을 날았다.
“살아서 돌아가라.” 노병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집에 두고 온 아들이 생각났으리라. 국군유해발군단의 감식으로는 ‘발굴한 유해 중, 15~17세 사이의 연령대가 14%에 달한다.’고 했다. 미뤄볼 때, 위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님을 입증한다.
유해발군단이 해마다 유해를 발굴한다. 어디 유학·수암산 뿐이랴. 전국 격전지에 발굴하지 못한 유해가 엄청 많을 것이다. 전사한 나의 작은아버지도 시신을 수습치 못해 국군묘지에 안장하지 못하고 ‘울산대공원충혼탑’에 ‘박한효’10) 란 이름 석 자만 쓸쓸하게 얹혀있다. 미국은 타국에서 희생된 8,000여 구의 유해를 발굴코자 국가력을 동원하는 것처럼 우리도 구천을 떠도는 고혼들을 수습하여 정성껏 모셔야 할 일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유학산, 누구의 주검을 밟고 있지나 않은지 송구스런 마음이다.
# 다부동 전적기념관
갖가지 조형물과 유물들, 6·25의 흔적이 나를 슬프게 한다. 다부전투는 55일 동안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이었다. 뺏고 뺏기는 처절한 싸움이었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는가. 조지훈의 시비를 만났다. 시인이 전장에서 목격한 참상을 글로 옮겼기에 더더욱 가슴이 먹먹하다.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다부고개에서 내려다본 유학산과 팔공산 자락에 선홍 단풍이 불타고 있다. 임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강산이 아름답게 보전되고 있을 터. 천평으로 이어지는 실개천의 물소리가 도란도란 정겹다. 그러나 핏빛으로 물든 그때의 그 개울은 꺼이꺼이 서럽게 울면서 흘렀으리. ‘구국 용사 충혼비’ 앞에서 옷깃 여미는 나의 손길이 가늘게 떨려온다.
(《수필문예》 제21집, 2022.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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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수필과 비평 등단
영남수필문학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수필과ㅂ평작가회의 회원.
수필문예회 회장, 경산문협 회장, (현)대구수필문예대학 학장.
대구수필문예대학 17기 수료.
제1회갓바위스토리텔링 최우수상, 제2회 매일신문시니어문학상 최우수상,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4회 수상, 경북문협작가상 수상.
수필집: 《고쳐 지은 제비집》, 《소금 세례》, 논픽션 소설: 《박사리의 핏빛 목소리》
pko305@hanmail. 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