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의 새로운 탄생”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보고 (2020년6월26일/ 한남희)
강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아이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소리를 따라 강줄기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강물을 따라 무엇인가가 떠내려온다,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시체다. 시체가 클로즈업 되면서 [시](Poetry)라는 제목과 함께 이창동감독의 영화는 시작된다.
이창동감독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중 한명으로 [초록물고기]로 데뷔한다. 이후,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의 영화를 만들어 각국 영화제에 출품해 각종 상을 수상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소설적 구성, 리얼리즘적 연출과 함께 메타포를 많이 사용하여 ‘문학적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초기 작품 [초록물고기], [박하사탕]에서는 한국의 역사를 통해 시대적 아픔을 연출하는 반면, [오아시스], [밀양], [시]등의 작품에서는 개인의 윤리와 사상을 통해서 바라본 사회의 아픔과 고통을 영화로 그려낸다. 이창동 감독의 5번째 영화인 [시]는 제63회 칸 국제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 2010년 최고의 화제작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66세의 여성이다. 주인공 미자(윤정희 분)는 고등학생 손자 종욱이와 함께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중풍환자인 강노인(김희라 분)을 돌보며, 국가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옷은 화려하지만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마치 소녀같다. 언젠가부터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가끔은 문장도 생각나지 않는다. 치매의 전조인 듯 보인다.
어느날, 성폭력의 피해자인 한 소녀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성폭력의 가해자 6명중의 한명이 다름아닌 손자인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다른 가해자 부모들과 피해 부모와의 합의를 위해 한 사람당 500만원씩 3,000만원을 합의금으로 주기로 결정하지만 500만원을 마련할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미자는 복잡한 마음으로 희진의 추모미사에 참석한다. 성당입구에 있는 희진의 추모사진을 가방에 넣고 괴로워하며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울부짖으며 손자인 종욱을 다그치지만, 종욱은 외할머니를 무시하며 회피한다. 미자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상실감에 빠진다. 치매증상이 더욱 깊어지는 듯 하다. 미자는 합의를 위해 자살한 희진의 엄마를 만나지만 치매로 인해 희진이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고 상처를 주는 말을 하게 된다. 잠시 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죄책감과 고통속에서 몸부린치던 미자는 자신의 몸을 강노인에게 내어준다. 미자는 강노인의 가족들에게서 500만원을 빌려 합의금을 마련한다. 미자는 종욱이와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와 종욱이의 손톱과 발톱을 깍아준다. 그날 밤, 종욱이와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 경찰이 찾아와 종욱이를 붙잡아간다. 미자는 경찰에게 붙잡혀가는 종욱이를 물끄러미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다음 날, 시 강좌 마지막 날이다. 시를 한번도 써본적이 없었던 미자는 한달 전에 주민자치센타에서 운영하는 “시”강좌에 등록했었다. “시”강좌가 끝나는 오늘 미자는 마침내 "시" 한편을 완성한다. 미자는 꽃다발과 함께 시 “아네스의 노래” 한 편을 교실에 남겨놓고 사라진다. 미자는 다리위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미자의 음성으로 시작된 시 낭송 “아네스의 노래”가 희진이의 목소리로 이어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창동 감독이 영화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단어와 문장도 잃어버리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66세의 주인공 미자(윤정희분)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희진이를 성으로 유린하고 죽음으로 몰고간 가해자인 종욱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듯하다. 가해자의 학부모들도 피해자 부모의 처절한 아픔과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돈으로만 사태를 수습하기에 여념이 없다. 세상도 피해자의 아픔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렇게 희진이의 자살은 잊혀져 가고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66세의 할머니, 미자는 시를 쓰기 위해 몸부림치며 번뇌한다. 죽어가는 도덕과 윤리와 책임을 끄집어낸다. 모두가 감추고 싶은 심연의 고통과 수치, 그리고 회피하고 싶은 책임들을 휘저어 수면위로 처절하게 드러낸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미자는 자신의 몸을 강노인에게 내어줌으로 희진이의 고통과 절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동안 잊어버리고 싶었던, 깊숙이 꽁꽁 숨겨놓았던, 자신의 상처와 고통속에서 몸부림친다. 미자와 희진이가 함께 절규한다. 하늘도 아파하며 눈물을 쏟아낸다. 그 눈물이 빗방울이 되어 아름다운 시로 탄생한다. 잊혀지고 죽어가던 시의 새로운 탄생이다. 66세 미자와 18세 희진이가 [아네스의 노래]가 되어 유유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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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영화속의 시(김용택시인)
시인이 말합니다.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과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여러분들은 사과를 본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사과를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사과를 제대로 보아야 해요. 사과를 다시 진짜로 살펴보세요. 그러면 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있을거예요. 마치 샘물이 고이는 것처럼요. 종이와 연필을 들고 그 순간을 기다리는 거예요. 흰종이의 여백. 순수한 가능성의 세계, 창조 이전의 세계, 시인에게는 그 순간이 좋아요. 그 깨끗한 종이에 연필을 올려 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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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써 봐야 돼요 쓰지 않으면 몰라요.
시를 쓴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찾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것, 일상의 삶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거예요.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냥 겉만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 가슴속에는 시를 품고 있어요.
시를 가둬두고 있는 거예요.
그걸 풀어주는거예요.
가슴속에 갇혀 있는 시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수 있도록...
시상은 언제 찾아와요?
시상을 얻으려고 해도 도무지 오지 않아요.
언제 시상이 오는지 알고 싶어요.
시상은 찾아오지 않아요.
내가 찾아가서 빌어야 해요.
사정을 해야 해요.
그래도 줄똥 말똥...
그게 얼마나 뒤대한 건데 함부로 주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막 찾아가서 사정을 해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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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를 보고 있다. 뭘보고 계세요? 피요, 붉은 피요
맨드라미의 꽃말이 무언지 알아요? 방패,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에요...
첫댓글 좋네요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