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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영웅 다섯분,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배고픔, 추위, 질병, 전쟁(외침),문맹(文盲) 등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반만년 우리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엄청난 고난과 역경으로부터 겨레를 구원한 다섯분의 위대한 영웅들이 계시다.
우리는 오늘 이 분들의 역정을 뒤돌아보고 이 풍요의 시대에 역사적 교훈을 찾고자 한다.
↪️다섯 분의 위대한 영웅들은 다음과 같다.
*️⃣1. 추위에서 백성을 구출한 <문익점>
우리말에 신세를 한탄하는 말로 “춥고 배고프다”와 편한 신세를 이르는 말로 “등 따습고 배부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수천년동안 우리 겨레는 추위에 떨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때도 지배층에서는 비단이나 虎皮(호피) 등으로 추위에 크게 노출되지 않고 살았지만, 대다수의 백성들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한 겨울에도 삼베옷이나 중간에 닭털이나 억새꽃을 넣어서 보온하는 정도로 그 어려움은 형언할 길이 없었다.
그런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했던분이 계셨으니 바로 고려말에 나타난 문익점 선생이시다.
문익점 선생은 고위 관료여서 자기 자신과 가족은 그리 큰어려움 없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목화씨를 중국에서 몰래 가져와 재배에 성공하여, 서민들이 솜 이불을 덮게하고 무명옷을 입게 하였다.
또한 재배기술과 목면 제조기술의 발전, 종자개량 등에서도 성공하여 백성들을 추위에서 해방시켰다.
문익점 선생은 백성들이 더 이상 겨울에 춥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목화씨를 붓뚜껑에 숨겨 들여 오는 결행을 함으로써 청사에 길이 남길 인물이 되셨으며
문익점 선생의 위대한 이유이다.
*️⃣2. 백성을 문맹에서 구출한 <세종대왕>
동물에게는 먹이만 주면 되기 때문에 사육한다고 하고 만물영장인 사람은 교육을 통하여 정상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양육된다고 한다.
유대인 세계에서는 스승은 부모 이상으로 존경을 받는다.
우리 역사상 임금중 최고는 바로 조선의 세종대왕이라는데 異說이 없다.
또한 그분의 가장 빛나는 업적이 바로 한글 창제이다.
한글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유산이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한글은 14개의 자음 과 10개 모음으로 구성되었으며 무려 8,800 여개의 소리와 문자를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어는 300여개, 중국어는 400여개 정도에 불과하다.
유네스코는 1989년 도 세종대왕상을 만들어 세계 문맹퇴치에 공로가 큰 사람들에게 수여하고 있으니 이로써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과 한글의 우수성이 충분히 입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겠다.
그러나 창제 당시에 이러한 한글 창제에 대한 반대 여론도 심각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다 한다.
바로 기득권층의 한글창제 반대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국의 글인 한자를 제쳐놓고 우리의 글을 만든다는 것은 명나라에 대한 事大사상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있었고, 또 하나는 서민들이 글을 깨우치면 글을 아는 양반들의 기득권이 무너진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지혜롭지 못한 지식인들의 폐혜는 보통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다.
*️⃣3. 질병으로 부터 민족을 구출한 <허준선생>
허준은 타고난 명의이다.
자기의 의술을 동의보감이라는 필생의 역작에 담아서 이를 후대에 전하였기에 그의 공로는 단순히 대단하다는 말로는 절대 부족하다.
동의보감은 우리나라 한방 발전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쳤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간행될 만큼 높이 평가되고 있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에서는 조선의 편작이요 창공이라 극찬하였고, 중국에서도 천하의 보물이라고 칭송하였다.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한 강한 사명감으로 생의 마지막 시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25권에 이르는 전대 미문의 대작을 완성하였다.
이 동의보감은 현재 국보 319호로 지정되어 있고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허준은 선조의 사망에 따른 유배지에서 동의 보감을 집대성하였고, 정약용은 정조의 사망 이후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 (신유사옥) 18년간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실학(목민심서 * 흠흠신서 * 경세유포 등)을 집대성하는 기회로 활용하였다.
이와같이 위기란 위험을 잘 극복하면 기회가 된다는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4.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
우리나라 역사상 외적의 침입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가장 오랜기간, 그것도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었던 대표적인 전쟁은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시 워낙 나약했고 도망가기 바빳던 선조와 국가적 위기 상황을 제대로 간언과 대책을 세우지도 못했고 당파의 이익에만 몰두하였던 신하들과, 그리고 제대로 훈련된 군대가 없었던 위기 상황에서 당시 동아시아 최강의 군대인 왜군을 맞이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내셨던 분이 바로 이순신 장군 이시다.
이 위대한 영웅은 선조의 끊임없는 의심과 견제, 부하 장수 원균의 지속적인 음해와 시기 등으로 세번의 파직과 두번의 백의종군 그리고 옥살이까지 감내하였다.
그리고 어디하나 원조 받을 곳이 없는 암울 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23전 23승 의 신화를 이룩하였으니 세계 해전사상 전무후무한 불멸의 전설로 남아있다.
그래서 일부 역사 학자들은 난세에 이순신 같은 영웅이 태어난 것이 아니고 하늘이 조선을 불쌍히 여겨 이순신 같은 불세출의 영웅을 미리 준비하였다가 때에 맞추어 보내주신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등장한 거북선은 나대용장군 이 임진 왜란 발발 하루 전에 완성한 작품이다.
*️⃣5. 배고픔을 탈피한 <박정희 대통령>
필자도 소령이 된후 박정희에 대한 위대한 업적을 깨닫게 되었고 예편후 안보 분야를 집중 연구한 후부터 비로소 박정희=위대한 영도자로 존경하게 되었다.
필자는
대통령 평가항목 5대요소를,
위기관리 능력, 정치력, 경제발전 성과, 인재 등용 및 도덕성 등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배고픔보다 더 서글픈 고통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식량 과잉시대 이니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1960년대 까지만 해도 배고픔은 단군 조선이래 1960년대 까지 이어온 우리 겨레의 가장 큰 고난 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반만년 역사적 과제를 해결해 주신분이 바로 박정희 前대통령이시다.
서양의 산업화는 평균 200년이 걸려 완성 되었고 일본은 100년 이 소요되었으나 우리나라는 불과 30년 만에 (1960~1990) 이뤄낸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업적이다.
영국산업혁명 (1760~1840)기간 평균경제 성장률은 3~4%이었으나,
박정희 재임기간 평균 경제성장률 은 10% 대 였다.
미국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20세기 진정한 혁명가는 오직 박정희 대통령 뿐이었다고 회고했고 중요한 것은 경제가 발전되어야 민주주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 은 재임중 개발독재를 선택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분이 이룩한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발전 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화에 크게 기여 했다는 평가는 주지의 사실이다.
🦚위의 다섯 분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하신 영웅 이시요
그 시대의 주인공들 입니다.
~~~♡♡♡~~~
🔊 6.25 전쟁사:
♡맥아더 장군과, 신 동수(辛東秀)일등병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희생하신 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그 유족들에게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우리 모두가 보훈가족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 하시기를 바라며~^”
🌱"6월은 호국보훈의 달" 나라를 구한 용사 이야기 하나 소개 합니다.🌱
6.25 전쟁의 승리는 별을 단 내로라는 유명 장군들의 훈장이 아니라, 벙커(bunke)를 "목숨을 걸고 사수했던 말단의 한 일등병 병사였어야 한다"라는 실제 이야기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전황 파악차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벙커를 지키고 있는 어느 한국 말단병사를 우연히 만나 이렇게 물었습니다.
맥아더 :
"전세가 이렇게 밀리고 있는데 당신들은 왜 도망가지 안느냐?"
한국병사 :
"후퇴하라는 명령은 없었습니다."
감동한 맥아더 :
"지금 내가 들어줄수 있는 소원을 하나 말하라. 들어 주겠다."
한국병사 :
"충분한 실탄과 총을 지원해 주십시오."
자신을 이 벙커에서 빼달라는 대답을 예상했던 맥아더에게 이 한국군 병사의 뜻밖의 말은 충격적이고 감동이었습니다.
이 말단 병사의 말 한마디에 감동한 맥아더는 막사로 돌아와 즉시 이렇게 지시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전력을 다해 이 나라 (대한한국)를 지켜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 말 한마디에
인천상륙작전은 재빠르게 속도전으로 바꿔 진행되었고,
수만명의 미국병사가 한국을 위해 전사 해야만 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건간에
다른 나라가 한 나라를 위해 수만명이 죽었다는건,
미국 역사의 기록은 물론 한국 역사상에도 전례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과 한국은 혈맹 보다 더 진한 우정 으로 맺어준 인연이 되게 한 게 바로 6.25전쟁이란 겁니다.
그런데, 이 일화는 사실일까요?
사실입니다.
2006년 취재 기자 허영한이 취재한 내용 입니다.
이 일화의 주인공은 학도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해서 상처를 입어 다리까지 절단된 "고 신동수(辛東秀) 일등병" 이야기 입니다.
맥아더 :
“병사! 다른 부대는 다 후퇴했는데, 자네는 왜 여기를 지키고 있는가?”
병사 :
"저는 군인입니다. 상관의 명령 없이는 절대 후퇴하지 않는 게 군인 입니다.
철수 명령이 있기 전까지 죽어도 여기서 죽고, 살아도 여기서 살 겁니다.”
1950년 6월 29일, 당시 스무살의 한 일등병은 서울 영등포에 있던 진지(陣地) 에서 맥아더 미 극동군 사령관과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전쟁이 터진지 나흘째, 이미 한강 이북은 인민군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습니다.
그곳은 남한의 부대가 마지막까지 버티던 한강 방어선이었고
맥아더 장군은 도쿄에서 날아와 전황을 돌아보던 참이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군인이다.
내가 일본으로 건너가면 즉시 지원군을 보내 주겠다.”
이 군인에게 감동 받은 맥아더 장군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속대로 맥아더장군은, 곧바로 한국전 참전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관계자는,
“맥아더 장군이 당시 한국군 병사의 말에 감동을 받아 참전을 결심했다는 사실은
참전장성 회고록 등 여러 문서에서 확인된다”고 말했습니다.
수십년째 묻혀져 있던 이 일등병의 존재가 최근 밝혀졌습니다.
신동수(辛東秀·77, 2006년 취시 나이) 옹 입니다.
그를 찾아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으로 향했습니다.
“이렇게 멀리 오게 해서 어쩌나.
다리가 이래서….”
그는 왼쪽다리를 절었습니다.
양말에 가려졌지만, 한눈에도 의족(義足) 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쁨인지, 고통인지 모를 옛 전투이야기를 시작하자, 신옹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했습니다.
그가 속한 부대는 백골부대 18연대 1대대 3중대 였습니다.
6월 29일 이들은 영등포구 양화동의 인공폭포공원 인근에 진지를 편성해 놓고 있었습니다.
다른 대대는 물론 같은 대대 다른중대도 후퇴 해버린 외로운 싸움 이었습니다.
사흘째 굶고 있던 그때였습니다.
“4명이 지프에서 내리더라고. 처음에는 소련군인줄 알고 쏘아 죽이려고 방커에서 쫓아나갔어요.
하지만 정모의 마크가 소련군 것과 다른데...
통역이 그분이 사령관 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사령관이 뭐인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대화가 끝난 후 맥아더 장군은 그에게 연막탄 2개와 대공 표지판을 선물로 줬습니다.
그리곤 곧 그는 잊어 버렸다고 합니다.
노량진과 영등포까지 진격한 인민군의 총포가 시시각각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머릿속에는 오로지 적을 무찌르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 이었으니까요.” 라고 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돌아간 이후에도 그는 사흘을 더 버텼습니다.
“결국 후퇴명령을 받았습니다.
중대원들에게 명령을 전달하며 미친 듯이 돌아 다니고 있었죠.
갑자기 다리가 오그라들더니 펴지질 않더라고요.
그러고도 150m를 뛰었어요.
살기 위해 아무집이나 찾아가 부엌 아궁이에 숨었는데,
착한 주인이 온몸을 닦아주고 빨간 헝겊을 찢어서 군 치료소에 데리고 가주더군요.”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총탄에 맞은 다리를 치료받지 못했습니다.
무릎에선 구더기까지 나왔습니다.
결국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다리를 절며 절며 찾아간 강원도 춘천.
하지만 남동생은 형을 찾으러 가겠다며 인민군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못 만난 세월이 무려 56년이 됐습니다.
당시 100여 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7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7일 동안의 처절한 혈전 덕분에 인민군의 서울 함락은늦어졌고,
지연전을 위한 재편성, 유엔군의 조기 전선투입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그의 잘린 다리가 나라를 구한것입니다.
“6월 25일만 가까워오면 내가 묻어준 동료들,
내 앞에서 죽어간 동료들이 떠올라요. 군번도 없이 죽어간 전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어떻게 지킨나라인데..
지금 우리 젊은이들이 그걸 알고 있나요?”
그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습니다.
이나라의 공산화를 막고 자유가 있는 세상에 살라고 산화하신 미군과,
우릴 도우러 온 많은 외국군인들, 한국의 순국용사님들 이시여..!!!
그분들의 후손들께 감사드립니다.
자유의 소중함을 깨닳는시간 되시길~♡😓.
받은글편집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