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8 강, 자꾸 눈물이 난다.
현재 시각 2002년 6월 19일(수) 낮 12시 51분! 지금 나는 손수건으로 계속 눈물을 닦고 있다. 출근하여 9시 20분부터 10시 30분까지 기말고사 감독을 하고 나온 후로는 계속 인터넷의 축구 사이트만 돌아다니며 어제 축구에 관한 기사와 네티즌들의 글을 찾아 읽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전주에서, 울산에서, 대전에서, 수원에서 그리고 미국,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중국에서 교포와 유학생들이 올린, 내용은 다 똑같은 글 - 대∼한민국! 나는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 - 을 읽고 또 읽으며 주책스럽게도 울고 또 울고 있는 것이다. 속으로는 ‘나도 이제 늙었나 봐. 나 같이 냉정하고 또 평소 스포츠에 관심도 없던 넘이 웬 눈물이냐? 그래도 혼자 있으니 다행이네. 남들이 보면 뭐라 하겠어?’ 하면서 말이다.
또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시험 감독만은 별일 없이 치러냈다는 것이다. 사실 학생들에게는 좀 미안하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 시험 시간이 그렇게 잡혔단 말이냐? 시험 감독을 하는 나도 잠을 설쳐 비몽사몽인데, 하물며 시험을 보아야 하는 우리 젊은 청춘들은 어떻겠는가? 선생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어제 같은 날 시험공부 하겠다고 책상머리에 붙어있는 넘이 이상한 넘이다. 내가 그나마 좀 이성적인 편이어서 얼른 정신을 가다듬었기에 망정이지, 잠을 못 자 몽롱한 상태에서 그때 기분대로 떠들어댔다면 뒷일이 복잡해질 뻔했다.
시험감독 들어가서,
“여러분, 어제 응원하느라고 수고들 많았습니다. 시험공부를 못 한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은 축제의 날입니다. 다 같이 응원이나 한 번 하는 것으로 시험을 대신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그리고 성적은 모두 A+입니다. 이의 있습니까?”
하는 소리가 목까지 올라왔던 것이다.
이제 어제 이야기 좀 하자. 우리는 이탈리아에 2 대 1로 역전승하여 월드컵 8 강에 진출했다. 전반전에 1 점을 먼저 내준 후 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을 때까지 전국민의 애간장을 녹이더니, 연장전 후반에 들어가서는 골든골로 마치 미리 시나리오라도 써 놓은 듯이 극적인 승리를 엮어냈던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집에서 TV로 보았다. 같이 본 사람은 아내와 우리 아이들 4 명, 그리고 옆 집 아이 한 명까지 총 7 명이었다. 시작 전부터 초등학교 2 학년 선빈이는 싸인펜으로 제 얼굴에 태극기를 그리고는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하며 분위기를 돋우었고, 그런 오빠가 부러운 유치원생 선형이와 그 친구인 옆집 딸내미는 나를 졸라 어깨와 양 볼에 태극기를 그려놓고 있었다.
(옆집 애가 우리 집에 있게 된 까닭은 마침 그 애 엄마가 야근이었고, 아빠와 삼촌은 제각각 친구들과 축구 본다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새벽 1 시에야 아이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와서 데려갔다.)
아내와 나는 아직 5 개월도 안 된 선린이를 어떻게든 시작 전에 재우려고 번갈아 가며 안고 달랬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아기를 안고 TV를 볼 수밖에 없었다. 왜 내가 선린이를 맡았느냐 하면 지난 번 포르투갈과 경기 때도 선린이가 자지 않아 아내가 안고 있었는데, 우리가 후반에 골을 성공시키자 아내가 얼마나 날뛰며 소리를 질러댔던지 선린이가 놀라 경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저녁 8시 30분,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넘들이 우리를 많이 연구했는지 시작하자마자 미드필드에서부터 수비를 펼쳐 우리가 좀처럼 파고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선수들은 긴장을 많이 했는지 몸놀림이 전 같지 않게 굳어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신체 조건까지 우리보다 월등한 이탈리아 넘들은 짬만 나면 교묘하게 우리 선수들을 손으로, 팔꿈치로 후려 팼다.
그 꼴을 보면서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는데, 안정환까지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곧바로 이탈리아 비에리의 해딩골로 실점을 한다. 아직은 괜찮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그러나 그 상태 그대로 전반전이 끝나고 또 후반전이 시작돼도 한동안 스코어에는 변화가 없다. 선우는 속이 상해서 방에 들어가 버리고 선빈이는 오히려 ‘대∼한민국’ 하며 더 열렬히 응원한다. 이런 것에서도 두 아들 넘의 성격 차이가 드러난다.
이제는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로스타임까지 해도 남은 시간은 5 분 남짓이다. 이것으로 끝인가? 이게 우리들의 한계인가? 혹시 오늘 낮에 일본이 터키에게 지는 것을 보고 고소해했는데, 마음을 못되게 썼다고 우리도 이런 건가? 바로 그때 그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나는 아기를 안고 있어 바로 환호할 수도 없었다. 혹시 오프사이드는 아니었는지, 파울이 있지는 않았는지까지 다시 확인하고, 슬로모션을 통해 그 영웅이 설기현이었음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있었다. 벌써 아내는 또 날뛰고 있다. 그것 봐, 선린이를 내가 안고 있기를 잘 했지! 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선우까지 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깡총깡총 뛰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왜 또 주책없이 눈물이 나려 하는지. 그래, 됐다. 이런 페이스라면 연장전에서는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어, 그런데 연장전 전반 15분이 지나고 후반전이 시작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골이 안 난다. 이러면 곤란한데. 승부차기에서는 아무래도 체격도 좋고 일류 무대에서 뛴 경험이 많은 이탈리아 넘들이 나을 것 같은데.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중에 결국 안정환이, 우리 안정환이가 해 낸 것이다. 미국 전에서 동점골을 넣었을 때와 너무도 똑같이, 절묘한 해딩으로 이탈리아 골문 오른쪽 모서리에 골을 꽂아 넣어 경기를 끝내 버린 것이다. 또 한바탕 난리! 이번에는 우리집 뿐 아니라 아파트 전체가 흔들거리고 단지 전체에 ‘대∼한민국’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우리도 얼른 창으로 달려갔다. 집집마다 사람들이 베란다에 나와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누군가는 북을 두드려대고 누군가는 만세를 부른다.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창밖으로 얼마나 ‘대∼한민국’을 외쳐댔는지 목이 쉰 선우가 피자를 주문해도 되냐고 물어 가장 큰 것으로 시키라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배달 시간이 끝났단다. 그렇다면 내가 빵을 사다 주겠다. 나도 술을 좀 마셔야겠고. 동네 슈퍼에 가니 평소 같으면 벌써 문을 닫았을 시각인데도 주인 아저씨가 혼자 벌건 얼굴로,
“내 원칙이 일 할 때는 술을 안 마시는 건데, 연장전에 들어가니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 한 잔 했습니다.”
하며 묻지도 않는 말을 한다. 맥주 세 병과 마른 오징어까지 한 마리 챙긴 후 바로 제과점으로 간다. 그리고는 정도 이상으로 많은 빵을 주어 담는다. 그런데 빵집 아저씨는 거기다가 빵을 더 얹어준다.
“어, 나는 그만큼 필요 없는데....”,
“아니에요. 그냥 가져가세요. 이런 날은 서비스로 여기 있는 빵을 다 드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 동안도 아파트 단지에서는 계속 ‘대∼한민국’ 소리가 메아리치고, 밤거리에는 붉은 악마 T 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다.
아, 나도 집에서 혼자 술 마실 것이 아니라 저 분위기에 한번 젖어봐야겠다. 이런 건 아이들에게도 보여주는 게 좋겠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전 가족을 재촉하여 내 차에 태운다. 아내도 신바람을 내면서 아기까지 들쳐매고 따라나선다. 그리고는 우리 동네 번화가인 댓거리 - 여기는 마산의 남쪽 - 로 나간다. 예상대로 온 거리는 붉은 옷에 태극기를 둘러맨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다. 앞뒤 차들은 ‘대∼한민국’의 박자에 맞춰 경적을 ‘빵빵∼빵 빵빵’ 울려댄다. 뒷좌석에 타고 있는 아이들은 “아빠도 얼른 빵빵 하세요.” 하고 조른다. 나잇살이나 먹고 명색이 선생이라는 자가 그러려니 잠시 망설여진다. 아이들은 계속 재촉한다. 그래, 까짓 거 해보자.
생전 경적을 울려 본 적이 없는 나도 ‘정말 소리가 나긴 나나?’ 하면서 한번 눌러 본다. 내 차에서도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한번 하고 나니 그 다음은 쉽다. 길가의 젊은이들이 ‘대∼한민국!’ 하기에 나도 경적으로 ‘빵빵∼빵 빵빵’ 응답을 한다. 젊은이들은 내 쪽을 보며 손을 흔들면서 더욱 큰 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친다. 옆으로는 태극기를 높이 단 폭주족들이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달려간다. 평소 같으면 욕을 했을 텐데 지금은 웬일인지 그 넘들도 예뻐 보인다. 길거리에서 목청껏 소리쳐대고 있는 모든 넘들이 다 예쁘다.
내가 지금 미쳤나? 보통 때와 다른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 내가 집단 분위기에 휩쓸린 건가, 그런 걸 평소에 그리 혐오했으면서? 그렇다. 변명하지 말자. 지금은 확실히 그렇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에게 대한민국 사람의 열정과 나의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 나도 보지 못한 3․1 만세 이후로 이런 일은 처음일 것이며, 앞으로도 한 동안은 이런 기회가 다시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1919년 만세 때와 같은 설움 섞인 외침이 아니지 않은가? 설움은커녕 환희와 감격이 아닌가? 정녕 오늘 이전에 우리에게 이런 일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렇다면 오늘은 마냥 기뻐해 보자. 어떤 토도 달지 말고 그냥 기뻐하기만 하자. 나는 가족을 태우고 시내를 몇 바퀴 빙빙 돌았다, 계속 빵빵대면서. 그러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귀가하였다.
내일 아침 학교에 가야하는 아들들은 곧 잠이 들고, 딸과 옆집 아이는 그 집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더 놀고 있었으며, 나는 TV에서 골인 장면을 보고 또 보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옆집 아이도 집에 가고 우리 딸도 아빠에게 뽀뽀하고 자러 들어가고 아내마저 잠자리에 들고 난 후에도 한참을 더 혼자 TV를 보며 술을 마시다가 더 마실 술이 없어서야 언젠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우리가 이탈리아를 꺾고 월드컵 8 강에 오른 날 밤을 나는 그렇게 보냈다.
여러분도 아마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다시 한번 목청껏 외쳐보자.
대∼한민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2002. 6.19.)
(경남대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