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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23일, 성령강림절]
[*. 성경, 찬송가를 준비합니다.]
*.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2021년 5월 23일, 성령강림절입니다. 함께 인사 나누고 예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
예수님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
성령님 안녕하세요, 평안합니다. ~
*. 다 함께 조용한 기도를 함으로 성령강림절 주일예배를 시작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켜 주시고, 오늘 거룩한 주일 맞이하여 예배 가운데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님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의 예배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 받아 주시고,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이 사함을 얻게 하시고,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힘과 능력과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옵소서. 예배의 처음부터 나중까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였습니다. 아멘.
*. 찬송가 42장 (거룩한 주님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성시교독은 시편 104:24~34절입니다. 한 절씩 교독합니다. (성경)
24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25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26 그 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27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28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31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32 그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을 만지신즉 연기가 나는도다
33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34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 함께 기도합니다. (어거스틴, Augustine of Hippo)
(실시간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신 분을 위한 기도문입니다)
성령님, 내 안에서 호흡하셔서
내가 거룩한 것을 생각하게 하소서.
성령님, 나를 감동시키셔서
내가 거룩한 일을 행하게 하소서.
성령님, 내 마음을 이끄셔서
내가 거룩한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성령님, 나를 강하게 하셔서
내가 거룩한 것을 보호하게 하소서.
성령님, 나를 보호하셔서
내가 거룩한 것을 간직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오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5:26~27, 16:4~15절입니다. (성경)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 특별 찬양 – 185장 (이 기쁜 소식을)]
*. 말씀 선포: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1. 들어가는 말
오늘은 성령 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약속해 주신 보혜사 성령의 강림을 말합니다. 오늘 나눌 말씀의 핵심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는 말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정죄하지 말라’는 성령의 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 본문
본문을 잠시 살펴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을 증언합니다(15:26).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증언합니다(15:27). 우리들도 그리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증언할지 걱정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어떻게 증언할지 주님께서 기억나게 하십니다(16:4).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떠나가시려고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걱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위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셔야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16:7). 사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는 이미 성령을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십니다(16:8). 죄에 대하여는 예수님을 믿지않는 것이고, 의에 대하여는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셔서 다시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고, 심판에 대하여는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9-11). 무슨 뜻이지요? 이 내용을 이해함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님께서 일러주실 말씀,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말씀들은 성령께서 오셔서 말씀해 주실 것인데, 단지 성령은, 1)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2) 장래 일을 알려주시며, 3)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16:12-15)이라는 것입니다.
3. 삼위일체(三位一體) 내 성령의 법(法)
성부하나님께서는 신(神)으로 존재하시고 신성(神性)을 갖고 계십니다. 성자하나님께서는 인간(人間)으로 존재하시고 인성(人性)을 갖고 계십니다. 성령하나님께서는 영(靈)으로 존재하시고 영성(靈性)을 갖고 계십니다. 삼위가 한 몸이라는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신(神)이시기도 하고, 인간(人間)이시기도 하고, 영(靈)이시기도 합니다.
법(法)으로 말하면, 성부 하나님의 법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입니다. 성자 하나님의 법은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성령하나님의 법은 ‘정죄하지 말라’(로마서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입니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도 쉬운 법은 아닙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지 말라는, 그러나 그렇게 구별하는, 법을 주시니, 성부 하나님의 법은 참 어렵습니다. 신(神)의 법이니 쉽지는 않겠지요. 사랑하지 않는 자의 뜻을 가진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자 하나님의 인간(人間)의 법이나, 모든 판단 속에서 질서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정죄(定罪)하지 말라’는 성령 하나님의 영(靈)의 법 또한 쉽게 지킬 수 있는 법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법의 지평에서만 우리는 오늘 본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삼위일체가 한 몸을 이루듯 위의 세 법은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같은 의미, 같은 지향점을 갖고 있으나, 삼위의 존재 방식에 따라 그 표현이 다르게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강림절을 맞아, 성령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봅니다. ‘정죄하지 말라!’입니다.
4.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는 우리의 선교적 사명을 일깨운, 다시 말하면 ‘우리의 할 일’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담긴 말씀은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성령께서 하시는 일’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즉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의 법은 ‘정죄하지 말라’입니다. 이 법을 먼저 새기지 못하면 오늘 본문 말씀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은 죄와 의를 심판하는 세상의 임금을 심판하는 성령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8절부터 11절까지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그가(성령)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죄(罪)는 (행위, 느낌, 생각 등에 있어서) 해야 할 것을 마땅히 하지 않는 것 혹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마땅히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의(義)는 (행위, 느낌, 생각 등에 있어서) 해야 할 것은 마땅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마땅히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審判)은 그 둘, 곧 해야 할 것(혹은 한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혹은 하지 않은 것)을 심판하여 죄와 의를 정하는 것이고, 그 심판의 최종자는 (세상에서는) 임금이 됩니다. 심판의 최종자가 임금이기 때문에 임금을 심판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조금 더 들어가 봅니다.
첫째, 죄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행한 것 혹은 해야 할 일을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죄입니다. 종교는 여기에 생각까지 덧붙입니다. 즉, 하지 말아야 할 일뿐만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생각(혹은 해야할 일뿐만 아니라 해야 할 생각)까지 죄에 속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시기 때문입니다. (ref. 사무엘상 16:7b, “…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더 나아가, 무의식 중에도, 하지 말아야 할 일(생각)을 행한 것이나 혹은 해야 할 일(생각)을 행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죄가 됩니다. (꿈 속에서 짓는 죄도 죄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법은 정죄(定罪), 곧 ‘죄라고 하지 말아라’고 말씀해 줍니다. 무슨 뜻일까요?
십계명의 5-10계명,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사기), 이웃의 집을 탐내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으로 세상이 이미 죄라고 정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합리적 벌을 내리고 있음을 봅니다. 굳이 신앙적인 측면에서 ‘죄’라고 따로 정죄하지 않아도 세상은 이미 이들을 ‘죄 있다’ 정죄하고 그에 따른 벌을 내리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측면에서의 벌도 벌입니다). 군 의무복역이나 내야하는 세금 등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세상은 이미 죄라고 정해 놓고, 행하지 않을 경우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고 있습니다. 굳이 교회(신앙)가 죄라고 정죄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십계명의 5-10계명이 있는 까닭은 당시 사회가 신정국가(神政國家)이기 때문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사회 질서를 잡는 국가라는 뜻입니다. 신정국가가 아니라면 1-4계명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무의식 중이든 아니든 간에)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을 하는 것’ 혹은 해야 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정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세상에 죄 안 짓는 사람이 없겠지요. 혹 큰 깨달음이 있어 그런 죄조차 안 짓는다고 해도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과거에 지은 죄에서 벗어날 사람이 있겠습니까? ‘죄 있다’라고 정죄하는 것이 무의미해지고 맙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태복음5:28)”는 예수님의 말씀은 사실상 정죄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맙니다.]
사실, 죄와 의라는 거의 모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남의 여인과 잠을 자는 것이 간통으로 지탄을(죄, 罪) 받지만, 불과 2-300년 전만 해도 알래스카에서는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부인을 잠자리를 내어주곤(의, 義) 했습니다. 고립된 마을의 근친상간을 피하고 우등한 유전자를 얻기 위한 옛날 분들의 고육책이었다고 하지요. 또한 지금이야 일부일처제이지만,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 등의 제도는 당시 사회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어서, 예를 들면, 전쟁으로 인해 남자가 여자의 반수도 안되는 상황에서, 일부다처제를 죄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실상 죄라는 것 혹은 의라고 하는 것은 당시의 사회상에 근거할 뿐입니다. 영원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죄’와 ‘의’를 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곧 영원이라는 의미에서, 성령은 죄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9절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예수를 믿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긋나면 죄가 됩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지요. 여기서 그냥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야’ 그러면 죄가 없고, ‘나는 예수 안 믿어’하면 죄가 있는 그런 뜻으로 읽어서는 안됩니다. 지평으로 읽어야 합니다. 과연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 지평은 무슨 뜻일까요? 최소한 그분의 가르침을 믿고 따름이 ‘믿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의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10절입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의(義)라고 하는 것은 죄(罪)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죄인이 있으면 의인이 있지요. 의는 ‘해야 할 일은 마땅히 행하는 것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마땅히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이 의(義)라 여기는 것은 행위에 국한해서이지만, 신앙적인 측면에서는 행위뿐만 아니라, 의식 혹은 무의식에서의 생각이나 느낌 등이 포함됩니다.
정죄하지 않는 것이 성령의 법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의롭다’라고 하는 정의(定義) 역시 성령의 법에서는 어긋납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혹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의(義)도, 죄와 마찬가지로, 시간 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입니다. 때로 의(義)가 죄가 되고, 죄(罪)가 의가 됩니다. 죄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의도 없습니다. [*. 부아와 십브라의 거짓은 의로 인정받았습니다. (ref. 출애굽기 1:15~22) 그러나 아나니야와 삽비라의 거짓은 죄(罪)가 되었습니다. 같은 거짓이 어떤 경우는 의로, 어떤 경우는 죄가 되었습니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의 거짓은 의(義)가 되었고, 하나님의 사람의 의(義)는 거짓이 되었습니다(ref. 열왕기상 13장)]
그런 의미에서, 곧 영원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성령은 의(義)라고 하는 것은 다만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으로 인해 다시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이는 것은 사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런 것이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의입니다. 요한복음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성령은 우리로 보지않고 믿는 것을 의(義)라고 말씀해 줍니다. 의(義)를 이루려면, “보지않고 믿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보임에도 지키지(믿지) 않은 맏아들은 죄를 얻었고, 보이지 않음에도 지켰던(믿었던) 둘째 아들은 의를 얻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1:28-31a,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셋째, 심판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11절입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심판은 옳고 그름을, 즉 의와 죄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임금은 최종 심판자입니다. 모든 결정의 최종 판단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일하게 심판을 받지않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요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아니지만, 옛날 임금은 법 위에 존재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 성령이 말씀하시는 심판이 됩니다. 심판하는 사람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 심판을 받지 않는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 이 지평에 눈을 떠야 비로소 성령이 여는 새 세계가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결코 재판하는 자리에 앉는 것을 거부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13-14절입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성령의 입장을 요약하면, 1) 예수(그의 가르침)를 믿지 않는 것이 (성령이 보는) 죄이며, 2)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그래서) 보이지 않는 예수를 여전히 믿는 것이 (성령이 보는) 의(義)이며, 3) 죄와 의를 심판하는 임금이 오히려 심판 받는 것이 (성령의) 심판이 됩니다.
결론은, 성령 하나님의 계명, 곧 “정죄하지 말라”는 (곧 정죄하는 것이 곧 죄라는) ‘정죄’입니다. [‘선악을 구분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성부 하나님의 선과 악을 구분하는 계명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 곧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자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5. 어떻게
1) 쓸모없음의 쓸모: 정죄하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예를 우리는 장자 이야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합니다. “우리 집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가죽나무라 부르더군. 그 나무의 몸통은 썩었고, 울퉁불퉁하니 혹이 나서 먹줄로 잴 수 없으며, 작은 가지는 오그라지고 꼬여서 원이나 네모를 그리는 잣대에도 맞지 않는다네 그래서 길가에 있어도 목수들은 거들떠보지 않지. 지금 자네의 말은 크기만 할 뿐 쓸데가 없어. 그래서 뭇사람이 자네 곁을 떠나가는 거라네.” 장자가 대꾸합니다. “… 자네는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쓸데없다고 탓 하는군. 자네는 왜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마을의 텅 빈 들판에 심어놓고, 그 곁을 아무 것도 안하면서 그저 왔다 갔다 하거나 그 아래 누워 뒹굴거리거나 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면 도끼날에 찍혀 일찍 베어지는 일도 없고, 아무도 해를 끼치려 하지 않을 텐데, 쓸모없음이 무슨 근심거리가 되겠나?”라고 답합니다. (장자-소요유) 죄(罪)와 의(義), 쓸모없음과 쓸모 등등의 ‘정죄’를 내려놓고, 그저 흐름에 삶을 맡기고 자신을 지켜봅니다.
2) 전체로 통하기: 땅을 딛고 있는 발에서부터 하늘을 향하고 있는 머리까지 숨을 쉽니다. 들숨에 땅에서 하늘까지, 날숨에 하늘에서 땅까지, 땅과 하늘을 소통시킵니다. [생기, 숨, 바람 등은 성령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이는 말입니다. (ref.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에스겔 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사도행전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숨만 잘 쉬어도 잘 사는 것입니다.
6. 나가는 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입어 예수님을 증언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법은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정죄 곧, 죄와 의를 나누는 세상에 대하여 성령은 준엄하게 책망하며 꾸짖습니다.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임금을 심판하십니다. 성령의 관점에서 보면, 죄는 예수님을 믿지않는 것이고, 의는 보이지 않는 (아버지께로 가신) 예수를 믿는 것이고, 심판은 심판할 사람(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령 강림절을 맞아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 ‘정죄하지 말라’는 성령의 법을 잘 묵상하시면서… 주님의 나라 온전하게 누려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찬송가 192장 (임하소서 임하소서)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찬송가 50장 3절 부르며 헌금합니다. (찬송가) / *. 헌금 기도합니다. (#. 헌금은 따로 잘 보관했다가 교회에서 예배할 때 함께 봉헌합니다)]
*. 헌금 기도합니다.
예배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물을 정성껏 모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이 땅 위에 주의 나라 세워가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서 온전하고, 아름답게 쓰이는 예물 되게 하시고, 귀한 열매 맺어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예물에 담긴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헤아려 살펴 주셔서, 주님의 뜻 가운데 응답 받게 하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주의 성령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저희 있는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