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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tusjye/221979724069
가파도로 향하는 기분이 여늬때 보다 흥분된다.
제주 올레 21개 코스와,
A, B코스 두 곳, -1코스 다섯 곳,
모두 28개 코스 대미를 완성하는 날이다.
비록 올레코스에 충실하지는 못하였지만
후회보다는 보람이 더 크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더 의미있는 곳을 찾아 다녔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파도 왕복 정기 여객선을 운항하는 운진항,
여객실에서 매표를 한다.
11시에 출발하는 선편으로
운진항을 출발한다.
평일, 코로나19로 생활속 거리두기가 강조되는 시기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승선을 기다리고 있다.
마라도에 있는 빠삐용절벽을 선전하는,
죄수 빠삐용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뱃머리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있다.
방금 출발한 운진항과
그 뒤로 군사시설물이 정상을 차지한 모슬봉이 보인다.
해변 방풍림 너머 산방산과
그 너머 스러져가는 눈을 머리에 인 한라산이 보인다.
비교적 시야가 좋은 날씨다.
평지처럼 보이는 섬, 가파도에
단조로움을 깨는 풍력발전기 두 기와,
통신중계탑, 오른쪽 끝 예술가들의 창작공간 'AIR'건물이
삐죽 모습을 드러냈다.
가파도에서 5.5킬로미터 떨어진,
국토 최남단 마라도가 오른쪽으로 흐리게 보인다.
유람선이 상동포구선착장에 도착한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이
카페, 특산물판매장을 겸한 여객선대합실이다.
단순하게 지어져 튀지않는 건물이
오히려 조화롭다.
'가파도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한 건물이다
가파도 프로젝트의 기치는,
아름다운 자연과 고유한 섬 문화가 공존하는 가파도는
잘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 곳입니다.
관광객 급증이나 일시적 수요에 편승한 무분별한 개발은
섬을 훼손하고 주민들 삶의 터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인식을 공유하고 ‘지키기 위한 변화’라는 기치 아래
2013년부터 가파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사업에 필요한 부지를 확보하고
각 공간들의 공사를 진행하였으며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례 등의 제도를 마련하였습니다.
현대카드는 프로젝트 전반을 기획하고 운영 조직을 이끌었으며
각종 로고와 제품들의 디자인과 주민 운영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을 실행하였습니다.
원오원건축사무소는 프로젝트의 기본구상을 수립하였고
전 공간의 설계와 건축의 감리를 담당하였습니다.
자연 생태계의 복원,
섬을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는 경제기반의 구축,
문화 예술활동과 지역 문화 연계를 통해
마을의 균형있는 발전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 조성된 시설들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여
마을의 새로운 수익 기반이 될 것이며,
생태 및 경관 그리고 문화 보존의 견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심볼은 섬에 도착하기 5분 전
배 위에서 바라본 섬의 모습에 기반하였고,
두 개의 선으로 표현한 가파도는
주민들 누구나 쉽게 따라서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며
확장성과 지속성을 가집니다.
<출처 : gapado.org>
가파도는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5.5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제주도 부속섬 중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구릉과 단애가 없는 평탄한 섬으로
가장 높은 곳은 높이 20.5미터로 아시아 유인도 중 가장 낮다고 한다.
고인돌 유적이 남아 있어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1750년 흑우를 방목하기 위해 별둔장을 설치하였으나
1840년 영국 군함이 방목 중인 흑우를 약탈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흑우들을 모동장으로 옮기면서 개간이 허용되어 민간인 거주가 허용되었다.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섬이 가오리처럼 생겼다 하여 가파섬이라 했다는 설,
파도가 섬을 덮었다는 뜻에서 ‘가파도’라는 설,
물결이 더한다는 뜻에서 ‘가파도'라 했다는 설,
섬의 모습이 덮어진 모양이어서 ‘더바섬’이라 했다는 설 등이 있다.
우리나라가 처음 서양에 소개된 계기가 된 곳으로 추측 하는데
1653년 가파도에 표류한 것으로 짐작되는 네덜란드 선박 스펠웰로호,
선장 하멜이 ‘하란선 제주도 난판기’ 와 ‘조선국기’에서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비교적 정확히 소개된 계기가 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선착장 왼쪽 암초가 드러난 건너편에 방파제를 쌓아
바다를 재워놓은 곳에
둥그런 돌담을 쌓은 제단이 보인다.
가파리 상동마을 수호신을 모신 해신당으로
마을과 객지 가족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곳이다.
상동마을 할망당은 '매부리당'이라 부른다.
여인들이 주관하여 제를 지낸다.
그 안쪽 갇힌 물이 물놀이장이 되었다.
건너편 방파제에 파란색 미끄럼틀이 보인다.
가파도에 하나뿐인 편의점으로 소개하고있다.
올레 정방향으로 해안을 따라간다.
자전거를 대여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넓지않은 섬, 굳이 차량을 이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렌트카영업을 할 여건은 아니다.
유유자적 걷거나,
한가롭게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로 돌아도
두어시간이며 충분할 듯 하다,
해안도로 안쪽,
돌로 쌓은 축대에 다시 야트막한 밭담을 둘러놓았다.
바다쪽 제법 큰 바위가
따로 분리된 뚜껑을 덮은 것처럼 보인다.
'보름바위', '큰 왕돌'이다.
큰 바람을 일으킨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바위 위에 올라가거나 걸터앉으면
태풍이나 강풍이 불어 큰 재난이 생긴다고 한다.
태풍이나 강풍이 불어닥치면
마을 사람들은 큰왕돌이나 하동마을의 까마귀바위에
누군가 올라간 것으로 의심한다.
구멍과 사면에 둥글 납작한 자갈을 올려놓은
보름바위의 뒷 모습이 기괴하다.
맨발로 다니기에는 불편할 것 같은
둥글납작한 몽돌해변이 내려다 보인다.
들어내면 그대로 떨어져 나올 듯,
절편처럼 쌓인 바위에 파도가 부딪친다.
같은 배에서 내렸을 것으로 짐작되는
남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다.
흙색자재로 포장한 해안도로,
바다 건너 마라도가
금방이라도 파도에 휩쓸릴듯 위태롭다.
둥글고 반반한 돌을 쌓아 세운 돌탑 두 기,
'보물섬, 우리가 만드는 가파도 이야기',
'가파도어린이 소망탑'으로 명명되어있다.
그 중 앞 쪽, 아래 고임돌 너덧개에 글을 적어 놓았다.
하지만 글귀는 소망이 아니다.
또한 예사롭지 않은 글씨체,
아이들의 작품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어떻든 작자 미상의 시가 마음에 닿는다.
제목 : 가파도
작자 : 미상
거센 파도
너울에 업혀 달려오는
파도가 있어 가파도일까
겨울 하늘 깨치고 나와
수줍게 청보리 물결 있어
그리 가파도일까
찢어진 잎새 스쳐가는
억새의 노래 있어
또한 가파도일까
하얀 속살 드러내며 달려드는 파도
바람을 사랑한 청보리의 속삭임
억새의 빛바랜 전설
물결 너머
바다 냄새 찐득한 아이 있어
가파도인 게다.
아이들의 꿈이
달려가는 곳
그곳이 가파도인 게다
해안가 전망대 앞쪽으로
계속 따라오던 마라도가 어느새 위치하고 있다.
바다에 둘러쌓인 야트막한 섬,
더 이상 가릴 것 없도록 키를 키운 풍력발전기가
거침없는 바다를 내려다본다.
섬 안쪽 전망대, 쉼터 방향으로 올라간다.
해안 검푸른 빛과는 다른,
연녹색 세상이 펼쳐진다.
지붕이 보이는 쉼터와
그 오른쪽 야트막한 둔덕처럼 보이는 전망대가 보인다.
파노라마로 전경을 담아본다.
정상을 구름으로 가린 한라산과
우뚝 솟은 바위산, 산방산, 그 앞으로 송악산 능선이 보인다.
20.5미터, 가파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2.5미터 높이로 설치한 '소망전망대'다.
한라산을 바라보며 설문대할망에게
소망을 기원할 수 있는 장소라고 소개한다.
제주를 대표하는 돌하르방이
다양하고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세워져있다.
포토존으로 활용하도록
소망전망대 안내도에 설명을 붙여놓았다.
오른쪽 조형물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다.
옛 여인들의 애환을 표현했다.
'배꼽웃음과 못난이 삼형제'다.
'소망전망대'다.
난간에 소망리본을 매달아놓았다.
전망대에서 마라도 방향을 조망한다.
송악산과 산방산이 나란히 보이고
오른쪽 끝에 한라산 정상이 구름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앞 왼쪽 소망리본을 적을수 있는
몽골 가옥인 게르가 보인다.
출입구 노란색이 소망리본이다.
연초록 들판 너머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다시 해안도로로 내려간다.
오른쪽 마라도가
잠깐 한 눈이라도 팔면 사라질 듯 불안하게 떠있다.
가파도 지층 바위가 쪼개지고 부서지며
표면을 만들어 가는 속내를 드러내고있다.
해안가 바위가 기묘하다.
제주어로 고양이를 뜻하는
'고냉이돌'이다.
생긴 모습이 고양이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상상력이 부족한지
도무지 고양이 형상은 찾을 수 없다.
머리와 등에 올려놓은 돌 때문인지
오히려 공룡 형상이 상상된다.
고냉이돌 옆에
자연적으로 생긴 것으로 보이는 얕은 토굴이 있다.
어떤 구조물을 만들려고 했는지
시멘트로 기초를 만들어 놓았다.
제주 올레가 선택한 방향으로
2012년 9월 준공한 풍력발전기 보인다.
'탄소없는 섬'을 목표로 출범한 제주에너지공사가
가파도를 시범지구로 선정하여 설치하였다.
고장이 잦고 수리에 시간이 걸려
지금은 가동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해안을 따라 계속 걷는다.
섬 한 바퀴를 마저 돌 셈이다.
도로를 돌아
방파제가 보인다.
하동마을 가파포구다.
포구를 굽어보는 곳에 펜션이 보인다.
필요할까 싶은 차량이 주차되어있다.
포구 방파제 너머 테트라포트가
한껏 키를 높여 쌓여있다.
하동마을 할망당, '뒷서낭당'을 찾아간다.
주위를 둘러보지만 찾을 수 없다.
마침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보니
방파제를 따라가면 계단이 보이는데
그 계단을 넘어가면 있단다.
테트라포트가 길을 연 사이로 계단이 보인다.
그 곳을 넘어가자
맞는가 싶을 만큼 엉성한 제단이 나타난다.
하동마을 할망당, '뒷서낭당'이라고 부른다.
여인네들이 마을과
객지로 나간 가족의 안녕을 빈다.
그 너머 요상한 바위가 있어
'까마귀돌'인가 싶어 가봤지만, 아니다.
해안 바위 무더기 위로 솟은
'까마귀돌'이다.
상동마을 큰왕돌과 같이
함부로 올라서거나 걸터앉으면 태풍이나 파도가 일어
큰 재난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 모양이 까마귀를 닮았다하여
'까마귀돌'이라고 부른다.
역시 방파제 뒤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평지와 다른 거친 해안 모습이
일부러 숨겨놓은 듯 방파제 뒤에 펼쳐진다.
가파포구마을, 본섬과 다른
둥근 돌을 얹어 쌓은 돌담이 훨씬 멋스럽다.
마을 집 담들이 밝은색으로 칠해져
그 안에 그림과 글들이 눈길을 끈다.
마을길 벽화가
지역을 잘 설명하고 이해를 돕는다.
'가파도 개경 120주년 기념비',
1962년 세운 비석이다.
오른쪽 개석을 씌운 연혁해설비문에
1842년 처음 개경허가를 받아 본섬 상, 하모슬리민들이
왕래하면서 개경을 시작하였다는 해설이 있다.
연혁해설 비문은 1985년 세웠다.
가파리사무소 건물을
어촌계와 마을회관이 같이 사용하고있다.
가파도 프로젝트로
새롭게 탄생한 가파도어업센터 건물이다.
어민과 해녀의 공동작업공간으로
싱싱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예전에는 가파포구를 통해
여객선이 드나들었던 걸까?
가파포구라는 지명이 그렇고,
올레 중간스탬프 옆 바위에 '안녕히 가십시요.'라는
가파도 청년회 명의 인사가 그런 느낌이다.
해녀들이 물질 할 때
환복을 하거나 불을 쬐며 쉬던 곳, 불턱이다.
생활용수가 귀했을 섬에
담수가 용출되던 곳, 용천수 '돈물깍'이다.
마을 벽화 중 가파도 샘물을 설명하는 글이 있다.
'제주 5개 섬 중에서
셈물이 솟는 곳은 가파도 뿐이다.
가파도 북쪽에 위치한 상동에
처음 우물을 발견하여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후에 하동에서 더 큰 우물이 발견되어
지금은 하동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생활 속 물이 얼마나 귀한지 느낄수 있다.
현재 가파도에는2005년 해수담수화 시설을 가동하여
일 평균 150톤의 담수를 공급하기 시작하여,
2017년 개량 및 증설하여 일 평균 300톤을 공급하고 있다.
계속 해안을 따라 섬을 돈다.
야트막한 섬에 건물이 우뚝 솟아있다.
해안도로 안쪽 언덕에 돌담이 쌓여있다.
오똑한 건물이 가까워진다.
가파도 평지 위에 고개를 내민 구조물 중 하나,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gapado artist in residence. AIR)'다.
국내외 예술가, 인문학자 등이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전시장, 사무실, 세미나실, 직원숙소, 작가숙소, 작업실이 들어서 있다.
이 중 전시장만 외부인 출입 가능 구역이다.
이곳에선 입주 작가와 주민들이 협업해
완성한 예술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가파도 AIR’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미술관 큐레이터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선정한 작가들이 들어와 있다.
설치 예술가 정소영, 미디어작가 양아치, 페루 출신 일리아나 오타 빌도소 등이
수개월 동안 머물면서 창작 활동을 한다.
<출처 : http://m.weekly.cnbnews.com/m/m_article.html?no=124894>
이 건물은 2019년 대한건축사협회에서 주관하는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 건축물 사회공공부문'에서 대상에 선정됐다.
AIR 옆으로 공사하면서 쌓은 것으로 보이는 흙더미가
야트막한 둔덕을 이루었다.
혹여 전망을 있을까 기대하며 올라선다.
서북 방향 바다건너
훨씬 가까워진 본섬 제주가 시야에 나타난다.
특히 산방산과 송악산이 손에 잡힐듯 하다.
가파도 전경을 파노라마로 담아본다.
하동마을 가파포구와 마라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다시 해안으로 내려와 조금 더 진행하자
제법 넓은 원형 돌담 안에 제단이 보인다.
남정네가 주관하는 제단, 제주어로 '짓단'이다.
지금도 매년 정월달 정일과 해일에
마을에서 제관 8 ~ 9명 선정하여 2박 3일 숙식하며
돼지, 닭 등 날 것으로 제물을 받쳐
국가와 마을의 평안을 지내는 제를 지내는 곳이다.
물이 빠진 암초위에 새들이 무리지어 앉아있다.
해안을 빠지는 길에 서면
완만한 경사진 언덕너머
창작센터 건물이 보인다.
'가파도 프로젝트' 일환으로 짓는 건물로 보이는데
아직은 미완인지 용도를 알 수 없다.
바다 건너 본섬 제주에 일곱 개의 산이 있다는데
그 중 영주산을 제외한 여섯 개가 보이는 곳이다.
한라산, 산방산, 송악산, 단산은 구별할 수 있는데
군산과 고근산은 구별할 수 없다.
계속 이어지는 해안도로,
항구에 닻줄을 묶는,
그 규모로 보아 초대형 선박도 묶을수 있을듯한
계선주를 닮은 기둥이 서있다.
서쪽해안가,
제법 높게 쌓아올린 돌담이
한참 바다를 따라 둘러져있다.
본섬 환해장성이 떠오르지만
홑겹으로 쌓아놓은 폼이 축성한 형태는 아니다.
해안도로 바깥 바다쪽,
커다란 바위 위로
양갈래 머리를 땋아올린듯
마치 일부러 얹어놓은 것 처럼 보이는 바위가 연이어 두 개 보인다.
'어멍, 아방돌'이라 하며
마찬가지로 올라가거나 걸터앉으면
태풍이나 큰 파도가 몰아친다고 알려져있다.
바다를 두른 돌담이 잠깐 틈을 벌려준 사이
마을로 연결되는 밭길이 펼쳐진다.
가파도 특유의 둥글납작한 몽돌을 쌓아올린 밭담이
들판 양쪽으로 경계를 만들어 놓았다.
아직은 대궁을 높이지 못한 청보리,
친환경으로 보리를 재배하다보니
자연적인 잡초 제거를 위하여 일부 밭은 휴경을 한다.
왼쪽 끄트머리에 건물이 보인다.
가파도에 전기를 공급하는 내연발전소다.
예전 가파도 주민들은
어둠이 찾아오면 호롱불과 남포등불을 밝혀 생활했다.
도서낙도 전기시설사업이 추진되어
1976년 내연발전소를 착공하여 이듬 해 완공,
일몰 시간부터 12시 까지 전기를 공급하였다.
생활환경이 변화하여 24시간 전기공급이 필요하게되면서
1992년 450Kw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춰
현재 섬 전체에 전기를 공급하고있다.
가파도 남과 북으로 하동과 상동마을이 있고
그 가운데 기파초등학교와 경로당 등이 자리잡은 구역이 있다.
가파도를 대표하는 청보리는
여러가지 형태로 가공, 상품화하여 판매하고 있다.
친환경보리도정공장이다.
집의 경계를 나타내는 돌담도
가파도 해안 몽돌을 주재료로 사용하여
틈을 많이 만들었다.
가파초등학교다.
넓은 운동장과 교사건물들,
하지만 학생은 몇 되지 않을 터이다.
입구 회을공원과 접한 곳에
돌하르방, 방아, 독서하는 소녀상 등이 보인다.
가파초등학교를 설립한 김성숙 호를 딴 회을공원에 설치된 김성숙 동상이다.
가파도 출신의 김성숙은
경성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중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앞장서서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른다.
석방되자 귀향하여
문맹퇴치가 자주독립의 지름길임을 깨닫고
신유의숙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한다.
더 큰 뜻을 품고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수학하고
일제의 경제수탈을 벗어나고자 협동조합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광주학생운동, 만보산사건 등 독립운동에 앞장선다.
해방 후 제 5대 국회의원(민의원)에 당선되어
의회활동을 하였다.
방충망을 씌워놓은 것이 보인다.
안에는 아직 앙상한 나무가 자라고 있다.
가파도는 제주 본섬 남쪽에서
더 남쪽으로 치우쳐 있는데도 감귤나무가 자라지 않는 듯
농촌진흥청에서 기증한 다섯품종 15그루의 감귤나무를 기증하여 식재하였다.
2019년, 작년 5월 3일 일이다.
'바다가 땅보다 넓어
귤에서 바다맛이 나면 어쩌지?',
어린아이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물음,
답을 알고있는 어른이지만 무럭무럭 잘 자라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
해답을 얻길 바라마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방충망 안 두 그루와
바깥에 한 그루밖에 찾을수 없다.
나머지 12그루는 벌써 죽었을까?
하동마을 가는 길 양쪽으로 경계목이 서있고
그 바깥은 청보리밭이다.
가파도 보건진료소 건물이다.
두리번거리며 걷는데 열 살 남짓 남자아이와 마주친다.
'너 ,혹시 여기 사니?', 묻는다.
'네', 대답하여 확인하니 가파초등학교 학생이다.
귤나무에 대하여 물어보니
대답이 모호하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다시 걷는다.
이번에는 비슷한 또래 여자아이를 만나 물어보니
가파초등학교 학생이 맞다.
귤나무에 대하여 물어보니
학교건물 앞 화단에 잘 자라고 있단다.
고인돌을 찾으러 가파도교회 방면을 꺽어진다.
가파도교회가 보인다.
청동기시대 사람이 살았던 흔적,
고인돌이다.
인근에 산재해있다.
자전거로 여기저기 다니는 모습이 편안하다.
오토바이도 차량도
운행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덕분이리라.
여기,
저기
고인돌로 보이는 바위가 밭 가운데 놓여있다.
다시 가파초등학교 방향으로 간다.
소망 전망대가 학교 왼쪽에 보인다.
귤나무를 찾으러 다시 교정으로 들어서야 하는데
울타리를 둘러쳐 정문 말고는 출입구가 없는듯 하다.
결국 한 바퀴 돌아 교정으로 들어서
교사 앞에 잘 뿌리내린듯 자라는 귤나무를 찾았다.
커다란 화분통에도 감귤나무가 자라고있다.
전부 몇 그루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잘 자라 가파도의 특산품이 되기를 바란다.
교정을 나와 상동마을로 가는 길,
보리도정공장 앞 전기차충전소에 충전중인 승용차가 보인다.
아까 들어가 보지 못한 몽골 게르,
소망리본 적는 곳을 찾아 밭담과 돌담을 지난다.
게르가 보인다.
외부에도
내부에도
소망을 적은 노랑리본이 빼곡하다.
이제 곧 마음에 담게될 풍경으로
자꾸 눈이 간다.
2시 20분 배로 돌아갈 예정이다.
지금 시간이 1시 반,
넓지않은 섬에 50분 여유가 있으니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여정을 마무리할 준비를 한다.
다시 상동마을, 여객선 대합실로 돌아가는 길,
상동우물을 지난다.
약 150년 전, 마을주민이 직접 파서
식수와 빨래터로 사용했다.
하동마을 우물까지 개발한 덕분에
제주도 유인도 중 유일하게 물 걱정없는 섬이었다
수초가 자라고 물빛이 간장을 섞은듯 진하다.
쓸모없어진 우물이 안쓰럽다.
마을길을 지나는데
담을 장식한 뿔소라가
몇 번 보아도 바위에 달라붙어 살아있는 생물같다.
밭 가운데 생긴모양으로는
방위를 표시하는 방위점인듯한 바랜 시멘트가 서있다.
가급적 가파도의 길을 모두 밟으려
곳곳을 누비벼 지난다.
상동포구에 닿는다.
포구 앞 표지석을 이제서야 발견한다.
올레 10-1코스 시작점 표지석과 스탬프다.
우리를 본섬으로 싣고 갈 여객선이 포구로 들어오고 있다.
숙소 인근 호프집, 치킨이 제법 맛있는 집에서
옆지기, 아들래미와 함께
조촐하게 1년에 가까운 긴 여정을 마무리하며 자축한다.
제주 올레는 공식적으로
그 길이를 425킬로미터로 소개한다.
내가 걸은 거리를 집계하니 491킬로미터다.
시작은 출발지 버스 하차 시부터 계측하였고
도착지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정류장에 당도하여 마감하였다.
사용해보니 다소 정확도 떨어지는기계에 의존하였다.
A, B코스는 둘 다 걸은 기록이다
엑셀로 정리한 기록이다.
제주 올레를 모두 걸었다.
하지만 제주가 어디 올레길 뿐이랴.
368개 라는 오름도 오르고,
또 다른 길도 찾아 걸을 작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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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파도 가파도 원금이 안주니께 사채는 쓰덜 마셔유 ~
파르라님 덕분에 제주 구석 구석을 구경하네요
보기도 벅찬 긴글과 시진 첨부 놀랍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