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씨에 반하다 / 정선례
퇴근하던 중에 예기치 않은 질환으로 덜컥 쓰러져 대학병원 중환자실을 거처 재활병원, 한방대학병원에서 치료하고 7개월 만에 집에 돌아왔다. 내가 없는 동안 집 안팎 구조를 바꿔 놓다니 감동이다. 우리 남편 단점도 많지만 참 휼륭한 사람이다. 현관 앞 데크가 가장 먼저 반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 멀리 마당가 장독대 옆 수돗가도 비를 맞지 않고 물을 쓸 수 있도록 옮겨 놓았다. 이럴 수가, 샘을 어떻게 옮겼단 말인가! 현관문 앞 시멘트 바닥을 데크로 깔고 수돗가로 연결하는 곳에 테라스를 설치했다. 주방에 형광등도 밝은 빛으로 바꾸고 하얀색의 싱크대는 눈부시게 깨끗하며 상판은 천연대리석으로 해놨다. 딱 내 취향이다. 수납장을 원목으로 길게 3단으로 설치해서 접시며 냄비, 바구니 등을 넣어두니 공간이 넓어 보인다. 또한 제재소에서 편백나무를 내려와 더블침대를 두 개 멋지게 만들어 나란히 놓아 두고 “함께 잠을 자야 한다”며 나에게 다짐을 받느다. 더위와 추위는 느끼는 온도와 잠버릇으로 각자 다른 방에서 잤는데 내가 또 아플까봐 염려가 되어 그렇게 한 것 같다. 그는 나와 떨어져 있는 사이 많은 생각을 해서 달라지려고 노력한 것 같다. 집 안 밖을 둘러보고, 가축 기르고 농사 일 하느라 틈이 없었을 터인데 그런 와중에서도 내가 퇴원하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바꿔놨다. 속정 깊은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목젖이 뜨거워지고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은 집에서 혼자 농사와 축사 일을 하며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견디며 생활했을 것이다. 체중이 몰라보게 빠지고 이마에 골이 더 깊어진 것을 보면 그간의 고단함이 어땠을지 짐작되어 애잔하다. 농사가 아니라 집 짓는 목수 일을 선택했어도 누구보다 잘했을 것 같은 솜씨가 있다. 그는 평소에도 손끝이 맵고 눈썰미가 있어 무엇이든지 한 번 보면 그대로 만들어 낸다. 새로운 가전제품을 사거나 손주 새 장난감이 와도 사용 설명서를 보고 뚝딱 조립 해 놓는다. 하다 못해 설거지하다 접시가 끼어도 그이 앞으로 가지고 가면 쉽게 떼어 놓는다. 그는 원리를 생각하며 접근한다고 한다.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남자이다. 여리면서도 단단한 그에게 홀딱 반해 무엇 하나 잴 것도 없이 시집을 왔다. 말수가 없고 매사 무덤덤하고 무뚝뚝하지만,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잊지 않은 그는 나보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영리하면서 차분하고 솜씨 좋은 그가 교육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농부의 길을 걷게 되어 온갖 고생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 가엾다. 농장 운영하면서 땅 사고 축사 짓느라 낸 빛도 다 갚았다. 주변에서 다들 우리에게 부자라고 할 만큼 살림이 불어나고 무엇하나 크게 아쉽지 않은 생활인데도 젊어서 일을 많이 해서 힘들다. 왜 많은 이들이 시골에서의 생활을 기피하는지 알겠다. 나도 내 아이가 농촌에서 살겠다고 하면 도시락 싸 들고 말리겠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누구보다 가까우면서도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가 부부 사이일 것이다. 함께해 온 일상에서 수시로 부딪치며 갈등하면서도 서로 마음이 각별한 것은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애 비슷한 것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부부는 음식, 텔레비전, 운동 등 취향이 정반대다. 그는 고기 나는 채소를 스포츠를 둘이 다 좋아하는데 남편은 보는것 나는 직접 하는 것이 좋다. 어느 것 하나 맞지 않는데 연애할 때 나와 너무 달라서 끌렸을까 의문이다. 그래서인지 30년 넘게 끊임없이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평행선을 달려왔다. 그랬던 우리가 이제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마주 보고 있으니 늦게나마 참 다행이다. 우리가 결혼한 지 어느새 33년째라니 시간이 참 빠르다. 크게 아프고 난 후 자주 내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본다. 우리는 그동안 부자로 살고 싶은 욕망에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을 좇으며 꽉 찬 하루를 살았다. 일반 직장인의 정년을 5년이나 지났으니 지금껏 살아온 일상과 다르게 일을 덜어 내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맘껏 사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란 걸 남편이 알았으면 좋겠다.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가을 하늘이 몽글몽글 아래로 내려오는 듯 가깝게 떠 있어 내 마음처럼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