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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장 성령이 교회들에게 ~ 에. 서. 버. 두
26.08.03(월)
예 오늘은 드디어 2장을 들어가는데요.
어제 저희가 1장 말씀을 처음 요한계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가 어제 복습을 좀 해볼까요?
첫 번째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라고 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은 뭐예요? 예수님이 주신 계시고 예수님을 보여주는 계시다 그랬어요.
계시라는 것은 열어서 보여주는 거죠.
아포칼립시스 숨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로움 그 비밀스러움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책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더 알아가는 게 중요한 거지 뭐 666이라던지 뭐 마지막 때에 어떤 징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다라고 하는 거였구요.
두 번째 말씀 중심에 계시다 여러분 우리가 이 이단들을 조심해야 되는데 이단들은 환상 계시라고 불러요 이것을 환상 계시란 말은 뭐냐면 요한이 몰랐다는 거예요.
자기도 보면서도 이게 뭔지도 모르고 보고 그냥 보는 대로 적었다 근데 그게 아니라 말씀 중심의 계시라는 말씀은 이것이 그 안에 다니엘서도 들어있고 에스겔서도 들어있고 스가랴서에도 들어있어요. 즉 이미 받은 말씀 그 말씀을 일깨워 주시는 계시였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말씀 공부가 왜 중요한가. 말씀 속에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나도 모르는 걸 막 정신없이 보고 받아 적은 게 아니라 말씀으로 하나님은 게시해 주셨다
그리고 세 번째는 어떤 주제예요.
고통받는 우리에게 박해받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마침내 승리하게 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계시다 라고 하는 것이 지난 어제 1장의 결론이었습니다.
여러분 잘 정리되셨죠 이번 요한게시록 강의는 여러분들이 많은 내용이 빨리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정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제가 ppt도 만들고 영상도 지금 같이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꼭 다시 한번 보시면서 정리하시면 좋겠습니다.
자 이제 오늘 2장인데요.
2장과 3장은 유명한 요한 계시록의 7교회가 나옵니다.
교회 과연 이 일곱 교회가 뭘 뭘 보여주는 건가 여러분 보시면 이 요한계시록은요 당시 아시아주 자 소아시아와 다른데 소아시아는 터키 전체를 말하는 거고,
그중에서도 아시아 주라고 하면 터키 서부 지역입니다. 지금의 터키 서부 지역에 실존했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예요.
그런데 이것이 형식은 편지인데 내용은 편지가 아니라 예언서입니다. 예언서라고 하는 것은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이 뭐냐하면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고 그 안에 심판과 재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내용은 예언서인데 형식은 편지 형식을 담고 있다는 거죠. 자 그래서 그 핵심은 교회의 회복입니다.
교회 여러분 이 요한계시록을 보시면서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게 뭐에 중심이 맞춰져 있는가 교회예요.
여러분 이단들은 요한계시록으로 교회를 공격합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봐라 하나님은 교회 좋아하지 않는다.
교회는 희망이 없다라고 하면서 교회를 깎아내리는 걸로 일곱 교회의 이야기를 써요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가 실제로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를 붙잡아 주신다라고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여러분 보시면 우리가 어제 봤던 요한계시록 1장 11절부터 이제 7교 얘기가 나오거든요. 그래서 여기부터 한번 볼 필요가 있는데,
1장 11절 보시면 이르되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낸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앱에서 서모나 버가모 두아드리아 사대 빌라델비아 라오디아 교회 등 7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그랬어요.
자 노란색만 읽어보시면 내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7교회에 보내라
이거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요. 이 당시에 로마 황제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구요. 이게 돈 많고 교역하는 장사하는 분들에게 관심 있는 게 아니고 누구에 관심이 있어요. 교회에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관심은 교회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편지를 써서 네가 보여주는 이 환상을 다 네가 정리해서 어떻게요 그 말씀을 정리해서 교회에 보내라 왜 교회가 이 말씀을 받을 때에만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심겨지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 있는가 우리가 교회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교회의 자부심을 좀 가지면 좋겠어요.
오늘날 교회라고 하는 자부심이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아 교회는 대체 왜 가는 거예요. 이런 말이 막 나오고 있어요. 여러분 왜 갑니까?
교회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제자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에요. 또 하나 복음은요 당대의 방식으로 전해진다는 거예요.
이 당시의 방식은 편지였어요. 두루마리의 편지에 편지를 쓰는 것 이것이 유일한 방식이었어요. 하나님은 그 방식을 택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거죠.
오늘날에는 어떨까요? 오늘날에는 영상도 있고요. 유튜브도 있고요. 스마트폰도 있고요. 오늘날의 많은 매체들이 있어요. 그것을 여러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 방법들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받은 복음의 은혜를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셔야 되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거죠.
자 그런데 보면 또 그냥 교회들 이래도 이래도 되는데 그냥 일곱 교회 그래도 어제 배운 것처럼 일곱 교회 그러면 모든 교회가 되잖아요. 완전한 수가 돼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딱 지명에서 베에소 서머나 버가보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이렇게 왜 이름을 특정하고 있는가 하는 거죠. 그럼 이 교회들만 들으라는 얘기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이 교회를 특정할까요? 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특정 교회를 지목할 때 집중이 되는 거예요.
자 모든 교회 이러면 아무도 안 봐요. 근데 에베소 그래요. 에베소 어이구 우리 눈을 크게 뜨죠 다른 교회들 집중을 합니다.
이 시간에 새벽 기도 나오셨잖아요. 근데 제가 여러분 그러면 아무도 안 봐요. 그런데 거기 둘째 주로 앉은 거기 김 집사님 그러면 예 그리고 그분이 긴장을 하겠죠.
그러면서 모든 교인들이 아이고 그 다음 나 부르면 어떡하지 라고 하면서 저를 쳐다보게 되어 있어요. 마치 그런 효과입니다.
모든 교회에 해당이 되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하나 하나 지명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들의 실제적인 문제를 드러내십니다. 그러면서 그 교회들을 칭찬도 하세요.
여러분 교회 일곱 교회 가운데는요 칭찬만 들은 교회도 있고 책망만 받은 교회도 있지만 그럼 그 교회는 정말 책망밖에 받을 게 없었나 그런 교회는 없습니다. 칭찬받은 교회 우리는 그게 되게 좋아해요. 근데 그런 교회는 없어요.
어느 교회나 칭찬받을 부분이 있고 또 부족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다 마찬가지예요. 근데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지명하셔서 하나하나에 그 교회의 사정들을 드러내 보이시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믿음을 더 가지고 회개를 촉구하시는 거죠.
또 한 가지는 왜 일곱 교회인가 당시에 대표적인 교회들이에요. 당시에 로마가 깔아놓은 길들이 있잖아요.
그 대로에 있는 교회들 그리고 특히 교회들은요 교통이 편리해요. 이 교회들 순서를 보시면 이 교회들이 그냥 뭐 아무렇게나 선정한 것이 아니라 순서가 다 있어요.
그리고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에 이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 주변에 회람하기 차가 참 좋은 주변 도시가 나눠서 읽기 좋은 위치에 있었다는 거죠. 한번 볼까요?
자 여러분 보시면 지금의 터키 서쪽에 있는 아시아주라고 하는 지역에 일곱 교회가 몰려있는데, 조금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밧모섬 여기서 출발해요.
에베소 항구에 있는 에베소로 편지를 씁니다. 그럼 에베소에서 서머나 위로 올라가죠 더 올라가면 버가모가 있고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두아디아가 있어요. 거기서 밑으로 내려오면 사대가 있고 옆으로 또 빌라디엘비아가 있고 그 옆에 라우디게아가 있어요. 그러니까 일곱 교회가 시계 방향으로 빙 한 바퀴 돌면 다 돌 수 있는 큰 길가에 다 있는 교회다
오늘날로 말하면 대로변에 있어요. 역세권에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전달될 때 아 에베소에 전달되면 그다음은 서머나가 어 우리 아닐까 그다음 어 버가모가 우리 아닐까 어 두아드리아가 우리일 거야. 사데가 어우 우리네 빌라델비아 우리에게 하시겠네 라우디계약 우리에게 오겠네라고 예상할 수 있는 충분히 이 지역의 네 이 지역을 충분히 감안해서 쓰여졌다는 거죠.
마치 우리나라로 얘기하면 경부선 오는 순서대로 쓰여졌다 뭐 이런식으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자 그러면 이어서 1장 12절에 보시면 7 금 촛대가 나와요.
그리고 13절에는 그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계셔요 예수님이 거기 계신 거예요. 촛대 사이에 계세요.
근데 왜 예수님은 촛대 사이에 계신다고 할까 일곱 금 촛대가 뭐냐 이게 20절에 보시면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나와요.
자 그러니까 성경에 우리가 모르는 거 어 촛대가 뭐지 그러면 어떡해요. 더 읽으시면 나와요. 이게 요한계시록의 특징이에요.
이게 촛대만 가지고 이 촛대는 사실 뭐다라고 이단들이 막 얘기해요. 그런데요. 조금 몇 줄만 더 읽으면 그다음에 금방 나와요. 아 이거 교회네 자 이게 노란색을 모아볼까요? 이렇게 돼요.
일곱 촛대가 있는데, 그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 예수님이 계셔요 자 그런데 그 7촛대는 일곱 교회예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교회 사이에 인자 같은 이 예수님이 계시다는 거잖아요. 바로 이런 뜻입니다. 박해 때입니다. 지금 도미티안 황제가 막 잡아다 죽이고 교회를 박해해요.
그런데 교회를 위기를 겪고 있는데, 심판하시는 마침내 세상을 심판하시는 예수님 어디 계세요. 교회 중에 함께 계신다는 거예요. 이게 중요해요.
고난 받는 교회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엉뚱한 데 가 계신 게 아니라 어디 딴 데 있다가 어 교회 너희들 그런 일을 겪었어 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 가운데 와 계시다는 거예요.
7촛대 사이에 거닐고 계시다 그분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 여러분 이게 왜 중요하죠. 여러분 싸움을 할 때 누가 심판 보내냐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애들은요, 꼭 자기 말 들어주는 사람을 심판으로 삼으려고 그래요. 형제들끼리 말다툼이 벌어지면 엄마가 좀 만만해 보이면 엄마한테 가서 얘기하고 엄마 내가 맞죠. 라고 얘기하고 아빠가 자기 편 같으면 가서 아빠한테 얘기를 해요.
여러분 심판이 우리 편이면 그만큼 유리한 거예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심판 하시는 예수님이 어디 계세요. 교회 가운데 계시다
또 하나 7교회라고 하는 건 뭐예요?
모든 교회를 말한다고 했죠.
주님은 특정한 교회가 아니라 특정한 어느 교회가 아니라 믿음을 지키는 모든 교회와 동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일곱 교회 어떤 교회는요
그래서 교회 이름 바꿔요 우리 서머나 교회라고 하자 우리 빌라델비아 교회라고 하자 휠 이름을 바꿔요 왜 일곱 교회 아래 들어가야 되니까.
여러분 그런 필요는 없습니다. 왜 일곱 교회라는 말 자체가 일곱은 완전수 모든 교회를 이미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두고 계시다 이렇게 보실 수 있는 거죠.
자 그래서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라고 할 때 우리가 좀 정리를 해보면 신천지나 이단에서는 이걸 뭐라고 하냐하면 봐봐 교회는 하나님께 비방만 듣고 하나님께 모자라다고 책방받고 교회는 안 돼 라고 말하는 도구로 7교회를 사용해요.
그런데요. 자신을 높이는 영적 해석을 막 주장하는 거예요. 에베소라는 말은 에베소를 막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라고 하면서 그들은 뭐라냐고 하냐하면 신천지한테 그래요.
일곱 교회 지금 가봐라 아무것도 없다. 폐허밖에 없다. 다 없어졌다 교회는 결국 다 망한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요.
여러분 그렇지 않죠 2천 년 전에 존재했던 교회가 지금 남아있으면 더 이상한 거죠. 그런데 실제로 남아있는 교회도 있습니다.
예 서머나교회 같은 경우는 지금도 남아 있어요.
그래서 그 지역에 가면 교회가 부흥하고 있어요. 실제로 교회가 부흥하고 있고 또 그 당시에 있던 교회가 지금 남아있지 않다고 해서 교회는 쓸데없다. 교회는 망한다라고 주장하는 것 절대로 여러분 따라가시면 안 됩니다.
신천지에서는요 이런 말을 굉장히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마치 영적으로 굉장히 깨어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여기 넘어가시면 안 돼요.
자 우리가 볼 때 1차적으로는 각 교회가 수신자예요.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드리아 교회 각 교회가 들어야 될 말씀이 있어요.
나아가서 모든 교회가 들어야 될 메시지를 담고 있는 내용이 일곱 교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본문 개시록 2장 7절에 이렇게 마지막이 끝나요?
한번 읽어볼까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렇게 끝나거든요.
그런데 이 말씀이 일곱 교회에 다 나와요.
각 교회의 얘기를 하면서 에베소교회 얘기하면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버가모도 마찬가지 두아디아도 마찬가지 다 그렇게 나와요. 왜 그렇게 나오나 비록 한 교회의 이야기를 하지만 이 교회는 이 이야기는 한 교회가 들을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교회가 다 들어야 될 얘기다
모든 교회가 다 듣고 깨닫고 하나님을 더 붙잡고 나아가야 될 내용이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 성민교회에게도 주시는 말씀이고 우리 각각의 영혼에게 주시는 말씀이다라는 걸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 2장 들어갑니다. 1절 자 같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7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자 여러분 이제 7별 7 금촛대 무섭지 않으시죠. 네 일곱 완전수구요. 7 금촛대는 교회다 그런데 어느 교회 먼저 에베소 교회에 주어졌어요.
에베소 에베소는 이 당시 소아시아라고 하는 그 터키 서부 지역의 행정 수도입니다. 제일 큰 도시예요. 여기부터 시작하는 게 맞아요.
여기부터 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도시 그런데 이 도시가 어떤 도시였냐면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우상의 도시였어요.
그래서 여기에 사도 바울이 다른 도시는 교회 세우고 옮겨가는데 여기만 얼마 있었어요. 2년을 있었어요. 있으면서 여기서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면서 먹였어요.
왜 우상이 너무너무 성행했기 때문에 은장색 데메드리오 같은 사람이 여기 있어서 시위를 일으키면서 데모를 일으키면서 바울을 쫓아내려고 할 정도로 그렇게 이 도시가 우상에 찌들어 있는 도시였어요.
왜냐하면 여러분 이 당시에 부자라고 하는 벗 최대의 상업 도시고 항구 도시라고 하는 말은 뭐냐 하면 그만큼 사람들이 많고 돈이 많다는 이야기예요. 그게 어디로 흘러가요 우상의 재단으로 다 흘러가는 거죠.
그래서 그러한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우상의 도시 지금도 보면 여러분 이 그림이 그 당시에 이랬을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이 그림인데요.
여러분이 아데미 여신의 이 신전은요 지금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큰 걸 지었을까? 길이가 130m 폭은 67m 기둥이 하나에 18m예요. 4층 높이가 넘어요. 그게 120개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상상이 안 돼요. 이 유적을 가보시면 어떻게 이런 걸 지었을까?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가요
자 게다가 지금도 여러분 이 유적을 찾아가 보시면 저 앞에 보이는 게 셀수스라고 하는 저 예베소 총독을 기념하는 도서관 건물이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2층으로 어마어마한 건물 짓는 게 이 당시 기술로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유적이 지금 예베소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찾아가는 사람들마다 놀래요.
그리고 또 하나 뭐냐면 여기에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이 로마 시대에 닦은 길이에요. 2천년 전 길이 지금도 있어요. 그 길로 이 마차들이 다니면서 이것으로 육지와 항구를 연결하는 어마어마한 역할을 에베소가 해냈던 것입니다.
지금도 가보시면요 이게 목욕탕이에요.
저 위에 조그맣게 있는 게 사람이거든요. 목욕탕이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지금 여러분들 온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큰데 그만큼 뭐가 발달했냐면 그만큼 유흥이 발달했고 그만큼 이 당시에는 사치가 향락이 발달했어요.
여기 보시면 뭐가 있느냐 이게 뭘까요? 온수관입니다. 온수관 파이프가 있어서 지금도 이 온수관으로 따뜻한 물을 써서 목욕을 했던 그 기록이 남아있는 그런 도시예요.
여기 가보시면요 여기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체육관 시설이 따로 있었어요. 그리고 여기에는 결정적으로 1400명이 들어가는 원형 경기장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검투사들이 싸웠고 사자가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먹어버렸던 바로 그 장소죠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조롱하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말했던 그 원형 경기장 그것이 바로 이 에베소에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이랬던 에베소를 지금 누가 말씀하시는 거예요.
일곱 별을 붙잡고 7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더니,
여기서 말하는 붙잡고란 단어는요 그냥 손만 댄 게 아니라 완전히 꽉 붙잡은 것입니다. 이 단어는요 절대 흔들리지 않도록 꽉 붙잡은 거예요. 완전히 붙잡았어요.
이분이 누구냐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지만 아무리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이 에베소지만 그곳에 있는 교회를 하나님은 꼭 붙잡고 지켜주신다
그래서 그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7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 교회를 붙잡고 교회 가운데 계시는 분 예수님이죠.
어떻게 지켜주십니까 바로 사도바울를 보내셨고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를 보내셨고 또 아볼로를 보내셨고 여기에 초대 감독은 디모데입니다.
그리고 요한도 이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쓰고 마지막에 유배가 마치면 이 예배소에서 목회하면서 말년을 보냅니다. 바로 그랬던 곳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우상이 득세하고 아무리 세상적으로 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높아진 것 같지만 그 지역을 포기하지 않고 목회자들을 보내시고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끝까지 함께 하시는 거죠.
그래서 여기 에베소에 가면 어떤 유적이 제일 유명하나 바로 사도 요한을 기념하는 교회가 있어요.
그해 말년을 여기서 보냈기 때문에 저 문이 바로 박해문이라고 하는 문이 있습니다. 들어가시면 뭐가 있냐하면 그 교회에 그 당시에 큰 기둥이 세워졌던 저런 터가 보이고요.
굉장히 큰 교회죠 지금도 이런 교회가 아마 없을 텐데 굉장히 큰 교회가 사도 요한을 기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안에 보시면 저기 세례터도 있구요. 많은 사람들이 저기서 믿음을 갖고 세례를 받았다는 증거죠.
그리고 또 뭐가 있는가 저게 보시는 게 바로 사도 요한의 무덤입니다. 이렇게 써 있어요. 보시면 아 사도 요한의 무덤이 여기 있다.
그만큼 이곳이 요한에게 있어서 의미 있는 곳이 에베소 교회가 첫 번째 교회였는데 여기 가면 또 뭐가 있냐면 누가의 묘가 있어요.
누가 누가 복음을 쓴 누가가 여기에 묻혔다는 거죠. 한국말로 된 여러분 게시판에 있는데, 이 누가의 묘가 보시면 이렇게 좀 어수선해 보이지만 누가의 묘라는 걸 알 수 있는 하나의 유적지 뭐가 있냐면 바로 이거예요. 보시면 가운데 십자가 있고 그 안에 뭐가 보여요.
소가 한 마리 보이십니까 황소가 자 이 황소 이게 중요한 거죠. 이 황소가요 누가의 상징물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소의 복음이라고 부르거든요. 그래서 이 황소가 나온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 자리를 조사하고 발굴해서 이것이 누가의 묘라는 것을 밝혀냈어요.
이것이 바로 에베소인데요. 자 그럼 이 애베소에 어떤 모습을 말씀하시는가 바로 칭찬할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칭찬할 부분 우리 2절과 3절 읽어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내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내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랬어요.
여러분 이 신천지나 이단들은 이 일곱 교회를 가지고 교회를 비난하는 데 쓰지만 실제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칭찬하고 계세요.
교회가 너무너무 잘하고 있다는 거예요. 잘하고 수고한다. 여러분 제일 먼저 뭘 말씀하신다 세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행위와 수고와 인내여요.
여러분 교회가 칭찬받을 교회의 사명이 뭐냐 첫 번째 행위인데 행위가 뭐예요? 말보다 귀한 것이죠.
여러분 왜 교회가 욕을 먹어요. 말만 앞서니까 그런데 말보다 귀한 행위 섬김과 나눔이 있을 때 그 교회가 칭찬을 받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율법과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아 그 교회의 열매입니다.
우리 교회 열매가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거예요.
자 두 번째는 수고입니다. 수고는 포커스라고 하는 말은 뭐냐면 그냥 좀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피 흘리도록 열심히 하는 거예요.
굉장히 고된 일을 감당하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날에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아유 부담돼서 못 하겠다고 나 그 직분 부담돼서 못 하겠고 나 그 봉사 부담돼서 못 하겠고 요즘은 또 예배도 안 부담돼서 못 드리겠다고 여러분 그런데요.
그게 얼마나 사실 안타까운 이야기입니까?
여러분 부담돼서 못 한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어디밖에 없어요. 교회밖에 없어요.
여러분 직장에서 직장 상사가 일 시키는데 아 나 부담돼서 못 하겠다고 그런 사람은 당장 짤립니다. 여러분 학교 가서 학생이 선생님한테 아 선생님 저 부담돼서 밖에 못 오겠어요. 저 부담돼서 수업 못 오겠어요그럼 걔는 그만둬야 돼요.
다른 일 알아봐야 돼요. 어느 세상이 어디도 부담돼서 못 하겠어요. 스토리 할 수 있는 데가 없어요. 그런데 교회 가서 당당하게 합니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니 말로는 하나님이 최고래 하나님 믿고 신앙 생활하는 게 내 삶의 목표래 그러면서 조금만 뭐 한다. 한다. 한다고 그러면 부담돼서 못 하겠다고 여러분 이것은 우리가 정말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세상에 있는 것들은 아무리 부담돼도 우리 다 합니다. 왜 돈 벌어야 되니까.
내가 직장생활을 해야 되니까. 근데 하나님 말씀과 교회는 조금만 부담되면 안 해버려요
여러분 이런 것이 참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포커스 피 흘리도록 고된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가
세 번째는 인내입니다.
인내는요 이 당시에 아무런 대가나 칭찬이 없잖아요.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아요. 하나님이 어떤 기적도 보여주지 않아요.
그런 와중에 목숨을 버리도록 순종할 수 있는가 이것이 인내죠 여러분 우리가 작은 것을 하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지만 그 작은 것을 계속 해내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위대한 일이에요.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내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여러분 끝까지 인내하는 것은 굉장히 소중한 일이고 이것은 칭찬받기에 마땅한 일입니다.
자 그래서 그들은 또 뭘 했나 행위 수고 인내 여기다 또 이걸 했어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어요. 이것이 뭐죠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잡는 믿음입니다. 악한 자 절대로 용납하지 않아요.
여러분 교회가 부흥할 때 갖게 되는 하나의 아이러니는 교회가 커지려면 안 맞는 사람들도 다 끌어안고 간다는 거예요. 악한 자들 다 용납하고 간다는 거예요. 왜 숫자를 늘려야 되니까. 규묘를 늘려야 되니까.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그러지 않았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못 잡았다는 거죠.
그다음에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했어요. 이게 뭐예요? 올바른 신앙을 분별하는 지식이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교회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올바로 성경적인 지식인가를 분별하는 지식이 있어야 돼요. 그 다음에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냈다 이것이 바로 이단을 배격하여 교회를 지켜낸 열심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 또는 몸집을 불리기 위해서 웬만한 이단 사설은 다 품고 가는 경향들이 있어요.
그래서 교단에서도 또는 어떠한 뭐 연합 기관에서도 이단을 정죄하지 않아요. 왜 그들 그들이 있어야 힘이 되니까. 그들이 있어야 돈이 되니까. 여러분 이것은 매우 잘못된 거죠.
이단은 배격해야 되고요. 교회를 지켜내야 되는 것이죠. 자 그 당시에 열두 사도의 교훈이라고 하는 책이 지금 발견됐어요.
2세기 초반 시리아에서 쓰여진 책인데 이 문서에 보면요 열두 사도들 디다케라고 해서 이 열두 사도가 그 당시에 교회에 대해 준 가르침들이 다 굉장히 성경 시대의 가르침 적혀져 있는데 이런 말이 써 있습니다.
만일 순회하는 예언자가 또는 교사가 한 교회에 머물러 목회하겠다고 하면 교회는 그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활비를 부담하라 옛날 제사장에게 했던 것처럼 농작물이나 가축의 첫 수확 포도주의 첫 항아리도 목회자에게 주라
자 목회자가 목회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얘기죠 그런데 마지막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그러나 예언자가 교사가 주님 말씀에 어긋나게 가르치면 배척하라
이게 뭐냐하면 목회자와 성도가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는 게 중요하죠.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과연 그것이 성경적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게 없으면요 교회가 이단에 넘어가기가 너무 좋은 거죠.
지금 신천지 이단이 정말 눈에 불을 켜고 우리 부산에도 야고보 성전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여러분 12 지파가 사실은 구약에 나오는 개념이고 이들이 말하는 베드로 야고보 뭐 이런 거는 다 신약에 나오는 제자거든요.
그런데 이걸 갖다 붙여서 이걸 12지파로 말하고 있는데, 어찌 보면 참 무식한 짓이죠. 근데 그동안에 그들 어차피 성경에 관심이 없으니까 성경 외에 자기네 생각을 막 말을 하니까 여러분 정말 중요한 건 뭐냐하면 분별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 분별은 어떻게 와요. 말씀에서 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연구하는 것 외에는 이 교회를 지켜낼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자 그런데 책밍 할 것도 있습니다. 여러분 중요한 거죠. 교회는 잘하고만 있는 게 아니에요. 부족한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자 어떤 부분이 부족해요.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뭐예요?
첫 번째 예수님은요 교회의 사랑을 물으십니다.
여러분 주님은 교회에 목회자에게 또는 성도에게 너 왜 교회에 부흥 못 시켰냐 너 교회 왜 이만큼밖에 안 나오냐 이거 묻지 않으세요.
왜 숫자가 떨어졌냐 이렇게 묻지 않으세요. 우리에게 왜 헌금이 줄었냐 라고 묻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왜 사랑이 줄었냐 사랑을 물으신다는 거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회가 서 있어야 되는데 왜 그 처음 사랑을 버렸느냐 물으시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성경 지식을 공부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잃어버린 것과 버린 것은 다른 문제죠 잃어버린 것은요, 상황이 그렇게 돼서 할 수 없이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버렸다는 거는 내 의지의 문제입니다.
이들은 사랑을 버렸습니다. 이게 문제죠 근데 더 여러분들 놀라운 게 이 세 번째인데요.
이들이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아무 문제가 없잖아요. 지금 게다가 열심도 있고 지식도 있어요. 실력이 뛰어난 교회예요.
그런데도 처음 사랑을 버릴 수가 있다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함정이에요. 즉 교회가 잘 돌아가고요. 교회가 멀쩡해 보이고요.
교회가 다 괜찮아 보이는데 그 속에 사랑이라고 하는 동기가 이미 사라졌을 수도 있다. 이미 버렸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가 겉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무엇이 중요합니까? 성령님께서 처음에 주셨던 교회를 세울 때 열정이 중요한 거예요.
저희 교회가 30주년 되었는데 중요한 건 30년 전에 처음 교회를 세우던 열정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왜 교회가 하나 더 필요할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시는 참된 교회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그 소망과 열정이 다시금 회복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 5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약 그러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내게 가서 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말씀합니다.
자 세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생각 그리고 회개 처음 행위를 갖는 것이에요. 여기서 두 가지는 묶여요. 생각과 회개는 묶여요.
여러분 생각하고 회개하라 이걸 나름대로 혼자 고민하고 회개하면 안 돼요. 할 수 없어요. 뭐 어떻게 해야 됩니까? 말씀을 묵상해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하며 생각해야 그 가운데 회개할 수 있는 모습이 보이는 거죠. 여러분 말씀은 거울과도 같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거예요.
그리고 말씀은 창과도 같아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게 해주는 창이 바로 말씀이에요.
그래서 말씀을 묵상하고 깨달아 회개하라 그러면 뭐가 뭣이 회복됩니까? 순수한 사랑의 열정이 회복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처음 교회 나올 때 그 신앙 처음 주님 영접할 때 그 사랑 처음 내가 봉사할 때 그 두근거림과 설레임이 회복되는 거예요.
여러분 타성에 젖는 것은 이렇게 위험해요. 다 멀쩡해 보이는데 타성에 젖으면 처음 사랑을 버리면 모든 것이 다 점검해야 되는 거예요.
야 너 쟤 자꾸 그러면 내가 너 촛대로 옮길 거야.
이 말이 뭐예요? 실제로 옮긴다는 말입니까? 아니죠.
이것은 우리에게 사랑을 촉구하시는 말씀이죠.
자 그래서 오늘의 2장의 결론입니다.
자 오늘 에베소 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본 내용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은 뭐예요?
첫 번째 교회를 향한 회복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애정은 교회에 있어요. 교회를 살리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교회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하나님 목표다
두 번째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교회를 꽉 붙들어 주신다 교회가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시는 분 그리고 교회 가운데 거니시면서 교회와 함께 계시는 분 임마누엘 예수님을 다시 한번 에베소 교회는 우리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죠.
세 번째는요 교회의 사명이 뭐예요?
행위와 수고와 인내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칭찬받을 것이 이거예요. 여기에 더한다면, 여기에 말씀을 읽는 올바른 분별력과 열심과 지식이 필요하겠죠.
네 번째는요 말씀과 회개로 처음 사랑을 되찾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요한계시록 강의를 하면서 이 말씀을 참여하면서 여러분 특별 새벽 기도회 기간에 이 말씀을 받는 것은 무엇이에요. 이 말씀으로 나를 비춰보는 거예요.
하나님 저는 어떤 모습입니까?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 아디라 교회의 교회마다 여러분이 말씀을 깊이 북상하시면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내가 새로워졌다는 말씀을 무엇인가를 꼭 깨달으시고 우리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이 특색 기간이 되고 이 강의 기간이 될 수 있기를 여러분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둘째 날 주님 주시는 일곱 교회의 말씀 가운데 에베소 교회의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주님 저희들에게도 이 처음 사랑이 있었는데 혹시 우리가 처음 사랑은 버린 채 내가 생각할 때 중요한 것들 내 욕심과 야망을 채우려는 것들을 더 쫓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 이것을 돌아보게 하시고 오직 이 교회를 붙잡으시고 교회 가운데 거니시며 교회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번 붙잡고 말씀을 통하여 그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주님만 따르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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