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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호남(湖南)과 풍류(風流)
1. 백탑파
이렇게 광주만 오면 제 마음이 아주 편하다. 광산이 본이고, 광주는 어려서부터 매년 왔고, 기차를 타고 오는데, 호남가라고 아는가? 오늘 내려오는데 그 노래가 생각나더라.
호남가는 판소리 하는 사람들이 단가로 부르는 노래지만, 그 내용을 짚어보면, 정말 호남인의 정서와 호남인의 산천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노래가 없다.
여러분들이 호남가라고 하면, 그저 판소리 단가로 그냥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호남가의 내용을 이서구라는 사람이 지었다고 한다.
@ 이서구(李書九, 1754~1825)
본관 전주, 조선후기 사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한국 민중의 감정을 주체적으로 표현했다.
정조 때 사람이다. 유득공, 박제가, 이덕무와 더불어, 4대시인이라고 해서 유명한 사람이다. 이들을 백탑파라고 한다. 백탑은 서울 파고다 공원의 원각사 탑이 흰 색이어서 백탑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네 사람이 종로 주변의 백탑 주변에서 살고, 놀았기 때문에 백탑파 시인이라고 한다.
유득공(柳得恭, 1748~1807). 本貫 文化
박제가(朴齊家, 1750~1805). 本貫 密陽
이덕무(李德懋, 1741~1793). 本貫 全州
이 사람들의 수령 노릇을 한 사람이 양반전으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이다.
@ 연암 박지원(1737~1805)
백탑파 4가시인의 영수. 열하일기 양반전 등을 지어 변통을 모르는 당대의 지식사회를 통렬히 비판했다.
지동설을 주장한 홍대용 같은 대 사상가들과 죽을 때까지 교류를 하였다고 한다.
@ 홍대용(洪大容, 1731~1783)
북학파의 대가 지동설, 우주무한론 등을 주장하여 중화중심주의를 깨고 당대 첨단의 과학사상을 바르게 인식하였다. [의산문답]
연암 박지원도 그렇지만, 백탑파 사람들의 특색은 국제 감각이 탁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지금의 북경을 다녀오는 연행을 했던 사람들이다. 지금으로 말한다면 어려서 뉴욕에 가서 놀다 온 사람들이다.
@ 연행(燕行)
청나라의 수도 연경(燕京)을 다녀온다는 뜻인데, 당대 세계문물의 첨단을 접하는 기회였다. 그러나 조선 정계 주류의 사람들은 이들의 체험을 무시했다.
그런데 조선조의 외국 가기가 무척 어려웠던 시절에 사신으로 연경을 많이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람들이 트였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의 주자학은 완전히 경직되면서, 노론이라는 주자학 정통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청나라로 중원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점점 경직되어 갔다.
지금도 미국이 제일이라고 하면서, 미국만 바라보고 살면, 곤란하다. 나라가 변했으면, 세계정세에 따라서 중국도 봐야 하고, 일본 눈치도 봐야하고, 러시아하고도 적극적으로 통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수파들은 지금도 미국만을 잘 모시고 살면, 우리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나라 우파라는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인데, 우파의 특색은 원래 민족주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우파는 이상하게 민족주의가 없고, 그냥 친미주의만 있다. 거기다가 반공이 더해진다. 이상한 것만 있다. 그건 사실 우파 자격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조선 왕조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중기의 중화사상이라는 게 청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명나라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연호도 숭정 연호만 쓰고, 변한 청나라는 무시했다. 숭정 연호를 구한말까지 썼다.
@ 숭정(崇禎)연호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 1628~1644)의 연호. 청국이 북경 자금성에 입성하자 쓸쓸히 목매달아 죽었다.
그렇게 우리나라가 완전히 시대감각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자금성이 있는 청나라 북경을 가보니, 강희, 건륭이니 하는 왕들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며,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저 주자학 정통주의만을 외치면서 고루한 유학사상만 고집하고 있었다.
그래서 북학파라고 하는 연암 박지원, 홍대용 같은 사람들은 이걸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백탑파 시인들은 조선풍이라는 것을 외친다.
@조선풍(朝鮮風)
연암 박지원이 이덕무의 시집 [영처고]의 서문을 쓰면서 외친 말.
貊男濟婦之性情, 可以觀矣. 雖謂朝鮮之風, 可也
그림도 진경산수가 나오기 전에는 몽유도원도와 같은 중국의 이상한 환상적인 그림만 그렸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산하가 있고, 광주 무등산에는 서석대가 있는데, 그런 것은 안 그렸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무릉도원, 소산팔경만 그렸다. 한시를 써도 주제가 중국의 고사들 인용해서 썼다.
그래서 연암이 조선풍이라는 것을 주창한다. 우리 조선의 노래를 만들자는 것이다. 조선지풍이라고 할 적에 이 풍이라는 것은 시경에서 국풍이라고 한다. 모든 나라들의 풍이라고 하는 것이 바람이 아니라 노래였다. 노래를 중국 시경에서는 풍이라는 말로 했다.
@ 국풍(國風)
국은 주나라 제후국들을 가리킨다. 국풍이란 그 여러 나라의 노래들이며 오늘날의 유행가, 민요에 해당된다. 그 가사모음집이 [시경]이다.
그래서 조선지풍이라는 것은 조선의 노래이다. 우리 소재를 가지고, 우리의 체험을 표현하는 진짜 우리 노래를 쓰고, 미술도 우리 그림을 그리자는 것이다. 이게 진경산수다. 겸재 정선은 그 윗대지만, 그런 사람이 나오면서 주체적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한 시각이 바뀐다.
@ 진경산수(眞景山水)
겸재 정선(1678~1759)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미술운동. 관념적 그림에서 벗어나 우리가 보고 사는 우리 민족 산하를 그리자는 주체적 예술관.
그때 이서구라는 사람이 전라남도 관찰사로 있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호남지역을 잘 알고 있었다. 나주에도 비가 있다. 그런 사람이 호남가를 지은 것이다.
2. 호남가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 광주(光州) 고향(故鄕)을 보랴허고 ]
함평천지(咸平天地)
다 함(咸) 평평할 평(平)
함평천지라고 하면, 평평한 천지라는 뜻과 함평이라는 지명을 얽은 것이다.
함평이라는 지명과 그 단어의 일반적 의미를 중첩시키는 문학기교를 펀(pun)이라 하고, 쌍관어(雙關語)라고도 한다.
평평한 이 천지간에 늙은 몸이 오래간만에 광주 고향을 보려고,
[제주어선(濟州漁船) 빌려 타고 해남(海南)으로 건너갈 제 ]
그 당시가 제주도가 전라도 소속이었다. 그래서 호남가에 제주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이다.
[흥양(興陽)에 돋은 해는 보성(寶城)에 비쳐있고, ]
흥양은 해가 올라온다는 의미가 있다. 흥양은 고흥의 옛이름이다. 흥양이 보성의 동쪽이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오면, 흥양에서 돋은 해가 실제로 보성을 비춘다. 이때 보성은 지명이기도 하지만, 찬란하게 보석으로 뒤덮인 성이라는 뜻이 된다.
새벽에 보석성을 비추면 얼마나 반짝반짝 찬란하겠는가? 이렇게 지명과 한문의 뜻을 얽어서 재미있는 만든 노래이다.
[고산(高山)의 아침안개 영암(靈岩)을 둘러있다. ]
고산은 전라북도 꼭대기인데, 과장이 좀 심하고 스케일이 크다. 아침안개가 월출산 영암을 둘러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멋있는가? 영암은 영험스러운 바위라는 말이다. 높은 산의 아침안개가 영험스러운 바위를 둘러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이렇게 지명과 뜻을 엮은 것이다. 이서구라는 탁월한 문학가이며 대단한 지식인의 작품이다.
[태인(泰仁)하신 우리 성군(聖君) 예악(禮樂)을 장흥(長興)하니 ]
태평하고 인자한 우리 성군은 당시의 임금인 정조를 말한다. 태인은 정읍 근처에 있다. 장흥은 길게 흥한다는 뜻이 된다.
[삼태육경(三台六卿)의 순천심(順天心)이요. ]
삼태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말한다. 육경은 육조판서들이다. 중앙의 높은 관료들은 하늘을 따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순천은 옛날에 순천 부사가 있던 곳이다. 순천에 가면 팔마비라는 것이 있다. 고려 충렬왕 때 최석이라는 사람이 순천에 와서 선정을 베풀다가, 내직으로 돌아가니깐, 순천 사람들이 관례대로 말 7마리를 바쳤다고 한다.
원래 관료들이 퇴임해서 갈 때, 7마리에다가 잔뜩 훔쳐서 가는 거였다. 그런데 이 최석이라는 사람은 훌륭해서 서울에 도착해서 도중에 낳은 새끼말 1마리까지 더해서 8마리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순천 사람들이 이 사람의 진심을 알고, 위대한 부사의 뜻을 기려서 팔마비를 세웠다. 그 뒤로 순천을 떠나는 부사들한테 말을 주는 습관이 없어졌다고 한다.
@ 팔마비(八馬碑)
고려 충렬왕때의 승주부사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백성들이 기린 진짜 공덕비.
[방백수령(方伯守令)의 진안군(鎭安郡)이라. ]
방백수령은 지방 관리들이다. 서리나 수령들이다. 수령들은 백성들을 진압해서 편안하게 해주어야 된다.
[고창성(高敞城)에 높히 앉아 나주풍경(羅州風景) 바래보니 ]
고창에서 나주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스케일이 크다. 그런데 실제로 보인다. 해안으로 해서 평지라서 높은 산이 가리지 않는다.
[만장운봉(萬丈雲峰) 높이 솟아 층층(層層)한 익산(益山)이요. ]
운봉은 남원 옆으로 해서 지대가 높아진다. 익산은 산이 있고 또 산이 있다는 것이다. 층층이 산이고 또 산이라는 것이다.
[백리담양(白里潭陽) 흐르는 물은 구부구부 만경(萬頃)인데, ]
담양에서부터 동진강을 따라서 만경평야로 흐른다. 그러니깐 이게 딱 들어맞는 이야기다. 한 경(頃)은 백묘다. 경은 밭의 단위다. 그러니깐 만경이면 엄청난 평야를 말하는 것이다.
물은 만경에서 새만금으로 흘러간다. 새만금을 왜 막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땅이 부족하지 않다. 대가리가 부족하다. 막지 말고 제방 위에 도시를 건설해도 맨해튼보다 면적이 넓다. 그러면 뻘도 살리고 바다 한복판에 세계적인 도시를 건설할 수 있고, 중국 자본을 빨아들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책이 나올 수 있는데, 전북 도민들이 사기를 당하고 있다.
전남 사람은 현명하다. 영산강도 회복하고, 광주는 문화수도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남도는 특히 살기 좋은 곳이 될 거 같다.
[용담(龍潭)의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龍安處)며, ]
용안처는 용이 편안함이 있을 수 있는 곳이다. 용안이라는 지명이 있다. 지금은 용안면인데 옛날엔 용안군이었다.
[능주(綾州)의 붉은 꽃은 골골마다 금산(錦山)인가. ]
능주도 화순 옆에 있다. 여기서 암시하는 것이 있다. 조광조가 능주로 귀양 가서 죽었기 때문에, 능주의 붉은 꽃은 조광조라는 대 석학에 대한, 추념의 의도가 있다.
[남원(南原)에 봄이 들어 각색화초(各色花草) 무장(茂長)하니 ]
남원은 남쪽의 뜰이라는 의미다. 무장(茂長)은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이다.
[나무나무 임실(任實)이요. 가지가지 옥과(玉果)로다. ]
임실, 옥과가 모두 판소리의 고향이다.
[풍속(風俗)은 화순(和順)이요. 인심(人心)은 함열(咸悅)인데 ]
풍속은 화합하고 순하며, 인심은 모든 사람이 같이 기뻐해야 한다.
[이초(異草)는 무주(茂朱)하고, 서기(瑞氣)는 영광(靈光)이라.]
각기 다른 풀들이 무성하게 붉다고 했는데, 원래 무풍하고 주계라는 곳이 합쳐서 무주가 된 것이다. 무풍은 신라였고, 주계는 백제였다. 거기 나제통문이라는 것이 있다. 영광은 영험스러운 빛이 도니깐 서기가 있다는 말이다.
@ 나제통문(羅濟通門)
전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위치한 무주구천동 33경 중 제 1경
[창평(昌平)한 좋은 세상(世上) 무안(務安)을 일삼으니]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공자의 고향이 노나라 창평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창평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창평에 가면 니산(尼山)이라는 산이 있다. 니산은 공자가 태어난 산이다. 공자를 중니라고 한다. 그러니깐 공자가 태어난 창평의 좋은 세상은 편안함을 힘쓴다고 한다. 무안(務安)은 힘쓸 무, 편안할 안이니깐 평안함을 힘쓴다는 말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 낙안(樂安)이요, 부자형제(父子兄弟) 동복(同福)이로구나.]
사농공상,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즐겁고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동복(同福)은 같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강진(康津)의 상고선(商賈船)은 진도(珍島)로 건너갈 제
금구(金溝)의 금(金)을 일어 쌓인게 김제(金堤)로다.]
금구가 김제 옆에 있다. 금구는 금 도랑이다. 김제는 금 제방이라는 것이다. 거기 벽골제가 있다. 그래서 옛날에 호남이라고 그럴 때도, 그 호(湖)가 벽골제를 중심으로 남쪽이라는 설도 있다.
호남의 호가 뭔지 모른다. 중국에서 호남은 명백하다. 동정호를 중심으로 가른다. 동정호 이남을 호남이라고 한다.
[농사하는 옥구백성(沃溝百姓) 임피사의(臨陂蓑衣) 둘렀으니 ]
옥구도 비옥한 도랑이라는 뜻이다. 사의는 도롱이같은 옷을 말한다.
[정읍(井邑)의 정전법(井田法)은 납세인심(納稅人心) 순창(淳昌)이요, ]
맹자의 정전법을 따서 하니, 세금도 잘 걷힌다는 것이다.
[고부청청양류색(古阜靑靑楊柳色)은 광양춘색(光陽春色)이 새로웠다.
곡성(谷城)의 숨은 선비 구례(求禮)도 하려니와 ]
예를 구한다고 해서 구례(求禮)다.
[흥덕(興德)을 일삼으니 부안(扶安) 제가(齊家) 이 아니냐. ]
부안은 모든 평안함을 보좌한다는 뜻이다. 제가는 집안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우리 호남(湖南)의 굳은 법성(法聖) 전주백성(全州百姓) 거느리고 ]
전주(全州)는 모든 주라는 뜻이다.
[장성(長城)을 멀리 쌓고 장수(長水)로 돌아들어
여산석(礪山石)에 칼을 갈아 남평루(南平樓)에 꽂았으니,]
여산의 여는 원래 숫돌 여(礪자)이다. 거기서 광석이 나온다. 남평은 나주 밑에 있다.
[대장부(大丈夫)의 할 일이 이외에 또 있는가. ]
남이 장군의 기개를 표현한 말로 호남인들의 기개를 표현한다.
이렇게 근사하게 끝난다.
3. 4개 층대
우리 민족은 이 땅에서 몇 년 동안 살아온 게 아니고, 몇 만 년, 몇 십만 년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우리 민족만큼 이렇게 높은 문화수준을 유지해가면서, 같은 땅에서 꾸준하게 살아온 사람들도 별로 많지 않다. 지구상에서 희귀하다. 아직도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아직도 우리는 같은 말을 쓰면서, 이 땅을 지켜가고 있는 참으로 위대한 민족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생각을 총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나는 제일 밑에 있는 것이 풍류라고 본다. 보통 우리가 샤머니즘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샤머니즘이 적합한 말은 아니고, 좋은 말도 아니다. 아무튼 외래사상이 이 땅에 오기 전에 우리의 고유한 사상이 있었다.
그런 기초 위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들어와서 쌓이기 시작한다. 이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때까지 이어진다. 그러니깐 풍류 위에 불교라는 층대가 있고, 고려 중기부터 유교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유교라는 층대가 생기고, 그 위로 구한말부터 다양한 사조의 서양 사상이 들어온다. 지금 우리의 메인스트림을 잡고 있는 것은 기독교라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우리나라에 엄청 많기 때문에 벌써 기독교도 외래종교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러한 4개의 층대를 대강 나누어서 고고학적 발굴을 해보기로 한다.
基督敎 Christianity
儒敎 Confucianism
佛敎 Buddhism
巫敎 Shamanism
4.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중국 한 나라 제국이 분열하면서 3국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이 3국을 위나라의 조조가 통일한다.
중원에서 위나라가 위쪽이다. 오나라는 아래쪽이다. 촉나라는 사천 쪽이다. 중국을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 먹으면서, 이 사람들은 변방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옛날에는 황하, 양자강 유역에만 관심이 있다가, 이 사람들의 관심이 사방으로 뻗힌다.
그래서 위나라 사람들은 조선이라는 변방 국가에 대해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조선에 와서 인류학적인 탐사를 한 보고서가 ‘위지동이전’이다.
@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삼국지 중 위서의 제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을 가리킴. 진수(陳壽)의 AD 3세기 작품.
진수라는 사람이 집필했는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보지 않았으면, 기록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 나라별로 되어 있는데, 제일 처음에 부여 이야기부터 나온다. 그 유명한 영고라는 게 나온다.
@영고(迎鼓)
하느님을 맞이하여 북을 친다는 뜻.
고대 북만주지역 우리나라 부여사람들의 하늘제사 축제.
[以殷正月祭天,]
祭天은 하늘에 제사지낸다는 말이다. 제천 행사를 한다는 말이다. 제천행사는 중국에서는 천자만이 하는 것인데, 이 나라에 오니깐 맘대로 민간에서 제천행사를 하는 거였다.
그러니깐 이런 것을 보면, 그 당시 우리가 굉장히 발랄한 종교문화를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國中大會,]
한문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국중에 대회라고’ 요새말로 해석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여기서는 다 부사로 해석해야 한다.
나라 사람들 전체가, 크게 모인다는 뜻이다.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연일 계속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춘다. 이것을 영고라고 한다. 북을 치면서 새해를 맞이한다고 해서 영고라고 한 거 같다.
이것이 한국인에 관한 제일 진실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좌우지간 모이길 좋아한다. 크게 모이길 좋아하고, 모였다 하면 먹고 마신다. 외국 사람들은 모여도 스낵이나 비스킷을 먹고 만다.
한국 사람은 모였다하면, 우라지게 먹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사생결단하고 술을 마신다. 그리고 반드시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노래를 안 부르면 죽는다. 그리고 반드시 춤을 추어야 한다. 이게 중국에서 한국을 와서 봤을 때 한국 사람의 색다른 모습이었다.
이걸 그냥 해석하면, 이해가 안 된다. 그 당시 인류학자가 이쪽으로 건너와서 봤더니, 이쪽 사람들은 전 나라 사람들이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여서 놀고, 먹고, 마시고 있었다. 이런 평등한 사회가 한국인의 오리지널한 모습이었다.
여기서부터 우리민족은 출발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음식가무’라는 것이 외래적인 것을 다 거치고 나서, 요새 말하는 한류라는 것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풍류(風流)와 한류(韓流)는 구조적 연관성이 있다. 한류는 기나긴 외래사상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본래의 생기발랄한 민족개성의 발로로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5.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마한조(馬韓條)
위지동이전에는 전라도 이야기가 나온다. 마한에 대한 아주 옛날이야기가 나온다.
[其俗少綱紀,]
전라도 사람들은 풍속의 기강이 좀 풀려있다고 한다.
전라도 마한 사람들이 이렇게 기강이 풀려있다는 말은 나쁜 말이 아니고, 자유스럽다는 것이다. 규율에 얽매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인 것이다.
[國邑雖有主帥, 邑落雜居, 不能善相制御]
주수(主帥) 즉 지도자가 있지만 컨트롤이 안 된다고 한다. 제어가 안 된다고 한다. 전라도 마한 사람들은 옛날부터 개성이 강하고 잘 제압이 안 되었다.
[無跪拜之禮]
무릎을 꿇고 절하는 습속이 없다고 한다.
[居處作草屋土室, 形如冢, 其戶在上,]
거처는 초가집을 짓고, 토실에 사는데, 꼭 무덤모양 같고, 창문이 위로 나있었다. 옛날에 그런 집이 있었다.
[擧家共在中, 無長幼男女之別]
장유남녀지별도 없이 모두 한 이불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옛날 우리 어려서만 해도 다 그렇게 살았다. 꺼먼 목이불 속에 다 들어가서 자고 그랬다. 이게 나쁜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 사람들의 모습을 잘 나타낸 것이다.
[常以五月下種訖, 祭鬼神,]
오월이 되어서 파종이 끝나고 나면, 귀신한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여기서 귀신은 땅의 신과 하늘의 신을 말한다. 요즘 쓰는 귀신이 아니다.
귀(鬼) : 돌아간다(歸)는 뜻으로 땅의 신.
신(神) : 펼친다(伸)는 뜻으로 하늘의 신.
[群聚歌舞, 飮酒晝夜無休.]
어김없이 무리로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주야로 쉬지 않고 음주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이 아직도 술이 많이 마신다.
[其舞, 數十人俱起相隨,]
그 춤이 수 십 명이 같이 일어나서, 서로 따라가고,
[踏地低昴, 手足相應,]
땅을 확 밟았다가, 머리를 굽혔다가 올렸다고 한다. 이게 정확하게 우리 농학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손과 발이 서로 상응하였다고 한다.
[節奏有似鐸舞]
절도 있게 연주하면서 돌아가는 게, 자기들의 탁무(鐸舞) 같다고 한다.
이 탁무가 방울춤인데, 우리나라 농악의 형태와 같다. 그러니깐 위지동이전은 정확한 기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十月農功畢, 亦復如之.]
그래서 10월에 농사가 끝나도 똑같이 한다는 것이다. 5월에도 놀고, 10월에도 놀았다는 것이다.
[信鬼神, 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 名之天君.]
귀신을 섬기는데, 천지를 모시는 주제자를 한 사람 세우는데, 그 사람을 천군이라고 한다. 이 천군을 단군이라고 하는데, 무당들이었다. 우리 민족은 이렇게 옛날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살고 있다.
6.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
또 하나 재미있는 것으로 신라의 고운 최치원 선생이 난랑이라는 화랑 중에 한 사람을 위해 만든 비의 서문이 남아있다.
난랑비서(鸞郞碑序)
고운 최치원(857~?)이 화랑 난랑을 기리기 위하여 쓴 비문.
난랑비는 없어졌는데, 서문이 문헌으로 남아있다. 여기에 그 유명한 말을 하고 있다.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나라에 현묘지도가 있는데, 왈 풍류라 한다.
우리나라에 불교, 도교, 선교와 같은 외래 종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우리 고유의 것이 있었다는 말이다. 원래부터 있었다는 말이다.
원래 있던 것이 굉장히 현묘하다고 한다.
현은 검을 현이라고 하는데, 오묘하고 신비롭다는 뜻이다. 바닷물을 손으로 뜨면 맑지만, 그냥 멀리서 보면 푸르고 깊게 보인다. 하늘도 가까이서 보면 맑지만, 눈을 들어 멀리 하늘을 보면 깊다.
현은 흑과 다르다. 까만 게 아니다. 까만 건 영어로 Black이고, 이 현은 dark라고 한다. 그러면서 오묘하다는 것이다. 현묘한 도가 있었다고 한다. 도는 딴 게 아니라, 길이고, 모든 법칙이라는 말이다.
도(道) : 길(Way) : 법칙(Law)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서 인간이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길이 있는데, 그 길이 매우 현묘하다는 것이다. 이 현묘지도를 일컬어 풍류라 하였다.
류(流)는 흐름을 말한다. 즉 류는 길하고 통한다. 도(道)가 류로 대치된 것이다.
류(流, 흐름) = 도(道, 길)
그리고 현묘하다는 것은 바람이 된 것이다.
바람(風) = 현묘(玄妙)
바람이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바람이 아니다. 바람이라고 하면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대기가 이동하는 현상으로 보는데, 이렇게 보는 것은 우리가 과학적 인식에 빠졌기 때문이다.
장자는 바람을 천뢰(天籟)라고 했다. 뇌성 같은 바람은 우주 생명력의 표현이다. 살아있는, 움직이는 모든 것이 생명이다. 그럼 우주가 움직이는 것을 무엇으로 느끼는가? 제일 먼저 인간이 느끼는 우주 생명력은 바람이다. 이것은 매우 현묘한 것이다.
그 바람을 가장 극적으로 상징한 것이 그게 바로 새다. 바람을 타고 다니는 하늘의 새들, 독수리나 이런 것들이다. 우리는 비행기를 만들어 다니니깐 새들을 우습게 보지만, 옛날에 새들을 보면 얼마나 부럽게 보였겠는가? 옛날 사람들에게 새는 우주 생명력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장자의 서문에 대붕의 이야기가 나온다. 장자는 대붕을 가지고 인간의 위대한 정신의 고양을 이야기하고 있다.
水擊三千里
물을 한번 치면 삼천리,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떴다 하면 구만리, 날면 6개월
대붕이 저 밑에서 아글거리는 인간들을 보면서 소요하는 모습으로 인간의 정신의 고양으로 그렸다. 이게 바람의 세계다. 장자는 그것을 시적(poetic) 으로 표현했다.
우리 민족의 종교는 바람의 종교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 바람의 느낌을, 현묘하다고 한다.
그리고 바람에 흔들려서 나타나는 것이 나무다. 그래서 신라 시대 때 왕관 같은 것을 보면, 전부 나무 형태다. 그리고 전부 나뭇잎이 달려있다. 그 왕관을 쓰면 반드시 흔들린다. 그것이 바람의 상징이다. 왕의 위엄을 나타낼 때도 바람으로 표현한다. 반드시 새날개로 표현한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바람의 민족이고, 그 바람이 현묘한 것이다. 아주 오묘하고, 깊고, 은은하고, 그게 천박한 게 아니다. 현묘한 길, 바람의 흐름, 이것이 우리 민족의 본질이었다.
풍류라는 최치원 선생의 위대한 이 한 마디 때문에 우리 민족의 본질을 이렇게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항상 예술성이 탁월하다. 노래를 잘한다. 우리 민족이 오늘날까지 음악에는 귀재들이다. 나도 그래서 이렇게 항상 신바람 나는 인생을 산다.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내가 말하는 풍류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이미 삼교를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 당시 이미 들어온 모든 외래 종교들이 다 여기에 이미 들어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최치원의 주체적인 발상인가?
우리 민족에게는 풍류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동아시아 전 세계의 종교들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풍류를 가지고 중생들을 교화시켰다.
[且如, 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집에 들어오면 효하고,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라, 이런 것이 노사구의 종지라는 말이다. 노사구는 노나라의 법무장관인데, 공자를 지칭한다. 직접적으로 공자라는 말을 쓰지도 않았다.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무위의 일에 처하고, 말하지 않는 가르침을 가르친다. 이게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이건 주나라 도서관장을 한 놈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노자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周柱史가 주나라의 도서관장쯤 되는 벼슬이다.
자(子)라는 글자를 쓰면 그건 높이는 말이 된다.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제선을 봉행하라. 축건(竺乾)은 인도를 뜻한다. 천축국 인도 태자 놈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불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세 놈이 말한 게 이미 우리에게 있다. 풍류 속에 있다고 한다.
이러한 위대한 최치원의 사상을 보면서, 이걸 샤머니즘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샤머니즘은 근대 인류학자들이 만든 말인데, 그런 말 쓰지 말자는 것이다.
원래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풍류의 바닥이 있다. 이 풍류의 바닥으로부터 우리 민족은 덧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 위에 불교를 덧붙이고, 유교가 덮치고, 오늘날 기독교가 그 위로 덮히기까지 우리 민족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가?
이것은 다음 주에 여러분과 만나서 토론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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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光州 고향을 보랴허고
1. 호남가(湖南歌)라는 短歌의 내용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 광주(光州) 고향(故鄕)을 보랴허고
제주어선(濟州漁船) 빌려 타고 해남(海南)으로 건너갈 제
흥양(興陽)에 돋은 해는 보성(寶城)에 비쳐있고,
고산(高山)의 아침안개 영암(靈岩)을 둘러있다.
태인(泰仁)하신 우리 성군(聖君) 예악(禮樂)을 장흥(長興)하니
삼태육경(三台六卿)의 순천심(順天心)이요.
방백수령(方伯守令)의 진안군(鎭安郡)이라.
고창성(高敞城)에 높히 앉아 나주풍경(羅州風景) 바래보니
만장운봉(萬丈雲峰) 높이 솟아 층층(層層)한 익산(益山)이요.
백리담양(白里潭陽) 흐르는 물은 구부구부 만경(萬頃)인데,
용담(龍潭)의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龍安處)며,
능주(綾州)의 붉은 꽃은 골골마다 금산(錦山)인가.
남원(南原)에 봄이 들어 각색화초(各色花草) 무장(茂長)하니
나무나무 임실(任實)이요. 가지가지 옥과(玉果)로다.
풍속(風俗)은 화순(和順)이요. 인심(人心)은 함열(咸悅)인데
이초(異草)는 무주(茂朱)하고, 서기(瑞氣)는 영광(靈光)이라.
창평(昌平)한 좋은 세상(世上) 무안(務安)을 일삼으니
사농공상(士農工商) 낙안(樂安)이요, 부자형제(父子兄弟) 동복(同福)이로구나.
강진(康津)의 상고선(商賈船)은 진도(珍島)로 건너갈 제
금구(金溝)의 금(金)을 일어 쌓인게 김제(金堤)로다.
농사하는 옥구백성(沃溝百姓) 임피사의(臨陂蓑衣) 둘렀으니
정읍(井邑)의 정전법(井田法)은 납세인심(納稅人心) 순창(淳昌)이요,
고부청청양류색(古阜靑靑楊柳色)은 광양춘색(光陽春色)이 새로웠다.
곡성(谷城)의 숨은 선비 구례(求禮)도 하려니와
흥덕(興德)을 일삼으니 부안(扶安) 제가(齊家) 이 아니냐.
우리 호남(湖南)의 굳은 법성(法聖) 전주백성(全州百姓) 거느리고
장성(長城)을 멀리 쌓고 장수(長水)로 돌아들어
여산석(礪山石)에 칼을 갈아 남평루(南平樓)에 꽂았으니,
대장부(大丈夫)의 할 일이 이외에 또 있는가.
2. 호남가의 저자, 이서구(李書九, 1754 영조30~1825 순조25)는 누구인가?
조선후기 四家詩人의 한 사람
1. 이덕무(李德懋, 1741~1793). 本貫 全州
2. 박제가(朴齊家, 1750~1805). 本貫 密陽
3. 유득공(柳得恭, 1748~1807). 本貫 文化
『渤海考』: 高麗不修渤海史, 知高麗之不振也. 昔者高氏居于北, 曰高句麗; 扶餘氏居于西南, 曰百濟;
朴昔金氏居于東南, 曰新羅. 是爲三國, 宜其有三國史, 而高麗修之, 是矣. 及扶餘氏亡高氏亡,
金氏有其南, 大氏有其北, 曰渤海, 是謂南北國. 宜其有南北國史, 而高麗不修之, 非矣. 夫大氏者何
人也, 乃高句麗之人也 其所有之地何地也, 乃高句麗之地也, … 高麗遂爲弱國者, 未得渤海之地故也,
可勝歎哉. 或曰, 渤海爲遼所滅, 高麗何從而修其史乎? 此有不然者. 渤海憲象中國, 必立史官.
其忽汗城之破也,世子以下奔高麗者, 十餘萬人, 無其官則必有其書矣. 無其官無其書, 而問於世子,
則其世可知也.
問於隱繼宗, 則其禮可知也. 問於十餘萬人, 則無不可知也, 張建章唐人也, 尙著渤海國記,
以高麗之人, 而獨不可修渤海之史乎!
本貫 全州. 1758, 나이 5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16세 때 朴趾源을 만나 문장을 배웠고 1770년에는
(17세) 귀양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잃었다.
1785년 시강원 사서, 1786 홍문관 교리, 한성부판윤, 평안도 관찰사, 형조판서, 판중추부사.
4가시인 중 유일한 적자. 벼슬도 순탄.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고독한 생애를 살았다. 벼슬보다 은거에 미련.
아들이 없음과 늙어감과 벼슬한 일, 이 세 가지를 평생의 恨으로 여겼다.
4가시인 중 유일하게 燕行길에 오르지 않음
洪大容朴趾源 門下. 온유돈후. 사색적. 사물을 관조하는 자세로 담백하게 高妙한 정신세계를 표현
고요하고 아름다운 자연세계와 고귀한 내면의 깊이를 아울러 그려내어 詩의 격조를 높혔다.
3. 燕巖 朴趾源의 [朝鮮之風]
『?處稿序』: 今懋官朝鮮人也. 山川風氣, 地異中華, 言語謠俗, 世非漢唐. 若乃效法於中華, 襲體於漢唐, 則吾徒見其法益高而意實卑, ?益似而言益僞耳, 左海雖僻, 國亦千乘, 羅麗雖儉, 民多俗美, 則字其方言, 韻其民謠, 自然成章, 眞機發現. … 若使聖人者, 作於諸夏, 而觀風於列國也. 攷諸?處之稿, 而三韓之鳥 獸草木 多識其名矣. 貊男濟婦之性情, 可以觀矣. 雖謂朝鮮之風, 可也.
Ⅱ. 한국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인류학적 보고서 『魏志東夷傳』
지식고고학(the archaeology of knowledge)의 과제 : 지식의 역사 : 언설(discours)과 권력
基督敎 Christianity
儒敎 Confucianism
佛敎 Buddhism
巫敎 Shamanism
陳壽(?~297)의 『三國志』 중 『魏書』의 제30권 [烏丸鮮卑東夷傳]
1. 夫餘條: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斷刑獄, 解囚徒. 在國衣尙白, 白衣大袂, 袍,袴, 履革.
2. 高句麗條: 其民喜歌舞, 國中邑落, 暮夜男女群聚, 相就歌戱
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其俗作婚姻, 言語已定, 女家作小屋於大屋後, 名壻屋, 壻暮至女家戶外, 自名?拜, 乞得就女宿,
如是者再三, 女父母乃聽使就小屋中宿, 傍頓錢帛, 至生子已長大, 乃將婦歸家 國人有氣力, 習戰鬪, 沃沮, 東濊皆屬焉
3. 濊條: 常用十月節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爲舞天, 又祭虎以爲神 其邑落相侵犯, 輒相罰責生口牛馬, 名之爲責禍 殺人者償死, 少寇盜
4. 馬韓條: 其俗少綱紀, 國邑雖有主帥, 邑落雜居, 不能善相制御 無?拜之禮 居處作草屋土室, 形如?, 其戶在上, 擧家共在中, 無長幼男女之別
常以五月下種訖, 祭鬼神, 群聚歌舞, 飮酒晝夜無休? 其舞, 數十人俱起相隨, 踏地低昴, 手足相應, 節奏有似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之, 信鬼神, 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 名之天君
又諸國各有別邑, 名之爲蘇塗 立大木, 縣鈴鼓, 事鬼神 諸亡逃至其中, 皆不還之? 好作賊 其立蘇塗之義, 有似浮屠, 而所行善惡有
Ⅲ. 孤雲 崔致遠(857~?)의 『鸞郞碑序』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 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風[pli?m] : 飛廉, 蜚廉 : 鵬, 鳳.
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竺乾太子之化也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莊子』『逍遙遊』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한복음』 3 : 8 pneuma: wind, breath, soul, spirit, life, divinity, a cosmic power or substance, God.
3. 鸞郞碑序(난랑비서)-崔致遠(최치원)
國有玄妙之道曰風流(국유현묘지도왈풍류) : 나라의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設敎之源(설교지원) : 그 교를 창설한 내력은
備詳仙史(비상선사) : 선사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實乃包含三敎(실내포함삼교) : 실은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여
接化群生(접화군생) : 군생을 접화하는 것이다.
且如入則孝於家(차여입즉효어가) : 들어와서는 집에서 효도하고
出則忠於國(출즉충어국) :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魯司寇之旨也(노사구지지야) : 노사구(=공자) 공자의 뜻과 같은 것이요.
處無爲之事(처무위지사) :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行不言之敎(행부언지교) : 말하지 않은 교를 행함은
周柱史之宗也(주주사지종야) : 주주사(노자) 의 종지와 같은 것이요.
諸惡莫作(제악막작) : 악한 일은 하지 말고
諸善奉行(제선봉행) : 선한 일은 받들어 행하는 것은
竺乾太子之化也(축건태자지화야) : 축건태자의 교화이다.
※ 玄妙之道 인 風流에는 유교의 忠孝사상(禮義), 도교의 無爲 사상(道德), 불교의 無我 사상(慈悲) 이 내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