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요10:11,12)
11 “I am the good shepherd, who is willing to die for the sheep. 12 When the hired man, who is not a shepherd and does not own the sheep, sees a wolf coming, he leaves the sheep and runs away; so the wolf snatches the sheep and scatters them.
우리가 청년 시절에는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물처럼 흘러가 버린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 곳이나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주저앉는 일도 조심스럽습니다.
앉을 자리를 손으로 먼저 확인하고 엉덩이부터 천천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의자에 한 30분이라도 앉아 있다가 일어설 때는 아고 아고를 몇 번 하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젊은 때는 이런 일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두 다리로 설 수 없어서 지팡이를 의지합니다.
결국 남을 의지하지 않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먼저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약하다는 것입니다.
제주도에서 닭을 기른 적이 있었습니다.
닭이 식음을 전폐하며 알을 품었습니다.
알에서 병아리가 나왔습니다.
그 때부터 이 암탉이 얼마나 사나워진 줄 모르겠습니다.
물과 사료를 주러 가는 저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이유는 제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병아리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에 매라도 날아다니면 어미 닭 품으로 쏜살같이 달려가서 깃 안에 숨었습니다.
세상은 기독인을 비판합니다.
주체적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말마다 하나님 하나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흐르니 내가 병아리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그의 품안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약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젊을 때는 매라도 달려들 기세였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실은 동양 철학도 그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다될 盡 사람 人 일 事 기다릴 待 하늘 天 목숨 命
진인사대천명
사람이 제 할 일을 다 해야겠지만 사람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하나님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라는 것입니다.
너는 병아리에 불과하다!
병아리 주제에 나도 독립을 한다고 어미 품을 벗어나 보아라!
하늘에서 매가 날라와 그대로 채갈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양이라고 합니다.
아주 약하다는 뜻입니다.
그 말의 의미를 사자나 곰에게 덤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자나 곰과 같다는 것입니다.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까불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은 오늘도 새벽에 기도회를 갔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앉아 있었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가는 것은 제가 도를 닦자는 것이 아닙니다.
도사가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의자에 앉아서 저는 하나님께 그 반대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아니시면 오늘 하루를 제가 어떻게 감당이나 하겠습니까?
좌우간에 기독교에서 기도란 도 닦는 일이 아닙니다.
나약한 우리를 두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일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나약한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는 곰이 나타나도 사자가 나타나도 안전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도사가 되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네 힘으로 해 보아라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본문은 나를 병아리 양과 같다고 제대로 알아보았는데 그 다음 일입니다.
매를 피할 어미 닭은 어떻게 알아보느냐는 것입니다.
또 목자는 어떻게 알아보느냐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어떻게 제대로 알아보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야 엉뚱하게 다른 신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성경은 이리나 사자의 위험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리 사자가 위험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짜 목자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잘못된 목자를 알아 볼 수 없습니다.
사자와 곰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 때 가짜 목자는 양을 두고 도망가 버릴 것입니다.
병아리는 정확히 제 어미를 알아보았습니다.
매라도 나타나면 정확히 제 어미 닭에게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닭이 알을 품을 때였습니다.
그것이 21일 동안을 거의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습니다.
그 알 위에 그대로 앉아 있는 것입니다.
알을 품고 있는 닭을 손으로 들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가벼움에 기겁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가벼울 줄이야!
그것은 한 움큼의 지푸라기보다 가벼웠습니다.
어미 닭은 알을 품기 위해서 생명을 건 것입니다.
달걀을 병아리로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건 것입니다.
그렇게 21일을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전까지 나는 가만히 앉아 있던 닭의 의미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 무게를 통해 그 어미 닭의 무서운 죽음의 결정을 확인한 것입니다.
병아리들은 바로 이 사실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제 어미가 자기를 품었을 때 어미 닭의 앙상한 몸무게로 제 어미 닭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물론 병아리가 나온 후 어미 닭의 태도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사람에게 달려드는 것은 아미 닭으로써는 생명을 거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제 새끼를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료 주러 가도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흙을 파서 벌레라도 한 마리 찾았을 때는 그것을 제가 먹지 않았습니다.
병아리들을 구구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제 영양부터 보충해야 할텐데.......
그것은 희생으로 일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제주도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벌써 40년이 흘렀습니다.
서귀포 시장에서 좌판을 두고 어물을 파시던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홀로 두 아들을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이 그만 깡패 무리와 섞여 다녔던 것입니다.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사시미칼을 휘두르는 깡패 소굴에 이 여인이 홀로 간 것입니다.
내 아들 내놔라, 이놈들아!
깡패들도 이 어머니의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 놈들이 아들을 내놓았습니다.
내 아들 목숨과 내 목숨을 맞바꾸어버리겠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알아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양을 보호하겠다는 목자 중에 가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다른 종교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신이 사람을 위해 죽었다는 그런 종교를 기독교 외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신들이 사람 제물을 요구했습니다.
사람이 우상 신의 제물이 되었다는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던 것입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은 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조차 그리스도의 이 고난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80이 넘으신 신앙인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셨는데 할머니는 바로 그 고난을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예수님을 미워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슨 미운 짓을 했단 말입니까, 목사님?
할머님께 그것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미워하기 전에 주님은 미움을 당해 죽기로 정해지셨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집사님이 아들을 구하려고 간 깡패 소굴에는 사시미 칼을 손에 든 깡패들이 있었습니다.
깡패들이 그 어머니를 죽이러 찾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사님이 아들 대신에 내가 죽겠다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칼 들고 춤추는 곳에 아들을 구하러 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비참하게 죽으신 것은 악당들이 미워하기 전에 더 큰 원인이 있습니다.
주님은 죽을 우리를 구하시기로 정하셨던 것입니다.
죽을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목자란 집사님 같은 사람을 이르는 것입니다.
내 아들 내놔라!
그 가짜들도 봉사를 할 것입니다.
배고플 때 밥도 주고
병원에도 데려가고
율동 가르쳐 주고
그들은 복지학과에서 배운대로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 찾으러 깡패 소굴에는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일은 복지사 자격증을 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은 흉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딴 사람이 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목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만이 목자이심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1 “I am the good shepherd, who is willing to die for the sheep.
그리고 이 말씀이 이 역사 안에서 실제로 2,000년 전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어떤 탁월한 소설가의 소설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역사책입니다.
우리 국사책에 광복절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일은 누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1945년 8월 15일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3.1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의 죽으심이 입증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진정한 목자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주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옥이나 천국을 역사적으로 경험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목자로 모신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그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책은 역사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