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리문답 세례 4
나는 세례 받았다.
내 영혼과 육체는 완전한 구원을 얻었다는
믿음으로 사는 ‘시련’ 가운데 있다.
우리는 세례를 존귀하게 여기고 그 유익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죄로 인해 괴로워하고 양심의 아픔을 당하고 있을 때, 세례는 우리를 강하게 하며 위로합니다. 그때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세례 받았다. 나는 세례 받았다. 그러므로 단호히 선언한다. 나는 복되다. 세례로 인해 내 영과 육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세례 받을 때 둘이 하나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육체에 물이 부어집니다. 그러나 육체는 그 물이 말씀과 결합된 물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영혼은 이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물과 말씀이 하나 되어 세례를 확증합니다.
마찬가지로 물로 인한 육체와 말씀으로 인한 영혼 둘 다, 복과 영생을 누립니다. 영혼은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갖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영혼과 연합하고, 육체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례가 주어집니다. 그 때문에 세례 이외의 그 어떤 보석으로도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장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례를 통해 완전히 거룩하고 복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땅의 어떤 것으로도 생명을 얻을 수도 없고, 어떤 선행도 행할 수 없습니다.
유아세례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일이다.
유아세례를 문제 삼아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무리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유아세례가 유효한 것인지 함께 다뤄 봅시다.
유아세례가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한 일이라는 것은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례 받은 자들을 거룩하게 하시며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많은 이들이 세례 받았던 사람들의 가르침과 삶의 모습을 통해 성령 받았다는 것을 여전히 깨답습니다. 또한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며 그리스도를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우리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유아세례를 거부하셨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린아이 같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은 것이 되며, 그 어떤 거룩한 것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즉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례를 성령을 통해 확증하셨습니다. 교부들을 통해 그 일을 하셨듯이 이 일은 세상 끝 날까지 거룩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쉼 없이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아세례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일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모순됨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의 가치는 인간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다.
우리의 관심사는 세례를 받는 자가 가진 믿음의 유무를 달려 있지 않습니다. (유아처럼)믿음 없이 받았다 하더라도 세례가 무효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세례의 중요성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유아세례가 가능함. *교회에 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의 유무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 말씀과 계명이 있기 때문이다)
세례는 단순한 물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물 옆에 그리고 함께 존재합니다.(세례반) 이 말은 곧 세례를 받는 자에게 믿음이 없을지라도 물과 함께 있는 말씀이 세례를 온전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이 때 필요한 것이 예수기도) 따라서 나의(사람의) 믿음이란, 세례를 온전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세례를 수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의식을 갖추어 제대로 된 세례를 받지 못했거나 그렇게 세례를 주었다고 해도 무효화되지 않습니다. 세례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말씀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혹여 악독한 마음을 품은 유대인이 왔을 때, 우리가 진심으로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면 그 세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왜냐하면 그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 깃든 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이 세례를 하잘것없는 것으로 여긴다 하더라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것은 그가 세례를 믿든 안 믿든 성찬 받기에 합당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문제와 관계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훈련소 세례)
세례는 내 신앙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제정의 말씀 위에 세우는 것이다.
이미 언급하며 논했다시피 아이들이 믿지 않고 받았다고 해도 그 세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아이들은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만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악한 목적을 품고 분찬된 것을 받았다고 해도 성찬의 효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또한 성찬에 참여한 자가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바른 성찬을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겼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다시 받도록 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성례전을 모독하는 일이고 가장 나쁜 모양으로 부정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이 정하신 바를 잘못 사용한다고 해서 그 말씀과 정하심 자체가 훼손되고, 무효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어찌 감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전에 내가 믿지 못했을지라도 이제는 믿음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 세례는 참으로 옳았으나 불행히도 내가 그렇게 받지 못했구나’ 나 자신도 그렇고 세례 받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믿음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그러나 내 믿음과 나를 향한 다른 사람들의 기도 위에 내 신앙을 세울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과 명령 위에 나의 신앙을 세웁니다.’
성찬도 이와 동일합니다. 내 믿음에 근거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강하든 약하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확신하건대 그분은 나를 나아가게 하시고 먹게 하시며 마시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선물로 주신 그분의 몸과 피 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나에게 거짓말을 하시거나 속이지 않습니다.
유아세례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아이가 하나님을 믿기를 기대하며 데려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아이에게 믿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기대하며 기도하기 때문에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나와 내 이웃 그리고 모든 인간은 실수도 하고 속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