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직 원해야 하는 것
다음을 이해하고 느끼고 실감
공간의 개수는?
1개 단일공간
“공간”을 “의식”으로 대체
이것이 처음부터 우리 모습
동시에 지금 우리는
의미-무의미, 음-양, 이원성으로 운영되는
단일 공동 꿈 실험 중
이원성은 곧 논리 필연적 불안정 그리고 고통
이원성 각자는 실재하는 알맹이가 없기에
의미 있다 여기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의미가 주는 고통)
의미 있다 여길 것을 찾지 못하는 고통
(무의미가 주는 고통)
‘반야 붓다 의식’은 오직 고통 소멸에 관심
고집멸도
삶은 고통
그 원인은 개인의식 홀로 있다고 여기기에
고통을 멸하고자 하는가?
바로 봄, 바로 앎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단일의식
삼세제불 단일의식
처음부터 ‘고집멸도’ 없었고
‘구제받을 중생’은 없었다.
테마파크
일인다역 연극 실험
공동 꿈
일체유위 연기법은
꿈 연극 고통 발생법
꿈 연극 고통 운영시스템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죽어야 하나?
보면 그친다.
正見
항간의 풍문, 그치면 본다?
No, No
개인에게는 ‘그치는 기능’이 없습니다.
그런 설정이 없고, 그런 설정이 아닙니다.
개인을 보는 것, 그것이 곧 고통
경험이 주는 지혜
‘노자 의식’은 말합니다.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급오무신 오유하환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칭송 치욕 둘 다 큰 고통
그 원인은 개인을 보기 때문
개인을 보지 않음에 이르면
고통이 있을까?”
공간 시간은 단일의식의 인류적 특질
단일의식이 개인이기를 그치면
공간 시간이 그치고
공간 시간 속 고통도 그칩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무엇?
단일의식은
개인, 공간, 시간, 고통을
演技합니다.
솜털처럼 가볍게
이것이 지금 우리
우리는 태초 이전에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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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보면 그친다.
무엇이 그치나?
고통
사무치는 무거움
그 이후는?
계속한다.
무엇을?
고통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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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무의미 무가치는 뼛골에 사무치는 고통
삶과 죽음을 의미 있게 가치 있게 바꾸려 하는가?
노 노, 그것은 원시불능
꿈 깬 후 꿈을 그칠런가?
前도 꿈 後도 꿈
다만,
첫댓글 한 동안 배운 핵심의 내용들을 하나의 실에 꿰어보는 느낌입니다.
"개인적 동기를 멀리 해야한다"는 말이 그렇게나 중요했었음을 다시 살펴보게됩니다.
옛 습관으로 돌아가려 할 때마다 일깨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속에서의 돈오점수....... 욕심을 부려서인지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느껴집니다. 생각때문이겠지요.
시공에서의 모든 것은 단일의식이고 나의 몸덩이는 출력장치에 지나지 않건만,
그 놈의 욕심(부림)은 왜 사라지지않고 잊을만하면 나도 모르게 등 뒤에 딱 붙어있는지....
500년짜리 근기임을 실토합니다.
그래도, "법신보신화신이 하나"로 느껴지는 순간순간들이 있어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진심으로 암송합니다.
그래 이대로도 좋아 ! ( 지금의 감정)
마하반야바라밀
어젯밤 꿈 속에 나는 나는 날개 달고
구름보다 더 높이 올라올라 갔지요~
무지개 동산에서 놀고 있을 때
이리 저리 나를 찾는 아빠의 얼굴
이리 저리 나를 찾는 아빠의 얼굴~
예경_( )_
<<'단일공간' = '단일의식'>>
연기법으로 운영되는
-버츄얼 테마파크
-일인다역의 연극
-한바탕의 공동몽
"급오무신(及吾無身) 오유하환(吾有何患)"
개인을 보지 않는다면 어찌 환란과 고통이 있겠습니까_()_
<무의미가 주는 고통> 이 솜털이 되다니 ...
공동꿈~~~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