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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강해_29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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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과 절기 강해 제29과
유대인들의 하나님의 계획 배척
예수님의 지상 생활 33년, 하늘의 왕국
마23:37-39(요1:11의 의미)
AD 30년부터 70년까지 유대인들에게 기회를 주셨으나 여전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경륜을 배척함.
AD 70년에 성전이 완전히 훼파되고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가 됨(신28:62-64; 신18:15 참조).
눅21:5-28, 여기의 ‘너희’는 유대인들이다.
20-24절 설명, AD 70년과 상관이 있다. 특히 24절 말씀, 27절(사람의 아들이 온다)
그러나 단순히 AD 70년의 성전 훼파를 가리키지 않는다.
유대인들의 배척의 결과
구름기둥이나 불기둥이 없다. 희생 제단이나 희생 제물 그리고 제사장도 없다.
유월절은 지키지만 유월절 어린양을 잡지는 않는다.
속죄일은 지키지만 속죄를 위한 피는 흘리지 않는다. 모든 희생 예물과 헌물은 중단되었다.
그들에게는 왕도 없고 재판관도 없으며 영감을 받은 성경 기록자도 없다.
우림과 둠밈도 하나님의 상징이 되지 못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들이 이방인들에 의해 대체되었을까?
이스라엘 대체 신학, 천주교, 장로교 등
유대인들이 다시 자신들의 땅과 왕과 수도를 얻을까?
그들의 상황은 호세아서 3장 4-5절의 예언이 그대로이다.
성경의 예언에 따라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혀야 한다(눅21:24).
바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롬11:25-27,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 출14:13).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나 혹은 교회에 의해 밀려나지 않았다.
때가 이르면 그들이 다시 이 땅에 하나의 나라를 구성할 것이다.
유대인들의 회복
1. 그 사실에 관하여(암9:14-15; 사11:11-12; 43:5-7; 렘16:14-15)
2. 그때에 관하여(눅21:24)
3. 그 방법에 관하여
(a) 회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옴(겔36:24-27).
(b) 회심하기 전에 심판을 받음(겔20:33-38; 겔22:19-22; 말3:1-3; 슥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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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강해_30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성막과 절기 강해 제30과
(b) 회심하기 전에 심판을 받음(겔20:33-38; 겔22:19-22; 말3:1-3; 슥13:8-9)
유대인들은 아직까지 위에서 기록된 것과 같은 시련을 당한 적이 없다.
예레미야서 30장 4-7절과 다니엘서 12장 1절은 이 환난 기간을 ‘야곱의 고난의 때’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친히 큰 환난이라고 부르셨다.
예수님과 스가랴 대언자는 이 기간을 주님의 재림과 연관시키고 있다(마24:21-31; 슥14:1-11).
이 무시무시한 심판의 결과 유대인들은 비참한 가운데 주님을 부르게 된다(슥12:10-11).
이렇게 된 후에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신다(슥14:4).
이때에야 비로소 유다 민족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단 하루 만에 태어날 것이다(사66:8).
이때에 예레미야 대언자가 예언한대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이 세워진다(렘31:31-34).
그때에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렘31:34).
그들이 자신들의 본토로 다시 돌아갈 때에는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소유하고
차지한다(창15:18).
에스겔에 따르면 이곳은 다마스커스의 북동쪽 하맛에서부터 남쪽에 있는 가데스까지이다(겔48:1-29).
이때에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고(에스겔서 40-48장 참조) 주님의 영광이 다시 돌아오며 희생 예물이
다시 드려진다.
그리고 정부가 재수립되고 땅의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통해 복을 받게 된다(슥8:20-23).
오순절과 나팔절 사이의 긴 기간
이때에 이스라엘은 나팔소리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쉬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은 이 긴 기간처럼 인류의 역사상 아마도 가장 긴 기간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순절과 나팔절 사이의 이 긴 기간을 두신 데는 이유가 있다.
예언적으로 왜 하나님께서 이 기간을 그렇게 길게 하셨는지 혹은 정확히 그 기간이 얼마나 오래
될는지 성경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안디옥 교회의 요청에 따라 열린 예루살렘 공회에서 야고보는 교회를 택한 것을 말한다(행15:14).
이 말은 결코 이스라엘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야고보는 공회에서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 간증을 하였다(행15:15-16; 암9:11; 미7:11).
16절의 ‘이 일 후에’ 가 중요함.
나팔절은 하나님의 예언의 계획 안에서 오순절 이후에 이루어질 사건들을 제시한다.
구약의 대언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달력에 적어 놓은 한 사건 즉 나팔절을 지적한다.
이것은 불가피하게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되어 있다.
구약시대 400년의 침묵기, 주님의 초림, 교회 시대, 주님의 재림
나팔절의 의미
나팔을 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안하신 것이다.
옛날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특이한 통신수단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모세에게 나팔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성경에서 나팔이 처음 나오는 곳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주시는 것과 관련이 있다(출19:13-20).
나팔 소리로 사람들을 모아서 일하고, 섬기고, 전쟁을 준비하게 했다(민10:1-10).
원래는 매월 월삭에 나팔을 불었다(민10:10).
나팔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깜짝 놀라게 하셨다. - 53
이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의 관계에 있어서 꼭 필요한 연결선이었다.
초소에서 파수꾼들이 적군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면 그들은 나팔을 불어서 백성들에게 경고를 주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이 다가오면 역시 나팔로서 이것을 알렸다.
그러므로 나팔을 부는 사람들이 소리를 정확히 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고전14:8).
하나님의 절기들은 연대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교회시대(오순절)가 끝나며 나팔절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예언의 달력에 따라 오순절과 나팔절을
이어줄 성령님의 강림 다음 사건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마24:29-31:
전체 이스라엘이 깨는 그 날에 말세의 유대인 중 남는 자들은 모두 나팔소리를 들을 것이며 그것에
응답할 것이다. 흩어졌던 그분의 백성이 다시 모이게 될 것이다(현재는 일부만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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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강해_31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성막과 절기 강해 제31과
유대인 독자들을 위하여 쓰인 마태복음 24:31의 예언은 구약을 읽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결코 새로운
바가 아니다. 대언자 이사야의 글(사27:12-13)
대언자 요엘도 하나님께서 나팔소리와 함께 그분의 백성들을 모으는 ‘그 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욜2:15-21).
구약의 다른 대언자들이 대언 주제 역시 ‘크고 무서운 주의 날’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었다.
나팔절이 성취되는 것은 지금부터 매우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메시아를 보게 될 때 그 날은 얼마나 영광스러울 것인가?
그들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분을 영접할 것이며 주 예수님은 그들을 직접 치리 하실 것이다.
나팔절: 새 시작, 심판, 회개, 용서
유대인들에게 이 날은 일 년 중 가장 기쁜 기간의 시작이 되며 모든 성회들 중 가장 기쁜 것이 될
것이다.
교회의 휴거는 이보다 최소한 7년 전에 발생한다.
교회가 휴거를 받을 때에도 나팔 소리가 있다(살전4:16; 고전15:51-52).
또 이스라엘이 다시 모이는 때에도 나팔 소리가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일곱 개의 나팔이 있다(계8장-9
장). 이 나팔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질 무서운 심판들을 초래한다.
나팔절 요약
(1) 새해 초하루 (2) 과거를 기억하는 날 (3) 심판의 날 (4)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부는 날.
이날에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이사야서 60-61장을 읽는다. 또 주님께서 왕(메시아)으로 나타나시며
전 세계의 통치자로 오르실 그 날에 대한 설교를 한다.
이스라엘의 귀환
1차: 스룹바벨(스1-6장), BC 536년, 535년 성전 기초, 520년 성전 건축 시작, 516년 성전 완공
2차: 에스라(스7-10장), BC 467
3차: 느헤미야(느1-13장), BC 454, 성벽 재건 및 봉헌
○ 대제사장 예수아가 새 희생 단에 첫 예물을 드림
주전 536년에 페르시아 고레스는 바빌론 포로 귀환 허용함(성전 개축을 허용함).
그는 유다가 멸망했을 때 바빌론 사람들이 성전에서 약탈한 5,400여 점의 금은 기구들도 줌.
그래서 42,000명이 넘는 유대인이 예루살렘 주위의 성읍들에 정착했다.
이 백성의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의 희생 제단을 재건하는 것이었다(스3:1-6).
성전의 기초가 놓이기도 전에 제사장들이 구정(舊正)인 티쉬리 월(七月) 초하루에 주님께 태우는 헌물을
드리기 시작했다(6절 참조).
대제사장인 예수아(여호수아)는 -히브리어로는 ‘예수아’- 이들이 새로 지은 희생 단에 첫 예물을 주님께
드렸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는 ‘예수스 (Jesus)’ 즉 예수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예표로 볼 수 있다.
○ 에스라가 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온 포로들에게 율법 서를 읽어 줌(BC 454).
예루살렘 성벽은 하나님의 성전의 완성 이후에 이루어졌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 생활 이후 귀환- 55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 책을 읽었다(느8:2-3).
이 나팔절은 바빌론 포로 생활 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한 번 받아들이는 새로운
시작이 되는 날이었다. 8절, 10절 설명
○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
요엘 대언자는 주님의 날이 나팔절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욜1:14-15; 욜2:1-2).
다니엘서 9장 27절과 계시록 12장 6절은 대환난이 적그리스도가 새로 지은 성전을 더럽게 함으로써
시작되며(살후2:3-4) 그때부터 정확히 1,260일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에 의해 아마겟돈 전쟁에서
적그리스도가 패망함으로써 끝이 남을 보여주고 있다.
https://youtu.be/EiRMjaN1H4o?list=PL4P6SBDceLgE0HYwChUE4IlTYeyg69vk9
성막 강해_32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성막과 절기 강해 제32과
6. 속죄절(The Feast of Atonement): ‘예수님을 통한 속죄’
(레23:26-32)
휴거 이후의 다음 나팔은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 땅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마24:29-31).
그 날에는 어느 사람이나 국가도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때에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영적인 부흥이다.
자기들의 불충성과 자기들의 메시아를 배척한 것을 깨닫게 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만 됨을 깨닫게 된다. 깨끗하게 하는 것이 속죄절에서 배우는 가장 큰 교훈이다.
그래서 이 거룩한 모임은 ‘속죄의 날’이라고 불린다(레23:27).
‘속죄’(atonement, At-One-Ment)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의 용어로 레위기에만도 48회나 나타난다.
신약성경에서는 한 번만 나타난다(롬5:11).
이 말은 ‘화해하게 하는 것’(reconciliation)으로도 쓰였다. 사실 ‘속죄’와 ‘화목’은 같은 말이다.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때에는 둘이 합쳐서 하나가 되고 속죄가 이루어진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과 희생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케
되었다(롬5:10; 골1:21-22).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피에 의해서만 만족될 수 있다(히9:22).
구약시대 이스라엘에게 이 속죄일은 율법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속죄일을 이야기할 때 랍비들은 ‘야마’(Yama)를 사용했으며 이것은 단지 ‘그 날’을 의미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죄일은 가장 큰 행사 날이었다. 바로 그 날에 개인뿐만 아니고 전 국가의 죄악이
깨끗하게 되고 용서되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은 모세의 율법체계를 지키는 곳마다 욤키퍼(즉 속죄일)를 지켰다.
이 날은 유대인들의 날들 중 가장 엄숙한 날이다.
속죄일의 의미와 중요성은 레위기 16장에 나온다.
레위기 16장은 이스라엘의 희생 제도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속죄라는 단어가 무려 15회나 나온다.
레위기 16장에는 ‘피’라는 단어가 적어도 아홉 번 나온다.
‘피와 속죄’와 모세의 율법 제도(레17:11)
이스라엘의 일곱 명절은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제정되었다.
백성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사59:2).
죄 문제는 속죄로 이루어지고 이를 위해서는 피의 희생이 있어야만 한다.
레위기 16장은 죄를 어떻게 종합적으로 완전하게 다루는가를 보여 준다.
제사장
레위기 16장은 10장에 기록된 사건 즉 아론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언급하며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장막 뜰에서 이 두 젊은이들을 쳐서 죽게 하셨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그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이었다(목사는 중보자가 아니다).
이 속죄일에 제사장은 자신의 죄들로 인해 희생물을 준비했다.
제사장에게 주신 특별 지침 사항- 57
일 년에 단 한 차례 속죄일에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 그는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성스러운 예식을
위해 자신을 준비해야 했다.
그 준비과정에서 먼저 어린 수소를 희생시켜야 했다(레16:6).
제사장은 의복을 입기 전에 몸을 먼저 닦고(레16:4), 목욕 후에 의복을 입고 수소를 죽이고(레16:11)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긍휼의 자리 앞에서 그 수소의 피를 일곱 차례 뿌렸다(14절).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서기 전에 자신을 먼저 정결하게 해야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약의 중보자이신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위해 희생물을
드릴 필요가 없었다(히7:26-27).
그분 안에는 죄가 없었다(요일3:5). 그분은 죄를 짓지 않았다(벧전2:2).
수소의 피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을 위해 희생물로 드려졌다(히9:7).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히9:11-12).
백성
제사장 아론의 희생물 이후의 특별한 관심사는 백성의 죄였다.
이스라엘 회중을 대신하여 두 마리 숫염소가 선택되어 이 의식에서 사용되었다(16:5, 7).
그 중 하나는 백성의 죄로 인한 희생물로서 드려졌고(15-16), 다른 하나는 백성의 죄악을 짊어진
채 피신하는 속죄 염소(scape goat)가 되었다(레16:5-10, 21-22).
속죄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장면이 이 두 마리 염소들의 기사에 담겨 있다.
한 마리는 주님을 위해 정해졌고 다른 하나는 속죄 염소로 정해졌다(레16:8).
주님을 위한 염소는 죽임을 당해서 죄로 인한 예물로 드려졌다.
죽임을 당한 염소만으로는 속죄의 완전한 의미를 다 깨달을 수 없다.
속죄의 예물은 결코 죄를 없이하지는 못했다.
구약성경의 히브리말인 ‘카파르’는 ‘덮는다’ 혹은 ‘숨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속죄는 개인의 죄를 덮는 것을 의미하며 그가 하나님께 잠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했다.
속죄일 의식은 제사장이 두 번째 염소에게 돌아올 때까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레16:21-22).
이스라엘 백성은 죄들을 업은 염소가 광야로 끌려감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죄악을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고 죄악들을 제거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속죄는 죄악의 용서뿐만 아니고 제거까지도 포함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명령을 따라서 엄숙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레23:27-32).
이 명령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결코 그들의 죄악들을 용서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다.
그들은 속죄를 위해 한 것이 전혀 없으며 단지 제사장이 이 모든 일을 했다.
구원이란 어느 시기에도 결코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속죄일에 일을 금하고 죄에 대한 슬픔을 표시한 죄악의 용서에 아무 효과도 미치지 못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기 위해 바쁜 생활 속에서 하루를 쉬었다.
“왜 속죄일이 모든 성회들의 순서에서 가장 처음에 오지 않았을까?”
피 흘림을 당하고 피 뿌림을 당했던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은 이집트(애굽)에서 시작되었고 죽음의
심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는 방패였다.
속죄일은 이집트에서 행한 적이 없다. 그들은 속죄를 위해 성막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속죄의 피는 하나님의 백성의 이집트 탈출 뒤 그들이 지은 죄들을 정결케 하였다.
속죄일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교훈
우리는 생각에서 말에서 행동에서 죄를 짓는다. - 58
성회됨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죄의 문제를 더욱더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쉽게 얽어매는 죄(히12:1)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속죄의 권능을 힘입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구속하셔서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예수 그리스도도 거룩하시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도 거룩하시다.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신 성경말씀도 거룩하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부르심을 ‘거룩한 부르심’이라고 한다(딤후1:9).
참된 유대인이라면 레위기 17장 11절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방인들도 히브리서 9장 22절에 기록되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해야 한다.
율법 제도에서 피의 희생은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방법이었다.
나팔절을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 나팔을 불어서 이스라엘을 본 땅으로 모으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나팔절 다음에 연대적으로 무엇이 오는가? 그것은 당연히 속죄일이다.
스가랴 대언자(슥12:9-11)
10절과 11절의 ‘애통’은 레16:29-31과 23:27-32의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메시아를 배척한 죄에 대해 슬퍼하며 애통하는 장면은 요시야 왕이 파라오 느고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때 슬퍼했던 것과 비슷하다(대하35:20-2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13:1).
‘그 날’은 14:1절에 있는 ‘주님의 날’(the day of the LORD) 과 같은 말이다.
‘그 날에’라는 말이 스가랴 12, 13, 14장에만 무려 16회 나온다(12:3, 4, 6, 8, 9, 11; 13:1, 2, 4;
14:4, 6, 8, 9, 13, 20, 21).
예레미야(31:31-37)와 에스겔(36:25-32)은 ‘자기들이 찌른 메시아’에 대해 이스라엘이 슬퍼하며 회개하
는 것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전 국가가 속죄되는 날 그 땅의 죄악이 ‘단 하루에’ 모두
제거될 것이다(슥3:9).
죄와 부정한 것에 대해 예루살렘의 거민들을 위해서 열리게 될 그 샘은 ‘그들이 찔렀던’ 메시아의
피의 샘이다(슥12:10).
12:10절의 ‘찔렀던’과 13:1절의 ‘샘’은 서로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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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강해_33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성막과 절기 강해 제33과
이스라엘에는 밝은 미래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배척한 메시아에 대해 애통하며 회개할 때 즉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고 외치며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때, 금이 갔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마침내
영원히 회복될 것이다.
7.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 ‘예수님의 권세가 나타남’
레위기 23장 33-44절
추석, 추수감사절: 축제와 기쁨이 넘치는 시기이다.
장막절은 여러 면에서 추석과 추수감사절과 비슷하다.
이것은 일곱 번째 마지막 명절로서 주님께서 정하신 예정된 기간들을 완성한다.
장막절 안에서 교회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목적이 완성된다.
장막절은 하나님께로 모이는 절기로서 칠월 십오일에 시작되어 칠 일 동안 계속되었다(레23:34, 39).
타작마당과 포도즙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킨다(신16:13-15).
한 알의 밀알: 요12:24,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해 수확이 이루어진다.
장막절은 ‘땅의 열매들을’ 한 해의 마지막에 거두어들이는 것을 나타낸다.
장막절은 백성들이 자기들의 거주하는 집을 떠나서 칠 일 동안 텐트와 같은 모습의 초막에서 야영생활
을 했기 때문에 ‘초막절’이라고도 불려졌다(레23:42).
초막들은 나무열매 가지나 종려나무 가지들, 잎이 큰 나무들의 가지, 그리고 버드나무 가지들로 만들어
졌다(23:40).
왜 하나님께서 지상의 모든 나라들 중에 이스라엘을 취하셔서 이들을 이런 식으로 대하셨을까?
(1) 기억해야 할 시간(신31:10-13)
그 땅의 열매들과 생산품들로 만들어진 그 초막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하며 급하게
지은 피난처에서 살았을 때 주님께서 예비해 주셨던 것들을 생각나게 했다(레23:42-43).
장막절은 그분의 백성들이 40년 방황하는 기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어떻게 모든 것을 잘 예비해
주셨는가를 오는 세대들에게 더욱더 새롭게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들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을 위해 선택하신 곳으로 인도하셨다.
기억하라(신8:2).
그래서 장막절은 유대인들의 연중 명절들 중 최고의 절정을 이루었다.
기억하라(신4:9; 4:23: 5:15; 6:12; 7:18; 8:11, 14, 18; 9:7; 15:15; 16:12)
그들은 매일 받은 축복들 즉 의복, 음식, 집, 건강, 즐거움 등을 일주일 동안 누리지 못함으로써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해야만 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광야 사십년 생활은 ‘그들은 실패했고 하나님은 신실하셨다’라는 것을 늘 기억나게 했다.
그러므로 이 명절은 과거를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대언자 이사야의 충고(사51:1-3)
시40:2의 고백
(2) 즐거워할 시간(레23:40)
속죄일 다음에 장막절이 온다.
속죄일에 자신을 괴롭게 하면서 죄악에 대해서 깊이 슬퍼했다.- 60
그 이후에 그들은 기뻐하였다.
죄는 항상 기쁨을 가로막으며 기쁨은 언제나 정결함과 용서 후에 따라온다.
다윗의 예(시51:12)
이 날은 기쁜 날이다(신16:13-15).
장막절은 일곱(7) 번째의 명절로서 칠(7)월에 칠(7)일 동안 계속되었다.
일곱(7)이라는 숫자가 세 번 나온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참된 기쁨과 함께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
큰 장막절은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을 설립하시려고 땅에 다시 오시는 것에 의해 성취된다.
이 장막절은 모든 것이 완전해지고 궁극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리하시는 왕국은 모두의 관심사
바리새인들(눅17:20)
제자들(행1:6)
베드로의 대답(행3:20-21)
하나님은 만물을 회복시키려고 자신의 달력에 특정한 한 시간을 만드셨다.
메시아 왕국, 하늘의 왕국
문자 그대로 1000년 동안 지상에서 의와 평강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이 유력한 국가가 되어 지정학적인 중심지가 될 것이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되고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온 땅이 영광의 회복을 체험할 것이다.
스가랴 대언자 14:16-19, 사도행전 1:9-11
이방 민족들이 매년 왕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와서 장막절을 지킬
것이다(슥14:16).
그분께 경배하려고 오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그분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슥14:17).
이스라엘의 회복과 기쁨(사35:10)
레위기의 주제는 성결이며 ‘거룩하다’는 단어는 91회나 나온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너희는 거룩하라고 자주 말씀하신다(11:44-45; 19:2; 20:7,26; 21:8).
일곱 개의 거룩한 절기들 중 마지막인 장막절이 완결된 후에 마침내 성결함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슥14:20-21
그 왕국시대에는 주님께 대한 성결이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주님의 재림: 논쟁의 대상이 아니고 확신의 대상이다.
히9:28
그 왕께서 내려오신다(계11:15).
메시아의 천년왕국이 있은 뒤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며 우리 성도들이 영원히 거하게 될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게 된다. 바로 이 새 예루살렘성에서 우리 성도들이 영원토록
살게 될 것이다(계21:1; 5; 22:20-21).- 61
○ 솔로몬 성전의 봉헌식
기원전 1045년 7월 15일 장막절에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봉헌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안에 계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대하5:2-3; 12-14; 왕상8:1-2).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
예수님과 관련된 일들이 모두 구약성경의 절기들과 상관이 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언제 오셨을까?
장막절에 오셨을 가능성이 크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예수님이 12월 25일에 아니라 가을의 장막절에 태어나셨음을 보여 준다(10월경).
그분은 유월절(1월14일)에 죽었고 그때 그분의 나이는 역사적인 사실에 의해 입증되듯이 서른세 살
반이었다. 이 사실은 그분께서 장막절인 티쉬리월 십오일(7월 15일)에 탄생하셨음을 보여 준다.
우리 주님의 생애에 있었던 대사건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이 주님께 경배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야만 했던 세 절기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장막절인 7월 15일에 탄생하셔서 유월절(무교절 기간)에 죽으시고 초실절에 부활하시고 성령님
은 오순절에 권능 있게 임하셨다.
이것이 옳다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정상적인 수태 기간이 사십 주임을 고려해 볼 때 정확하게
12월 25일에 예수님을 잉태하였다.
어쨌든지 12월 25일의 성탄절은 이방인의 풍습을 세속화되며 정치와 연합한 타락한 교회가 세상과
타협해서 받아들인 것이다. - 끝 -
정동수 목사님 프로필
- 학 력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 학사(1982)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 석사(1984)
미국 매리랜드 주립대 기계공학 박사(1988)
미국 펜사콜라 신학대학원 석사(2001)
목사 안수(2001)
- 경 력 -
현,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92-현재)현,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http://www.cbck.org/html/ 사랑침례교회
http://cafe.daum.net/Jesus-bible 예수그리스도안에서(카페)
http://www.keepbible.com/ 킵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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