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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205) 계양 정벌
영릉성을 취하고 돌아온 공명이 유비에게 말한다.
"주공께서 유도에게 인장을 돌려준 건 정말 잘하신 일입니다."
"유도같은 저런 태수가 원하는 것이 뭐겠소, 첫째는 당연히 관직일 것이고, 둘째는 주군이 누군인가 일 것이오, 유도 입장에서는 황제는 너무 멀리있어, 가까운 형주의 주군이 곧 자신의 생사를 가름할 상사인 셈일 것이오. 허니, 누가 형주의 주인이냐가 그에게는 황제보다 중요할 것이오. 그동안 형주의 주군은 유표, 후에는 조조였소. 그리고 나는 그의 생각에, 나는 유표보다 강하고 조조보다 선하니, 태수도 계속 하라 하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으며, 어찌 충성을 하지 않겠소? 허허..."
유비의 말을 듣고, 조자룡이 말한다.
"주공께서 인의로 대하는 것이 검보다 백배는 날카로운 것 같습니다."
공명이 그 말을 듣고,
"주공께서 베푸는 인의에,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하고, 예를 표해 보인다.
그러자 자룡이 입을 연다.
"영릉이 투항한 것을 알게되면 무릉과 장사, 계양도 민심이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진해 투항해 오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공명이 대답한다.
"조장군의 말이 맞소, 제 생각에도 그 삼 군(郡)은 군사를 이끌고 일일히 칠 필요 없이, 상장군 한 명과 그를 호위하는 소수의 병사만 보내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니 주공께서는 이곳에서 정병과 함께 휴식을 취하시면서, 지켜 보시다가, 때를 기다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쨌든 북쪽엔 조조, 동쪽엔 손권 등의 강적이 남아 있으니까요."
공명은 자룡과 유비를 번갈아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비는,
"음, 좋소! 마량이 이런 말을 했지, 우선 영릉을 취하고 계양을 친 뒤에 마지막에 장사와 무릉을 치라고, 이제 영릉을 점했으니 다음에는 계양이오. 누가 계양에 갈 텐가?"
유비는 장수들을 향하여 물었다.
그러자 제일 앞자리에 앉아있던 장비가 기침을 한번 하며, 일어서려고 하는 순간, 자룡이 먼저 장중으로 나서며 아뢴다.
"제가 가겠습니다!"
"엉?"
장비가 선수를 빼앗기자, 뒤이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뢴다.
"내가 가겠소!"
"익덕 형! 형은 영릉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니, 이번에는 내가 가겠소."
자룡이 장비를 만류하였다.
그러자 장비는,
"에잇! 무슨 소리야? 난 영릉성 전투에 나서선 장팔사모도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싸움이 끝나버렸는데, 그걸론 안돼! 직성이 안풀려, 계양도 내가 갈꺼야!"
하고, 오히려 자룡을 나무라는 어조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익덕 형! 무슨 소리요, 내가 먼저 간다고했소!"
"에?..먼저 말한다고 대수던가? 선봉은 내가, 자네는 후군을 맡게!"
이렇게 장비와 자룡이 옥신각신하자, 미소를 띠며 지켜보던 유비가 두 사람을 제지하고 나선다.
"아, 아! 그만들 하게. 그냥.. 제비 뽑기로 결정을 하지!..."
장비가 어이없다는 듯이 양팔을 벌려 보이더니, 이내,
"좋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자룡도 이어서,
"그러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공명은 유비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어느새 제비를 만들었다.
그리고 두 장군에게 보여주며,
"자! 제가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하고, 말하며, 두 손을 올려 보이는데, 손 마다 쪽지 한장씩이 얹혀있었다.
"나먼저!"
성질 급한 장비가 먼저 하나를 집어든다.
그리고 볼 것 없이 얼른 펴 보는데,
"꽝! (놀아라)"
라고, 쓰여 있었다.
"안간다? ..? 헹!..."
장비가 쪽지에 쓰인 글씨를 읽고나서, 실망조의 콧김을 내쏘았다.
"응 ..."
유비와 공명이 살짝 미소짓는 가운데, 뽑나마나, 보나마나, 한 장 남은 쪽지는 분명히 <간다>였을 것이다. 자룡은 장비와 달리, 공명의 손에 하나 남은 쪽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찬찬히 펴 보았다.
그런데, 그 쪽지에도 역시,
"꽝! (놀아라)"
라고, 쓰여있는 것이 아닌가?
자룡은 고개를 들어 공명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공명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곧바로 입을 연다.
"장 장군 , 번복하진 않겠지요? 장군이 뽑았으니 말이지요. 하늘이 자룡에게 기회를 준 것 같습니다. 주공, 이제 자룡에게 삼천 군사를 주어 계양을 치게 하십시오."
"좋소, 그렇게 합시다."
유비의 승낙이 떨어졌다.
그러자 장비가 유비 앞으로 썩 나서며 말한다.
"형님! 나 한테는 이천만 주면 계양을 취하겠소."
하고, 말하며, 계양 공격에 자룡이 당첨 된 것을 자신에게 돌리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됐네, 그만하게. 제비를 뽑아서 결정한 일에 더이상 왈가불가 하지 말게."
하고, 말하자, 장비가 한 발 물러서며,
"에잉!..."
하고, 실망한 얼굴을 해보인다.
이런 장비를 보고, 조자룡이 그의 어깨를 두두리며 말한다.
"익덕 형! 실망하지 말고 내 승전보나 기다리시오."
하고, 자신이 계양 정벌에 나서게 된 것에 대해, 기분좋은 어조로 말한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음!"
이렇게 장비와 자룡은 장중을 물러나 각기 자기 숙소로 돌아갔다.
...
이날, 밤이 깊었으나 공명은 촛불을 손에 들고, 앞으로 취하게 될 계양, 무릉, 장사 등의 지도를 살펴보며 향후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때 자룡이 찾아왔다.
"군사!"
"어, 자룡?"
조자룡은 품에서 낮에 자신이 뽑아든 제비 쪽지를 꺼내보였다.
"아니, 이건?..."
"묻고 싶습니다. 어찌 이런 속임수로 출전 기회를 제게 주신겁니까?"
자룡의 질문에는 의문과 함께, 공명에 대한 일종의 불신이 묻어있었다.
그러자 공명은 차분한 어조로,
"장군이 원하던 기회가 아니었소?"
하고, 대꾸한다.
그러나 정의와 의협심이 남다른 자룡은 얼굴이 굳어지며,
"원하긴 했지만, 저는 이런 편법은 싫습니다."
하고, 그의 강직한 성격대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공명이 그 말을 듣고,
"역시 자룡은 강직한 사람이오. 단언하건데, 편법은 절대 아니오. 통솔자로써 금기 사항이 한 장수에 대한 편애라는 것을 잘 알 거요. 이런 방법을 취한 것은 다 대국을 위해서요."
"그렇다면 그 이유를 설명을 해주십시오."
"이번 남벌의 목적은 네 개 군을 귀속시키려는데 있소.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무력으로만 제압하려 한다면 우리의 물자와 병사도 축나고, 귀속시켜야 할 지역의 백성들의 인심도 잃기가 쉽소. 또 투항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전화가 이어지는 난국이 벌어질 수도 있소.
익덕은 성격이 거칠고 호전적인지라, 결사항전하는 적장을 만나면, 자기 분을 참지 못하고, 상대에게 무차별 살상을 가할 것이오. 해서, 조 장군을 보내려는 것이오."
"알겠습니다!"
조자룡은 공명의 심오한 속마음을 듣자, 두 말 없이 예를 표하며 대답하였다.
이를 보고 공명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자룡의 대답에 긍정을 표시해 보이자, 자룡은 들어올 때와 다르게 기분좋은 발걸음으로 물러간다.
...
계양성에는 널리 알려져 있는 용장이 있었다.
그 사람은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 잡았다는 역발산(力拔山)의 힘을 가진 진응(陳應)이었다.
"유비의 군사가 우리에게 쳐들어온다는데, 우리 힘으로 그들을 감당해 낼 수가 없을 것이니, 처음부터 항복을 하여 영토와 백성들의 평온을 기하는 것이 어떻겠나?"
계양 태수 조범(趙範)은 본인의 뜻과 다르게 이렇게 말하면서 막후 신료들의 의중을 떠보았다.
그러자 상장군 진응은 자신의 힘을 믿고 강경하게 반대한다.
"유비 본인은 결단력도 부족하여 싸움마다 뒷전으로 물러나 장수들만 앞세우는 형편인 무능한 인물이고, 관운장과 장비가 약간의 용맹을 떨치고는 있으나, 그들 역시 폭도(暴徒)에 불과한데, 무엇이 두렵다고 항복을 합니까?"
"관우, 장비도 용장이지만, 지금 쳐들어 온다는 조자룡도 당양현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과 홀로 싸워서 이겨낸 용장이 아닌가?"
"조자룡이 강하다고는 하나, 이 진응과 비겨 과연 누가 참된 용장인지 태수께 친히 보여드리리다!"
진응이 이렇게 나오니, 태수 조범은 내심 기쁜 얼굴을 감추면서 항전하기로 하였다.
진응이 군사 사천을 이끌고 성밖으로 나가 유비군을 맞았다.
그리하여 유비군을 마주 보고 앞으로 나가자, 조자룡이 말한다.
"나는 상산 조자룡(常山 趙子龍)이다! 그대는 누군가?"
"나는 계양의 상장군 진응 (陳應)이다."
"태수 조범(趙範)은 어디에 있나?"
"우리 태수께선 공무로 바쁘시다."
"우리 유황숙께서는 형주의 구주(舊主)인 유표의 아우로써, 유기 공자와 함께 형주를 이끄신다. 이제 역적 조조에게 투항하였던 구토(舊土)를 회복하려 왔으니, 그대는 순순히 회복에 협조하라."
"우린 조승상을 모시는데, 어찌 너희 주공같은 돗자리 장사에게 투항하겠냐?"
진응의 대꾸는 조자룡의 분노를 촉발했다.
그리하여 자룡은 더이상 말을 아니하고, 진응을 향하여 말을 박찼다.
"이~ 히히힝!"
조자룡의 말이 진응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자, 진응도 응전한다.
"이랴!"
"야,잇!"
"창! 창!"
조자룡의 창과 진응의 삼지창이 격하게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이러길 사,오 합, 조자룡이 휘두른 창에 진응의 삼지창 자루가 <뎅겅!> 부러져 버렸다.
자룡은 잠시 숨을 고르며, 진응이 무기를 바꿔 나올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자룡이 진응을 보고 말한다.
"진응, 그대는 조금 전에 내게 목이 떨어질 뻔 하였다. 그대의 목 대신 내가 창검 자루만 베었으니 말이다."
"뭐? ..."
진응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간담이 서늘하였다.
그러나 자신은 자존심이 당당한 장수(將帥)가 아니던가, 죽을 땐 죽더라도 기는 조금도 죽지 않았다.
"무기를 바꿔서 나오라!"
조자룡이 이렇게 말한다.
진응이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자, 병사 하나가 진응에게 반월도를 가져다 바친다.
진응이 무기를 쳐들어 보이며, 소리친다.
"조운! 다시 한번 삼백 합에 이르기 까지 겨뤄보자!"
"그래? 나는 삼십 합이 넘도록 싸움을 끌어 본 일이 없는데, 무슨 삼백 합이라고 하느냐!"
조자룡이 진응을 조롱하자, 진응이 말을 박차고 자룡에게 공격해 온다.
조자룡은 우두커니 서서 진응의 공격을 맞았다.
심지어는 무기도 땅에 그대로 꼿아 놓은 채로...
진응이 반월도를 휘둘러 조자룡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자룡은 말 위에서 <요리조리> 피하다가, 어느 순간 창을 빼어들어, 진응의반월도를 정면으로 그어댔다.
"쨍그랑!
창과 창이 부딪치며, 맑고 청아한 소리가 넓은 들에 울려퍼졌다.
"엉? ..."
진응은 자신의 반월도 칼날의 절반이 조자룡의 창에 날아가 버린 것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았다.
"이런,이런!... 너희 계양성에는 고작 그런 정도의 허술한 무기밖에 없더냐? 더 튼튼한 무기를 가져오너라, 기다리겠다!"
조자룡이 이렇게 외치자, 진응도 지지않고 대꾸한다.
"겨뤄보니, 너도 별 것 아니던데.. 뭔 잔소리가 그리도 많으냐!"
"좋다! 그러면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마!"
진응은 자기 진영으로 달려가 칼날이 잘려버린 반월도를 내던지고 쌍추(雙椎)를 들고 나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다시 부딪쳤으나 불과 사,오 합만에 진응의 쌍추는 조자룡의 창검에 의해 여지없이 줄이 끊어져 버리며 두 동강이가 나버렸다.
이번에는 자룡이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무기를 모두 잃어버린 진응은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고, 조자룡은 그의 뒤를 불나게 추격하였다.
진응이 도망치기를 십 여리, 나무가 제법 우거진 숲에 이르러 진응의 말이 지쳐 고꾸라졌다.
그로인해 진응이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굴자, 어느새 조자룡의 창검이 그를 겨눴다.
"음!..."
진응은 더이상 싸울 의사가 없었다.
아니, 싸우려 하여도 손에 든 무기는 하나도 없었다.
"왜 안죽이고 있냐?"
진응은 조자룡의 창검이 자기를 겨누고, 그대로 있음에 의문을 갖고 물었다.
"가거라! 나는 대장부는 죽이지 않는다, 가라! 그리고 태수에게 전해라, 우리 주공에게 투항하라고."
조자룡은 이렇게 일방적으로 말을한 뒤에, 말을 돌려 오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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