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두 배 속도로 날 수 있는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지난주 23일 마지막 일반 승객을 태우고 런던을 출발, 3시간여 만인 오후 5시40분(한국시각 24일 오전 6시40분) 뉴욕에 도착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첫 시험비행을 한지 34년, 상업비행을 시작한지 27년 만에 퇴역한 것이다. 고개를 숙인 듯한 날렵한 모습을 자랑하는 콩코드는 보통 여객기가 7시간 날아야 하는 대서양을 3시간 만에 횡단했다. 콩코드가 퇴역하게 된 공식적인 이유는 기체 노후에 따른 유지비 부담이 가중되었기 때문이지만 그 속사정과는 상관없이 콩코드의 퇴역은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콩코드는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제안으로 개발됐다. '화합'을 의미하는 '콩코드(concorde)'는 영국과 프랑스를 동반자의 관계로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펠링 끝에 'e'가 들어가 불어식이 된 것만 보더라도 프랑스의 입김이 조금은 더 셌다. 미국과 소련도 뒤질세라 초음속 여객기 개발에 나섰다.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도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소련은 1968년 초음속 여객기 TU-144를 세계 최초로 시험비행했으나 이 비행기는 1973년 파리 에어쇼 도중 추락했다.
콩코드의 앞날을 결정지은 것은 미국이다. 1971년 미국 의회는 초음속 여객기 개발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소음과 오존층 파괴 등 환경문제와 유류가격 상승 같은 경제성 때문이었다. 콩코드를 주문한 팬암 항공사는 계약을 취소해 버렸다. 이즈음 보잉 등 미국의 항공기 제작사들은 B-747, DC-10 등 점보형 여객기를 본격 생산함으로써 오늘날의 저가 항공여행 시대를 열었다. 결국 콩코드는 겨우 20대만 생산되었고 그나마 상업비행에 투입된 것은 14대뿐이었다. 300대 생산을 예상했던 원래 기대는 완전히 어긋한 것이다. 브리티시 항공과 에어 프랑스가 콩코드를 런던~뉴욕, 파리~뉴욕 항로에 투입했지만 개발비는 고사하고 운항비용을 대기도 힘들었다.
좌석이 100석밖에 안 돼 대서양 왕복요금은 1만2000달러나 해서 억만장자나 영화배우들만이 겨우 이용하는 정도였다. 콩코드는 매우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비행기였으나 2000년 7월 파리 드골공항을 이륙한 콩코드가 부근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 콩코드 운항이 1년이나 중단되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11테러로 항공여객이 줄어들자 콩코드의 퇴역이 앞당겨진 것이다. 콩코드는 경제성 관문을 넘지 못하여 사라졌다지만, 기술적 문제도 많았다. 음속돌파에 따른 소음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연료소비에 따른 비행거리가 많이 짧았기 때문이다. 이제 콩코드는 박물관으로 사라지겠지만 인류는 언젠가 다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한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다.